정말 오래간만에 논평글 이외에 다른 분야 펌글 스크랩이다.

그나저나 트위터를 보다가 이런 자료를 발견했다. 새무리당 기회주의 400년의 역사라고.....

뭐 유심히 잘 살펴보면 부정확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흐름을 보는 데는 무리가 없는 듯하여 여기에 올려 본다.


추가:중간중간 광해-왕이된 남자,불멸의 이순신,이산,닥터진 등 깨알같은 자료들이 더욱 재밌고 이해하기 쉽게 들어가 있다는 것이 장점.







출처는 뭐 앞서 이야기 했지만 트위터.

여하간 이 지랄맞은 400년의 오욕의 역사를 멈출 사람은 우리 국민의 투표 뿐......


마지막으로 간만에 라반특위 엔딩곡이기도 한 민석님의 격문을 올리며 마친다.



 

격문(檄文) 1

작사,작곡 윤민석
노래 윤민석,서동요

좆선일보 서정주 박정희까지
일본놈의 충성스런 앞잡이일 때
동상걸린 손가락을 잘라내가며
해방을 위해 싸웠던 건 백성들이다

학살 원흉 전두환과 그 똘마니들
5공 6공 부귀영화 대물림 할 때
잡혀가고 죽어가고 고문당하며
민주를 위해 싸웠던 건 국민들이다

친일과 친미로 배불리는 매국노들
여의도에 또아리 틀고
갈 수록 적반하장 후안무치 지랄염병
국민들 피눈물을 짜는구나!

더 이상 못 참아!(더 이상 못 참아)
국민이 나서자!(국민이 나서자)
우리의 힘으로(우리의 힘으로)
모두 갈아엎자!!!

3.1 정신으로(3.1 정신으로)
5월의 노래로(5월의 노래로)
6월 함성으로(6월 함성으로)
역사를 만들자!!!

친일과 친미로 배불리는 매국노들
여의도에 또아리 틀고
갈 수록 적반하장 후안무치 지랄염병
국민들 피눈물을 짜는구나!

더 이상 못 참아!(더 이상 못 참아)
국민이 나서자!(국민이 나서자)
우리의 힘으로(우리의 힘으로)
모두 갈아엎자!!!

3.1 정신으로(3.1 정신으로)
5월의 노래로(5월의 노래로)
6월 함성으로(6월 함성으로)
역사를 만들자!!!

더 이상 못 참아!(더 이상 못 참아)
국민이 나서자!(국민이 나서자)
우리의 힘으로(우리의 힘으로)
모두 갈아엎자!!!

3.1 정신으로(3.1 정신으로)
5월의 노래로(5월의 노래로)
6월 함성으로(6월 함성으로)
역사를 만들자!!!

국민의 힘으로!!!


(참고로 윤민석님의 트위터,페이스북,송앤라이프 2012 페북 페이지 주소입니다. 응원의 글 한 마디씩 날려 주시길! 그리고 많은 후원 바랍니다.


송앤라이프 홈페이지 http://www.facebook.com/songnlife2012/

윤민석님 트위터 http://twitter.com/Nsomeday 

윤민석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100002553847873) 

송앤라이프 후원 국민은행 043-01-0692-706 예금주 윤정환(민석님 본명))



참고(수구쥐벼룩 여러분들께 드리는 글.):

이 글을 포함한 모든 이 화난새의 글은 무단복사 및 펌질+조작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만약 제 글이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지 안기부에 전화하세요.

적어도 3천만원이나 절대시계는 받으실 겝니다. 뭐 운 좋으시면 1억5천 로또 당첨이시겠지만.

전화번호는 국번없이 111.(참고로 경찰은 113입니다.)


그리고 제 글에 대한 상담은 요기로 와서 상담하시길. 다만, 정사충,수꼴,뉴또라이는 사절함.


본진:http://mbout-os21cccc.tistory.com 

트위터(진짜):http://twitter.com/angry_ahn

트위터(서브):http://twitter.com/MBOUTos21cccc

페이스북:http://facebook.com/MBOUTos21cccc


뽀나스로, 필자의 글이 문제가 있으면 알아서 삭제하거나 수정조치 하겠습니다.

(참고로 다시 말하지만 이 글에는 절대로 '저작권'이 없'읍'니다. 이 글은 철저히 copyleft를 지향합니다.)


우리 가카께서는 1% 국민 만의 대통령이시므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전과 14범으로서 꼼수들을 실천하셨고 오늘도 호연지기 반띵정신을 실천하십니다.

용산-쌍용학살,전직 대통령 정치적 암살,구제역 살처분 등등 항상 꼼꼼한 꼼수를 쓰시고 

여론을 조작하고 가카 일족 복지에 크게 신경쓰고 계십니다.

한반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군대에 안 갔다 오시는 한편,

북괴에는 돈봉투를 주며 정삼회담을 애걸복걸 하셨'읍'니다.

가카께서는 이러한 꼼수를 널리 전파하기 위하여 방송을 장악하려고 시도하고  

녹색'송'장을 위하여 4대강을 팍팍 파고 계십니다.

To the core 레알 재패니즈,양키이시어 한미 FTA와 한일군사협정을 뒷구멍으로 타결하셨'읍'니다.

가카의 꼼수를 비판하는 좌빨들을 막기 위하여 노무현탓,북한소행으로 물타기 하십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땐 친히 지하벙커에 들어가셔서 하나님께 이 나라를 봉헌하십니다.


물론 위의 말들은 모두 거짓 입니다. 가카께서는 절~대로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Posted by 명박퇴진안모씨 명박퇴진-안모씨 Trackback 0 : Comment 0


얼마 전, 필자가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기사를 하나 보게 되었는데, 바로 요 밑의 기사였지 말입니다.
뭐, 기사 내용은 대체로 북측이 역사를 정치에 이용한다고 까는 내용이었더라는.... 다음은 그 원본 기사입니다.

<평양이 세계 5대 문명 발상지 중 한곳?>

연합뉴스 | 이준삼 | 입력 2011.06.24 05:23 | 수정 2011.06.24 07:20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전라

北 '대동강문화' 우월성 줄기차게 강조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단군과 고조선이 신화냐 역사냐를 두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실체가 충분히 고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고조선은 오래 전에 '고증된' 역사다. 북한은 1990년대 초 단군릉 일대에서 약 5천년 전 부부의 유골이 발견됐고 그것이 단군 부부로 판명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북한은 이후에도 평양 일대에서 고인돌 무덤 등 구석기, 신석기 유적과 유물이 잇따라 발견됐다고 발표했고 마침내 1990년대 후반 이 일대의 고대문화를 '대동강문화'라고 이름 지었다.

특히 4천800년 전의 고인돌 무덤에서는 하늘의 별자리 위치를 표시한 규칙적인 구멍들이 발견됐는데 천문학의 역사가 오래된 나라들보다 3천년 가까이 앞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북한은 이런 연구활동을 근거로 1998년 3월 "과학적으로 증명된 수많은 자료는 대동강 유역이 고대문화, 단군조선의 문화임을 입증한다"며 대동강문화를 '세계 5대 문명' 중 하나라고 선포했다.

유물의 연대, 분포 등을 볼 때 대동강문화야말로 중국 황허, 인도 인더스강, 이집트 나일강, 서남아시아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문명 등 `세계 4대 문명'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2일에도 "세계 5대 문화의 하나인 대동강문화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에서 발생한 고대문화"라는 내용의 보도를 내보냈다.

중앙통신은 "발굴된 유적, 유물에 의하면 대동강유역은 원인, 고인, 신인 등 인류 진화의 순차적 단계를 거쳐오면서 농경문화를 위주로 하는 청동기문화, 도기, 천문, 문자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문화 발상지의 하나였다"고 주장했다.

대동강 유역에 집중된 고인돌 무덤과 돌판 무덤, 큰 부락터 유적, 옛성, 집터 등은 평양이 고대문명의 발원지였다는 것을 충분히 뒷받침해준다는 것이다.

또 "자연지리적 조건이 유리하고 산수가 수려해 인류가 발생발전하여온 대동강류역은 세계가 공인하는 조선사람의 발원지이며 조선민족의 성지"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런 주장에 역사학자들은 "근거가 약하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일단 북한이 유물ㆍ유적의 발굴과정이나 연구보고서 등을 충분히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주장의 사실 여부 자체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대동강문화를 세계 4대 문명과 비교하려면 문명의 규모, 세계 역사에 끼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지 단순히 유물ㆍ유적이 오래됐다고 해서 세계문명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단군릉만 하더라도 고구려 양식이라는 점에서 진위가 의심스럽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9층 계단식 돌무덤으로 건설된 사각형 모양의 이 무덤은 1994년 10월 현재 모습으로 개축됐다.

한국 고대사 전공인 윤용구 박사는 "우리 고대 문화를 이야기할 때 대동강지역이 선진지역이었던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러나 질적, 양적으로 전 세계에 영향을 준 4대 문명과 비교할만한 문화였는지에 대해서는 고증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이 단군, 고조선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문화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나서는 배경에는 정권의 역사적 정통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보는 분석이 많다.

대동강문화 개념이 탄생하고 강조된 시기는 1990년대 중후반으로 북한의 격동기와 겹친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권력기반 다지기에 나서야 했다.

