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끝나고 오래간만에 쓰는 글이다.
휴우.... 어제 하도 피곤해서 하루 쉬는 바람에 어제 써야 할 글을 오늘에야 쓰는 것이다.
(솔직히 지금 어떻게 써야 하나 좀 막막하기도 하다.)
그나저나 이번 재보선 결과 가지고 민주세력들 끼리도 또다시 논쟁이 붙었던데, 일단 결과는 수용하고 다음 총선,대선을 또 생각합시다. 이미 뭐 끝난 거 가지고 싸워봤자 입만 아프지 않습니까? 그래도 이긴 전투(?)이니.....
어찌되었든간, 지금부터 이번 재보선에 대한 총평과 앞으로 민주세력이 해야 할 일들을 간략히 써 볼까 한다.

참고: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분명 민주세력들 중에서도 이 글에 대해서 반대하는 분들이 계시겠지요. 다만, 그래도 이번 재보선이 야권통합의 시점이 되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느 천민의 한 의견이니 잘 읽어보시길.


한동안 여러 이슈를 만들었던 재보선도 민주세력의 승리로 끝이 났다.


(4.27 재보선 결과. 출처: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카페.)


(한겨레신문 만평 4월 29일자.)


(경향신문 만평 4월 29일자.)

이렇게 민주세력이 불완전하게나마 승리한 반면, 딴나라당과 MB정권은 참패의 충격에 빠져 딴나라당 지도부 총사퇴, 조기개각 등이 거론되고 있고, 심지어 딴나라당 내부에서는 내년 총선,대선도 완전히 X됐다는 공포감에 휩싸였을 정도.
한편, 이기거나 진 지역에 따라 민주세력 간에서도 상당이 논란이 많았다고.... 
(참고로 여담이지만 정신 못차린 찌라시들은 선거철 지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북풍 조작질이나 하는 한심한 모습들도 볼 수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이번 재보선에 대한 총평을 끄적여 볼까 한다.


1.또다시 빗나간 여론조사 결과-이참에 아예 여론조사 없애버리는 게.....


(한겨레신문 작년 지방선거 당시 만평. 실제로, 당시에도 여론조사에서는 딴나라당이 앞서고 있었는데, 막상 까 보니 완패였다.)

이번 재보선은 작년 지방선거와 똑같이 여론조사와는 전혀 딴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라. 지방선거 때도 여론조사에서는 딴나라당이 민주세력을 10%에서 많게는 30%까지 앞서는 것으로 나왔었는데, 정작 투표함 까 보니 완전히 딴판이었지 않은가?
이번 재보선 역시 그러하였다.


(4.27 재보선 여론조사 결과. 대체로(특히 강원도에서) 딴나라당이 앞서거나 거의 박빙에 가까운 결과가 나왔었다. 자료출처:중부일보.)

위의 자료에서처럼, 선거 기간 내내 이뤄졌던 여론조사에서는 딴나라당이 이기거나 거의 박빙에 가까운 결과를 보여왔었다.
하지만 정작 선거 결과는 어떠하였을까나?


(재보선 실제 개표결과. 이번에도 여론조사와는 완전 딴판의 결과가 나왔다. 자료출처:한국일보.)


(기호일보 만평 4월 29일자.)

<4.27 재보선 여론조사도 빗나갔다>-매연덩어리 찌라시 연합카더라통신 기사.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10428192315458&p=yonhap

[4·27 재보선 與 참패] 또 빗나간 '널뛰기 여론조사'-한국일보 기사.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10428025708611&p=hankooki

또 빗나간 재보선 여론조사 원인은?-진보꼴통 언론 레디앙 기사.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2262

보는 것과 같이 대부분의 지역에서 민주세력이 엄청난 표차로 이기지 않았던가? 결과적으로, 이번에도 여론조사는 또다시 빗나간 것.
이렇게 여론조사가 민심을 따라가지 못하니 당연히 여론조사 무용론이 나올 수 밖에...... ㅉㅉㅉ
이것에 대해서 필자가 한마디 하련다. 여론조사, 이따위로 할 것이면 여론조사 기관들 모두 때려치우고 문 닫아라. 이게 뭐하는 짓인가? 돈 아깝게? 지금이 어느 땐데 아직도 20세기 방법인 전화면접 방법이란 말인가?
(실제로, 전화면접은 응답률도 매우 낮고 그나마도 대부분 집에 있는 어르신들이나 주부들이 응답하는 형태였기에 이전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차라리 여론조사 방식을 아이폰 또는 스마트폰 여론조사,휴대폰 면접 여론조사,인터넷 여론조사 등으로 개혁하라. 그게 바로 진정한 민심을 나타낼 수 있는 대안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것도 이번에 양심선언한 윤희구씨 사례처럼 쥐벼룩(댓글알바) 풀어서 조작해 버리면 말짱 꽝이지만.... ㅡㅡ;;;)

