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원래 이 글은 그저께 올려야 했던 기사인데 6.15 특집글 쓰다 보니 결국 이제야 올리게 되었지 말입니다. 죄송!)

장세환 “고엽제, 박정희 정부 요청으로 국내 반입”

경향신문 | 박홍두 기자 | 입력 2011.06.14 11:57 | 수정 2011.06.14 19:21

정부가 1960년대말 미국에 직접 고엽제를 요청하고 국무총리가 사용 승인까지 한 뒤 비무장지대에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주당 장세환 의원은 14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미국의 '초목통제계획 CY68 최종보고서(69.1.2)'을 입수한 결과 1967년 9월20일 정일권 국무총리가 제초제 사용을 승인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9일 캠프 캐럴 방문 당시 존슨 미8군 사령관에게 '왜 한국에 고엽제를 들여왔냐'고 물어보니까 '한국정부가 요청해 반입하게 됐다'는 말을 들어 이같은 자료를 국방부에 요청해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이듬해인 68년 3월 20일 미국으로부터 제초장비와 물자가 도착했다. 여기엔 고엽제의 종류들인 '에이전트 오렌지' '에이전트 블루' '모뉴론' 등이 있었다. 고엽제는 4월15일부터 5월30일까지 1차로 살포됐고, 69년 5월19일부터 7월31일까지 2차 살포되는 등 두 차례에 걸쳐 모두 51만7480갤런이 비무장지대에 뿌려졌다.

장 의원은 "당시 언론 보도에는 '대간첩 작전을 위해 휴전선 65마일 지역에 제초제 4만5000갤런을 살포했다'고 나오는데 실제로는 51만여 갤런이 뿌려져 11.5배가 많은 양이 살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다이옥신이라는 맹독성 성분이 들어있는 고엽제를 직접 살포했던 병사들이 다양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시기상으로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사용했던 고엽제를 그대로 우리나라에 반입해 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장 의원은 "맹독성을 알고도 국내로 반입했다면 '천인공노'할 일"이라면서 "'고엽제국내반입진상조사특위'를 구성하고 국회 차원의 철저한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

(원본 기사링크: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110614115717910&p=khan)




(만주국 장교+남로당 빨갱이 닭까끼 마사오(또는 오까모또 미노루.))

참으로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아놔, 최근 양놈들이 예전에 몰래 우리 땅에 고엽제를 묻은 사실이 속속들이 전국에서 뽀록나는 것도 경악스러운데, 닭까끼 마사오가 양놈들의 이런 행패짓을 알면서도 일부러 들여 왔다는 것이 아닌가!
예전에 이와 관련된 책을 읽은 적이 있어 이 개쉐놈이 이랬을 거라고는 예상을 했드만, 진짜 사실이었다니 더더욱 충격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데, 바로 닭까끼 마사오는 절대로 영웅이 아닌 독재자,기회주의자에 나라 팔아먹은 왜놈간첩은 물론, 양놈들을 위해 국토까지 오염시킨 패륜아라는 것.....
 


 
국민 여러분, 이러고도 이런 개쉐놈 딸뇬이 대통령감 입니까? 암만 생각해 봐도 절대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이 독재자+매국노 딸뇬을 뽑아주는 것은 우리 후손들에게 죄 짓는 일이고, 또한 조상님들이 물려주신 이 땅에 면목 없는 짓입니다.
모두들, 이 개쉐놈의 만행을 똑똑히 기억하고 내년 대선 때 제대로 투표 합시다.
 
마지막으로 짤림방지.....



참고(수구쥐벼룩 여러분들께 드리는 글.):
이 글을 포함한 모든 이 천민놈 글은 무단복사 및 펌질+조작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만약 제 글이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지 국정원에(안기부 아니었든가?) 전화하세요.
적어도 3천만원은 받으실 겁니다. 뭐 운 좋으시면 이 천민놈 코렁탕 뚝배기(!)도 대접하실 수 있고 1억5천도
받으실 겁니다. 전화번호는 국번없이 111.(참고로 개짭새는 113입니다.)


그리고 제 글에 대한 상담은 요기로 와서 상담하시길. 다만, 정사충,수꼴,뉴또라이는 사절함.


본진:http://mbout-os21cccc.tistory.com
전진기지:http://blog.daum.net/os21cccc
예전기지:http://blog.hani.co.kr/os21cccc(관리 안함)
트위터:http://twitter.com/MBOUTos21cccc
페이스북:http://facebook.com/MBOUTos21cccc


뽀나스로, 필자의 글이 문제가 있으면 알아서 삭제하거나 수정조치 하겠습니다.
(참고로 다시 말하지만 이 글에는 절대로 '저작권'이 없'읍'니다. 이 글은 철저히 copyleft를 지향합니다.)


쥐박이 쉒기는 1%만의 대통령이다.
99%의 국민은 안중에 없고 친일매국노 짓에 정신없다.
용산학살,전직 대통령 암살,구제역 살처분 등 별의별 학살을 자행하고도
여론을 조작하고 국민 복지는 관심 없이 쥐 일족 밥그릇 챙기는 것만 열중이다.
한반도 위기 극복 능력 없이 북풍만 조작하고 있다.
쥐박이의 무능을 홍보 부족으로 착각하고 방송을 장악하려고 시도하고 
한반도를 4대강 죽이기로 토막 내고 있다.
서민 복지 예산 대폭 축소하고 과메기 형님 동네 치장만 신경쓴다.
쥐박이 정책의 잘못을 지적하면 무조건 노무현탓, 북한 소행이라 박박 우긴다.
국가 비전의 제시없이 기도만 하면 되는줄 아는 무뇌충 개독이다.
그런 쥐쉒이를 따르는 쓰레기가 서너명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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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의 5대 문제점-한겨레신문 오피니언넷 훅 혜문스님의 글 
 

» 이순신 동상 모습.

프롤로그

광화문을 지키고 있던 이순신 장군께서 쓰러졌다. 1968년 4월 광화문 네거리에 동상이 서게 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일제 때에 변형된 조선왕조의 도로 중심축을 복원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지만 그 대신 세종로 네거리에 일본이 가장 무서워할 인물의 동상을 세우라”고 지시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조각가 김세중 측의 전언) 그때부터 지금까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의 한복판에서 ‘온갖 역사적 사건’을 지켜보던 이순신 장군은 ‘속이 썩어 붕괴 위험’에 처했고, 이에 장장 40일동안 입원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이순신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우리 어린이들이 존경하는 인물 1위인 그는 우리에게 ‘역사적인 인물’을 넘어 던지는 뭔가의 느낌이 있다. 그것은 패배와 설움에 북받혀 발버둥친 질곡의 조선역사가 남긴 ‘승리의 상징’, 부당한 권력과 권모술수의 책략을 뿌리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길을 걸어간 ‘올곧음’에 바치는 겨레의 찬사이다. 하물며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겨 종살이 생활을 40년 가까이 한 우리에게 그는 ‘구국과 항일’의 구심점으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그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광화문에 금간 소식’ 보다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을 주는 것은 그런 이유였을 거다.

며칠전 나는 울적한 마음에 광화문 이순신 동상에 문병차 가 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사실 동상에 가까이 가서 살펴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새롭게 조성된 세종대왕 동상을 지나 이순신 동상 뒤편으로 다가선 나는 순간 충격에 비명을 지를 정도 였다.

<박정희 헌납>



» 제작 관련 표기 – 박정희 헌납(맨 위줄)

거기엔 그렇게 써 있었다. 나는 순간 사람이 있는줄 모르고 화장실 문을 잘못 열은 듯한 놀라움에 사로 잡혔다. 헌납이란 단어는 천황폐하의 만수무강과 대일본제국의 승리를 위해 바쳤던 ‘비행기 헌납’같은 일들을 연상시킨다. 박정희는 누구에게 이순신 장군을 헌납한 것일까? 설마 천황에게 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단어는 나에게 너무나 큰 놀라움을 던져주었다. 대통령 박정희도 아닌 개인 박정희가 ‘이순신 장군 동상’을 헌납했다면 대상은 누구였을까? 국가, 민족 뭐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다면 이 동상은 박정희 대통령의 사비를 털어서 만들어진 것이었을까?

혹떼러 갔다가 혹 붙인 느낌으로 더욱 울적해진 나는 그곳에서 ‘이순신 장군 동상에 따른 음모’ 뭐 이런 유언비어가 한때 있었던 것을 생각해 냈다. 군사독재를 위해 세종로에 충무공 동상을 세웠다는 류의 그런 소문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이순신 장군 동상’과 관련된 여러 가지 자료를 살펴보다가 나는 정말 ‘광화문 동상’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는 이 동상이 1980년 철거될 예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77년 5월. 서울 시민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다. 문화재 전문가들에 의해 여러 차례 고증 잘못이 지적되자 서울시가 ‘문화공보부 영정심의위원회’에 정확성 여부를 심의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시민들은 “성웅의 조상을 그렇게 만들 수 있느냐”라며 관계 당국을 성토했고, 서울시는 1979년 5월 문공부에 충무공 동상을 다시 만들어 세울 것을 요청해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 이후 펼쳐진 어수선한 정국으로 이 결정은 실행되지 못했다. 도대체 이 동상은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이 동상에 대해 5대 문제점을 제기한다.



» 1977. 5.10일 동아일보 기사

1) 이순신 장군은 과연 항복하는 장군의 모습인가?

이 문제의 핵심은 칼을 오른 손에 들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왼손잡이가 아닌 이상 칼을 뽑을 수 없는 모습이고 이는 항복한 장수로 오인될 수 있다는 점이다. 김세중측은 이점에 대해 “ 장군이 왼손잡이일 리는 없지요. 왼손에 칼을 쥐고 있다 오른손으로 뽑는 게 논리적으로는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전쟁 때의 상황입니다. 동상의 콘셉트는 전쟁이 끝난 뒤 이긴 자의 모습입니다. 오른손으로 뭔가를 쥐고 있다는 건 상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 고 말하고 있다.그런데 이런 주장은 김세중이 조각을 조성할 때 참조했다는 이당 김은호의 영정과 바로 모순됨을 알 수 있다. 김세중이 이순신 장군의 얼굴을 조각할 때, 참조했다는 이당 김은호의 영정에는 이순신 장군이 칼을 왼손에 잡고 있다. 또한 광화문 동상이 아닌 이순신의 다른 동상 혹은 영정 그림 등과 비교할 때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발언이다.


» 이당 김은호 (이순신 장군 초상) 충무사

‘갑옷만을 참조했다’는 김세중의 진술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김은호의 영정과는 다르게 오른손에 칼‘을 잡은 모습을 표현했는가 하는 것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과연 김세중측의 말처럼 “ 전시가 아닌 평화의 시기”를 상징하기 위해 그렇게 된 것인지, “단순한 작가의 불찰”로 인한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2) 이순신 장군의 칼이 일본도이다


» 광화문 동상의 칼 모양(왼쪽)과 이순신 장군의 실제 칼 쌍용검의 모습

이순신 장군의 칼이 일본도라는 지적에 대해 김세중 측은 “ 현충사의 칼은 일본도가 맞습니다. 197.5㎝나 되는 긴 칼에 대해서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본에 끌려갔던 도장(刀匠) 태구련(태귀련 혹은 태귀운이라는 설도 있다), 이무생이 장군에 잡혔어요. 장군은 ‘첩자가 아니냐’고 문초한 뒤 칼 두 자루를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일본에서 일본도를 만든 사람들입니다. 일본도는 당시로서는 최신예 검(劍)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동상의 칼은 현충사 칼을 모델로 했지만 실제 비율보다 축소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또한 “칼이 한국의 검이냐 일본도냐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칼 자루에 석자의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의 색이 변하는도다. 한바탕 휘둘러 쓸어 없애니 강산이 피로 물드는구나(三尺誓天山河動色 一揮掃蕩血染山河)’라고 적혀 있습니다.”고 말한다. 현충사의 이순신 장검이 지닌 본연의 의미, ‘일본을 물리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강조되어야 하지 ‘일본도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현충사에 소장된 보물 제326호 이충무공(李忠武公) 장검은 조선식 쌍수도(雙手刀)에 속하며 무예도보통지에 의해서 “장검. 용검. 평검이라고도 불리며, 칼날의 길이 5척, (동호인 1척), 자루 1척 5촌. 7척짜리도 볼 수 있다.” 고 정의되어 있다. 이 칼은 실전용이 아닌 의전용 칼이므로 길이가 1미터 97센티, 칼집에 넣었을 때는 2미터를 넘는 크기이다. 만약 이 칼을 짚었다면 당연히 키보다 높은 칼을 묘사해야지 허리정도까지 오는 칼로 표현될 수 는 없다. 허리에 차는 칼, 혹은 그보다 작은 칼을 묘사하려면 이순신 장군이 패용한 실전용 칼 ‘쌍룡검’을 묘사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장군의 장검의 길이를 축소, 일본도를 만들어 놓고 ‘현충사의 칼’이 일본도 라는 변명은 받아 들이기 힘들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세종로 이순신 장군 동상이 들고 있는 장검(長劍)은 보물 제326호 이충무공(李忠武公) 장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길이뿐만 아니라 칼날의 곡률(曲率)을 보더라도 이충무공 장검이 상당히 큰 곡률을 갖는데 반해서 세종로 동상의 장검은 거의 직선에 가까울 정도로 곡률이 작다. 동상의 칼은 일본도 혹은 일본도의 변형일 뿐이다.