일각에서는 남한과 벌이는 체제경쟁 구도에서 우위적 명분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동강문화에서 고조선이 유래했고 또다시 고구려, 발해, 고려, 조선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북한이야말로 역사적 정통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강조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jslee@yna.co.kr

(원본 기사링크: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view.html?cateid=1003&newsid=20110624052304860&p=yonhap)

참나 별걸 다 까고 넘어지는 이 기사 쓴 기자놈의 잉여력이란.... ㅉㅉㅉㅉ 게다가 남좃선이 북측을 깔 자격이나 될까요?
적어도, 왜놈들에 의해 역사가 난자 당하고 그마저도 뉴또라이 식민사관에 쪄든 놈들이 국사과목도 축소하려는(그러다가 이번에 중국의 아리랑 소수민족 문화재 등재에 크게 뒷통수 까였다지..... ㅉㅉㅉ) 빌어먹을 남좃선은 이러한 북을 깔 자격이 없지요.


(현행 국사교과서의 단군조선 강역. 출처:국사편찬위원회 고등학교 국사.)


(요동중심설? 평양중심설? 이동설? 사진출처:오정윤 저서 단숨에 읽는 한국사)


(뽀나스로 요건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삼한관경설.)


(여러 책으로 유명한 재야사학자 이덕일씨가 주장하는 단군조선 강역.)

물론, 아직까지도 단군조선의 중심지에 대해서 요동중심설,평양중심설,이동설 등 논란이 분분하고 북측의 경우 그 이전까지는 요동중심설이었다가 이후에 단군릉이 발견되고 이에 단군성조에 대하여 재해석이 되어 평양중심설로 바뀌었지만(여기에 대해서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래도 단군조선을 우리 역사임을 고증을 통해 밝혀내고 심지어 남쪽에서는 위서 논란이 있는 규원사화 역시 어느 정도 인용하는 등, 꿋꿋이 민족사관(주체사관)을 고수하고 있는 북측을 남측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여러분들은 단군조선에 대해서 어떤 입장이실런지? 뭐, 필자야 요동중심설을 지지하는 편이라 북측의 평양중심설 지지 및 에 대해 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만.... 여러분들은 또 다른 의견일 수도 있겠지요.


(평양 대박산 단군릉 사진.)

그나저나 이건 여담이지만, 평양 단군릉..... 개인적으로는 그 곳에 가 보고 싶지 말입니다. 언제쯤이나 남북이 다시 화해하고 통행도 자유로와 질 지..... 통일 되어 같이 손 잡고 우리민족의 국조가 계신 그 곳에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전쟁 61주년인 오늘도 얼마 안 남았군요. 마지막으로 짤림방지로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올리며 마칩니다.


(평양 야경. 언제 쯤에나 자유롭게 이 곳을 방문해 볼려나.... 사진출처:서프라이즈.)





//")//]]> 



서울에서 평양까지

작사 조재형
작곡 윤민석
노래 꽃다지/신형원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 오만원
소련도 가고 달나라도 가고
못가는 곳 없는데

광주보다 더 가까운
평양은 왜 못 가
우리 민족, 우리네 땅
평양은 왜 못 가

경적을 울리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꿈 속에라도 신명나게
달려 볼란다

분단세력 몰아내고/우리의 꿈 우리의 희망
통일만 된다면
돈 못 받아도 나는 좋아
이산가족 태우고 갈래

돌아올 때 빈 차걸랑
울다 죽은 내 형제들
묵은 편지 원혼이나
거두어 오지

경적을 울리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꿈 속에라도 신명나게
달려 볼란다

경적을 울리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꿈 속에라도 신명나게
달려 볼란다

속추신:참고로 송앤라이프 홈페이지와 후원 페이지입니다.
생활의 어려움으로 민란가 하나가 되라 이후로 노래활동을 제대로 못하는 윤민석님을 조금이나마 도와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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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포함한 모든 이 천민놈 글은 무단복사 및 펌질+조작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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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다시 말하지만 이 글에는 절대로 '저작권'이 없'읍'니다. 이 글은 철저히 copyleft를 지향합니다.)

쥐박이 쉒기는 1%만의 대통령이다.
99%의 국민은 안중에 없고 친일매국노 짓에 정신없다.
용산학살,전직 대통령 암살,구제역 살처분 등 별의별 학살을 자행하고도
여론을 조작하고 국민 복지는 관심 없이 쥐 일족 밥그릇 챙기는 것만 열중이다.
한반도 위기 극복 능력 없이 북풍만 조작하고 있다.
쥐박이의 무능을 홍보 부족으로 착각하고 방송을 장악하려고 시도하고 
한반도를 4대강 죽이기로 토막 내고 있다.
서민 복지 예산 대폭 축소하고 과메기 형님 동네 치장만 신경쓴다.
쥐박이 정책의 잘못을 지적하면 무조건 노무현탓, 북한 소행이라 박박 우긴다.
국가 비전의 제시없이 기도만 하면 되는줄 아는 무뇌충 개독이다.
그런 쥐쉒이를 따르는 쓰레기가 서너명있다.

Posted by 명박퇴진안모씨 명박퇴진-안모씨 Trackback 1 : Comment 0

간만에 또 쓰는 특집글 입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6월 항쟁 24주년.... 거기에 내일 예고된 광화문에서의 등록금 집회까지.... 참 감회가 새로운 날이지 말입니다.(그러고 보니 MB정권 하에서는 6.10 이 날짜가 한 번도 감회가 새롭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지.....)
그래서, 올해도 이렇게 특집글로 다시 한 번 그 때의 현장들을 돌아볼까 합니다.(물론 예전과는 달리 글 길이를 생각해서 동영상으로 올립니다.)

먼저, 24년 전의 현장을 보여주는 동영상들...(모두 출처는 유투브.)

1.역사 다시보기-6월 민주항쟁.




2.마봉춘 다큐멘터리 87년 6월 항쟁 그 날의 현장들....(총 3편)








3.이한열 열사 노제와 문익환 목사님의 연설 동영상.



참고로 이전에 필자가 올렸던 6월 항쟁 현장 사진들을 보고 싶으면 요 링크를 참조하시고.....(이 글에는 관련 만화 100도씨도 있지 말입니다.)

[명박퇴진]6.10 항쟁 특집.... 여기서 다시보는 6월항쟁의 현장.-작년에 필자가 즐보드에 올렸던 글(스압 주의)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3&articleId=74727


다음으로 내일,모레 집회 공지 나갑니다.


(만화가 강풀님의 작품-6.10 윤도현 립덕.)


(한대련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 공식 웹자보.)


(보신각에서 열리는 열사 추모제.)


(다음날 열리는 시민주권 주최 6.10 민주올레.)

모두들 이때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짤림방지와 관련 노래로 윤민석님의 대표곡 중 하나인 대한민국을 위하여를 올리며 마칩니다.


(아, 대한민국!!!)

 





대한민국을 위하여

작사,작곡 윤민석
노래 오지총

대한민국아 대한민국아
통곡하는 나의 조국아
역적과 떼강도들에게
능욕당한 나의 사랑아

대한민국아 대한민국아
피 흘리는 나의 조국아
외세와 매국노들에게
찢기고 짓밟힌 사랑아

허나 울지를 마라 더는 울지를 마라
지금은 비록 피눈물 흘러도
80년 5월처럼, 87년 6월처럼
우리 다시 싸워 승리 하리니

대한민국아 대한민국아
사랑하는 너를 위하여
매국의 무리 반역의 무리
기필코 쓸어 내리라!

(출처:송앤라이프

참고로 송앤라이프 홈페이지와 후원 페이지입니다.
생활의 어려움으로 민란가 하나가 되라 이후로 노래활동을 제대로 못하는 윤민석님을 조금이나마 도와 줍시다.

송앤라이프 홈페이지:http://www.songnlife.com
송앤라이프 후원 페이지:http://www.songnlife.com/support.html)

참고(수구쥐벼룩 여러분들께 드리는 글.):
이 글을 포함한 모든 이 천민놈 글은 무단복사 및 펌질+조작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만약 제 글이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지 국정원에(안기부 아니었든가?) 전화하세요.
적어도 3천만원은 받으실 겁니다. 뭐 운 좋으시면 이 천민놈 코렁탕 뚝배기(!)도 대접하실 수 있고 1억5천도
받으실 겁니다. 전화번호는 국번없이 111.(참고로 개짭새는 113입니다.)

그리고 제 글에 대한 상담은 요기로 와서 상담하시길. 다만, 정사충,수꼴,뉴또라이는 사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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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기지:http://blog.daum.net/os21cc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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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나스로, 필자의 글이 문제가 있으면 알아서 삭제하거나 수정조치 하겠습니다.
(참고로 다시 말하지만 이 글에는 절대로 '저작권'이 없'읍'니다. 이 글은 철저히 copyleft를 지향합니다.)