대충 여기서 전반적인 총평은 마치고 이제 지역별로 총평을 내려볼까 한다.(뭐, 젊은이들의 높은 참여,MB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은 다들 말 안해도 아실 듯 싶으니.....)


2.분당-MB정권에 대한 분노의 민심은 천당 아래 분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천일보 만평 4월 29일자.)

가장 먼저 볼 곳은 바로 분당. 
선거 기간 내내 빅매치로 예상되었고, 또 이 곳에서 손학규 대표가 당선되자 정치권의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을 정도로 이번 재보선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지역이 아닐까 한다.
하긴야, 천당아래 분당이라 불리울 정도로 중산층-상류층이 많이 살고 그만큼 계속해서 딴나라당 후보들이 당선되었던 곳에서 민주당 대표인 손학규 후보가 당선된 것은 진짜 이변 중에 이변이라 불리울 만 하다.


(재보선 때 분당 을 지역의 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투표하는 장면. 사진출처:한겨레신문.)

분당 직장인들은 왜 새벽부터 투표소를 찾았나-한겨레신문 허재현 기자의 블로그 '다시 한 번 까딸루냐 찬가' 글.
http://blog.hani.co.kr/catalunia/39399

분당을 젊은 층 투표열기 후끈 “투표하고 출근 중입니다”-경향신문 기사.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10427142424103&p=khan

수도권 486 중산층, MB 버렸다-아시아경제 기사.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110428113140877&p=akn

사실 이번에 분당 을에서 이런 이변이 일어난 것은 바로 젊은 층(20,30,40대)의 높은 투표 참여율과 천당아래 분당이라 불리우던 분당에서조차 피해갈 수 없었던 MB정권에 대한 심판 민심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분당은 재보선에서 무려 40% 이상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고, 투표일 트위터에서도 분당지역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인증 사진이 많이 타임라인을 장식했었다.
게다가 수구찌라시들에 의하면 이전부터 분당의 민심이 심상치 않았으며, 그것이 결국 전국적으로 불었던 MB정권 심판 바람이 분당을 피해가지 않았던 배경이라 하는 이야기도 있고....


(환하게 웃는 손학규 대표. 사진출처:노컷뉴스.)

여하튼간, 이렇게 분당을에서 손학규 대표가 당선되면서 손학규 대표는 대선주자로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고 민주세력은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을 되찾을 기회가 생겼지만, 반면 딴나라당은 천당아래 분당이라 불리던 텃밭지역을 잃은 충격감에 쌓이고 내년 총선,대선도 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패닉상태에 빠졌다고......
다음 뷰스앤뉴스 기사를 읽어보면 이들이 얼마나 충격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분당 참패 소식을 접하고 충격에 빠진 딴나라당 지도부. 아주 쌤통이다. 사진출처:뉴시스 기사.)

한나라 탄식 "상위 1%마저 MB를 버렸다" -뷰스앤뉴스 기사.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4823

조중동도 패닉, "분당까지 무너질 줄이야"-역시 뷰스앤뉴스 기사.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4831


3.강원도-두 번에 걸쳐 이어진 강원도민들의 혁명. 


(얼싸안은 두 명의 도지사님들..... 왠지 모를 감동이..... 사진출처:매연덩어리 찌라시 연합카더라통신.)


(강원도민 일보 만평 4월 29일자.)

다음으로 볼 곳은 강원도.
어찌보면 이번 선거에서 가장 감명깊던 곳이 아닐까 싶다. 두 번에 이어서 보여준 강원도민들의 위대한 힘이란......
사실, 연이은 '감자바위의 혁명'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라. 선거 기간 내내 강원도에서 딴나라당이 보여온 행태가 어떠했는가?