3) 이순신 장군의 갑옷은 ‘중국 갑옷’이다

조선식 갑옷은 두루마기처럼 입는 형태로 만들어 지고, 중국식 갑옷은 덮어 쓰는 형태로 만들어 진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어깨 부분이 조각으로 덮여져 있다는 점을 볼 때, 조선식이 아니라 중국식 갑옷인 점이 명백하다.

김세중측은 자신의 과오로 이순신 장군의 갑옷이 중국식으로 표현된 것을 ‘갑옷의 모양은 이당 김은호 화백의 이순신 장군 영정을 참조했고 복식 전문가인 석주선씨의 고증도 얻은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은 김세중은 정확한 고증과 연구를 거치지 않고 그저 조선 왕릉의 무인석(武人石) 몇점을을 참조하여 만들었다는 소문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말이다. 전문가의 조언을 얻었다면 ‘이당의 초상이 중국식 갑옷임을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 동상이 얼마나 ‘객관적 고증과 연구’없이 진행되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 조선갑옷의 모습(왼쪽) 두루마기처럼 입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어깨부분을 감싸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의 갑옷 모습과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중국갑옷은 피박(披膊)형 갑옷으로 어깨와 가슴 부분을 보호하기위해 어깨 위로 두르는 일종의 망토형 방호구이다. 민승기, 에서 인용


4) 이순신 장군의 얼굴은 왜 표준영정과 다른가?


» 광화문 동상의 얼굴(왼쪽)과 조각가 김세중의 얼굴

광화문 동상의 얼굴을 놓고도 지적사항이 많았다. 특히 현충사에 걸려있는 국가 표준영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에 김세중 측은 “ 장군의 실제모습을 전해오는 영정은 없으며, 1953년 월전 장우성 화백께서 그리신 이충무공의 영정이 1968년 광화문 충무공동상이 제작된 지 5년후인 1973년 이순신장군의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바 있습니다” 고 변명하고 있다. 나아가 조각가인 김세중과 비슷하다는 주장까지 있었다. 이에 아내인 김남조 시인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가 다빈치를 닮았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예술가들은 얼굴을 그리거나 조각할 때 은연중에 자기 얼굴과 비슷하게 한다고 하지만 작가와 닮았다는 말은 가족 입장에서 할 수는 없는 겁니다. 나라의 큰 인물과 비교할 수 없지요.” 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김세중은 조각상을 건립하면서 당시에 존재했던 이순신 장군의 영정중 아무것도 참조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밝힌 셈이다.


» 충무공의 영정 동상 고증이 잘못 됐다(동아일보 1977년 5월 12일 기사) 좌로부터 현충사의 (장우성) 해남 좌수영 (이당 김은호), 한산도 제승당 (이당 김은호)

위의 사진들은 당시까지 그려진 이순신 영정중의 대표작이고, 이순신 장군을 상징하는 주요 장소에 실제로 걸려있던 영정이었다. 그런데 김세중은 이 초상중에 어떤 점도 참조하지 않았다. 특히 월전 장우성의 그림은 현충사에 53년도부터 봉안되어 있었고, 당시의 화폐 100원 동전, 500원 지폐 등에 사용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월전의 그림도 조금도 참조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월전 장우성의 영정이 지닌 문제를 별도로 하고)

갑옷의 고증을 통해 이당의 그림을 참조하고 있다고 밝힌 조각가가 얼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영정도 참조 하지 않았다는 점은 ‘고증과 연구’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의미한다. 동상, 초상화와 같은 작품은 ‘작가의 개성’을 억제,사실관계를 살피고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임이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작업을 수행하지 않고 1973년에야 ‘표준영정’이 지정되었기 때문에 어떤 영정도 참고하지 않았다는 말은 옹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나아가 김세중측이 “예술가들은 얼굴을 그리거나 조각할 때 은연중에 자기 얼굴과 비슷하게 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의 초상화 혹은 동상을 제작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적절치 않은 듯하다. 안중근 혹은 유관순의 얼굴을 그리거나 제작할 때, 제작자의 얼굴과 닮아 버린다면 ‘사실을 전달’하려는 제작의 목표와 심각하게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순신 장군의 얼굴이 김세중의 얼굴과 닮았다’는 의혹에 대해 “예술가들은 얼굴을 그리거나 조각할 때 은연중에 자기 얼굴과 비슷하게 한다”는 답변은 받아들일 수 없다.


5. 장군이 지휘하는 북은 왜 누워 있는가?



» 누워있는 두 개의 북, 전투를 지휘하는 용도이다

전장에서 북은 ‘전쟁을 지휘’하는 장수의 지시이다. 이에 전장의 북을 ‘독전고(督戰鼓: 전투를 독려하는 북)’라고도 부른다. 평화시에도 북은 전쟁을 예고하거나 사람들을 불러 모을 때 쓰인다. 설화에 나오는 ‘자명고(自鳴鼓 : 스스로 울리는 북)은 낙랑국을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지켜주는 국방의 상징이다. 그런데 광화문 동상 앞의 북은 옆으로 누여져 있다. 이는 전장을 독려하고 군사를 호령하여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낸 ‘용맹한 이순신’의 이미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적군의 탄환을 맞은 뒤,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한 뒤, 조카인 이완에게 ‘계속해서 북을 쳐 전쟁을 독려’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일 새벽, 이순신이 한창 독전하다가 문득 지나가는 탄환에 맞았다‥‥ 때에 이순신의 맏아들 회와 조카 완이‥‥곧 시체를 안고 방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오직 이순신을 모시고 있던 종 김이와 회와 완, 세 사람만이 알았을 뿐 비록 친히 믿던 부하 송희립 등도 알지 못했다. 그대로 기를 휘두르면서 독전하기를 계속했다(『이충무공 전서』의 「이분 행록」)


» 노량해전도, 제승당 소장.

제승당에 걸린 ‘노량해전도’는 이런 역사적 전거에 입각해 북 옆에서 쓰러진 이순신 장군을 묘사했다. 물론 북은 똑바로 서서 언제라도 장군을 맞을 태세로 그려졌다.

민족의 가슴 속에 새겨진 이순신 장군 최후의 모습, 혹은 불패의 장군의 모습을 묘사하지 못하고 북을 뉘어 ‘장군으로서 지휘’하는 모습을 형상화 하지 못한 것은 최악의 실수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혜문 /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조선왕조실록환수위 간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사무처장.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참고자료>

동아일보. 1977. 5.10 (세종로 충무공 동상이 잘못 되었다- 다시 만들기로) 동아일보. 1977. 5.12 (충무공의 영정 동상 고증이 잘못 됐다)

조선일보. 2009.1.31 (이순신 동상과의 대화… 김남조 시인에게 듣다 )

[Why][문갑식의 하드보일드] “일본인들이 가장 무서워 할 동상을 세우라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1/30/2009013001150.html

동아일보. 2004. 10.9 (광화문 네거리 이순신 동상 칼은 일본도”)

http://www.donga.com/fbin/output?exclusive=news&f=nes&n=200410090054

재단법인 김세중기념사업회 홈페이지

http://www.choongmoog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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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18년  박정희.........궁정동 박씨

유신반대 학생 강제징집
프락치 활동하면 장학금
중정·경찰 20여 명씩 상주…대학도 학생·교수 탄압 협조



김재규 변호인 안동일 변호사가 털어놓은 ‘대통령의 사생활’
 
 “궁정동 안가 불려간 여성 200명 넘었다”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인 여배우 어머니, 박선호 찾아와 항의
● 군 병원 간호장교들도 궁정동 안가 불려가
● 김재규, 박근혜 구국여성봉사단 비리 보고했다가 박정희 핀잔 들어
● 김재규, 사관생도 박지만 비행도 뒷조사해 보고



“대통령의  사생활도 역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변호를 맡았던 안동일(安東壹·65) 변호사의 말이다. “사반세기가 지났지만 10·26은 역사가 아닌 현실”이라고 규정한 그가 최근 ‘10·26은 아직도 살아있다’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김재규가 안 변호사를 통해 밝힌 박정희의 여성편력이 실려 있어 관심을 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좋지 않은 과거를 끄집어내려고 쓴 책이 아닙니다. 최근 일고 있는 박정희와 김재규의 재평가 움직임과 관련해 정확한 자료를 제공하는 게 첫째 목적이고, 둘째 목적은 우리 현대사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든 대사건의 공판조서를 토대로 기록을 남겨 우리나라 기록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정치적인 의도는 없습니다.”

‘궁정동을 거쳐간 박정희의 여자가 200명이 넘는다’. 김재규가 안 변호사에게 털어놓았다는 말이다. 김재규는 법정에서 한사코 밝히기를 꺼렸던 박정희의 여자 문제에 대해 변호인 접견을 통해 털어놓았다고 한다.

“김재규는 자신뿐만 아니라 박선호(당시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사형집행)가 법정에서 박정희의 여성편력에 대해 진술하려는 것도 막았어요. 1979년 12월11일 제4차 공판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박선호가 ‘그날(10월 26일) 오후 4시경 (여자를 데리러) 프라자호텔에 간 일이 있느냐’고 묻자 ‘예’라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김재규가 박선호의 등에 대고 ‘야, 얘기하지 마’ 하고 짧게 명령조로 말했죠. ‘호텔에 간 것은 그날 연회장에 보낼 여자를 구하러 간 것이냐’는 변호인 신문이 이어졌지만, 박선호는 김재규의 뜻에 따라 ‘상상에 맡기겠다’고만 대답했어요.”

김재규의 말 한마디가 박선호의 입을 다물게 한 것이다. 박선호는 자신의 변호를 맡은 강신옥 변호사와의 접견에서 명색이 중앙정보부장 의전과장인 자신이 이른바 채홍사(採紅使) 노릇을 한 것에 대해 고충을 토로했다고 한다.

“저도 김재규를 접견할 때 박정희의 여자 문제에 대해 여러 번 물었는데 김재규가 ‘남자의 벨트(허리띠) 아래 이야기는 안 하는 것’이라고 합디다. 김재규뿐 아니라 검찰관과 재판부도 이 얘기가 나오는 것을 꺼렸죠. 특히 박정희 여자 문제의 ‘뇌관’을 쥔 박선호에 대한 입막음이 심했어요.”

연예계 여성이 가장 많아

-김재규에게서 언제 처음 박정희의 여성편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까.

“김재규는 항소심 재판이 끝날 때까지 ‘박정희를 두 번 죽일 수 없다’면서 그 얘길 꺼내지 않았죠. 그런데 사형선고를 받은 뒤 1980년 2월19일 접견 때 항소이유보충서에도 차마 담지 않은 얘기를 뒤늦게 털어놨어요. 박정희의 치부를 공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먼 훗날 역사의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 어렵게 입을 뗀 거죠. 그날 그럽디다.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를 찾아오는 빈도가 높았고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고. 상대하는 여자로는 영화배우와 탤런트, 연극배우, 모델 등 연예계 종사자가 가장 많았다고 해요. 그 숫자가 200명을 넘었대요.”

궁정동 안가 술자리는 대통령 혼자 즐기는 소행사와 10·26 그날 밤처럼 경호실장, 중정부장 등 3, 4명의 최측근이 함께하는 대행사로 나눠졌다고 한다. 대행사에서 박정희가 맘에 드는 여성을 ‘뽑아’ 따로 즐기는 일을 소행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대행사는 월 2회, 소행사는 월 8회 정도 치러졌다고 합디다. 박선호는 말이 의전과장이지 궁정동 안가를 관리하고 소·대행사가 있을 때마다 대통령에게 쓸 만한 여자를 찾아내 바치는 게 주임무였습니다. 김재규는 ‘박선호가 자식 키우는 아버지로서 할 일이 못 된다며 몇 번이나 내게 사표를 냈는데 만류했다’고 하더라고요. ‘자네가 없으면 궁정동 일을 누가 맡느냐’면서.” 

1심 재판에서 김재규의 제지로 입을 다물었던 박선호는 1980년 1월23일 열린 항소심 2차 공판에서 “대통령의 여자 문제에 대해 진술할 경우 일류 여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고 고인을 욕되게 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혼란이 야기될 것이므로 진술을 피한다”고 진술했다. 그의 진술을 통해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박정희의 은밀한 사생활이 수면으로 떠올랐다.

“박선호는 항소심 최후 진술에서도 박정희의 여자 문제를 잠깐 언급했어요. 전날 공판에서 ‘그 집(궁정동)이 사람 죽이는 집이냐’는 검찰관의 신문에 열 받은 박선호가 박정희의 여자 이야기를 하려고 작심했는지 언성을 높였어요. ‘(궁정동을 다녀간 여배우들의) 명단을 밝히면 시끄러워지고 궁정동 안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밝히면 세상이 깜짝 놀랄 것’이라고 진술하자 재판부가 다급히 ‘범죄사실에 관해서만 말하라’고 제지했죠.

김재규는 ‘박선호가 법정에서 한 증언이 죄다 사실’이라고 합디다. 당시 웬만한 연예인은 다 대통령에게 불려갔다는 거예요.”

화제를 돌렸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 안 변호사는 “약간의 허구가 가미되긴 했지만 대체로 사실에 근접한 영화”라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대통령 살해사건에 가담하거나 휘말려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배우 윤여정과 한석규(박선호 역)의 대화로 시작된다. 다음은 유명 탤런트의 어머니 역으로 출연한 윤여정의 대사다.