쥐박이 쉒기는 1%만의 대통령이다.
99%의 국민은 안중에 없고친일매국노 짓에 정신없다.
용산학살을 자행하고도 여론을 조작하고
국민 복지는 관심 없이 쥐 일족 밥그릇 챙기는 것만 열중이다.
경제 위기 극복 능력 없이 국민 탓만하고 있다.
쥐박이의 무능을 홍보 부족으로 착각하고 방송을 장악하려고 시도하고
한반도를 대운하로 토막 내려 한다.
서민 복지 예산 대폭 축소하고 콜센터 이미지 마케팅에만 열중한다.
쥐박이 정책의 잘못을 지적하면 무식한 알밥들을 풀어 유신 시절의 반공이데올로기를 부추긴다.
국가 비전의 제시없이 기도만 하면 되는줄 아는 무뇌충 개.독이다.
그런 쥐쉒이를 따르는 쓰레기가 서너명있다


Posted by 명박퇴진안모씨 명박퇴진-안모씨 Trackback 0 : Comment 1

드디어 틈새논평 마치고 쓰는 5.18 특집 글이다.
그나저나 올해도 역시나 가카는 5.18 기념식에 참여 안한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할 지는 모르겠지만 필자는 차라리 가카가 참여 안 하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가카가 광주 와서 저지른 뻘짓들. 안샹슈 선생은 뽀나스다.)

이렇게 와서 뻘짓해서 광주 영령들 능멸하느니 차라리 안오는 게 낫지 않겠는가?
하여간,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고.......(다만 올해에는 엄처구니 없게 방아타령이 나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나저나 요즘 5.18을 자꾸 북측 소행이라 ㅈㄹ하는 찌질이들이 있던데, 그 꼴통놈들은 원조수꼴 꼴깝제 영감님도 비난하는 놈들이니 그냥 무시하시고......

뭐, 어찌되었든 간 지금부터 5.18 민중항쟁 특집글을 써 볼까 한다. 뭐, 작년에도 썼다만, 너무 길게 쓴 감이 없지 않으므로 올해는 그냥 영상 몇 개로 대신하는 바이다.
참고로 이 영상들은 모두 유투브에서 퍼 온것들이다.



1.역사 다시보기-5.18 민중항쟁



2.지식채널e-'2-34,2-35,2-36'



3.사진으로 보는 5.18 민중항쟁

마지막으로, 5.18 관련 노래 하나 올리고 올해 5.18 특집은 짧게나마 마친다.
부디 내년,후년에는 5.18이 오욕되지 않고 민주주의에 대한 또 다른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으면....




광주여 무등산이여

작사,작곡 윤민석

광주여 오욕의 식민지 그대를 뚫고
부서지리라 깨어지리라 분노의 큰 불길로
광주여 그대와 함께 가기 위하여
핏빛 깃발로 아우성치는 위대한 혁명이여

무등산이여 숨죽여있던 붉은 원혼의 일어섬이여
노래부르며 함께 가리라 동학에서 오월로

무등산이여 피할 수 없는 이 길 쓰러져 일어섬이여
북소리 높여 진군하리라 오월에서 통일로

무등산이여 숨죽여있던 붉은 원혼의 일어섬이여
노래부르며 함께 가리라 동학에서 오월로

무등산이여 피할 수 없는 이 길 쓰러져 일어섬이여
북소리 높여 진군하리라 오월에서 통일로

(출처:송앤라이프)

마지막으로, 5월 정신 계승하여 야권통합 이뤄내고 민주정부 회복하자!!!!

참고(수구쥐벼룩 여러분들께 드리는 글.):
이 글을 포함한 모든 이 천민놈 글은 무단복사 및 펌질+조작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만약 제 글이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지 국정원에(안기부 아니었든가?) 전화하세요.
적어도 3천만원은 받으실 겁니다. 뭐 운 좋으시면 이 천민놈 코렁탕 뚝배기(!)도 대접하실 수 있고 1억5천도
받으실 겁니다. 전화번호는 국번없이 111.(참고로 개짭새는 113입니다.)

그리고 제 글에 대한 상담은 요기로 와서 상담하시길. 다만, 정사충,수꼴,뉴또라이는 사절함.

본진:http://mbout-os21cccc.tistory.com
전진기지:http://blog.daum.net/os21cccc
예전기지:http://blog.hani.co.kr/os21cccc(관리 안함)
트위터:http://twitter.com/MBOUTos21cccc
페이스북:http://facebook.com/MBOUTos21cccc

뽀나스로, 필자의 글이 문제가 있으면 알아서 삭제하거나 수정조치 하겠습니다.
(참고로 다시 말하지만 이 글에는 절대로 '저작권'이 없'읍'니다. 이 글은 철저히 copyleft를 지향합니다.)

쥐박이 쉒기는 1%만의 대통령이다.
99%의 국민은 안중에 없고친일매국노 짓에 정신없다.
용산학살을 자행하고도 여론을 조작하고 
국민 복지는 관심 없이 쥐 일족 밥그릇 챙기는 것만 열중이다.
경제 위기 극복 능력 없이 국민 탓만하고 있다.
쥐박이의 무능을 홍보 부족으로 착각하고 방송을 장악하려고 시도하고 
한반도를 대운하로 토막 내려 한다.
서민 복지 예산 대폭 축소하고 콜센터 이미지 마케팅에만 열중한다.
쥐박이 정책의 잘못을 지적하면 무식한 알밥들을 풀어 유신 시절의 반공이데올로기를 부추긴다.
국가 비전의 제시없이 기도만 하면 되는줄 아는 무뇌충 개.독이다.
그런 쥐쉒이를 따르는 쓰레기가 서너명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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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나라가 중국 침략에 무너졌다고?

[칼럼]한 무제가 무너뜨린 것은 단군조선 아닌 기자조선

장경순 칼럼니스트 | newsface21@gmail.com
11.04.15 15:21 | 최종 수정시간 11.04.15 15:22

‘단군 왕검이 BC 2333년에 세운 고조선이 BC 108년 한나라의 공격을 받고 무너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알고 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기 위해 사마천 사기의 조선열전과 다른 자료들을 찾아 봤다.

읽어 보니 무슨 기자가 나오고, 위만... 준왕이 어쩌고저쩌고... 중국 사람들까지 나타나서 얽히고설켜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 그럼 고주몽 이야기에 나오는 해모수는 언제 적 사람인가.

중국 역사에서 수 십 개 나라가 물고 물리던 춘추시대 얘기도 알고 보면 이치는 간단하고 이해가 안갈 부분은 없었다. 그런데 내 나라의 이야기가 이렇게 이해가 안 가다니.

최근에 와서 이유를 어느 정도 가늠하게 됐다. 잘못된 전제를 고집하면서 주어진 사실들을 받아들이니 앞뒤가 안 맞는 얘기를 억지로 이해하려 했던 것이다.

잘못된 전제란 바로 고조선을 한민족의 통일국가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 전제하에서 사마천 사기에 나오는 한(漢) 나라의 조선 정벌을 연결하려고 했다. 무슨 나라 하나가 한 무제의 공격을 받고 망했는데, 그때 우리 민족의 나라는 고조선뿐이었다고 하니 망한 나라는 바로 고조선이었다는 논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고조선이 한민족의 통일국가가 아니라 여러 나라 중의 하나였다고 판단을 하고 나니 이 때 기록들을 앞뒤 관계의 어긋남이 없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한 무제가 무너뜨린 건 고조선이 아닌 전혀 다른 나라였던 것이다.

BC 108년, 무슨 일이 있었나

혹자는 사마천의 사기에 대해 중국을 미화하고 타민족을 폄하했다고 비판한다. 아주 그런 면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나는 이런 의견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이 엄청난 역사책의 곳곳에서 그의 철저한 사관의식(오늘날의 언론의식과 통한다)을 수 천 년 세월을 넘어 건네받았기 때문이 첫 번째 이유고, 그가 기록한 사실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 게 두 번째 이유다.

사기의 기록이다. 원봉12년(BC 108년) 한 무제는 누선장군 양복과 좌장군 순체를 보내 조선을 공격했다. 후에 누선장군이 한나라 조정에 체포되자 순체가 두 군대를 합쳐 조선왕 우거에 대한 공격을 계속했고 조선의 대신이 왕 우거를 죽이고 한나라 군대에 항복했다. 원정이 끝난 후 무제는 공을 다퉜다는 죄목으로 순체를 죽여서 거리에 내다버리는 기시의 형에 처했다. 체포됐던 양복 또한 사형에 해당했지만 돈으로 죄를 용서받고 평민이 됐다.

망한 조선의 왕 우거는 위만의 손자다. 위만은 본래 한(漢)의 개국공신인 노관의 수하 장수로 중국 사람으로 판단된다. 노관이 한나라를 배반해 흉노로 망명하자 위만은 노관을 따르지 않고 무리를 이끌고 조선으로 넘어왔었다.

이 때, 위만을 받아준 조선의 임금이 준왕이다. 위만은 후에 자신을 받아준 준왕을 쫓아내고 조선의 왕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그의 손자 대에 이르러 한 무제에 의해 멸망한 것이다.

준왕은 누구의 자손인가

위만을 받아 준 조선의 왕이 준왕이었다면 그는 단군왕검의 자손인가. 위만이 망명한 조선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고조선인가.

두 질문의 답이 모두 ‘아니오’임을 시사하는 것이 준왕에 대한 다른 표기다. 그를 ‘기준(箕準)’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군왕검의 자손이 아닌 중국인 기자의 자손 준왕이라는 얘기다.