강원도민들이 최초로 뽑은 민주도지사를 한번에 낙마시켜 버리고 그 자리에 눈치보고 있던 엄처구니를 도지사 후보로 내세워 강원도민 자존심을 먹칠했으며,


(프레시안 만평 3월 17일자.)

선거전이 시작 된 이후에도 이리저리 왔다갔다 말바꾸기로 강원도민을 분노케 했으며,


(경향신문 만평 4월 23일자.)

마침내, 선거가 며칠 안남은 시점에서는 몰래 불법선거운동 한 것이 뽀록나기까지......
(그 외에도 그 동안 여권에 대한 강원도민들의 분노 등등까지 포함해서... 물론 이건 제 1차 감자바위의 혁명 때도 똑같은 것이었다.) 이러니 '감자바위의 혁명'은 안일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 강원도 재보선 결과. 이미 춘천,원주에서 압도적으로 이겼으며, 접경지역인 인제,양구에서 까지 문순c가 엄처구니를 앞선 것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화천에서도 근소하게나마 문순씨가 이겼으며, 골수 여당 지지세력인 철원,강릉에서도 꽤나 선전했다. 여담이지만, 이거 만드느라 시간 꽤 잡아먹었다.... ㅡㅡ;;;)

강원 접경지역도 ‘야풍’ 거셌다-한겨레신문 기사.
http://media.daum.net/society/nation/others/view.html?cateid=100011&newsid=20110428221044069&p=hani

오죽했으면 보수성향이 강한 접경지역인 양구,인제에서까지 문순c가 이기고 철원에서도 선전(실제로, 엄처구니와 문순c 간 격차는 고작 600표 차이밖에 안났다. 접경지역 중에서도 가장 보수라는 철원에서 그런 결과가 나온 거다.)하는 이변이 일어났겠는가?
(게다가 영동지방에서도 이변이 일어났으니, 바로 양양에서 기초단체장까지 민주세력이 차지하고, 동해에서는 근소하게나마 민주 세력이 앞섰으며, 심지어 강릉에서도 꽤나 선전했다.)


(강원도민일보 돌감자 4월 29일자.)

‘강원도=야도’고착… 한나라당 후폭풍 불가피-강원도민일보 기사.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511897

이제, 딴나라당은 아무래도 강원도에서 떠나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연달아 두 번씩이나 혁명이 일어났고, 심지어 두번째에는 딴나라당 지지 지역인 영동에서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으니..... 필자는 말한다. 더 이상 강원도를 물감자로 보지 마라!


4.순천-야권연대에 무너져 버린 색깔론과 호남패권주의, 그리고 야권연대의 가장 큰 성과물


(환하게 웃는 김선동 후보와 이정희 대표,강기갑 전 대표. 사진출처:미디어오늘.)

다음으로 볼 곳은 순천. 어쩌면 이번 재보선에서 야권연대가 가장 큰 빛을 발한 지역이 아닐까 싶다.
그럴만도 한 것이, 민주당 탈당 무소속 후보들과 야권단일 후보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상황에서 야권 단일후보인 민주노동당 김선동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이번에 순천에서 출마했던 6명의 민주당 탈당한 무소속 후보들. 그나마 다행히도 모두 낙선해서 다행이라지만.... 만약 되었다면.... 끔찍하다. 출처:뉴스페이스.)


(이번에 순천에서 출마했던 김경재. 이 개쉐놈은 지저분하게 색깔론으로 야권단일후보를 공격하고 뉴또라이 개독먹사에게 양심파는 등 별의별 행패짓은 다 저질렀다. 그 결과는? 아주 '씨원하게' X 됐다. 쌤통이다. 그렇잖아도 이놈, 김대중 대통령님 팔아쳐묵고 참여정부 시절 노짱 탄핵한 배신자 개쉐놈인데, 이런 인간쓰레기를 살처분해 버린 순천시민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박지원, 당신만은 순천 안 올 거라 믿었는데..."-오마이뉴스 기사.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10423180910710&p=ohmynews

[4.27순천보선]철 지난 '색깔론' 재등장-광주인 기사.
http://www.gwangj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7307

사실, 이 순천지역도 재보선 기간 동안 좀 지저분한 일이 잦았다. 야권연대에 반발한 민주당 내 호남 패권주의자들의 무소속 대거 출마도 좀 그랬고, 무엇보다도 적어도 민주세력의 텃밭이라면 정책선거로 가야 할 선거에 근거없는 색깔론이 등장하는 등, 정말
뭐같은 장면들이 많았다고....(사실 상황이 이렇게 좀 지저분해 진 것은 민주당의 어정쩡한 야권연대도 한 몫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나? 다행히도 위대한 순천시민들은 제대로 투표했고, 결국 야권 단일후보인 김선동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다. 구시대의 더러운 악습인 호남지역주의와 색깔론 공세를 확실히 없애 버린 통쾌한 승리였다.