“새벽에 언뜻 깨보니 (대통령이) 자기 몸을 쓰다듬고 계시더래요. ‘곱다. 정말 곱다’ 이러시면서. 한없이 계속. 온몸을. 글쎄 쟤(딸)가 배시시 웃으니까 그때서야 멋쩍게 옷을 주섬주섬 챙기시는데. 아, 지(딸)가 그냥 자빠져 있을 수 있겠어요. 어르신(대통령) 옷 먼저 입으시라고 쟤는 벗은 채로 수발을 들었대요. 벗은 채로. 그러다가 결국 어르신이 쟤를 한번 다시 품어주시고. 그 어른 참 대단하세요. 예~에. 그 연세에! 쟤를 꼭 품으신 채로 그러셨대요. ‘꼭 다시 놀러오라’고. 제가 청와대고 어디고 쫓아다닌 건 죄송합니다. (한석규가 봉투를 내밀자) 이런 거 바라고 그런 게 아닙니다. 밑에 분들 힘든 거 알아요. 아는데 어쩌겠어요. 그분 심중을 헤아려 드려야지. 그분이 원하시는데. 그분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거…. 우리 애 이렇게 따돌리는 거 큰 실수하시는 거예요.”

‘김재규 가슴속에 뭔가 있구나’

세간에 널리 알려진, 그러나 ‘헛소문’ 취급을 당했던 영화 속 ‘연예인 모녀’ 이야기에 대해 김재규는 안 변호사에게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고백했다.

“딸이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된 사실을 알게 된 모 여배우의 어머니가 박선호를 찾아와 ‘아랫사람들이 대통령과 내 딸이 만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항의했다고 해요. 그러면서 ‘우리 딸이 대통령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더랍니다. 아마도 그 여배우 어머니는 든든한 ‘빽’ 하나 생겼다고 여긴 모양이에요. 대통령의 품에 안겼으니 톱스타 되고 출세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믿었던 것 같아요.”

-항간에 ‘간호장교’ 이야기도 떠돌았는데요.

“군 병원의 간호장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해요. 사단과 군 병원 등에서 ‘괜찮다’ 싶은 여군이 있으면 여배우와 마찬가지로 궁정동 안가로 불러들여 대통령 수발을 들게 했다는 거죠. 그게 어디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세상에 어떤 여자가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해도 그런 자리에 불려나가는 걸 달갑게 여기겠어요. 더군다나 궁정동 안가에 도착해서야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데…. 그곳에서 있었던 일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협박성 주문도 뒤따랐고요.”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김재규와 실제 김재규의 모습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영화에서는 김재규가 유약하기도 하고 조금 냉소적인 인물로 그려졌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어요. 나도 상당히 고압적이고 강인한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만나보니 그렇게 온화하고 겸손할 수가 없더라고요. 속으로 ‘저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을 살해했나,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정부장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1회 군법무관 시험을 거쳐 국방부 법무관을 마친 뒤 1978년 개업한 안동일 변호사는 원래 이기주(중정 경비원)와 유성옥(박선호의 운전기사)의 국선(國選) 변호인이었다.

그런데 1심 4차 공판(1979.12.11)에서 김재규가 대규모 사선(私選) 변호인단의 변호를 거부하고 국선 변호만 받겠다고 요청하고 재판부가 안동일 변호사를 국선변호인으로 지정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김재규의 변호를 맡게 됐다.

“이기주, 유성옥의 국선변호인으로 지정됐을 때만 해도 김재규가 박정희와 함께한 만찬석상에서 대통령경호실장 차지철과 싸우다가 욱 하는 마음에 총질을 했겠거니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재판이 시작된 직후 김재규의 진술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반체제인사나 할 수 있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김재규가 변명하는 거겠지’ 하고 생각했죠. 한편으로는 김재규의 진술이 당시 반체제 인사로 구성된 사선 변호인단의 조언에 따라 각색된 것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검찰 신문 때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최고 권력을 탐해 자신을 총애한 대통령을 배은망덕하게 살해한 패륜아로 여기기엔 너무나 논리가 정연하더라고요. ‘김재규 가슴속에 뭔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디다.” 

박근혜, 최태민의 자리바꿈

그는 김재규가 우발범이거나 패륜아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체제 회복에 나선 확신범 내지 양심범일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고 한다.

“김재규를 몇 번 접견하면서 우발범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 사람의 진정성이 느껴지잖아요. 꾸며서 말하는 것은 느낌으로 알 수 있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어요. 김재규는 공개된 법정에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10·26 혁명을 일으킨 간접적인 동기가 박정희의 문란한 사생활과 가족, 즉 자식들 문제 때문이었다’고 주장했어요.”

-구체적인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재규는 큰영애인 박근혜가 관련된 구국여성봉사단의 부정과 행패를 보고 분개했다고 해요. 이런 일들이 ‘대통령이나 박근혜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조사를 시켰다는 겁니다. 조사결과 로비나 이권 개입 등 여러 가지 비행이 드러나자 박 대통령에게 그대로 보고했는데 대통령은 ‘정보부에서 이런 일까지 하느냐’면서 몹시 불쾌해 했다고 해요. 박정희는 영부인 육 여사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자식들을 애지중지하고 철저히 감싸고 돌았다고 해요. 구국여성봉사단 문제만 해도 그래요. 당시 항간에서 말이 많던 최태민이 총재, 박근혜가 명예총재를 맡고 있었는데 김재규가 구국여성봉사단의 문제점을 보고한 후 박근혜가 총재, 최태민이 명예총재가 됐습니다. 박정희가 최태민의 실권을 뺏는답시고 두 사람의 자리를 맞바꾼 거지요. 김재규는 자기가 괜히 조사를 해서 오히려 ‘개악(改惡)’이 됐다면서 뒷조사한 걸 후회했대요.”

김재규는 구국여성봉사단의 비리 외에도 박근혜에게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박근혜가 지방 행사에 참석하면 할머니들이 전부 무릎을 꿇고 절을 했어요. 김재규는 ‘아무리 대통령 딸이라도 그렇지, 국모는 아니지 않습니까. 국민이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제게 되묻기도 했어요. 촌로들이 그렇게 절을 하면 주위 사람들이 그걸 말려야 하는데 오히려 부추겼다는 겁니다.

김재규는 ‘박정희의 불미스러운 사생활과 자식들에 대한 맹목적 보호가 도를 넘었다’고 했어요. 그런 것들이 국정운영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했습니다. 김재규는 ‘대통령의 여자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면 어쩌나’ 하고 늘 고민했다고 합디다.”

당시 김재규는 육사 생도이던 박지만의 행동거지에도 적잖이 신경이 쓰였다고 한다.

“이번에 책을 쓰면서 딱 한 가지 사실을 왜곡한 게 있어요. 김재규가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보충서를 제 책에 옮기면서 한 단어를 고쳤거든요. 김재규는 지만군 문제를 지적하면서 ‘육사 2학년 때부터 서울 시내에 외출해 여의도 등지에서 사관생도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OO’을 하고 다녔다’고 썼어요. 김재규는 ‘OO’이라고 했는데, 이걸 제 책에선 ‘행동’이라고 옮겨 적었어요. 이제 지만씨도 자식이 있고 가족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OO이라는 단어는 뺐어요. 제가 그렇게 고쳐도 하늘에 있는 김재규가 ‘잘했다’고 할 것 같아, 고민고민하다 마지막에 고친 겁니다.”

“지만군을 유학 보내십시오”

-김재규가 지만군의 행실에 대해서도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나요.

“그렇다고 합디다. 김재규는 ‘육사의 명예나 지만군의 장래를 위해 다른 학교에 전학시키거나 외국 유학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박정희에게 간곡히 건의했대요. 그런데 박정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대통령에게 자식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물론이죠. 김재규는 ‘각하 아들과 딸의 행동이 이렇습니다. 국사에 도움이 안 되니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고 보고했다고 했어요. 대통령에게 욕을 먹더라도 나라의 앞날을 생각해 직언을 했다는 겁니다. 지만 군의 불량한 행동에 대해서는 구두로 보고했고 구국여성봉사단과 관련된 일은 서면으로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후에 자식들 문제를 몇 번 언급했는데 박정희가 막무가내로 감싸고돌자 ‘더 얘기해봤자 아무 소용 없겠구나’ 하고 한탄했다고 해요.”

-김재규에게서 둘째딸 근령(최근 ‘서영’에서 ‘근령’으로 개명)씨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보셨습니까.

“아뇨. 둘째딸 이야기는 전혀 입에 올리지 않았어요.”

-책에 박정희의 사생활과 자녀 이야기를 언급했잖아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썩 달갑지 않게 여길 것 같은데요.

“박근혜 대표가 트인 사람이라면 오히려 좋아할 겁니다.”

-왜죠?

“숨기지 않고 깨놨잖아요. 박 대표는 아버지를 뛰어넘어야 해요. 박정희의 장점은 취하되 단점은 과감히 버려야지요. 그래야 나라가 발전하죠. 오히려 (박 대표가) 저에게 아주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해요.”


10·26사건 현장검증. 김재규의 저격에 박정희 대통령(앞줄 오른쪽)이 왼쪽으로 쓰러졌다. 김재규 왼쪽은 김계원 비서실장.

-다른 것도 아니고 아버지의 좋지 않은 사생활인데….

“진시황의 아방궁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박정희의 가슴에 총을 겨눴다”고 법정에서 여러 차례 진술한 김재규는 “궁정동 안가의 특별한 만찬은 절대군주나 봉건영주 시대가 아닌 20세기말 자유민주주의 국가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개탄했다고 한다.

“인간적으로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는 거죠. 생각해보세요. 진시황의 아방궁도 아니고. 현대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당시 김재규도 요정 마담을 첩으로 뒀다는 소문이 떠돌지 않았습니까.

“김재규에게 그 얘기를 들은 적은 없지만, 사실이라 해도 대통령이 청와대 인근에 비밀 안가를 만들어놓고 질펀하게 노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잖아요.”

-김재규가 법정에서와는 달리 변호인 접견을 통해 살고 싶은 욕구를 내비친 적은 없나요.

“아뇨. 없었어요.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어요. ‘유신 기간에 우리 사회에 쌓인 많은 쓰레기를 청소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이 땅에 뿌리내리도록 도와주는 일을 수행할 수 없게 된 게 유감스러울 뿐이다’라고 고백했어요. 당시 김재규는 사형당하지 않았더라도 얼마 못 살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았습니다.”

안 변호사는 “책을 펴내 26년 동안 미뤄둔 숙제를 해치운 기분이 든다”며 홀가분해했다. 법정에서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에 총을 쐈다”고 말한 김재규는 변호인 접견에서 살해 동기에 대해 “독재와 야당 탄압, 부산과 마산의 시민항쟁,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 악화 등이 주요 원인이었지만, 박정희의 문란한 사생활과 그에 따른 판단력 마비가 또 다른 이유였다”고 거듭 주장했다고 한다.

10·26 이후 해마다 5월24일이 되면 경기도 광주시 오포면 공원묘지 맨 윗자락에 자리잡은 김재규 묘역을 찾는다는 안 변호사. 그는 올해도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김재규의 묘역을 찾았다.

“제가 변론한 사람이 사형을 당했는데, 그것도 우발범이 아니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그랬다는데….”

김재규의 무덤 앞에서 그는 “두 사람이 나누는 무언의 대화는 밝힐 수 없다. 10·26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긴다”며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출처:아고라 경제토론방 p18님의 글 "이 기사 보고 충격 먹었다.")

Posted by 명박퇴진안모씨 명박퇴진-안모씨 Trackback 0 : Comment 0
간만에 쓰는 글이다.
요즘 뭐 만드는 거에 재미를 붙여서 결국 글을 못썼구먼.....
반면에 써야할 내용은 겁나게 많고....... 늬미럴~(KBS 자업자득, 지나친 지방자치단체의 혈세낭비, 4대강 대운하 특집, 아주 기가 차는 반노동정권 등등......)
이것들 아무래도 다음달에 시간 남을 때 다 써야겄그마잉........
하여간, 오늘은 틈새 논평(?)으로 요번 수꼴들의 정신줄 놓은 친북인명사전 편찬 논란에 대해서 필자의 생각을 쓸까 한다.
(주의:오늘 필자의 일명 빨갱이사전에 들어가는 인물들 중에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도 들어가 있는 일부 매국노가 여기 있음.)

최근, 수꼴어르신들께서 또다시 우리를 웃게 만드는 코미디를 연출하고야 말았다. 바로, 이 노망난 어르신들이 얼마 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반발하여 친북인명사전을 편찬하시겠단다.

보수단체, "친북인명사전 편찬"

YTN동영상 | 입력 2009.11.26 14:20



이 글을 본 여러 계층의 반응이란....

(이 웃긴 상황에 김연아양의 반응.)

(이 분 저승에서 부디 사람사는 세상을 이룩하셔야 할텐데.......... 왜 자꾸 그리움만 나는지 모르겠다.)







(동물들이 웃을 지경.)

(오랜만에 이분께서도 큰웃음 날리셨다.)


아주 배꼽이 빠질 정도로 엄청 웃었다고....
게다가, 오늘 이 어르신들 한 뻘짓들 보면 더 코미디다. 바로, 故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기들끼리 쌈박질까지 했다고 한다. 다음은 그 치열했던(?)상황을 보도한 오마이뉴스 기사이다.