이 시대 한민족의 조선과 중국인들의 조선은 다른 지역, 다른 국가를 의미한다. 한민족에게 조선은 ‘쥬신’의 음역으로 주로 단군왕검의 조선 이래 동북아시아에 있었던 한민족의 국가들이다.

이와 달리 중국인들에게 조선은 중국의 은나라가 멸망할 때 동쪽으로 망명해 온 기자의 나라를 뜻한다.

사마천은 주나라 무왕이 은을 멸망한 후 전왕조의 왕족인 기자를 조선에 봉하고 신하로 대하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봉했다’는 것은 체면상의 표현일 뿐이고 현실은 ‘신하로 대하지 않았다’에 담겨 있다. 조선 땅에 대해 주나라 왕이 제후를 봉하고 말고 할 형편이 아니었고, 기자는 나라가 망한 후 망명을 떠난 것이다. 무왕의 입장에서도 망국의 백성들 사이에 신망이 높은 기자가 부담스런 존재였으니 그의 망명을 묵인한 것이다.

은나라의 지체 높은 존재였던 기자가 동쪽으로 많은 문물을 전수하며 왔으니 그 곳의 사람들에게 신망을 얻었음은 당연한 것이다. 그의 주위로 사람이 모이니 당연히 기자의 나라는 곧 한민족의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일정한 위상을 확보하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 단군왕검의 나라를 중심으로 한 조선의 패권질서에 순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다른 조선의 나라들과 달리 기자의 나라는 지배층이 중국의 망명세력인 관계로 이래저래 중국과의 접촉이 많았을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바라본 조선은 한반도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한 바로 이 기자의 나라였을 뿐 그 너머 동쪽이나 북쪽의 다른 나라들까지 따질 만한 필요성은 거의 없던 시절이다.

중국의 정세가 소란해지면 동쪽으로 중국인들이 망명을 가는 건 기자의 조선이었다. 이렇게 접촉이 많아지면서 중국의 나라들과 무력분쟁을 벌이는 일도 잦아졌다. 한 무제의 조선정벌, 다시 말해 기자조선 정벌은 이런 맥락에서 벌어진 것이다.

한 무제가 무너뜨리고 사군을 설치한 조선은 단군왕검의 조선이 아니라 기자가 세웠다가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긴 기자조선인 것이다.

그럼 고조선은 누가 무너뜨렸나

식민사관의 책략 가운데 하나가 한민족의 상고사를 모조리 신화의 틀에만 묶어 놓는 것이다. 임금을 뜻하는 단군이라는 단어를 특정인의 이름이라고 해서 1908세를 살았다고 한다든지 BC2333년에 개국한 나라가 수 천 년이나 지속돼 BC108년에 망했다고 하는 따위다.

그러나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진 일 또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나 크게 다를 수가 없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의 부양능력을 가진 이 터전에서 그 당시 기술체계로 단일 통일 국가가 기나긴 통치체계를 갖추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알타이 계통을 타고 몽고를 거쳐 동쪽으로 이동을 계속한 민족은 중간에 여러 나라를 세웠다. 그 가운데 처음으로 제대로 패권을 행사한 나라가 바로 고조선이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민족의 역사와 개천의 신화가 비롯됐다. 전례 없이 막강한 나라였기는 하지만 한민족의 통일국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발언권이 민족의 다른 국가들을 제압할 만했기 때문에 그 지위는 마치 중국의 주나라와 같은 종주국에 해당할 만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공자의 말씀을 빌어 고조선의 쇠퇴하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관중이 피발 좌임을 징계하였다.”

제나라 환공의 신하 관중이 연나라를 구원해 동쪽 이민족의 침입에서 구원한 사실을 말한 것이다. 피발 좌임이란 머리를 땋고 옷을 왼쪽으로 여민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다.

일찍이 관중의 패도를 좋게 여기지 않은 공자였지만, 관중에 대해 한 가지 좋게 평가한 것이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피발 좌임을 했을 것”이란 말이다. 관중이 연나라를 구하지 않았다면 중국인이 아닌 조선인으로 태어났을 거란 뜻이니 한 때 고조선의 위세가 대단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관중이 이끈 열국의 연합군에게 패한 후 고조선의 세가 크게 위축되고 말았다. 종주국의 힘이 빠지면 불안정한 패권의 진공상태가 된다. 한민족의 역사는 여기서 단군왕검의 대를 이을 새 영웅을 기다리는 단계로 들어섰다.

단군왕검, 해모수, 그리고 주몽

우리 민족의 상고사에 대해서는 너무나 허황된 얘기들이 많다. 민족적 자부심을 일으킨다고는 하지만 이후의 일들과 전혀 앞뒤 관계를 맞출 수 없다면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한다.

이런 저런 책에 있는 얘기들을 많이 접해 봤지만, 전혀 다른 버전의 신화라는 느낌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눈길이 가는 한 구절을 접하게 됐다.

‘기원전 239년 패기만만한 청년 장군 해모수는 23세의 나이로 단군 조선의 서울 백악산을 점령했다.’

쇠퇴해가는 고조선, 그 후 해모수와의 혈연을 앞세우며 나라를 세운 고주몽, 이들 사이에 이처럼 어울리는 연결고리는 달리 보지 못했다.

북부여, 또는 황룡국의 개국 임금인 해모수가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다.

해모수는 아직 실증역사의 영역으로 넘어 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역사에 분명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최소한 고구려의 건국 과정에서는 그의 존재를 부정할 길이 없다.

고주몽은 200년 전의 인물일지도 모르는 해모수의 아들임을 자처했다. 민중들의 마음을 모으려면 해모수 없이 어렵다고 판단한 때문일 것이다. 다수 대중에게 해모수의 이상을 계승한 나라임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그의 아들임을 내세웠을 것으로 보인다.

사학 분야에서 좀 더 많은 진척을 통해 단군성조와 해모수, 고주몽으로 이어지는 민족의 계보가 실증되기를 기대한다. 신화에 파묻힌 상고사를 역사의 영역으로 드러내는 일이 절실한데 난데없이 한 무제의 고조선 정벌 시나리오가 끼어들어 혼란을 가중시키는 일이 안타깝기 이를 데 없었다. 만필서생이 부족한 식견을 모아 이렇게 얘기를 꺼내게 된 이유다.

(원본 기사 링크:http://www.newsface.kr/news/news_view.htm?news_idx=1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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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19 특집은 이기명 선생님의 칼럼을 대신 올리는 바입니다.)

지금 4·19를 다시 생각하는 이유

국민이 타도한 독재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1-04-18)

경찰이 카빈 실탄 10만 발을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군이 거절했다. 그러나 경찰은 국민을 향해 총을 쏘았다.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
-강명희 (당시 수송초등학교 5학년)

아! 슬퍼요
아침 하늘이 밝아오며는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녁노을이 사라질 때면
탕탕탕탕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 하늘과 저녁노을을
오빠와 언니들은 피로 물들였어요.

오빠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강도질을 했나요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점심도 안먹고
저녁도 안먹고
말없이 쓰러졌나요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잊을 수 없는 4월 19일
그리고 25일과 26일
학교에서 파하는 길에
총알은 날아오고
피는 길을 덮는데
외로이 남은 책가방
무겁기도 하더군요.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 말 안 해도
오빠와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렸는지를…

오빠와 언니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서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

4.19를 떠올리며 다시 이 시를 읽는다.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가 쓴 이 시를 읽으며 국민들은 울고 또 울었다.


▲ 시위하는 수송초등학생들. 시위 와중에 학교친구(6학년 전한승)를 잃은 서울 수송초등학교 아이들이 “부모·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며 거리시위를 하는 사진. ⓒ 한겨레

1950년 4월 19일. 서울 시민을 소름끼치게 하던 총성, 질주하는 소방차와 버스에서 낙엽처럼 떨어지던 젊은이들….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생들이 모두 나와 이승만 독재를 규탄했다.

어린 강명희는 이미 오빠 언니가 왜 총에 맞았는지 누가 왜 총을 쏘았는지 알고 있었고 국민들도 알고 있었고 지금 우리는 그때를 기억하며 슬프다.

당시 한성여중 2학년인 15세의 진영숙은 어머니에게 유서를 남겼다.

시간이 없어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닌,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진영숙은 19일 오후 4시 공부를 마친 후 시위에 나가기 전 집에 들렀다가 시장에서 장사하던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편지를 써놓고 거리로 나섰다. 영숙이는 성북경찰서 앞 버스 안에서 경찰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당시 내무장관인 최인규는 총은 쏘라고 준 것이라고 했다.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국민이 낸 세금으로 산 총탄이 젊은이들의 가슴을 뚫었다.

국민들의 분노는 독재였다. 영구집권을 꿈꾸던 자유당 일당독재는 부정선거를 자행했고 이에 항거하는 대학생들과 민주인사들을 탄압했다. 마산에서 고등학생이던 김주열군의 주검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바다에 떠올랐다.


▲ 3월 15일 행방불명된 김주열 열사가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사진

더 이상 참고 견딜 수가 없었다. 견디지 못하면 터지는 것이다. 어용교수가 판치던 대학가에서 고대 교수들이 시위를 했고 교수들이 거리로 나섰다. 4월 18일 시위를 하던 고려대학생들이 종로에서 정치깡패들에게 습격을 당해 자전거 사슬과 쇠파이프를 맞고 쓰러졌다.