호남의 선택, ‘진보정치 씨앗’을 심었다-미디어오늘 기사.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10428143552840&p=mediatoday

"나 착함", 온화한 진짜 진보 '이정희'를 주목하라-서프라이즈 노짱토론방 耽讀님의 글.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3&uid=42860

어찌되었든 간, 이번 선거로 야권연대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보았고, 또 민주노동당으로서도 호남지역에의 진출을 마련하는 등, 여러모로 순천지역은 가장 결과가 좋았던 곳이 아닐까 싶다.
(여담이지만, 이번 선거 결과를 깨끗이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 조순용 후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은 관련 기사.

조순용, “저는 낙선했지만 기쁩니다”-위키트리 기사.
http://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33923)


5.김해-안타까운 패배, 하지만 분열의 계기는 되지 말아야.....


(28일 세벽, 유시민 대표가 트위터에 남긴 김해 선거 패배에 대한 사죄 트윗.)

마지막으로, 가장 민주세력들 내에서 선거 결과 가지고 가장 말이 많은, 어쩌면 야권연대의 최대의 한계를 본 김해지역이다. 지금도 여러 토론방(아고라,서프 등지)에서는 김해 선거 결과를 가지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 정도가 심한 것은 인신공격까지 나오는 상황이라고....

자자, 일단 논란은 잠깐 멈추고.... 지금부터 왜 그렇게 당선이 유력해 보이던, 그것도 노짱님의 고향에서 어이없게 패배한 이유에 대해서 중립적인 관점에서 보도록 하겠다.(사실 필자는 이번 김해의 패배가 복합적인 원인에서 온 거라고 본다.)


(낙선인사 중인 유시민 대표와 이봉수 후보. 사진출처:박봉팔닷컴.)

가장 먼저 김해에서 패배한 원인 중 하나는 여러 사람들이 말하듯이 유시민 대표에게도 없지는 않은듯 싶다. 사실 이번 재보선에서 유시민 대표가 좀 무리수를 둔 것이 없지는 않은데, 바로 김해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높았던 김경수 봉하재단 이사장님 대신에 이봉수 후보를 내놓은 것이었다.(사실 이봉수 후보는 김해에서 존재감이 좀 없지 않았다. 그리고 김경수 봉하재단 이사장님은  문재인 변호사님과 같이 '친노 무당파'에 가까웠던 듯 싶은데...)

뭐, 국회의원 하나 없는 참여당과 유시민 대표로써는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어 참여당을 알리는 것이 정말 중요했을 터, 이것이 아주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필자가 예전에 이야기 한 바 있듯이, 겨우 1년 짜리 국회의원에 매달릴 필요가 꼭 있었을까. 내년 총선까지 좀 더 기다릴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만약 김경수 이사장님을 무소속으로 내보내고 양보했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지도 모르지만.) 그 외에도 민주당과 단일 후보를 놓고 논쟁을 벌였던 것 역시 이런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좀 아쉬웠던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전략적인 면에서의 부족(예를 들어 제대로 민심을 읽지 못했던 것 등)과 유시민 개인에 대한 민주당 내의 비호감 등등, 이러한 단점들도 이번 패배를 만든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이와 관련된 여러 토론방 글 링크들.