"너희 빨갱이지?"-"당신들, 좌파 아냐?" 우익 싸움터 된 친북인명사전 회견장

오마이뉴스 | 입력 2009.11.26 12:15 | 수정 2009.11.26 13:40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인천 [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


26일 오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가정상화추진위(위원장 고영주 변호사) 주최 '친북반국가행위자 인명사전 편찬 관련 기자회견'에서 일부 참석자들이 '고인이 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명단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발언에 연단앞으로 나와 거세게 항의하며 주최측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뭐? 김대중·노무현이 친북인사 명단에서 빠진다고! 너희들이 빨갱이지!" "야, 때려치워! 그 따위 친북인명 사전 뭐 하러 만들어!" "너희들 북한에서 돈 받았지! 이 나쁜 놈들아!"

극우보수가 분열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들이 그토록 미워하는 김대중·노무현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일까?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맞불을 놓는 극우보수의 '친북반국가행위 인명사전' 발간 작업이 처음부터 크게 삐그덕거렸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가 추진하고 있는 < 친북반국가행위 인명사전 > 발간에 대한 기자회견장이 이른바 '좌익빨갱이'가 아닌 보수우익 노인분들의 거친 항의 때문에 아수라장이 됐다. 결국 기자회견은 중단됐다. 보수우익 인사들로 구성된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위원장 고영주)는 2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 친북반국가행위 인명사전 > 발간 계획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야, 김대중·노무현 뺄 거면 당장 때려치워!"

이 자리에서 80~90년 공안검사 출신인 고영주 위원장은 "대한민국 국가정체성과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고 훼손하는 반헌법적, 반국가적 활동을 행한 인사들의 활동내역과 사상성향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인명사전을 편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고영주 위원장은 "오는 12월에 1단계로 친북인사 명단 100명을 발표할 예정이고 내년 3월에서 5월 사이에 < 친북반국가행위 인명사전 > 1권을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또 고 위원장은 "우리는 친북인명사전에 오를 대상자 5000명 명단을 데이터베이스화 해서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진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 한 기자가 손을 들고 "혹시 1단계로 발표할 친북인사 명단 100명에 전직 대통령이 포함돼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구체적인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이에 고 위원장이 짧게 답했다. "1차 명단에는 없습니다."


한 참가자가 기자회견 연단에 있던 추최측 인사의 팔을 잡아 당기며 항의하고 있다. ⓒ 권우성


연단으로 몰려나온 일부 참가자들이 기자회견 참가자에게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 권우성

이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기자회견장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기자회견장을 찾아 뒷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앉아 있던 보수우익 노인 200여 명이 욕성과 고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야, 김대중·노무현 뺄 거면 당장 때려치워!" "너희들 북한에서 돈 얼마나 받아 처 먹은 거야!" "잔뜩 기대했는데, 빨갱이 수괴를 뺀다고? 너희들이 빨갱이지!" "이놈들,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사이비 친북인명사전을 만든다고 하네!"

갑작스런 항의와 욕설에 단상에 앉아 있던 고 위원장과 이주천 원광대 교수,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등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고 위원장은 마이크를 잡고 "기자회견 중이니 조용히 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도 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욕설과 고설, 그리고 손가락질은 계속됐다. 일부는 "김대중·노무현 포함시켜!"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혼란이 계속되자 양동안 명예교수는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분석할 예정이다"며 "두 분은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친북인명사전에 등재할 때 어떠한 반론도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보수우익 노인들은 지지하고 따졌다. "그 자식들 다 살아 있잖아! 걔네들이 반론을 제기하라고 해! 빨갱이들은 박정희 대통령 사망했는데도 친일인명사전에 올렸잖아! 어떻게 된게 빨갱이들 보다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고 위원장은 "여러분들의 의견을 잘 참고해 일을 추진하겠다"고 다시 수차례 분노한 노인들을 달랬다. 하지만 혼란은 계속됐다.

일부 노인들은 단상을 향해 손가락을 하며 뛰어 나오기도 했다. 일부는 몸싸움을 벌였다. 참다못한 고 위원장도 결국 발끈했다. "그럼 당신들도 인명사전을 따로 만드세요! 당신들, 좌파 쪽에서 방해하려고 온 거 아니야!" 발끈은 더욱 거센 욕설과 항의를 불러왔다. 노인들은 "뭐, 이 개OO야!" "저 놈이 이젠 완전히 미쳤구만!" "야, 이놈아! 넌 어디서 굴러먹다 왔어!" "너 간첩이지!" 등을 외치며 따졌다. 한 노인은 비장하게 일어나 이렇게 외쳤다. "뱀을 잡으려면 머리부터 쳐야 하는 거야!" 여기서 뱀은 친북좌익을 뜻하고 머리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뜻한다. 이 말에 곳곳에서 박수가 터졌다.

결국 기자회견은 중단됐다. 고 위원장과 양 명예교수 등은 일부 사람들의 경호를 받으며 서둘러 현장을 떠났다. 떠나는 이들을 향해서도 노인들의 손가락질은 계속됐다. "똑바로 해! 이렇게 할 거면 아예 시작을 말던가!" "이 빨갱이들! 북한에서 공작금 얼마나 받아 먹은거야!"

"나라가 이 꼴이니 우리라도 오래 살아야 한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관계자들이 떠난 뒤에도 보수우익 노인들은 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많은 노인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니 우리라도 오래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중단된 가운데 한 참가자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한편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는 친북반국가행위자에 대해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인 자유시장 경제원리와 자유민주주의 이념 및 국가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 노선이나 맑스레닌주의 노선을 정당화하며 이에 입각한 행위를 선동하거나 실행한 인사"고 규정했다.

친북반국가행위에 대한 세부 기준으로는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 선군노선을 미화 찬앙한 자 ▲북한 사회주의체제 우월성을 찬양 선전한 자 ▲북한 당국의 주장을 옹호 대변한 자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고 파괴를 선동한 자 ▲민중민주주의 사회주의 실현을 선동한 자 ▲계급투쟁에 의한 민중혁명, 노동자 권력 수립을 주장한 자 ▲의회민주주의와 국가사법체계를 파괴 선동한 자 등을 제시했다. 이들은 1차 친북반국가행위자로 "대상자 5000여 명 중 현재 활동 중인 자, 사회적 영향력이 강한 자, 친북반국가활동 증거가 명백한 자를 우선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오는 12월 발표할 1차 친북반국가행위자 100명에는 전현직 국회의원 10명, 현직 판사 포함 전현직 관료 7명, 재야인사 30명, 학계 20명, 종교계 10명, 문화예술계 7명, 언론계 7명 등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는 "2015년까지 총 5000명이 수록되는 친북인명사전 편찬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의 친북반국가행위자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재오 국가권익위원회 위원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은 80년대 민중당 활동을 한 전력이 있다. 또 정태근, 원희룡,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 등도 과거 학생운동 전력이 있다. 이런 인사들도 친북반국가행위자 명단에 포함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얼마나 웃겼으면 이 사건이 올해 수꼴들의 4대 또라이짓 후보 대상에도 올랐다고....
(참고로 올해의 수꼴들의 4대 또라이짓 유력후보사건들을 간략하게나마 보도록 한다.

1.서정갑 노친네의 故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 침탈사건.(결국 이 때문에 수배까지 내려졌다지....)

2.수꼴들의 '희망과 대안' 창립식 도중 난동부린 사건.

3.수꼴들의 故 김대중 대통령 무덤 파내려다가 개쪽당한 사연.(이것에 대해 어느 분께서는 맞불로 "박정희 시체 파내자"고도 했다고.... 사진출처:티스토리 모 블로그.)

4.친북인명사전 기자회견 중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빠졌다고 자기들끼리 쌈판난 사건.)

그런데 이분들 진짜 '빨갱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잘못짚어도 한참 잘못 짚으셨다. 저분들, 괜히 엉터리 개념가지고 오히려 엄한 사람들 그야말로 마녀사냥에 인민재판까지 하려 한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럼 진짜 친북인명사전에 올라야 할 친북 좌파에 용공분자에 빨갱이인 개쉐놈들은 누구일까나?
여기, 수꼴들에게 백색테러 당할 각오하고 그 개쉐놈들 1차 명단을 올린다.

1.과거 남로당에서 활동하고 심지어는 여수-순천 10.16 사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진짜 빨갱이인 박정희.

(일제 만주군 장교 오까모또 미노루(다까끼 마사오))

(5.16 쿠데타와 유신 독재의 장본인 박정희)
박통교 광신도들 이를 어쩌나? 알고보니 친일인명사전에도 들어가 있던 이 친일매국노 오까모또 미노루가 이 친북인명사전에도 들어간다고....
이게 근거가 없는게 아니다. 여기 그 증거자료가 다 있다.

(여수-순천 10.16 사건 당시 박정희의 남로당 행적 실체가 담겨있는 기사. 출처는 특별히 더러운 찌라시 똥아일보에서 발췌했음.)

(오마이뉴스에서 제대로 밝힌 박정희의 친북 내력.....)
게다가 저 수꼴어르신들 좋아하는 연좌제까지 걸자면 이 매국노의 형인 박상희 선생(이 분은 동생하고는 다르게 좌익쪽 독립투사)도 남로당 활동을 했으니 당연히 이 동생놈도 걸린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북쪽의 김일성의 박정희의 5.16 쿠데타에 대한 발언.



북쪽의 김일성이 맨처음 5.16 쿠데타를 보고서 한마디: "우리는 박정희집단이 군부내 진보세력이라고 판단, 쿠데타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박정희, 즉 오까모또 미노루(다까끼 마사오)는 나라 팔아먹은 친일매국노에다가 자신의 친일행각을 숨기려고 남로당에까지 가입한 진짜 빨갱이인 것이다.

(그럼 박사모 병아리들, 그네꼬도 친북 좌파겠네..... 여기서 그들의 모순됨을 볼 수 있다.)

2.자꼴련 수장 김종팔.

(어느 충청도 아지매의 대선운동 도중 "조용필!" 말실수.... ㅋㅋㅋㅋㅋㅋ)

이 뿐만이 아니다. 한때 자꼴련(자X꼴린 변태들 연합) 수장으로 수구꼴통의 대명사였던 이 어르신도 사실은 친북 좌파라고.....
다음은 증거자료.
(지면상 링크로 올린다.
http://pressian.com/article/article.asp?Section=01&article_num=40011115115915)

자료가 "좌빨 언론사"라 못믿겠다고? 그래서 수꼴들을 위해 특별히 균형있게 황색찌라시 월간 구멍동서에서 직접 출췌한 김형욱 정 중정부장의 발언도 올린다.

"각하야 모든 걸 다 불고 전향했지만, JP는 다릅니다. 그는 서울대 시절 경찰이 잡으러 다니니까 경찰의 손이 미치치 않는 군대로 도망갔소, 그 후에도 그는 란 번도 잡혀 들어가지 않았는데, 크레믈린처럼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를 놈이오"
(출천:월간구멍동서)

심지어 이 어르신은 공식적으로는 아직 전향 안했다고 한다. 어떤가? 당연히 친북인명사전에 빨갱이로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3.29만원 전낙지+꼬봉 장세똥.



조금 의외라고? 안타깝겠지만, 이들도 친북 전력이 있다. 대체 그 근거가 어디서 나왔냐고? 바로, 수꼴들의 영원한 찌라시인 월간구멍동서에서 그 근거를 찾았다.(와? 꼽나?)
여기 전낙지, 장세똥의 친북 망언록를 공개한다.

전낙지,장세똥 김일성 찬양 망언록.

1."주석님의 민족애와 조국애에 평소 정의를 갖고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뵈니깐 감개무량하고 뜨거운 민족의 정을 느낍니다."-장세똥 曰.
2."그 동안 일제하의 항일투쟁을 비롯하여 40년간 김 주석께서 북녘땅을 이끌어 오시고 그 동안 평양의 우뚝 솟은 의지를 보고, 이러한 발전을 위하여 심려해 오신 점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다시 드립니다."-역시 장세똥 曰.
3."(김 주석께서) 특사를 통하여 말씀하신 내용이 (중간 생략) 평소에 생각하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밝혀온 바와 거의 같은 데 대하여 희망을 느꼈다. (중간 생략) 주석님 같은 분이 계실 때 직접 만나거 여러 가지 말씀을 들으시고 또 드리면 민족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겠는가?"-낙지천황 전두환웅 曰.
4. "평양에 와서 보고 주석님 지도하에 발전된 모습에 감명을 받았습니다."-또 역시 장세똥 曰.
5. "조국과 민족을 위래 일해 오신 주석님이 또다시 건강하신 가운데 민족의 비극을 해소하고 번영을 가져오는 훌륭한 역할을 하시어 민족사에 길이 빛날 업적을 이룩하시기를 바란다."-이것 역시 가카의 曰.

아마 이 망언록 보고 이런 사람들 많을 것이다. "아니, 이거 제목만 떼고 보면 진짜 주사판데?"
그렇다. 저 위의 망언록이 얼마나 김일성 후장을 빨고 있는가 하면,


거의 로동신문 수준이며,
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자료사진)
수꼴들이 열폭중인 북쪽의 인터넷 사이트 우리민족끼리 수준이다.(더 궁금하면 직접 들어가 보라. 주소는 http://www.uriminzokkiri.com. 다만 여기를 국정원 애들이 막아놨으니 정 들어가고 싶으면 토어(Tor)나 프록시 서버를 통해서 들어가던지 하라. 다만 잘못하가 걸려서 개고생 당해도 필자 책임은 아님.)