거리에는 총 맞은 청년들의 시신이 뒹굴고 있었다. 부상자들을 구조하는 의대생들의 가운은 피범벅이 됐다. 그 순간은 죽음도 두렵지 않았다.

그날 서울에서만 자정까지 약 130명이 사망하고 1,000여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정치권력의 앵무새이며 왜곡 편파 과장의 기수였던 서울신문이 불탔다. 경찰서가 불타고 서대문 경무대라고 불리던 이기붕의 집도 파괴됐다.

독재자 이승만이 하야 성명을 냈다. 이기붕은 이승만의 양자로 들어간 아들 육군소위 이강석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독재의 최후는 이렇게 참혹했다. 그 후 최인규 곽영주 이정재 임화수 등은 처형됐다.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것을 역사의 심판이라고 하는가.

귀가 따갑도록 듣는 소리가 있다.

“4.19를 기억하자.”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는가. 분노는 이슬 같아서 아침에 잠이 깨면 스러지는가. 분노하지 않는 국민은 무시당한다. 군사독재나 문민독재나 분노하지 않는 국민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물지 않는 개는 멸시 당한다.

지금 우리가 말해야 한다. 언론은 죽었다. 이제 우리가 말해야 한다. 우리 젊은이가 말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에 대해, 한나라당 정권에 대해, 정치검찰에 대해, 한나라당 국회에 대해, 썩은 언론권력에 대해 외쳐야 한다. 피 매친 절규를 토해내야 한다. 민주회복을 위해서.

4·19! 그때 시인들은 어떻게 통곡했는가.

마침내 여기에 이르지 않곤 끝나지 않을 줄 이미 알았다
-조지훈

그것은 홍수였다
골목마다 거리마다 터져 나오는 함성

“백성을 암흑 속으로 몰아넣은
이 불의한 권력을 타도하라”

너희들은 백성의 이름으로 처단하지 않고는
두지 않으리라 의병이여 저주여

법은 살아있다 백성의 손에서
정의가 이기는 것을 눈앞에 본 것은
우리 평생 처음이 아니냐. 아아 눈물겨운 것

불의한 권력에 붙어
백성의 목을 조른 자들아
불의한 폭력에 추세하여
그 권위를 과장하던 자들아

너희 피묻은 더러운 손을
이 거룩한 희생자에 대지 말라.

죽어서 영원히 사는 분들을 위하여
-박목월

학우들이 메고 가는
들것 위에서
저처럼 윤이 나고 부드러운 머리털이
어찌 주검이 되었을까?

우람한 정신이여.
자유를 불러올 정의 폭풍이여.
눈부신 젊은 힘의
해일이여.

하나, 그들의 이름 하나하나가 아무리 청사에 빛나기로니
그것으로 부모들의 슬픔을 달래지 못하듯,
내 무슨 말로써 그들을 찬양하랴.

죽음은 죽음.
명목(暝目)하라.
진실로 외로운 혼령이여.

거리에는 5월 햇볕이 눈부시고
세종로에서 효자동으로 가는 길에는
새잎을 마련하는 가로수의 꿈 많은 경영이
소란스럽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나간 것은 조용해지는 것
그것은 너그럽고 엄숙한 역사의 표정

다만
참된 뜻만이
죽은 자에서 산 자로
핏줄에 스며 이어가듯이

그리고 4·19의
그 장엄한 업적도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의 빛나는 눈짓으로

우리 겨레면 누구나 숨 쉴,
숨결의 자유로움으로,
온몸 구석구석에서 속삭이는
정신의 속삭임으로
진실로 한결 환해질

자라나는 어린 것들의 눈동자의 고아채로
이어 흘러서 끊어질 날이 없으리라.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박두진

우리는 아직도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이 붉은 선혈로 나부끼는
우리들의 깃발을 내릴 수가 없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들의 절규를 멈춘 것이 아니다.
그렇다. 그 피불로 외쳐 뿜는
우리들의 피외침을 멈출 수가 없다.

불길이여! 우리들의 대열이여!
그 피에 젖은 주검을 밟고 넘는
불의 노도, 불의 태풍, 혁명에의 전진이여!
우리들 아직도
스스로는 못 막는
우리들의 피대열을 흩을 수가 없다.
혁명에의 전진을 멈출 수가 없다.

민족, 내가 살던 조국이여.
우리들의 젊음들.
불이여! 피여!
그 오오래 우리에게 썩어 내린 악으로 불순으로 죄악으로 숨어 내린
그 면면한
우리들의 속의 썩은 것을 씻쳐내는,
그 면면한
우리들의 핏줄 속에 맑은 것을 솟쳐내는,
아, 피를 피로 씻고,
불을 불로 사뤄,
젊음이여! 정한 피여! 새 세대여!

너희들 이미 일어선 게 아니냐?
분노한 게 아니냐?
내달린 게 아니냐?
절규한 게 아니냐?
피 흘린 게 아니냐?
죽어간 게 아니냐?

아, 그 뿌리어진
임리한 붉은 피는 곱디고운 피꽃잎,
피꽃은 강을 이뤄,
강물이 갈앉으면 하늘 푸르름,
혼령들은 강산 위에 햇볕살로 따스워,

아름다운 강산에, 아름다운 나라를
아름다운 나라에, 아름다운 겨레를
아름다운 겨레에, 아름다운 삶을 위해
우리들이 이루려는 민주공화국
절대공화국

철저한 민주정체,
철저한 사상의 자유,
철저한 경제균등,
철저한 인간평등의,

우리들의 목표는 조국의 승리,
우리들의 목표는 지상에서의 승리,
우리들의 목표는
정의, 인도, 자유, 평등, 인간애의 승리인,
인민들의 승리인, 우리들의 혁명을 전취할 때까지,

우리는 아직
우리들의 피깃발을 내릴 수가 없다.
우리들의 피외침을 멈출 수가 없다.
우리들의 피불길,
우리들의 전진을 멈출 수가 없다.

혁명이여!

우리는 이제 광화문에서 촛불을 켤 수 없고 시청 앞에서 기도를 할 수 없다. 산과 강을 잃고 방송을 잃고 언어를 잃었다. 누가 지켜보지 않는지 겁에 질려 살아야 하고 죄도 없이 무섭다.

1960년 4월 19일. 당시 스물넷. 젊음이 핏발 선 눈으로 읽던 시를 이제 다시 읽는다. 51년이 지난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아아.
나의 조국 우리들의 조국
우리 자식들의 영원한 조국

4.19는 독재를 타도한 국민의 위대한 승리였다.

2011년 4월 18일
이 기 명(칼럼니스트)

(원본 글 링크: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3&uid=39817)




그러고 보니 내일이 4.19 혁명 51주년입니다. 비록, 지금의 상황이 51년 전으로 되돌아와 버리긴 했지만, 내년에는 다시 51년 전의 그 함성을 다시 한 번 울리게 해야 겠지요?
다시 한 번 51년 전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스러져 간 열사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반드시 우리 내년에 그 민주주의 다시 되찾읍시다.

추신:그나저나 최근 독재자 개승만 후손 놈들이 4.19 유족들에게 사과하겠다고 그러드니만, 웃기는 소리다. 사과하려면 아예 그분들 포함해서 모든 국민들 앞에 석고대죄하고 정치권에서 사라지거라. 그것이야 말로 51년 전 민주화를 위해 스러져 간 열사들과 민주세력에게의 진정한 사과일 것이다.

참고로 마지막 짤림방지로 관련 유투브 영상으로 올립니다.



참고(수구쥐벼룩 여러분들께 드리는 글.):
이 글을 포함한 모든 이 천민놈 글은 무단복사 및 펌질+조작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만약 제 글이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지 국정원에(안기부 아니었든가?) 전화하세요.
적어도 3천만원은 받으실 겁니다. 뭐 운 좋으시면 이 천민놈 코렁탕 뚝배기(!)도 대접하실 수 있고 1억5천도
받으실 겁니다. 전화번호는 국번없이 111.(참고로 개짭새는 113입니다.)

그리고 제 글에 대한 상담은 요기로 와서 상담하시길. 다만, 정사충,수꼴,뉴또라이는 사절함.

본진:http://mbout-os21cccc.tistory.com
전진기지:http://blog.daum.net/os21cccc
예전기지:http://blog.hani.co.kr/os21cccc(관리 안함)
트위터:http://twitter.com/MBOUTos21cccc
페이스북:http://facebook.com/MBOUTos21cccc


뽀나스로, 필자의 글이 문제가 있으면 알아서 삭제하거나 수정조치 하겠습니다.
(참고로 다시 말하지만 이 글에는 절대로 '저작권'이 없'읍'니다. 이 글은 철저히 copyleft를 지향합니다.)