평범한 40 대의 -- 유시민 생각-아고라 이슈토론방 하나되는 우리님의 글.
http://bbs4.agora.media.daum.net/gaia/do/agora/participant/read?bbsId=C001&articleId=56813&issueArticleId=121&issueBbsId=I001

유시민의 조급증과 무리수가 아쉬운 부분이다.-아고라 이슈토론방 SOAR님의 글.
http://bbs4.agora.media.daum.net/gaia/do/agora/participant/read?bbsId=C001&articleId=56687&issueBbsId=I001&issueArticleId=121&RIGHT_DEBATE=R4

'항소이유서 읽던 심경으로…' 유시민에 띄운 편지-서프라이즈 노짱토론방 이강윤님의 편지글.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3&uid=43666

국민참여당과 유시민대표가 앞으로 하여야 할 일-서프라이즈 노짱토론방 경제사님의 글.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3&uid=43673



하지만 이번 김해에서의 패배의 책임은 민주당도 피해가기 어렵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사실 이번 패배의 원인 중 하나가 민주당의 소극적인 지원이기 때문이다. 이 원인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다음은 서영석 대기자가 제시한 이번 김해 개표 결과와 관련 글들 이다.


(출처:뉴스페이스)

서영석 “곽진업 고향서 -800표…유시민 역선택 가관”-뉴스페이스 기사.
http://www.newsface.kr/news/news_view.htm?news_idx=1644

유시민과 참여당 김해을 패배=새옹지마-드루킹님의 블로그 글.
http://druking.com/memo/50110229441

<순천ㆍ김해 지원에 손놓은 민주, 야권연대 무색>-매연덩어리 찌라시 연합카더라통신 기사.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10417164706332&p=yonhap

위에서 서영석 대기자는 민주당 후보였던 곽진업 후보의 고향인 진례면에서의 표차가 가장 크게 나왔다고 제시하였는데,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뜻은, 즉 민주당 지지자들이 일부러 투표를 안하거나 비리백화점 김씨를 찍어주었다는 말 아닌가? 이것은 지난 지방선거 때의 경기도지사 선거와도 비슷한 양상인데(실제로 이때도 호남향우회 등의 민주당 지지세력들은 개문수를 지지했었다. 그저 유시민이 싫다는 이유로.), 이러한 결과에 대해서 민주당에게 묻고 싶어진다. 아무리 미워도 그렇지, 적어도 저 비리백화점 걸레태호는 아니잖은가? 아놔, 이렇게 중요한 때에 그것도 노짱님 고향에서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막말로 얘기하자면 그대들 너무 속이 좁다 못해 찌질하다. 그저 유시민이 밉다는 이유로 다 이긴 전투에 코를 빠뜨리다니....... 이게 민주세력 맏형으로써 할 짓인가? 이래 가지고 야권연대 되겠는가?

결과적으로, 이번 김해 선거의 패배는 유시민 대표의 무리수,민주당의 유시민에 대한 거부반응,전략적 부재 등등의 여러 요인들이 합쳐진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이걸 가지고 누굴 원망해 봤자 무엇하랴.....


6.이번 재보선 이후 민주세력이 해야 할 일-결국, 야권 통합만이 답이다.

뭐, 말들이야 많겠지만 어찌되었든 이번 재보선은 야권연대와 다음 총선에서의 희망을 볼 수도 있었고, 또 야권연대의 최대 한계가 드러난 안타까운 선거이기도 하였다. 그럼 이제 재보선 이후 민주세력이 해야 할 일을 끄적일까 한다.
(사실 이게 진짜 하고 싶은 말이다. 그런데 너무 앞의 글 길이가 길어지다 보니..... ㅡㅡ;;;;)


(환하게 웃는 손학규 대표. 사진출처:노컷뉴스.)

먼저 민주당은 이번 선거의 대승을 자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실 이번의 승리는 국민들이 절대 민주당이 이뻐서 찍어준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MB정권에 대한 심판의 의미로, 또 야권연대와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로 찍어준 것이다. 민주당은 절대 이 사실을 잊지 말고 민주세력의 맏형으로써 겸손하게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참여당과 유시민 대표, 너무 죄송해 하고 슬퍼하지 마시라. 항상 성공만 있는 것은 아닌 법이다. 또한, 사람이나 정치나 마찬가지로 실패를 통해 더욱 성숙하지 않다던가? 그러니 패배의 아픔과 죄책감은 떨쳐 버리고, 앞으로 1년 동안 새로운 인물 영입 및 인재 양성,정책 연구 및 개발,시민(또는 민중)들과의 끊임없는 소통과 연대 등,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면 분명 국민들도 참여당과 유시민 대표를 지지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관련 글...