이 정도라면 골수 주사파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친북인명사전에 올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 전국 낙지요리를 사랑하는 쥐벼룩 모임(전사모),디시 전빠갤 찌질이들도 다 친북 좌파인가? 그나저나 80년대 저들은 그렇게 동지들을 빨갱이로 몰아 구속하고 고문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 주제에(박종철 열사).... 정작 자신들은 김일성 찬양.... ㅆㅂ 아주 욕이 절로 나온다. 또 요즘 어떤 또라이들은 5.18 민주화항쟁 때 북쪽 애들이 좀 있었다고 망언하는데, 거꾸로 보면 혹시 광주시민을 학살한 공수부대가 사실은 북쪽의 공수부대가 아니었나 싶다.)

4. 옛날 운동권 출신이지만 지금은 지독한 뉴또라이 소속 또라이인 일부 국개들+개문수 경기도지사+이쥐오 국민권익위원장.(소위 민주세력의 배신자들)
어르신들 이를 어쩌나? 이 친북사전에 들어가는 개쉐놈들 중 그렇게 "우리가 남이가?"하면서 뽑아댄 딴날당 일부 국개들도 포함되어야 하는데. 다음은 그 개쉐놈들 명단이다.

1)신지호 국개:80년대 대표적인 좌파 운동권(PD)였으나, 지금은 아주 지독한 뉴또라이 소속 또라이.(온 국민 신종플루 걸리게 마스크 금지법 발의한 개쉐놈이 바로 요놈이다. 기억하라!)

2)개문수 경기도지사:요놈 역시 신지호랑 똑같은 좌파 운동권이었으나, 지금은 역시 뉴또라이일 뿐.(다음 지방선거 때 이 개쉐놈 뽑으면 안된다는 거 아는지?)

3)심스마일 국개:1980년 굴욕의 서울역행군의 장본인. 이렇듯 386 운동권이었지만 최근 아고라에서 심스마일이란 닉으로 악플을 남기다 개쪽당했다고.......

4)이쥐오 국민권익위원장:역시 대표적인 386 운동권이었지만, 요즘은 아주 박쥐행세 잘 하고 있다.

5)박개똥 국회 사무처장:예전에 민주세력의 대표적인 국회의원이었지만, 결국 철새에 최근에는 국회 폭력 방조로 빈축을 사고 있음.

6)원희룡, 남경필 국개:둘 다 운동권 경력에 소위 딴날당에서는 개혁파라 하나, 사실은 오렌지족에 기회주의자일 뿐.......

그 외에도 여러명 더 있지만, 일단 여기까지만 보기로 하겠다.

5.기타 그 외에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를 하여 잠정적인 친북행위를 하고 있는(?) 개쉐놈들.
저 위에 있는 개쉐놈들 뿐 만 아니라 요놈들도 그 대상으로 포함시켜야 할 듯 싶다. 바로, 국가안보를 위협하여 간접적으로 친북행위를 하는 놈들 말이다.
여기 그 명단을 공개한다.

1)군대도 안갔다온 주제에 국가안보를 외치는 딴날당 국개들+쥐새퀴.
가장 문제가 되는 놈들이 바로 요놈들이다. 이 개쉐놈들은 만약 한반도에 전쟁이 터지면 바로 외국(아마 일본이나 미쿡이겠쟤...)으로 튀는 매국행위를 할 놈들로, 어찌보변 잠정적인 친북세력이 아닌가?

(작년 엄청 흥행했다는 문제의 영화.)
여기에서는 지면상의 관계로 관련 사진만 올린다. 자세한 것은 밑에 링크에서.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3083081

2)작년 요맘때 북한에 삐라날린 수꼴 어르신들.
이 기사 보면 또 이런 댓글 올라올 수도 있겠다. "아니! 이 빨갱이 새퀴가 어디서 우리를 좌빨로 매도하는기가? 확 대갈통을 찍이삘라!"
하지만, 이 어르신들 사실 말로만 반북단체지, 실상은 친북단체다. 왜냐고? 글쎄, 삐라를 날릴 거면 그냥 선동용 전단지만 날릴 것이지, 아까운 혈세까지 같이 보냈단다.

(사진은 작년 이맘때 쯤 수꼴들이 북쪽에 혈세랑 같이 삐라살포하는 장면.)
아니, 당시에는 국제적인 금융위기였는데, 아까운 달러를 모아도 시원찮을 판에 삐라랑 같이 보냈다? 소문을 듣자하니, 그 삐라들 대부분이 북쪽 군대에서 다 수거했다 하고, 그랬으면 그 달러들 다 뽀글이 뱃속으로 들어갔을 게 아닌가? 결국, 이들은 X도 모르고 뻘짓했다가 오히려 자신들이야 말로 북에 혈세를 퍼준 꼴이 되고 만 거다.
(이래놓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 퍼줬더고 망언한다지....)
게다가, 이러한 우매한 행동때문에 남북관계는 막장으로 치달아 결국 뽀글이가 광명성 1호를 우주에 발사하고, 최근에는 서해교전까지 일어났으니,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친북단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렇게 따지자면 이 삐라살포를 선동한 쥐십원,갑제옹 둘 다 "친북 좌파"가 되는 꼴이다.)

지금까지 대충이나마 진짜 일명 "빨갱이사전"에 포함되어야 할 개쉐놈들을 잘 보았다. 저들이 흔히 즐겨쓰는 방법으로 필자도 써 봤는데 어떤가? 그 빌어먹을 빨갱이타령이 사실은 매우 허구적이었다는 것이?
지금 빨갱이사전 만든다고 발악을 하시는 저 어르신들이 진짜 용공분자에 친북 좌파에 빨갱이인 요 개쉐놈들 을 빨갱이사전에 포함시키건 안시키건, 결국 둘 다 개쪽당하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전자는 자신들의 색깔론이 너무나도 허구적이었고, 자신들 스스로가 "우리 국정원에 신고하슈~"라고 커밍아웃하는 꼴이 되는 셈이고, 후자의 경우는 그저 자기들이 싫어하는 사람들 명단만 작성한 것이 되므로, 결국 그들의 소위 빨갱이사전은 매우 편향적이고 엉터리인 사전이 되는 꼴인 셈이다.
한마디로, 둘 중 어느 것을 택하더라도 결국 자멸하는 것은 바로 저 수꼴들인 셈이다.
만약 수꼴들이 내년 지방선거 때, 개쪽당하기 싫으면, 당장 친북인명사전 편찬을 백지화해야 할 것이다. 안 그랬다간,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내년 지방선거 참패, 더 나아가서는 자신들이 숙청당하는 것 뿐일 것이다.

추신:오늘은 일부러 짧게 썼다. 아무래도 내일은 노동탄압에 대해서 써야 겠구먼.....
오늘의 짤림방지.....

그 결과는?

그럼 이만 실례.....

참고(수구쥐벼룩 여러분들께 드리는 글.):
이 글을 포함한 모든 이 천민놈 글은 무단복사 및 펌질+조작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만약 제 글이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지 국정원에(안기부 아니었든가?) 전화하세요.
적어도 3천만원은 받으실 겁니다. 뭐 운 좋으시면 이 천민놈 평생 감방에 보내고 1억5천도
받으실 겁니다. 전화번호는 국번없이 111.(참고로 개짭새는 113입니다.)
그리고 제 글에 대한 상담은 천민놈 블로그로 와서 상담하시길.
(1차:blog.hani.co.kr/os21cccc
 2차:blog.daum.net/os21cccc
 3차(본진):mbout-os21cccc.tistory.com)

(참고로 다시 말하지만 이 글에는 절대로 '저작권'이 없'읍'니다. 이 글은 철저히 copyleft를 지향합니다.)


쥐박이 쉒기는 1%만의 대통령이다.
99%의 국민은 안중에 없고친일매국노 짓에 정신없다.
용산학살을 자행하고도 여론을 조작하고 
국민 복지는 관심 없이 쥐 일족 밥그릇 챙기는 것만 열중이다.
경제 위기 극복 능력 없이 국민 탓만하고 있다.
쥐박이의 무능을 홍보 부족으로 착각하고 방송을 장악하려고 시도하고 
한반도를 대운하로 토막 내려 한다.
서민 복지 예산 대폭 축소하고 콜센터 이미지 마케팅에만 열중한다.
쥐박이 정책의 잘못을 지적하면 무식한 알밥들을 풀어 유신 시절의 반공이데올로기를 부추긴다.
국가 비전의 제시없이 기도만 하면 되는줄 아는 무뇌충 개.독이다.
그런 쥐쉒이를 따르는 쓰레기가 서너명있다

Posted by 명박퇴진안모씨 명박퇴진-안모씨 Trackback 0 : Comment 0
오늘은 10.26특집 제 2편으로 박정희의 실체에 대해서 쓸까 한다......

1.일제에 대한 충성심이 태동 -혈서(최우수 제국군인)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있던 다까끼 마사오(박정희)는 자진해서 만주군관학교 생도생으로 스스로 들어갔다.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자원입학(1940년 4월 4일). 다까끼 마사오(高木正雄, 박정희) 나이 23세. 입교 동기생으로 240중 조선인 12명. 15등으로 입학하였다. 하지만 2기 졸업식에서는 240명중 당당히 1등으로 졸업하였다.
만주국 장교 오카모또 미노루.jpg
친일매국노 오까모또 미노루(다까끼 마사오)의 만주국 장교 시절 사진.

다까끼 마사오(박정희) 그 덕에 영광의 얼굴로 [만주일보]에 실린다. 뿐만 아니라 다까끼 마사오(박정희)는 졸업식 날 다음과 같은 '선서'를 힘차게 낭독했다.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꾸라와 같이 휼륭하게 죽겠습니다."

다까끼 마사오(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자원해서 들어가는 상황을 좀더 살펴보자.

다까끼 마사오(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나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기에는 나이가 많았다. 즉, 나이 때문에 자격 미달이었는데 다까끼 마사오(박정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호적을 고쳐서 나이를 낮췄다고 한다.

또한 나이를 낮췄다고 멀쩡한 조선인이 군관학교/사관학교에 입학하기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원검증과 사상검증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다까끼 마사오(박정희)는 어떻게 하면 신원검증과 사상검증에서 인정을 받고 만주군관학교에 입학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에 동료교사 유증선이 아이디어를 내주었는데 "박선생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면 어떨까?"라고 하며 제안했다고 한다. 이에 다까끼 마사오(박정희)는 그 자리에서 찬동했다.

나이도, 신원검증도, 사상검증의 장애물을 한번에 날려 버릴 수 있는 충성혈서는 만주군관학교 사람들을 감동 시켰다. 아니 일제를 감동 시켜 당시의 언론에(만주일보) 대서 특필 되었다.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

이 글귀가 바로 다까끼 마사오(박정희)가 손가락을 잘라서 쓴 '충성혈서'이다


(만주일보 혈서 기사)

이 글귀를 풀이하자면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일본) 보답하고, 나를(私) 죽여서 국가를(公) 받들겠습니다."라는 가미가제식 자폭성 혈서를 쓴 것이다. 이 충성혈서는 한 가지 기록을 갖게 된다.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혈서로 일본국왕에 충성을 맹세한 조선사람은 단 한명 다까끼 마사오(박정희) 뿐이었다. 스스로 자진해서건 강제로건 혈서로 일제에 충성을 맹세한 사람은 다까끼 마사오(박정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교사의 신분으로 있던 다까끼 마사오(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자원 입대하는 것은 천하제일의 기회주의자로 출발하는 신호탄이었다. 다까끼 마사오(박정희)는 온갖 방법을 다 써가며 자기를 지우려했던 어머니와의 출생전쟁에서 승리하여 '죽음의 집' 같았던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탈출하였고 다시 가난한 집과 고향으로부터 탈출하여 황국신민교육의 첨병 대구사범학교로 탈출하고... 다시 사무라이정신으로 무장한 일본군장교 양성기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로 탈출하여 '식민지 조선'을 탈출하게 된다.

그리고 천황주의의 신봉자가 되어 '조센징 토벌'에 몸과 마음을 바쳐 젊음을 불태우게 된다.

 2.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개조 -JS표 일본인 준비

만주군관학교를 투철한 친일정신과 열성적 훈련으로 수석 졸업의 영광을 차지한다. 수석졸업의 영광으로 금시계를 선물로 받고 졸업생 대표로 천황찬양으로 가득한 답사를 읽었다.

당시 친일매국찌라시〈만주일보 1942. 3. 24〉기사 일부를 인용하면...

[… 빛나는 우등생 오까이(日系), 고야마(日系), 다까끼(鮮系-박정희) 등 5명에
게 각각 은사상증의 전달이 있고 폐식 하였다....]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조선인은 대략 제1기∼제7기까지 50여명 정도인데... 이 만주군 출신들은 훗날 대통령, 국회의장, 국무총리, 국방장관, 군참모 총장, 해병대령관, 군사령관, 군단장, 연대장, 고급 참모등 정부와 군의 요직에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중요 인물이 된다. 한 마디로 황군들이 나라 조지고 민족정기 좀 먹는 세력이 된 것이다.

다까끼 마사오(박정희)를 지도했던 한 일본인 장교의 말을 들어보면 다까끼 마사오(박정희)가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을 철투철미 하게 일본 제국주의에 충성하고자 하였나를 알 수 있다.

[ 매년 가을이 되면 군관학교에는 생도 전원이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행군연습을 실시했다. 박정희는 그때 내가 맡은 소대의 제1분대장이었는데, 다른 분대장과는 달리 기합이 들어 있었고, 의욕도 대단했다. 진지공격 연습 같은 때 대단히 어려운 임무가 부여되더라도 박정희는 그 임무를 달성하려는 의욕으로 꽉 차있었다. 박정희는 말수가 적고 속에 투지를 감춘 사나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

라고 진술하고 있다.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관례대로 우등생에게 주어지는 일본육사 특전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다까끼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육사를 입학하려고 군관학교 시절 남들보다 철저한 황군정신으로 몸과 마음을 닦고 열심히 공부한 것이다. 일본 육사에서도 진지한 학습태도로 모범생이란 평을 받고 3등이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한다.