쥐박이 쉒기는 1%만의 대통령이다.
99%의 국민은 안중에 없고친일매국노 짓에 정신없다.
용산학살을 자행하고도 여론을 조작하고 
국민 복지는 관심 없이 쥐 일족 밥그릇 챙기는 것만 열중이다.
경제 위기 극복 능력 없이 국민 탓만하고 있다.
쥐박이의 무능을 홍보 부족으로 착각하고 방송을 장악하려고 시도하고 
한반도를 대운하로 토막 내려 한다.
서민 복지 예산 대폭 축소하고 콜센터 이미지 마케팅에만 열중한다.
쥐박이 정책의 잘못을 지적하면 무식한 알밥들을 풀어 유신 시절의 반공이데올로기를 부추긴다.
국가 비전의 제시없이 기도만 하면 되는줄 아는 무뇌충 개.독이다.
그런 쥐쉒이를 따르는 쓰레기가 서너명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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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죄가 있다면…" 누명벗은 조봉암 선생>

연합뉴스 | 이웅 | 입력 2011.01.20 14:30 | 수정 2011.01.20 16:34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전라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죽산 조봉암 선생은 1898년 인천시 강화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YMCA 중학부에 수학하던 1919년 3ㆍ1운동에 참가했다가 첫 옥살이를 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일본 동경에서 유학하던 중 유학생들이 조직한 사회주의 비밀결사단체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사회주의 노선에 근거해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1920년대 조선공산당중국공산당에 참여했고 1932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7년간 복역했다.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1946년 박헌영 계열과 노선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중도통합노선을 주장하며 공산주의와 결별하고 미군정의 좌·우파합작을 지지하며 협력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초대 농림부장관을 거쳐 국회부의장 자리까지 올랐다. 1952년과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맞서 80여만표와 200여만표를 얻는 등 대중적인 지지를 넓혀가다 1956년 11월 혁신계 인사들과 함께 진보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민의원 총선을 앞둔 1958년 1월 진보당 간부들과 함께 국가변란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체포됐고, 그해 2∼3월 육군 특무대에서 조사를 받은 뒤 `북한의 지령과 자금을 조봉암에게 전달했다'는 육군첩보부대(HID) 공작요원의 진술 등을 토대로 간첩 혐의까지 추가됐다.

조봉암 선생은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으나 2심과 3심에서 각각 사형을 선고받았고 재심 청구가 기각되면서 1959년 7월31일 형장의 이슬이 됐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9월 조봉암 선생 사건을 '위협적인 정적(政敵)을 제거하기 위한 이승만 정권의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으로 규정하고 국가 차원의 사과와 피해 구제 및 명예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권고했다.

이에 따라 조봉암 선생의 유족이 2008년 8월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작년 10월 받아들여졌고 이날 열린 재심에서 무죄 선고로 사형 집행 반세기 만에 간첩 누명을 벗게 됐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밖에 없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발전에 도움이 되기 바랄 뿐이다."

조봉암 선생이 남긴 유언이다.

abullapia@yna.co.kr

(원본 기사링크: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10120143026885&p=yonh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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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은 왜 '오국시대'를 '삼국시대'라 속였나

[사극으로 역사읽기] 특집 '한국 고대사의 속속들이', 다섯 번째 이야기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11.01.06 14:37 ㅣ최종 업데이트 11.01.06 15:06

'삼국시대'니 '삼국통일'이니 하는 용어가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지만,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무심코 사용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학생들이 배우는 국사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고구려, 부여, 신라, 백제, 가야의 모습
ⓒ 교육인적자원부

하지만, 고대 왕국들의 성립 및 멸망 시점을 따져보면, '삼국'이란 용어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그것은 김부식이 제시한 고구려·백제·신라의 건국 연도가 맞든 안 맞든 간에 마찬가지다.

먼저,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제시한 고구려·백제·신라의 건국 연도가 진실하다는 가정 하에 '삼국'이란 용어의 적절성 여부를 검토해보자.


김부식의 주장이 진실이라 해도, '삼국시대'는 98년간에 지나지 않는다.
ⓒ 김종성

부여·고구려·백제·신라·가야가 공존했던 기간 452년
 
그래프 1>은 '신라는 기원전 57년,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었다는 김부식의 주장을 근거로 작성했다. 이 표는 고조선 이후의 고대왕국들 중에서 상당 규모의 영토를 보유했던 주요 국가들의 존속기간을 보여주고 있다. 김부식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다 하더라도, '삼국'이란 용어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부여·고구려·백제·신라·가야를 가리키는 5개의 막대에서 공통적인 부분은 A-B 구간이다. 이 기간은 가야가 건국된 때(서기 42년)로부터 부여가 멸망된 때(494년)까지다. 무려 452년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그래프에서 나타나듯이, 이 시기는 '오국시대'라고 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이 시기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삼국'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한데도, 많은 교과서나 연구서·논문 등에서는 여전히 '삼국'을 사용하고 있다.

부여가 멸망한 때부터 가야가 멸망한 때(562년)까지의 63년간은 고구려·백제·신라·가야가 존속한 기간이다. 그래프의 B-C 구간이다. 이 시기를 굳이 명명하자면, '사국시대'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이때까지도 '삼국'이라 할 만한 현상은 전혀 출현하지 않았다.

'삼국'이란 표현을 써도 무방한 기간은 C-D 구간뿐이다. 가야가 멸망한 때부터 백제가 멸망한 때(660년)까지다. 이 시기에는 고구려·백제·신라만 존재했다. 명실상부한 삼국시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간은 98년에 불과하다.

452년간인 A-B 구간(오국시대)과 비교할 때에, 98년간인 C-D 구간(삼국시대)은 턱없이 짧다. 그런데도 많은 서적에서는 신라 건국 때부터 고구려 멸망 때까지를 '삼국시대'라고 부르고 있으니, 완전히 엉터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시대'란 용어만 부적절한 게 아니라 '삼국통일'이란 표현 역시 마찬가지다. 오국시대나 사국시대를 종결시킨 정치적 사건을 어떻게 '삼국통일'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신라가 멸망시킨 대상이 백제·고구려이므로, 삼국통일이라 부른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신라가 멸망시킨 대상은 가야·백제·고구려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기준으로 말한다면 '삼국통일'이 아니라 '사국통일'이라 해야 한다.

다음으로, '신라는 기원전 57년,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었다는 김부식의 주장이 허위라는 전제 하에 주요 국가들의 존속기간을 재검토해보자. <그래프 2>는 이러한 전제 하에 작성된 것이다.


김부식의 주장이 맞든 안 맞든 간에, '삼국시대'는 98년간에 불과하다.
ⓒ 김종성

'삼국시대', '삼국통일', 적절한 표현 맞나?

문헌들을 근거로 할 때, 고구려는 최소 기원전 233년 이전에 건국되었다. 고조선 멸망 당시에 이미 고구려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한서> '지리지', 고구려가 기원전 37년으로부터 최소 150년 이전에 건국되었음을 추론케 하는 '광개토대왕비문', 서기 668년에 당나라 고종과 가언충이 '올해가 고구려 건국 900주년'이라는 내용의 대화를 했다는 사실이 기록된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보장왕 편 등을 그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한편, 북한 학계에서는 고고학적 유물을 근거로 고구려 성립 연도를 기원전 277년으로 파악하고 있다(참고: 2010년 11월 8일 자 기사 '백제의 건국연대는 조작되었다...한 200년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따르면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부여는 기원전 233년 이전의 어느 시점부터 존재했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서는 소서노·비류·온조가 고구려 시조 고주몽과의 반목 때문에 고구려를 버리고 백제를 세웠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백제는 고구려보다 '약간 늦게' 생긴 나라다. 가야의 경우에는, 이 나라가 서기 42년에 건국되었다는 <가락국기>의 내용을 뒤집을 만한 별다른 사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들을 토대로 <그래프 2>를 작성했다.

A 시점 이후만 놓고 보면, <그래프 2>는 <그래프 1>과 똑같다. 이 경우에도 진정한 의미의 '삼국'을 말할 수 있는 기간은 가야 멸망 이후부터 백제 멸망 이전까지의 98년간이다. 그래서 <그래프 1>과 마찬가지로 <그래프 2>를 통해서도, '삼국시대'니 '삼국통일'이니 하는 표현들이 부적합함을 알 수 있다.

육안상으로 나타나듯이, <그래프 2>가 <그래프 1>과 다른 부분은 'A 이전 구간'이다. 고구려·백제의 건국 연도가 상향 조정되다 보니, <그래프 1>에 비해 A 이전 구간이 크게 변했다. 하지만 A 이전 구간에서도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이란 표현을 사용할 만한 여지는 전혀 없다.

이와 같이 어느 경우를 보더라도 '삼국'을 말할 수 있는 기간은 98년간에 지나지 않는데도,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근 1000년의 역사를 '삼국'이라는 틀로 설명했다. 김부식만 욕할 게 아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삼국사기>의 오류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무심코 '삼국'이란 표현을 쓸 때가 많다. 국사 교과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인식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역사는 우리의 과거다. 과거를 정밀하게 인식해야만, 현재와 미래 역시 정밀하게 인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를 정밀하게 인식하는 일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보다 정밀하게 구축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다닌 초등학교가 '삼국 초등학교'인지 '사국 초등학교'인지 '오국 초등학교'인지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회생활을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런 바보 같은 '놈'이 어디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현재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우리 자신의 이런 오류를 시정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고대사의 허술한 부분들을 가차없이 도려내야 한다.

(원본 기사링크: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0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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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의 5대 문제점-한겨레신문 오피니언넷 훅 혜문스님의 글 
 

» 이순신 동상 모습.