유시민이여 다시 일어서라. 당신은 비판 받을 이유가 없다.-here i am 님의 블로그 글.
http://here-i-am.tistory.com/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이번 선거에서 야권연대가 완벽한 대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순천에서의 어정쩡한 야권연대와(물론 순천에서는 이기긴 했지만) 김해에서의 뼈아픈 실패에서 보았듯이, 야권연대는 정치적 계산에 의해 얼마든지 깨질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다음에 이어지는 총선,대선은 각 민주세력의 정치공학적인 계산이 재보선에 비해 복잡해질 게 뻔하므로, 야권연대 더더욱 힘들어질 것이다.(재보선도 이렇게 말이 많았는데 말이다.)


(지난 4월 3일 국민의명령 제 2차 전국봉기 사진.)

문성근 "유시민, 최선을 다 했다"-민중의소리 기사.
http://www.vop.co.kr/view.php?cid=A00000388322

"유시민 탓 아니다... 단일화 방식의 한계"-오마이뉴스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59212&CMPT_CD=T0001

이것에 대안은 무엇일까? 답은 하나로 결정된다. 바로, 야권 통합만이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야권 통합도 쉽지는 않겠지만 이 야권통합, 그것도 각 정당이 정파등록제로 세력을 유지하면서 하나의 세력으로 뭉치는 것만이 어찌보면 야권연대보다 쉽고 더욱 확실한 방안인 것이다. 생각해 보라. 만약 힘을 하나로 합친다면 적어도 자기 편이 아니라고 투표를 포기하거나 배신때리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기에....
필자는 부디 이번 재보선 결과가 야권통합을 이끄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원한다.
(물론, 야권통합이 성사되려면 무엇보다도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민주당이 민주세력의 맏형으로서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다른 민주세력들도 이를 신뢰하고 야권통합에 동참할 터이니..... 뭐, 어떻게 생각해 보면 야권 통합만이 민주당과 참여당 간 불신을 종식시킬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모든 민주세력에게 말한다. 야권은 이번 재보선으로 자만하지 말고 지금부터 야권통합에 동참하라! 그것이야 말로 2012년 민주세력이 승리하는 지름길이다!


추신:아침에 쓰기 시작한 글을 계속 고치고 하다 보니 지금에야 글을 마치게 되었다. 휴우..... 게다가 애초에 기획한 것에 비해 너무 길이가 길어진 듯한 기분이..... ㅡㅡ;;;(그나마도 내용이 너무 진지하고......) 사죄드린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강경대 열사 추모제 후기도 써야 하는데......
아무튼 오늘의 짤림방지는 이번 주말 백만민란 접주회의 공지 올리고 이만 줄인다.(앗, 생각해 보고 나니 그날 121주년 노동절이지....) 뽀나스로 관련 노래는 간만에 민란가.


(신청하는 곳:http://powertothepeople.kr/2012/bbs/board.php?bo_table=01_1&wr_id=485)






하나가 되라

작사,작곡 윤민석
노래 문성근과 100만 민란팀

세상이 더럽다고 외면 할텐가
정치가 썩었다고 욕만 할텐가
우리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
이대로 물려줄 순 없지 않은가

힘을 합쳐라 모두 합쳐라
분열하지 말고
힘을 합쳐라 모두 합쳐라
계산하지 말고
모자라면 어때 다르면 또 어때
하나되어 가는 길에
국민의 명령이다 하나가 되라

저마다 잘났다고 삽질 한텐가
국민이 못난거라 변명 할텐가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가 없다
새로운 민주정부 다시 세우자

힘을 합쳐라 모두 합쳐라
분열하지 말고
힘을 합쳐라 모두 합쳐라
계산하지 말고
모자라면 어때 다르면 또 어때
하나되어 가는 길에
국민의 명령이다 하나가 되라

힘을 합쳐라 모두 합쳐라
분열하지 말고
힘을 합쳐라 모두 합쳐라
계산하지 말고
모자라면 어때 다르면 또 어때
하나되어 가는 길에
국민의 명령이다 하나가 되라

국민의 명령이다 하나가 되라!!!

(윤민석씨, 힘내시길!
송앤라이프 홈페이지:http://www.songnlife.com

송앤라이프 후원하기:http://www.songnlife.com/support.htm)

참고(수구쥐벼룩 여러분들께 드리는 글.):
이 글을 포함한 모든 이 천민놈 글은 무단복사 및 펌질+조작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만약 제 글이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지 국정원에(안기부 아니었든가?) 전화하세요.
적어도 3천만원은 받으실 겁니다. 뭐 운 좋으시면 이 천민놈 코렁탕 뚝배기(!)도 대접하실 수 있고 1억5천도
받으실 겁니다. 전화번호는 국번없이 111.(참고로 개짭새는 113입니다.)