조선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일본 육군 대신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이로써 박정희는 완전한 일본인(오까모또 미노루)이 되었다. 아니 대일본제국의 군인이 되었다.

당시 일본육군사관학교 교장 '나구모 쥬이찌(남운충일,南雲忠一)의 다까끼 마사오(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자.

『....다까끼 생도는 태생은 조선일지 몰라도 천황페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
에서 그는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다까끼 마사오(박정희)가 10.26으로 김재규 의사에게 처단당한 때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한 일본 외교관은 이러한 말을 했다.

"대일본제국 최후의 군인이 죽었다."

한마디로 다까끼 마사오(박정희)는 JS(Japanese Standard)표 [일제인]이라는 말인 것이다.
 
4.항일세력의(독립군) 토벌 - 110여회 참가

소위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는 일본 본토의 마쓰야마 제 14연대에 처음 배속을 받았으나 진정한 일본군인을 참작하여 만주 제8연대의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모란강(牧丹江, 무단장) 부근의 영안으로 전출되었다가 화북지방의 열하 보병 제8군단에 배속된다.

영안지방 →간도에서 활약한 한인 독립군부대가 북만주로 이동할 때와 노령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서쪽으로 진출할 때에 주둔하던 요충지였다. 열하지구 ⇒ 일본군에 대한 항일 투쟁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다.

항일세력은 팔로군, 군부군, 광복군, 조선의용군, 소규모의 게릴라 (유격대) 등이었다.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는 이곳에 임관한지 1년만에 중위로 진급한다. 군의 편제상 소대장은 최전선에 배치된다. 여기에서 다까끼 마사오(박정희)는 열성적으로 항일부대를 토벌했던 공로로 승진이 빨랐던 것이다.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가 소속되어 있었던 부대는 독립군 토벌에 110여회를 출정하게 되는데 과연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는 양심의 가책이나 동포를 죽이는 행동 때문에 방아쇠를 당기는 행위에 고민을 하였을까?

미안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는 '조센징 토벌'이라면 환장을 한 놈이었다.

"조센징 토벌이다. 요오시(좋다)"를 연발하며 출정을 즐긴 놈이다. 이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보자.

문명자씨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워싱턴에서 벌어진 일들』에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의 만주군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1972년 문명자 기자가 어렵게 찾아가서 듣고 기록한 생생한 증언이다.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와 함께 지냈던 어떤 만주군 장교 출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음침한 성
격이었다. 그런데 "내일 조센징 토벌 나간다."하는 명령만 떨어지면 그렇게 말이
없던 자가 갑자기 "요오시(좋다)! 토벌이다."하고 벽력 같이 고함을 치곤 했다. 그
래서 우리 일본생도들은 "저거 좀 돈 놈이 아닌가."하고 쑥덕거렸던 기억이 난
다....]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의 본질을 알 수 있는 증언이다. 말없는 사나이가 갑자기 고함을 질러대는 것은 발작일까? 기적일까? 어느 쪽이든 '조센징 토벌'이란 명령을 받으면 자기도 가눌 수 없는 흥분 상태에 빠진 것만은 분명하다.

'요오시'란 말은 우리말 '좋다'와는 어감이 다르다고 한다. '요오시'는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요오시(좋다)! 토벌이다."라고 고함을 지러대는 행동에는 "조센징을 반드시 내 손으로 때려잡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만방에 선포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것은 강렬한 의지와 충성심에 불타는 "조센징(독립군) 토벌"에 대한 결연한 의지와 신념을 보여주는 행동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5.일본군의 특수부대(철석부대) 활약 - 간도특설대
 
일본은 만주 서남부와 중국북부에 투입할 용맹한 부대를 선발하여 특수부대(철석부대)를 만든다. 여기에 조선인 부대인 [간도특설대]도 선발되는 영광(?)을 얻는데 그 속에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 이주일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는 중국북지(열하성 만리장성 남방 평곡-북경 동북방)로 투입되어 항일 세력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여기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 소수민족들의 특수부대는 많았다. 조선인의 간도특설대, 러시아인의 찬야부대, 몽고인의 기마부대, 화교인의 화교부대, 오르치온족의 공작대 등이 있었는데....

간도특설대가 가장 강력했다고 한다. 한가지 예를 들면 「일본군, 만주군이 못해내는 작전을 간도특설대가 가서는 거뜬히 해치우곤 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조선인 공적평가에 인색한 일본인들도 간도특설대에 대해서는 "상승의 조선인부대" 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가 소속한 특수부대(간도특설대) 요원들이 얼마만큼 항일군의 토벌에 커다란 공을 세웠는지를 대변해주는 이야기이다.

6.변신의 달인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

보통학교 교사에서 만주군 지원 입대... 만주군관학교의 수석졸업과 금시계의 영광... 3등으로 졸업한 일본육사 생활도... 만주에서 관동군으로 복무하며 항일세을 토벌하던 생활도....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날아가 버린다.

친일파 아니 일본인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는 1945년 8월 15일 이후에는 어떤 행동을 하였을까? 일본의 지배는 영원 할 것이라고 생각한 박정희에게는 일본의 항복은 대단한 쇼크였을 것이다. 패잔병의 낭패감과 극한의 절망에 빠졌으리라.

하지만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가 누구인가 변신의 천재가 아닌가? 절망도 잠시였다.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는 곧바로 변신을 시도한다. 그토록 노력하고 공들여 입은 황군의 군복을 벗어 던지고 민간복으로 같아 입고 만주군의 부대를 탈영하여 피난민으로 가장하고 피난민 대열에 끼어 들어 북경으로 들어가 광복군에 합류한다.


우리는 여기서 유리한 상황에만 빌붙는 기생충 같은 기회주의자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이것뿐만 아니다. 후일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는 좌익계열의 장교가 되지만 여순 사건으로 불리해지자 천명이 넘는 동료들을 밀고하여 죽음으로 몰아 넣고 자기만 살아 남는다. 

박정희가 좌파가 되는 행동에 대하여 조갑제 등은 형(박상희)의 죽음과 연관 시킨다. 그 충격으로 좌파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근거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주장이다. 박정희는 다만 유리한 상황에 편승한것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당시 한반도 상황은 미국 정보의 데이터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반도는 온통 붉은색(좌파)으로 뒤덮고 있었다. 박정희는 그러한 권력의 흐름이 어디에 있는지 간파하고 그것에 편승했을 뿐이다.

하여간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는 자기 혼자 살아 남자고 천명이 넘는 동지들을 저승길로 보내고 살아 남았다.

5.16 쿠데타.jpg

또한 이후에 다시 우익장교가 된다. 그리고 다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준다. 어쩌면 한반도 남쪽을 반공으로 도배하는 길만이 자기의 과거를(황군/좌익 등) 은폐하고 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기회주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난 다까끼 마사오(박정희)는 기회주의란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보여 준 전형적인 인물이다.

속성이 이런데 일본 패망 후 곧 바로 광복군으로 위장하여 합류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을 적극적으로 토벌하던 일본의 진짜군인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가 쥐새끼 마냥 살아 남으려고 광복군 흉내를 낸 것이다.

정말 구토가 나는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의 행동이다.

7.박정희의 창씨개명 - 조선인 흔적 지우기

일제강점기 시대에 조선인들은 강제로 창씨개명 되었다. 박정희도 예외가 아니어서 창씨개명을 하였는데 그 이름은 모두가 알다시피 『 다까끼 마사오(高木正雄) 』이다.

하지만 창씨 개명한 조선인들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창씨개명에는 조선인의 뿌리가 남아있다. 박정희의 '다까끼 마사오(高木正雄)'란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다까끼 마사오란 이름은 박정희란 조선이름을 응용한 것이다. 다까끼(高木)란 성은 고령 박씨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마사오(正雄)란 이름은 정희(正熙)를 변용 한 것이다. 그래서 다까끼 마사오(고목정웅, 高木正雄)란 호칭에는 약간이나마 조선민족의 뿌리가 남아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박정희의 창씨 개명은 여기에서 끝나는게 아니다.

박정희는 일본정신으로 머리 채우고 일본군복을 입고 일본어를 더 잘해도 핏줄 만은 바꿀 수 없었다. 그는 누가 뭐래도 조선인의 핏줄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박정희는 조선민족이라는 핏줄 끊기를 강행한다.

'다까끼 마사오(高木正雄)'란 이름에서는 조선인의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여 다시 작명을 한다. 일본군에 자원입대 했던 것처럼 스스로 작명 실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사용한다.

그 이름은 "오까모또 미노루(강본실, 岡本實)"이다.

참으로 경악할 박정희의 행동이다. 자작 이름 "오까모또 미노루(岡本實)"는 조선인의 흔적을 지우고자 하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조선인이라는 흔적을 철저하고... 말끔하게... 깨끗히 지우고 완전한 일본인으로 태어 나고자 했던 것이다.

"오까모또 미노루(岡本實)"는 진짜 일본이름이다. 이 이름 어디에서도 조선사람의 뿌리를 찾을 수 없다. 
 


8.일본군인 생활에 대한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의 향수

만주군관학교⇒일본육사⇒관동군으로 이어진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의 복무기간은 5년 정도이다.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의 나이 23세에서 28세까지의 기간이다.

하지만 이 기간동안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는 몸과 마음을 환골 탈퇴하여 일본인, 일본군인이 되어 정서체계와 사고방식 등 모두 쪽바리 그 자체였다. 그 증거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나타난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뒤에도 틈만 나면 주일 대사관을 통하여 입수한 일본 사무라이 영화를 관람하고 일본 검도를 즐기는 것이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의 취미 생활이었다.

또한 당시 [조선일보] 주필 선우휘씨 등과 청와대에서 술을 마시며 일본천황의 교육칙어를 번갈아 외우는 내기나 시합을 하곤 했다.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의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지독한 향수를 엿 볼 수 있다. 그래도 이런 것은 얌전한 행위에 속했다.

다음 글을 읽어보자 압권이다.

[종양일보. 1991. 12. 14]

[ ..... 계엄선포 한 달 전쯤인가(1971. 10. 17 계엄이 선포되었다) 박대통령이 나를 불러요.(여기서 '나'는 강창성 전보안사령관)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박대통령은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죽장화에 점퍼차림인데 말채찍을 들고 있었어요. 박대통령은 가끔 이런 복장을 즐기곤 했지요. 만주군 장교시절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다카키 마사오 중위로 정일권 대위 등과 함께 일본군으로서 말달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거죠. 박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할 때면 그분은 항상 기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

이런 미친 인간이 18년간 우리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통치 기간 만주군관학교 출신(ex:자꼴련 총재 김종팔)들을 인재로 등용하여 나라를 좀먹고 민족정기를 회복할 수 없도록 망쳐 놓았다.


9.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의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 5.16후 우방 각국에 친선사절을 보냈는데 제일 먼저 보낸 곳은?
답 : 일본

-.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먼저 방문한 나라는?
답 : 일본

-. 최초로 대외정책을 밝힌 기자회견의 주제는?
답 : 한·일 교섭의 재개.

-.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 대통령의 망언 



일본 방문중 동경의 한 요정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여 동석했던 일본인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 나는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이지만 명치유신 당시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지사들의, 나라를 위한 정열만큼은 잘 알고 있다. 그들 지사와 같은 기분으로 해볼 생각이다.....] 라고 말하였다. 그것도 유창한 일본어로 말이다.

1963년 12월 17일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일본의 자민당 부총재 오노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은 걸작의말을 한다.

[....박정희 대통령과는 부자 사이 같은 관계로서 아들의 경축일을 보러 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즐겁다..」라고 하였다.

사실 자민당의 보수 세력은 박정희와 군대생활을 같이 했던 일본제국의 동료 및 상관들이었다.

10.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의 대통령으로써의 친일2

일본군국주의 세력의 정신적 유대는 대일 굴욕회담을 (한일협정) 성사시킨다. 여기서 식민지 지배 피해에 대한 거의 모든 권리와 주장을 포기한다. 박정희는 이때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 보상 명목으로(한일경제협력을 위한 지원금) 3억달러 정도를 받는 것으로 끝낸다.

장면 시절의 8억달러나 이승만 때의 80억 달러의 주장에 비하면 너무나 헐값이었다. 일본은 이때 받았던 3억달러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피해 보상은 모두 끝났다고 말한다.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몇 백일을 시위해도 일본은 10원 한푼 내놓지 않을 것이다.

모두 친일파 오까모또 미노루(박정희)의 작품이다.

또한 1973년 서울 지하철 차량부정도입 사건을 저지른다. 일본에서 지하철차량 186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일본에서 3,204만엔하는 가격을 6,350만엔이란 두 배 정도나 비싼 가격으로 계약하였다. 이것은 만주군 출신 선배들의 로비와 정치자금의 리베이트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교의 문제이지만 유럽 선진국에 의한 아시아 식민통치에 비해서 일본이 한 것은 오히려 부드러웠고 공평했다고 정희 전 대통령 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이시하라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cp_art_view.html?artid=20090417095911A&code=970100




독도 불행의 씨앗을 낳은 박정희


 
정일권-고노‘미해결의 해결’ 대원칙 아래 모두 4개 항 합의1965년 1월11일 범양상선 박건석 회장 자택에서 서명
박정희 재가 뒤, 日側 보안상 美 용산기지에서 전화로 보고


이 밀약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解決せざるをもって、解決したとみなす。従(したが)って、条約では触(ふ)れない
라는 구절입니다.