프롤로그

광화문을 지키고 있던 이순신 장군께서 쓰러졌다. 1968년 4월 광화문 네거리에 동상이 서게 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일제 때에 변형된 조선왕조의 도로 중심축을 복원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지만 그 대신 세종로 네거리에 일본이 가장 무서워할 인물의 동상을 세우라”고 지시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조각가 김세중 측의 전언) 그때부터 지금까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의 한복판에서 ‘온갖 역사적 사건’을 지켜보던 이순신 장군은 ‘속이 썩어 붕괴 위험’에 처했고, 이에 장장 40일동안 입원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이순신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우리 어린이들이 존경하는 인물 1위인 그는 우리에게 ‘역사적인 인물’을 넘어 던지는 뭔가의 느낌이 있다. 그것은 패배와 설움에 북받혀 발버둥친 질곡의 조선역사가 남긴 ‘승리의 상징’, 부당한 권력과 권모술수의 책략을 뿌리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길을 걸어간 ‘올곧음’에 바치는 겨레의 찬사이다. 하물며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겨 종살이 생활을 40년 가까이 한 우리에게 그는 ‘구국과 항일’의 구심점으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그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광화문에 금간 소식’ 보다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을 주는 것은 그런 이유였을 거다.

며칠전 나는 울적한 마음에 광화문 이순신 동상에 문병차 가 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사실 동상에 가까이 가서 살펴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새롭게 조성된 세종대왕 동상을 지나 이순신 동상 뒤편으로 다가선 나는 순간 충격에 비명을 지를 정도 였다.

<박정희 헌납>



» 제작 관련 표기 – 박정희 헌납(맨 위줄)

거기엔 그렇게 써 있었다. 나는 순간 사람이 있는줄 모르고 화장실 문을 잘못 열은 듯한 놀라움에 사로 잡혔다. 헌납이란 단어는 천황폐하의 만수무강과 대일본제국의 승리를 위해 바쳤던 ‘비행기 헌납’같은 일들을 연상시킨다. 박정희는 누구에게 이순신 장군을 헌납한 것일까? 설마 천황에게 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단어는 나에게 너무나 큰 놀라움을 던져주었다. 대통령 박정희도 아닌 개인 박정희가 ‘이순신 장군 동상’을 헌납했다면 대상은 누구였을까? 국가, 민족 뭐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다면 이 동상은 박정희 대통령의 사비를 털어서 만들어진 것이었을까?

혹떼러 갔다가 혹 붙인 느낌으로 더욱 울적해진 나는 그곳에서 ‘이순신 장군 동상에 따른 음모’ 뭐 이런 유언비어가 한때 있었던 것을 생각해 냈다. 군사독재를 위해 세종로에 충무공 동상을 세웠다는 류의 그런 소문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이순신 장군 동상’과 관련된 여러 가지 자료를 살펴보다가 나는 정말 ‘광화문 동상’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는 이 동상이 1980년 철거될 예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77년 5월. 서울 시민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다. 문화재 전문가들에 의해 여러 차례 고증 잘못이 지적되자 서울시가 ‘문화공보부 영정심의위원회’에 정확성 여부를 심의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시민들은 “성웅의 조상을 그렇게 만들 수 있느냐”라며 관계 당국을 성토했고, 서울시는 1979년 5월 문공부에 충무공 동상을 다시 만들어 세울 것을 요청해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 이후 펼쳐진 어수선한 정국으로 이 결정은 실행되지 못했다. 도대체 이 동상은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이 동상에 대해 5대 문제점을 제기한다.



» 1977. 5.10일 동아일보 기사

1) 이순신 장군은 과연 항복하는 장군의 모습인가?

이 문제의 핵심은 칼을 오른 손에 들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왼손잡이가 아닌 이상 칼을 뽑을 수 없는 모습이고 이는 항복한 장수로 오인될 수 있다는 점이다. 김세중측은 이점에 대해 “ 장군이 왼손잡이일 리는 없지요. 왼손에 칼을 쥐고 있다 오른손으로 뽑는 게 논리적으로는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전쟁 때의 상황입니다. 동상의 콘셉트는 전쟁이 끝난 뒤 이긴 자의 모습입니다. 오른손으로 뭔가를 쥐고 있다는 건 상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 고 말하고 있다.그런데 이런 주장은 김세중이 조각을 조성할 때 참조했다는 이당 김은호의 영정과 바로 모순됨을 알 수 있다. 김세중이 이순신 장군의 얼굴을 조각할 때, 참조했다는 이당 김은호의 영정에는 이순신 장군이 칼을 왼손에 잡고 있다. 또한 광화문 동상이 아닌 이순신의 다른 동상 혹은 영정 그림 등과 비교할 때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발언이다.


» 이당 김은호 (이순신 장군 초상) 충무사

‘갑옷만을 참조했다’는 김세중의 진술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김은호의 영정과는 다르게 오른손에 칼‘을 잡은 모습을 표현했는가 하는 것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과연 김세중측의 말처럼 “ 전시가 아닌 평화의 시기”를 상징하기 위해 그렇게 된 것인지, “단순한 작가의 불찰”로 인한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2) 이순신 장군의 칼이 일본도이다


» 광화문 동상의 칼 모양(왼쪽)과 이순신 장군의 실제 칼 쌍용검의 모습

이순신 장군의 칼이 일본도라는 지적에 대해 김세중 측은 “ 현충사의 칼은 일본도가 맞습니다. 197.5㎝나 되는 긴 칼에 대해서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본에 끌려갔던 도장(刀匠) 태구련(태귀련 혹은 태귀운이라는 설도 있다), 이무생이 장군에 잡혔어요. 장군은 ‘첩자가 아니냐’고 문초한 뒤 칼 두 자루를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일본에서 일본도를 만든 사람들입니다. 일본도는 당시로서는 최신예 검(劍)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동상의 칼은 현충사 칼을 모델로 했지만 실제 비율보다 축소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또한 “칼이 한국의 검이냐 일본도냐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칼 자루에 석자의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의 색이 변하는도다. 한바탕 휘둘러 쓸어 없애니 강산이 피로 물드는구나(三尺誓天山河動色 一揮掃蕩血染山河)’라고 적혀 있습니다.”고 말한다. 현충사의 이순신 장검이 지닌 본연의 의미, ‘일본을 물리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강조되어야 하지 ‘일본도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현충사에 소장된 보물 제326호 이충무공(李忠武公) 장검은 조선식 쌍수도(雙手刀)에 속하며 무예도보통지에 의해서 “장검. 용검. 평검이라고도 불리며, 칼날의 길이 5척, (동호인 1척), 자루 1척 5촌. 7척짜리도 볼 수 있다.” 고 정의되어 있다. 이 칼은 실전용이 아닌 의전용 칼이므로 길이가 1미터 97센티, 칼집에 넣었을 때는 2미터를 넘는 크기이다. 만약 이 칼을 짚었다면 당연히 키보다 높은 칼을 묘사해야지 허리정도까지 오는 칼로 표현될 수 는 없다. 허리에 차는 칼, 혹은 그보다 작은 칼을 묘사하려면 이순신 장군이 패용한 실전용 칼 ‘쌍룡검’을 묘사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장군의 장검의 길이를 축소, 일본도를 만들어 놓고 ‘현충사의 칼’이 일본도 라는 변명은 받아 들이기 힘들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세종로 이순신 장군 동상이 들고 있는 장검(長劍)은 보물 제326호 이충무공(李忠武公) 장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길이뿐만 아니라 칼날의 곡률(曲率)을 보더라도 이충무공 장검이 상당히 큰 곡률을 갖는데 반해서 세종로 동상의 장검은 거의 직선에 가까울 정도로 곡률이 작다. 동상의 칼은 일본도 혹은 일본도의 변형일 뿐이다.


3) 이순신 장군의 갑옷은 ‘중국 갑옷’이다

조선식 갑옷은 두루마기처럼 입는 형태로 만들어 지고, 중국식 갑옷은 덮어 쓰는 형태로 만들어 진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어깨 부분이 조각으로 덮여져 있다는 점을 볼 때, 조선식이 아니라 중국식 갑옷인 점이 명백하다.

김세중측은 자신의 과오로 이순신 장군의 갑옷이 중국식으로 표현된 것을 ‘갑옷의 모양은 이당 김은호 화백의 이순신 장군 영정을 참조했고 복식 전문가인 석주선씨의 고증도 얻은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은 김세중은 정확한 고증과 연구를 거치지 않고 그저 조선 왕릉의 무인석(武人石) 몇점을을 참조하여 만들었다는 소문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말이다. 전문가의 조언을 얻었다면 ‘이당의 초상이 중국식 갑옷임을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 동상이 얼마나 ‘객관적 고증과 연구’없이 진행되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 조선갑옷의 모습(왼쪽) 두루마기처럼 입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어깨부분을 감싸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의 갑옷 모습과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중국갑옷은 피박(披膊)형 갑옷으로 어깨와 가슴 부분을 보호하기위해 어깨 위로 두르는 일종의 망토형 방호구이다. 민승기, 에서 인용


4) 이순신 장군의 얼굴은 왜 표준영정과 다른가?