그리고 제 글에 대한 상담은 요기로 와서 상담하시길. 다만, 정사충,수꼴,뉴또라이는 사절함.

본진:http://mbout-os21cccc.tistory.com
전진기지:http://blog.daum.net/os21cccc
예전기지:http://blog.hani.co.kr/os21cccc(관리 안함)
트위터:http://twitter.com/MBOUTos21cccc
페이스북:http://facebook.com/MBOUTos21cccc

뽀나스로, 필자의 글이 문제가 있으면 알아서 삭제하거나 수정조치 하겠습니다.
(참고로 다시 말하지만 이 글에는 절대로 '저작권'이 없'읍'니다. 이 글은 철저히 copyleft를 지향합니다.)

쥐박이 쉒기는 1%만의 대통령이다.
99%의 국민은 안중에 없고친일매국노 짓에 정신없다.
용산학살을 자행하고도 여론을 조작하고 
국민 복지는 관심 없이 쥐 일족 밥그릇 챙기는 것만 열중이다.
경제 위기 극복 능력 없이 국민 탓만하고 있다.
쥐박이의 무능을 홍보 부족으로 착각하고 방송을 장악하려고 시도하고 
한반도를 대운하로 토막 내려 한다.
서민 복지 예산 대폭 축소하고 콜센터 이미지 마케팅에만 열중한다.
쥐박이 정책의 잘못을 지적하면 무식한 알밥들을 풀어 유신 시절의 반공이데올로기를 부추긴다.
국가 비전의 제시없이 기도만 하면 되는줄 아는 무뇌충 개.독이다.
그런 쥐쉒이를 따르는 쓰레기가 서너명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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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쁘다 보니 블로그 관리가 자꾸 늦어지는군요.
시간 나면 틈틈이 관리하겠다는.... ㅡㅡ;;;
어이구야.... 그나저나 감기까지 걸려 아주 개고생이구먼.....)


노무현 죽이기? 유시민 죽이기!

(서영석 라디오21 코리아포커스 진행자/2011-4-4 13:25)

김해을 협상 결렬의 책임은 120% 민주당에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의 중편 소설 가운데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란 게 있다. 1975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카타리나 블룸이란 한 평범한 여성이 한 일간지 기자를 권총으로 쏴 죽인 사연을 건조한 시선으로 풀어나간 것으로, 선정적인 언론이 개인의 명예와 인생을 어떻게 파괴해나가는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여기를 클릭! http://book.naver.com/bookdb/today_book.nhn?bid=4592647)

여기서 핵심은 언론이다. 언론 몇몇이 작당을 하면 사람 하나 병신 만들기는 여반장이며, 심지어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내몰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돌아가시기 직전 노무현 대통령을 둘러싸고 벌였던 진보-보수-인터넷을 망라한 언론들의 보도에서 그 극명한 사례를 목격했었다. 이제 김해을의 야권연대 협상을 두고 이른바 진보언론들이 벌이는 왜곡보도 놀음에서 그 악행은 재연되고 있다.

김해을 야권연대 협상은 처음부터 민주당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방식을 기준점으로 시작이 됐었다. 민주당의 후보가 절대로 질 수 없는 방식으로 점철된 100의 요구를 민주당은 협상 테이블에 내놓았고, 참여당은 자신들에게 절반만 유리한, 즉 매우 공정한 방식의 룰을 테이블에 내놓았다.

사실 서로 다른 정당의 예비 후보들끼리 단일화한다면 100%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게 맞다. 노무현-정몽준의 단일화가 여론조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여론조사 이외에 공정성을 담보할 어떤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이런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민주당은 참여당 이외의 정당 후보와 단일화할 때 다른 방식을 요구한 사례는 거의 없다. 민주당은 유독 참여당과 단일화할 때만 여론조사 이외의 다른 방식을 요구했다. 그것이 이른바 '국민참여경선' 방식이다. 함정은 여기에 있다.