즉  밀약의 핵심은
解決せざるをもって、解決したとみなす。
해결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


従(したが)って、条約では触(ふ)れない
따라서, 조약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 -を もって 을 가지고,  -とみなす 라고 간주한다
 したがって 따라서,  では -에서는   ふれない 다루지 않는다.




출처:아고라 자유토론방 미나리바님의 "박정희의 친일행적(끝까지읽으세요)"

한가지 더, 오까모또 미노루가 유신독재시절 국민들에게 강제로 시킨 것들은 일제의 민족말살통치와도 일치한다.

일본 제국주의        박정희

교육칙어                   국민교육헌장
동방요배(東方遙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황국신민 서사            국기에 대한 맹세
정오의 묵도               국기하강식
국민복                      표준 간소복
의례준칙                   가정의례준칙
애국반상회                반상회
치안유지법                국가보안법(개승만때 만들어진 악법으로 박정희는 더 이용해 먹음.)
농촌진흥운동             새마을운동(뭔가 놀랍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이것 역시 일제의 잔재이다.)



 
 

독재자 박정희의 묘역이 1200평이라고 합니다.


막판에 계집뇬 끼고 흥청망청 국고를 축내다가

의인 김재규장군의 총탄에 비명횡사한 놈을

왜 이토록 예우를 해야 합니까?

 

살인독재자 박정희는 국립묘지에 묻힐 자격이 없습니다.

 

당장 묘역을 파내어 부관참시하여야 합니다.

 

그자리엔 애국열사 김재규장군이 묻혀야 할 자리입니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만일 그 당시 의인 애국열사 김재규장군이

거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부마항쟁은

제2의 광주학살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이땅에 정의는 정녕 사라졌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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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사법살인 만행]

 
인혁당 재건 사건
1974년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중앙정보부가 “일부 세력이 인혁당을 다시 세워 북한의 지령을 받아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민청학련’을 조종해 국가를 뒤엎으려 했다‘고 발표한 간첩사건이다. 23명이 구속되어 8명이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75년 4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되었다.


사형이 확정된 뒤 단 18시간만에 사형이 집행되어 ‘사법살인’의 대표적 사건으로 지목되어 왔으며 국제법학자협회는 형이 집행된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한 바 있다.


 

 [1974.04.03]      박정희 대통령은 특별 담화를 통해 ‘민청학련이 불순세력의 배후조종으로 인민혁명을

                         시도하고 있다’고 발표

[1974.04     ]      긴급조치 4호를 발표하고 민청학련을 범죄단체로 규정,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 배후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

[1975.04.08]      대법원은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유죄 확정판결(8명 사형, 15명 징역 15년~무기징역)

[1975.04.09]      8명에 대한 사형 집행

[2002.09.12]      의문사조사위원회,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고문 등으로 조작’된 것이라는 조사결과 발표

[2002.09.13]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청구

[2005.12.07]      국정원 과거사조사위원회,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정권차원 조작’임을 발표

[2005.12.27]      서울중앙지법,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개시 결정

[2007.01.23]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전원 무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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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그네父 박정희의 친일만행 9가지 전격공개★

  조회수:1382 , 추천:80, 반대:3


개나라당爆死!!(k97653), 2004/07/13 오후 5:37:30
1979년 10월 26일밤 서울 종로구 궁정동의 안가!

가수 심수봉을 앉혀놓고 부어라 마셔라 대며 술쳐먹다 尾國의 사주를 받은 지 양아들이며 고향후배인 김재규前중앙정보부장에게 무참히 살해된 다카끼마사오(한국명:박정희)!

다까끼마사오의 딸내미인 차떼기당 개나라당의 박그네가 오직 할줄 아는것이란 실실 쪼개는거,글고 시장사람들 만나 만세부르는거,악수하는거 외에는 없다.

이렇게 머리 텅빈 박그네가 제1야당총재라니 외국인들은 아주 비웃고 있더구만...

그래.

앞으로 어떤 악의 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식민지로 만들어도 그에 빌붙어 반민족행위를 하더라도 나중에 해방후 어떠한 제재도 못하는 나라라면 이는 악순환만 생길 뿐이다.

그저 기회주의로 빌붙어 살면 된다는 극히 최악의 국면까지 생기는 것이다.

(이하는 위에서 모두 소개했으니 생략. 출처는 아고라 자토방의 어떤 글...)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미실의 실체....





박근혜와 차떼기와 그 알바들이 그렇게 보안법폐지를 반대하는 이유를 아시나요??

국가보안법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막아서 창의성과 발전을 막고 인권을 유린하는
악법 중에 악법입니다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는 형법과 집시법으로 막을 수 있다고합니다
차떼기들이 기를 쓰고 보안법폐지를 반대하는 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사기처왔던 북한을 적으로 규정해서 남북의 대립과 긴장이
지속될수록 정권을 잡기가 쉽다는 것과
북한과 화해와 교류와 협력을 원하는 민주세력을 탄압할 수가 있고
차떼기당의 사기행각을 비판하는 민주애국세력을 빨갱이로 몰아서
제거하므로서 악법과 진실왜곡 조작신문 조중동을 이용하여 국민을 속여서 정권을 잡겠다는 차떼기당의 전형적인 사기행각입니다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여 끝까지 피를 봄으로서 우리민족은 쇠퇴해가고
다른 나라만 이롭게 해야합니까?? 아니면
문제가 많은 북한이지만 우리의 국방력을 튼튼히 하면서
북한과 화해와 평화와 교류를 하면서 북한이 개혁과 개방으로 나오도록 유도하면서
변화시켜서 우리민족이 서로 잘되는 길을 찾아야합니까?

박근혜와 차떼기의 사기행각에 넘어가지 맙기다

**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매년 거의 최 상위권에 들어가는 북구 국가들은 ‘지역구의원이 없는 완전한 비례대표제에 기반을 둔 내각책임제’ 정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참고로 합시다).
최소한 한국의 국회구성도 국민의 대표보다는 지역 대표임을 자임하는 지역구 의원을 최대한 축소하거나 폐지시키고, 각계 전문가나 각 계층의 대표자들로 주로 구성되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다수가 되어야 국회는 노선과 정책의 대결장이 됩니다
열린우리당은 전국정당과 정치개혁을 위해서 지역당인 민주당을 버리고 개혁세력들이 모인 보수우파 정당입니다/ 민노당은 좌파 진보정당이구요 / 보수(열린당)와 진보(민노당)로 나누어서 경쟁해야 정상적인 정치구조입니다

부패를 양산하는 악법과 과거청산을 하지않으면 사기꾼들이 권력을 잡게 되고 고비용 저효율로 경제는 망가지고 역사는 다시 불행을 반복하고 친일파와 사기꾼들이 다시 설쳐서 나라는 망해갈 것입니다
정책과 노선이 아닌
지역주의 조장과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그리고 악법으로 사기처서 정권을 잡으려는 차떼기를 없애는 것이 개혁입니다
**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한나라와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와 충청도를 기반으로 하는 자민련과 같은 지역당은 정책대결보다는 지역대결로 나라를 분열시키고 망하게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지역당을 없애야 나라가 삽니다

개혁을 방해하는 차떼기 사기꾼들과 조중동을 없애고 법과제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개혁해야 잘사는 선진국이 됩니다/ 제발 정신차립시다/ 정치인 욕하고 살기가 힘들다고 하기 전에
나라를 망치는 차떼기와 조중동 사기꾼들부터 없애는데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왜? 진실하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과 정당을 저주하겟습니까?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가와 민족을 이용하고 사기치고
분열시키고 탄압하고 죽이는 사악한 세력을 나두면 국가와 국민은 불행해집니다

만약 이러한 악의 세력을 없애지 않고 또한 잘못을 고치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 댓가를 치를 날이 반드시 옵니다

부디 경상도와 전라도 분들의 깨어있는 의식과 살아있는 양심에 호소합니다
경상도분들과 전라도분들 이제는 속지 마시고
우리와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 분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짤림방지....

참고(수구쥐벼룩 여러분들께 드리는 글.):
이 글을 포함한 모든 이 천민놈 글은 무단복사 및 펌질+조작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만약 제 글이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지 국정원에(안기부 아니었든가?) 전화하세요.
적어도 3천만원은 받으실 겁니다. 뭐 운 좋으시면 이 천민놈 평생 감방에 보내고 1억5천도
받으실 겁니다. 전화번호는 국번없이 111.(참고로 개짭새는 113입니다.)
그리고 제 글에 대한 상담은 천민놈 블로그로 와서 상담하시길.
(1차:blog.hani.co.kr/os21cccc
2차:blog.daum.net/os21cccc
3차(본진):mbout-os21cccc.tistory.com)

(참고로 다시 말하지만 이 글에는 절대로 '저작권'이 없'읍'니다. 이 글은 철저히 copyleft를 지향합니다.)
쥐박이 쉒기는 1%만의 대통령이다.
99%의 국민은 안중에 없고친일매국노 짓에 정신없다.
용산학살을 자행하고도 여론을 조작하고
국민 복지는 관심 없이 쥐 일족 밥그릇 챙기는 것만 열중이다.
경제 위기 극복 능력 없이 국민 탓만하고 있다.
쥐박이의 무능을 홍보 부족으로 착각하고 방송을 장악하려고 시도하고
한반도를 대운하로 토막 내려 한다.
서민 복지 예산 대폭 축소하고 콜센터 이미지 마케팅에만 열중한다.
쥐박이 정책의 잘못을 지적하면 무식한 알밥들을 풀어 유신 시절의 반공이데올로기를 부추긴다.
국가 비전의 제시없이 기도만 하면 되는줄 아는 무뇌충 개.독이다.
그런 쥐쉒이를 따르는 쓰레기가 서너명있다
Posted by 명박퇴진안모씨 명박퇴진-안모씨 Trackback 0 : Comment 0

★박정희의 김대중 납치후 살해 미수후 현해탄 수장 미수사건

 

 ‘김대중 살해 목적’의 유무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합니다. 
○  중정의 일본 책임자였던 공사 김기완은 당초 일본의 폭력단을 시켜서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했으나, 일본 경찰의 감시에 걸려 그 계획을 바꾸어 중정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는 관계자의 진술이 있습니다.

○  납치 현장인 동경 그랜드 파레스 호텔 2210호실에서 대형 륙색 2개, 숄더 백 1개,
길이 10미터나 되는 나일론 끈, 티슈 페이퍼 등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범인들이 당초에 피해자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토막 내어 피는 목욕탕 배수구로 흘려보내고,
시체 토막은 륙색에 넣어 짊어지고 나오려고 계획했던 것임을 입증해줍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김경인 의원이 범행 현장에 나타나는 바람에 살해를 못하고
납치를 하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  피해자가 중정 공작선인 용금호로 옮겨진 후
     5, 6명의 요원들이 피해자의 신체를 결박하고, 눈에다 스카치 테입을 붙인 후,
손목과 발목에 무거운 물체를 매달은 다음 전신을 널빤지 같은 데다 묶었습니다.
그때 범인들은 “(바다에) 던질 때 풀어지지 않게 단단히 매라.”
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대목은 피해자가 귀환 직후부터 일관되게 진술해온 사실입니다.)
그러나 미국 측의 기민한 조치로 용금호 상공에 비행기가 나타남으로써
목적을 이루지 못했을 뿐입니다. 

○   당시 행동요원의 한 사람이었던 유춘국이란 사람이
사건 후 미국에서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을 찾아와,
“당초의 계획은 호텔 방에서 토막 살해를 할 셈이었는데,
김경인 의원이 나타나는 바람에 급히 계획을 바꾸었다”고 고백한 사실도 있습니다.
(김형욱 회고록). 

○  납치용 중정 공작선 용금호의 조리장이었던 조시환 씨도 <시사저널> 취재팀에게
“김대중 씨가 배 뒤쪽에 있는 창고에서 수족을 결박당하고
눈을 가리운 채 감금되어 있었다”
라고 말함으로써
피해자의 위 진술을 뒤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 헬리콥터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도 했습니다.
하선 후 선원들에게 한 사람당 3백만원이란 큰 돈이 지급되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습니다.
그런 거액을 나누어 준 이유가 무엇인지는 불문가지라 하겠습니다.

같은 용금호의 갑판장이었던 이점조 씨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비행기 소리와 굉음이 연속 울린 뒤 배가 3, 40분 전진했을 때,
배 밑 부분으로 뛰어내려와 “김대중 선생입니까? 선생님, 이제 살았습니다.
배행기가 날아온 뒤 사태가 변했습니다.”라고 경상도 말씨로 말한 것이
바로 자기였다고 밝혀주었습니다.

○  사건 발생 당일 주한 미국대사 하비브가 본국에 보낸 전문에
“우리는 즉각 청와대, KCIA, 및
한국 정부와 접촉했다”고 언급한 부분이 있는 점으로 보더라도,
당시 피해자가 생명의 위급상황에 처해 있었음을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

○  당시 미국 CIA 서울 책임자였던 그레그 씨의 말에 의하면,
"하비브 대사는 사건 당일 오후 청와대로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가,
김대중 씨의 구출을 요청했다고 하면서,
납치범들의 목적은 살해에 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는 김대중 씨가 수장을 모면한 것은
미국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  이상과 같은 여러 증거와 정황에 비추어 볼 때,
납치범들이 피해자를 살해하려 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며,
이와 관련된 피해자의 그동안 진술은 신빙성이 충분한 것으로서,
이 사건이 ‘호텔 객실 내에서의 피해자 살해’
또는 ‘납치 후 살해’를 기도한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결코 단순 납치가 목적은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간파할 수가 있습니다.