» 광화문 동상의 얼굴(왼쪽)과 조각가 김세중의 얼굴

광화문 동상의 얼굴을 놓고도 지적사항이 많았다. 특히 현충사에 걸려있는 국가 표준영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에 김세중 측은 “ 장군의 실제모습을 전해오는 영정은 없으며, 1953년 월전 장우성 화백께서 그리신 이충무공의 영정이 1968년 광화문 충무공동상이 제작된 지 5년후인 1973년 이순신장군의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바 있습니다” 고 변명하고 있다. 나아가 조각가인 김세중과 비슷하다는 주장까지 있었다. 이에 아내인 김남조 시인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가 다빈치를 닮았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예술가들은 얼굴을 그리거나 조각할 때 은연중에 자기 얼굴과 비슷하게 한다고 하지만 작가와 닮았다는 말은 가족 입장에서 할 수는 없는 겁니다. 나라의 큰 인물과 비교할 수 없지요.” 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김세중은 조각상을 건립하면서 당시에 존재했던 이순신 장군의 영정중 아무것도 참조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밝힌 셈이다.


» 충무공의 영정 동상 고증이 잘못 됐다(동아일보 1977년 5월 12일 기사) 좌로부터 현충사의 (장우성) 해남 좌수영 (이당 김은호), 한산도 제승당 (이당 김은호)

위의 사진들은 당시까지 그려진 이순신 영정중의 대표작이고, 이순신 장군을 상징하는 주요 장소에 실제로 걸려있던 영정이었다. 그런데 김세중은 이 초상중에 어떤 점도 참조하지 않았다. 특히 월전 장우성의 그림은 현충사에 53년도부터 봉안되어 있었고, 당시의 화폐 100원 동전, 500원 지폐 등에 사용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월전의 그림도 조금도 참조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월전 장우성의 영정이 지닌 문제를 별도로 하고)

갑옷의 고증을 통해 이당의 그림을 참조하고 있다고 밝힌 조각가가 얼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영정도 참조 하지 않았다는 점은 ‘고증과 연구’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의미한다. 동상, 초상화와 같은 작품은 ‘작가의 개성’을 억제,사실관계를 살피고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임이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작업을 수행하지 않고 1973년에야 ‘표준영정’이 지정되었기 때문에 어떤 영정도 참고하지 않았다는 말은 옹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나아가 김세중측이 “예술가들은 얼굴을 그리거나 조각할 때 은연중에 자기 얼굴과 비슷하게 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의 초상화 혹은 동상을 제작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적절치 않은 듯하다. 안중근 혹은 유관순의 얼굴을 그리거나 제작할 때, 제작자의 얼굴과 닮아 버린다면 ‘사실을 전달’하려는 제작의 목표와 심각하게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순신 장군의 얼굴이 김세중의 얼굴과 닮았다’는 의혹에 대해 “예술가들은 얼굴을 그리거나 조각할 때 은연중에 자기 얼굴과 비슷하게 한다”는 답변은 받아들일 수 없다.


5. 장군이 지휘하는 북은 왜 누워 있는가?



» 누워있는 두 개의 북, 전투를 지휘하는 용도이다

전장에서 북은 ‘전쟁을 지휘’하는 장수의 지시이다. 이에 전장의 북을 ‘독전고(督戰鼓: 전투를 독려하는 북)’라고도 부른다. 평화시에도 북은 전쟁을 예고하거나 사람들을 불러 모을 때 쓰인다. 설화에 나오는 ‘자명고(自鳴鼓 : 스스로 울리는 북)은 낙랑국을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지켜주는 국방의 상징이다. 그런데 광화문 동상 앞의 북은 옆으로 누여져 있다. 이는 전장을 독려하고 군사를 호령하여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낸 ‘용맹한 이순신’의 이미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적군의 탄환을 맞은 뒤,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한 뒤, 조카인 이완에게 ‘계속해서 북을 쳐 전쟁을 독려’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일 새벽, 이순신이 한창 독전하다가 문득 지나가는 탄환에 맞았다‥‥ 때에 이순신의 맏아들 회와 조카 완이‥‥곧 시체를 안고 방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오직 이순신을 모시고 있던 종 김이와 회와 완, 세 사람만이 알았을 뿐 비록 친히 믿던 부하 송희립 등도 알지 못했다. 그대로 기를 휘두르면서 독전하기를 계속했다(『이충무공 전서』의 「이분 행록」)


» 노량해전도, 제승당 소장.

제승당에 걸린 ‘노량해전도’는 이런 역사적 전거에 입각해 북 옆에서 쓰러진 이순신 장군을 묘사했다. 물론 북은 똑바로 서서 언제라도 장군을 맞을 태세로 그려졌다.

민족의 가슴 속에 새겨진 이순신 장군 최후의 모습, 혹은 불패의 장군의 모습을 묘사하지 못하고 북을 뉘어 ‘장군으로서 지휘’하는 모습을 형상화 하지 못한 것은 최악의 실수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혜문 /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조선왕조실록환수위 간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사무처장.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참고자료>

동아일보. 1977. 5.10 (세종로 충무공 동상이 잘못 되었다- 다시 만들기로) 동아일보. 1977. 5.12 (충무공의 영정 동상 고증이 잘못 됐다)

조선일보. 2009.1.31 (이순신 동상과의 대화… 김남조 시인에게 듣다 )

[Why][문갑식의 하드보일드] “일본인들이 가장 무서워 할 동상을 세우라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1/30/2009013001150.html

동아일보. 2004. 10.9 (광화문 네거리 이순신 동상 칼은 일본도”)

http://www.donga.com/fbin/output?exclusive=news&f=nes&n=200410090054

재단법인 김세중기념사업회 홈페이지

http://www.choongmoogong.org/


Posted by 명박퇴진안모씨 명박퇴진-안모씨 Trackback 0 : Comment 0


또다시 쓰는 특집글이다.
그나저나 요번주는 특집글을 자주 쓰게 된다. 아놔.... 이따 점심에 우금치 가야 하는데.....
사실 지금 쓰는 글은 원래 직접 쓰려 했으나, 시간이 없는 관계로 예전에 아고라에서 봤던 좋은 글을 다시 퍼와서 올림을 밝힌다.(내년 전태일 열사 41주기 때는 직접 쓰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출처:아고라 자토방 진알시 박은정님의 글 "★전태일과 노무현★읽어 보세요~ 작품이에요~~ㅋ")

당시의 암울한 노동현실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바보회를 조직했고, 마침내 40년 전 오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자신의 몸을 불사르신 전태일 열사와 한국 사회의 정치적 모순(지역감정,민주주의 등)을 고치려 스스로 바보가 되었고, 대통령이 되어서도 묵묵히 그 길을 걸었으며,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내던지는 그 순간까지 사람사는 세상을 생각했던 노무현 대통령, 한 평생을 바보처럼 살아왔던 두 분이 있기에 또한 민주주의와 인간답게 살 권리마저 침해받는 지금 같은 시절, 이분들의 바보 정신이 빛나는 것이 아닐까........

참고로 관련 노래는 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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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노무현 대통령 추모음반 강물처럼 수록본)

작사,작곡 김민기
노래 시민합창단,이수진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칠은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참고(수구쥐벼룩 여러분들께 드리는 글.):
이 글을 포함한 모든 이 천민놈 글은 무단복사 및 펌질+조작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만약 제 글이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지 국정원에(안기부 아니었든가?) 전화하세요.
적어도 3천만원은 받으실 겁니다. 뭐 운 좋으시면 이 천민놈 코렁탕 뚝배기(!)도 대접하실 수 있고 1억5천도
받으실 겁니다. 전화번호는 국번없이 111.(참고로 개짭새는 113입니다.)
그리고 제 글에 대한 상담은 천민놈 블로그로 와서 상담하시길.
(1차:blog.hani.co.kr/os21cccc
 2차:blog.daum.net/os21cccc
 3차(본진):mbout-os21cccc.tistory.com
트위터:twitter.com/MBOUTos21cccc
페이스북:facebook.com/MBOUTos21cccc)

뽀나스로, 필자의 글이 문제가 있으면 알아서 삭제하거나 수정조치 하겠습니다.

(참고로 다시 말하지만 이 글에는 절대로 '저작권'이 없'읍'니다. 이 글은 철저히 copyleft를 지향합니다.)


쥐박이 쉒기는 1%만의 대통령이다.
99%의 국민은 안중에 없고친일매국노 짓에 정신없다.
용산학살을 자행하고도 여론을 조작하고 
국민 복지는 관심 없이 쥐 일족 밥그릇 챙기는 것만 열중이다.
경제 위기 극복 능력 없이 국민 탓만하고 있다.
쥐박이의 무능을 홍보 부족으로 착각하고 방송을 장악하려고 시도하고 
한반도를 대운하로 토막 내려 한다.
서민 복지 예산 대폭 축소하고 콜센터 이미지 마케팅에만 열중한다.
쥐박이 정책의 잘못을 지적하면 무식한 알밥들을 풀어 유신 시절의 반공이데올로기를 부추긴다.
국가 비전의 제시없이 기도만 하면 되는줄 아는 무뇌충 개.독이다.
그런 쥐쉒이를 따르는 쓰레기가 서너명있다

Posted by 명박퇴진안모씨 명박퇴진-안모씨 Trackback 0 :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