 

원본내용 클릭 http://cafe.naver.com/djlibrary.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26


출처:아고라 자토방 보름달님의 "★박정희의 김대중 납치후 현해탄 수장 미수사건"
Posted by 명박퇴진안모씨 명박퇴진-안모씨 Trackback 0 : Comment 0
 
 
독재자 박정희의 묘역이 1200평이라고 합니다.

막판에 계집뇬 끼고 흥청망청 국고를 축내다가

의인 김재규장군의 총탄에 비명횡사한 놈을

왜 이토록 예우를 해야 합니까?

 

살인독재자 박정희는 국립묘지에 묻힐 자격이 없습니다.

 

당장 묘역을 파내어 부관참시하여야 합니다.

 

그자리엔 애국열사 김재규장군이 묻혀야 할 자리입니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만일 그 당시 의인 애국열사 김재규장군이

거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부마항쟁은

제2의 광주학살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이땅에 정의는 정녕 사라졌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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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사법살인 만행]

 
인혁당 재건 사건
1974년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중앙정보부가 “일부 세력이 인혁당을 다시 세워 북한의 지령을 받아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민청학련’을 조종해 국가를 뒤엎으려 했다‘고 발표한 간첩사건이다. 23명이 구속되어 8명이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75년 4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되었다.


사형이 확정된 뒤 단 18시간만에 사형이 집행되어 ‘사법살인’의 대표적 사건으로 지목되어 왔으며 국제법학자협회는 형이 집행된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한 바 있다.


 [1974.04.03]      박정희 대통령은 특별 담화를 통해 ‘민청학련이 불순세력의 배후조종으로 인민혁명을

                         시도하고 있다’고 발표

[1974.04     ]      긴급조치 4호를 발표하고 민청학련을 범죄단체로 규정,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 배후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

[1975.04.08]      대법원은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유죄 확정판결(8명 사형, 15명 징역 15년~무기징역)

[1975.04.09]      8명에 대한 사형 집행

[2002.09.12]      의문사조사위원회,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고문 등으로 조작’된 것이라는 조사결과 발표

[2002.09.13]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청구

[2005.12.07]      국정원 과거사조사위원회,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정권차원 조작’임을 발표

[2005.12.27]      서울중앙지법,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개시 결정

[2007.01.23]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전원 무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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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그네父 박정희의 친일만행 9가지 전격공개★

  조회수:1382 , 추천:80, 반대:3


개나라당爆死!!(k97653), 2004/07/13 오후 5:37:30
1979년 10월 26일밤 서울 종로구 궁정동의 안가!

가수 심수봉을 앉혀놓고 부어라 마셔라 대며 술쳐먹다 尾國의 사주를 받은 지 양아들이며 고향후배인 김재규前중앙정보부장에게 무참히 살해된 다카끼마사오(한국명:박정희)!

다까끼마사오의 딸내미인 차떼기당 개나라당의 박그네가 오직 할줄 아는것이란 실실 쪼개는거,글고 시장사람들 만나 만세부르는거,악수하는거 외에는 없다.

이렇게 머리 텅빈 박그네가 제1야당총재라니 외국인들은 아주 비웃고 있더구만...

그래.

앞으로 어떤 악의 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식민지로 만들어도 그에 빌붙어 반민족행위를 하더라도 나중에 해방후 어떠한 제재도 못하는 나라라면 이는 악순환만 생길 뿐이다.

그저 기회주의로 빌붙어 살면 된다는 극히 최악의 국면까지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대표적 친일파 다카끼마사오의 친일만행을 진실규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다카끼마사오의 대표적 친일만행 9가지를 알려줄테니 부디 현실을

명확히 직시하길 바란다.


★박그네父 다카끼마사오(한국명:박정희)의 친일만행 9가지!!★

① 일제에 대한 충성심이 애초부터 강해 천왕폐하에 대한 충성심을 맹세할 정도였다

(→천왕폐하의 지지않는 사쿠라가 될 것이라 맹세함)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자원입학(1940년 4월 4일).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나이 23세.
입교 동기생으로 240중 조선인 12명. 15등으로 입학 성적 15등이었다.

②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일제 충성심으로 무장하다.

만주군관학교를 투철한 친일정신과 열성적 훈련으로
수석 졸업의 영광을 차지한다. 수석졸업의 영광으로 금시계를
선물로 받고 졸업생 대표로 천황찬양으로 가득한 답사를 읽었다.
당시 친일신문〈만선일보 1942. 3. 24〉기사 일부를 인용하면...
… 빛나는 우등생 오카이(日系), 고야마(日系), 다카기(鮮系-박정희)
등 5명에게 각각 은사상증의 전달이 잇고 폐식하였다.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조선인은 대략 제1기∼제7기까지
50여명 정도인데 만군 출신들은 훗날 대통령, 국회의장, 국무총리,
국방장관, 군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군사령관, 군단장, 연대장, 고급
참모등 정부와 군의 요직에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중요 인물이 된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를 지도했던 한 일본인 장교의 말을 들어보면
다카기 마사오(박정희)가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을
철투철미 하게 일본 제국주의에 충성하고자 하였나를 알 수 있다.

매년 가을이 되면 군관학교에는 생도 전원이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행군연습을 실시했다. 박정희는 그때 내가 맡은
소대의 제1분대장이었는데, 다른 분대장과는 달리 기합이 들어 있었고,
의욕도 대단했다. 진지공격 연습 같은 때 대단히 어려운 임무가
부여 되더라도 박정희는 그 임무를 달성하려는 의욕으로 꽉 차있었다.
박정희는 말수가 적고 속에 투지를 감춘 사나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라고 진술하고 있다.

③ 완전한 일본인이 되다.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관례대로 우등생에게 주어지는
일본육사 특전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육사를 입학하려고 군관학교 시절 남들보다 철저한
황군정신으로 몸과 마음을 닦고 열심히 공부한 것이다.
일본 육사에서도 진지한 학습태도로 모범생이란 평을 받고
3등이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한다.
조선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일본 육군 대신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이로써 박정희는 완전한 일본인(다카기 마사오)이 되었다.
아니 대일본제국의 군인이 되었다.
훗날 다카기 마사오(박정희)가 10.26으로 죽었을 때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한 일본외교관은 이러한 말을 했다.
"대일본제국 최후의 군인이 죽었다." 라고 하였다.

④ 항일세력의(독립군) 토벌 작전에 110회나 참가하다.

소위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본토의 마쓰야마 제 14연대에
처음 배속을 받았으나 진정한 일본군인을 참작하여 만주 제8연대의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모란강 부근의 영안으로 전출되었다가
화북지방의 열하 보병 제8군단에 배속된다.
영안지방 →간도에서 활약한 한인 독립군부대가 북만주로 이동할 때와
노령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서쪽으로 진출할 때에 주둔하던 요충지였다.
열하지구 ⇒ 일본군에 대한 항일 투쟁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다.

항일세력은 팔로군, 군부군, 광복군, 조선의용군, 소규모의 게릴라
(유격대) 등이었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이곳에 임관한지 1년만에 중위로 진급한다.
군의 편제상 소대장은 최전선에 배치된다.
여기에서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열성적으로 항일부대를
토벌했던 공로로 승진이 빨랐던 것이다.

⑤ 일본군의 특수부대(철석부대) 산하의 간도특설대 활약

일본은 만주 서남부와 중국북부에 투입할 용맹한 부대를 선발하여
특수부대(철석부대)를 만든다. 여기에 조선인 부대인
간도특설대도 선발되는 영광(?)을 얻는데
그 속에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이주일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중국북지(열하성 만리장성 남방 평곡-북경 동북방)로
투입되어 항일 세력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여기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 소수민족들의 특수부대는 많았다.
조선인의 간도특설대, 러시아인의 찬야부대, 몽고인의 기야부대,
회교인의 회교부대, 오르치온족의 공작대 등이 있었는데....
간도특설대가 가장 강력했다고 한다. 한가지 예를 들면
「일본군, 만주군이 못해내는 작전을 간도특설대가 가서는
거뜬히 해치우곤 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조선인 공적평가에
인색한 일본인들도 간도특설대에 대해서는 "상승의 조선인부대"
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가 소속한 특수부대(간도특설대) 요원들이
얼마만큼 항일군의 토벌에 커다란 공을 세웠는지를 대변해주는 이야기이다.

⑥ 변신의 달인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보통학교 교사에서 만주군 지원 입대...
만주군관학교의 수석졸업과 금시계의 영광...
3등으로 졸업한 일본육사 생활도...
만주에서 관동군으로 복무하며 항일세력을 토벌하던 생활도....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날아가 버린다. 친일파 아니 일본인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1945년 8월 15일 이후에는 어떤 행동을
하였을까? 패잔병의 낭패감을 맛보며 절망에 빠진 것도 잠시였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곧바로 변신을 시도한다.
일본군복을 벗어 던지고 민간복으로 같아 입고 만주군의 부대를
탈영하여 피난민으로 가장하여 피난민 대열에 끼어 들어 북경으로
들어가 광복군에 합류한다.
우리는 여기서 유리한 상황에만 빌붙는 기생충 같은 기회주의자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이것뿐만 아니다.
후일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좌익계열의 장교가 되지만
여순 사건으로 불리해지자 천명이 넘는 동료들을 밀고하여
죽음으로 몰아 넣고 자기만 살아 남는다.
또한 이후에 다시 우익장교가 된다. 그리고 다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주고 기회주의자란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보여 준 인물이었다.
속성이 이런 인간이니 일본 패망 후 곧 바로 광복군으로 위장하여
합류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을 적극적으로 토벌하던 일본의 진짜군인
다카기 마사오(박정희)가 광복군 흉내를 낸 것이다.
구토가 나는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행동이다.

⑦ 일본군인 생활에 대한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향수

만주군관학교⇒일본육사⇒관동군으로 이어진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복무기간은 5년 정도이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나이 23세에서
28세까지의 기간이다.
하지만 이 기간동안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몸과 마음을
환골탈퇴하여 일본인 일본군인이 되어 정서체계와 사고방식 등
모두 일본놈 그 자체였다. 그 증거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나타난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뒤에도 틈만 나면 주일 대사관을 통하여
입수한 일본 사무라이 영화를 관람하고 일본 검도를 즐기는 것이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취미 생활이었다.
또한 당시 조선일보 주필 선우휘씨 등과 청와대에서 술을 마시며
일본천황의 교육칙어를 번갈아 외우는 내기나 시합을 하곤 했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지독한 향수를 엿 볼 수 있다.
그래도 이런 것은 얌전한 행위에 속했다.

다음 글을 읽어 보자 압권이다.
중앙일보. 1991. 12. 14

"..... 계엄선포 한 달 전쯤인가(1971. 10. 17 계엄이 선포되었다)
박대통령이 나를 불러요.(여기서 '나'는 강창성 전보안사령관)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박대통령은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죽장화에 점퍼차림인데 말채찍을 들고 있었어요.
박대통령은 가끔 이런 복장을 즐기곤 했지요. 만주군 장교시절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다카기 마사오 중위로 정일권 대위 등과 함께 일본군으로서 말달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거죠.

박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할 때면 그분은 항상 기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 "

이런 미친 인간이 18년간 우리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통치 기간 만주군관학교 출신들을 인재로 등용하여 나라를
좀먹고 민족정기를 회복할 수 없도록 망쳐 놓았다.

⑧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 5.16후 우방 각국에 친선사절을 보냈는데 제일 먼저 보낸 곳은?
답 : 일본
-.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먼저 방문한 나라는?
답 : 일본
-. 최초로 대외정책을 밝힌 기자회견의 주제는?
답 : 한·일 교섭의 재개.
-.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의 망언
일본 방문중 동경의 한 요정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여 동석했던
일본인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 나는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이지만 명치유신 당시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지사들의, 나라를 위한 정열만큼은 잘 알고 있다.
그들 지사와 같은 기분으로 해볼 생각이다..... 라고 말하였다. 그것도
유창한 일본어로 말이다.
1963년 12월 17일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일본의 자민당 부총재 오노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은 걸작의
말을 한다.
[....박정희 대통령과는 부자 사이 같은 관계로서 아들의 경축일을
보러 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즐겁다..」라고 하였다.
사실 자민당의 보수 세력은 박정희와 군대생활을 같이 했던
일본제국의 동료 및 상관들이었다.

⑨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2

일본군국주의 세력의 정신적 유대는 대일 굴욕회담을 (한일협정)
성사시킨다. 여기서 식민지 지배 피해에 대한 거의 모든 권리와
주장을 포기한다. 또한 1973년 서울 지하철 차량부정도입 사건을
저지른다. 일본에서 지하철차량 186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일본에서 3,204만엔하는 가격을 6,350만엔이란
두 배 정도나 비싼 가격으로 계약하였다.
이것은 만주군 출신 선배들의 로비와 정치자금의 리베이트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유신공주,수첩공주 박그네의 핏속에는

 

친일독재자,빨갱이원조 박정희의 유전자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박정희향수에 젖어 과거를 망각한 민족에

 

미래가 없습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유신독재정권의 살인만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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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아고라 자토방 진실승리님의 " ★★살인독재자 박정희를 국립묘지에서 파내어 부관참시해야"


Posted by 명박퇴진안모씨 명박퇴진-안모씨 Trackback 0 :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