이 아름다운 단어 속에 담겨 있는 의도는 추악하다. 국민참여경선이라고 이름은 붙였지만 그것은 당원동원경선이 실제 내용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조직과 동원 면에서 참여당보다 100배는 우월하다. 조직과 당원을 동원해 국민의 이름을 빌어 동원을 하고, 그 동원된 사람들 가운데 4000명을 무작위로 추출한다면, 100가운데 90의 동원력을 가진 정당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당은 여론조사 50%, 당원동원경선 50% 방식을 받아들였다. 민주당의 무대포 밀어부치기에다, 야권에 영향력이 있는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의 언론들까지 민주당의 밀어부치기에 힘을 얹었기 때문이다. 참여당이 세에 밀려 50대 50이란 방식을 수용하면서, 당원동원경선 50%을 연령별 인구비례로 하자는 보완안을 내놓았다. 사실 참여당의 방식대로 해도 민주당이 이길 확률은 99% 이상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작년 지방선거 경기지사 후보단일화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단 1%라도 질 수 있는 가능성은 철저히 배제하고자 했다. 즉 연령별 인구비례로 했을 때 민주당은 20대나 30대의 동원력에서 참여당에 뒤진다는 판단을 했겠고, 그런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뻗댔다. 그래서 결렬 위기로 내몰린 게 저간의 객관적 상황이다.

따라서 김해을 야권단일화 협상이 만약 최종결렬된다면 그 책임은 자신들이 100% 이길 수 있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민주당에 전적으로 있는 것이지 참여당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자명하다. 그러나 이른바 야당 성향 언론의 보도는 어땠는가?

"야권 연대 깬 참여당, 국민은 용서 못할 것"(오마이뉴스)/시민사회단체 "참여당 거부로 야권연합 실패"(뷰스앤뉴스)/ '노무현의 고향' 김해, 야권연대 좌초...참여당에 비난 집중(프레시안)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직전, 노무현 죽이기에 동참해 오히려 더 악랄하게 물어뜯었던 한겨레신문이나 기타 인터넷 언론들의 행태를 연상시키는 보도들이다.

야권협상에 중재자로 나섰던 시민단체들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이번 협상의 중재자로 나선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정말 수상쩍기 짝이 없다. 객관적 위치에 있어야 할 이들은 민주당 편을 일방적으로 들면서 중재를 했다. 심지어는 이 중재자 가운데 누구누구는 민주당 당원이란 소문까지 나돌 정도였다.

편파적인 시민단체 중재자와 편파적인 일부 언론들이 가세하자, 김해을 야권협상 결렬의 책임자인 민주당은 사라지고 참여당만 남아서 돌팔매를 맞는 형국으로 바뀌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의 전도다. 내가 페이스북에서 민주당의 도량이 좁기가 이루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던 것도 이런 정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야권연대협상에서 민주당은 참여당을 제외한 정당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참여당에게만은 정말 차갑기 짝이 없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상황의 전도적인 결과가 왜 나오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야권 내에서는 거대정당인 격인 민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군들보다 국회의원 한 석 없는 참여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 지지율이 훨씬 더 높은데 기인하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유시민 참여당 대표의 지지율이 더 높아져서도 안되고, 더구나 그걸 부채질할 원내진입도 결코 바라지 않고 있다. 최악의 경우 유시민과 참여당을 민주당 내로 끌어들이는 한이 있더라도 민주당 간판으로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세우기 위해서는 참여당이 고사돼야만 하는 것이다.

김해을 야권후보단일화 협상에 임하는 민주당의 상식과 합리를 결여한 어이없는 태도는 이런 배경이 없다면 이해 불가능하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여기에 기름을 붓고 있는 일부 언론들의 편파적인 보도 행태들이다. 그들은 노무현에게 가했던 몰매의 기억을 벌써 잊어버리고 있는 것일까? 지금 노무현에게서 이름을 바꾼 유시민 죽이기에 그들은 성공할 수 있다고 진짜로 믿는 것일까?

덧글) 앞서 언급했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생애>는 모 출판사의 전집에 끼어 있는 중편소설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유시민 대표가 쓴 베스트셀러 <청춘의 독서>에서 이 소설을 언급함으로써 수만부가 넘게 팔리는 히트를 기록했다고 한다. 자세한 저간의 사정은 내가 쓴 <Why 유시민>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그 소설을 언급했던 유시민 대표는 자신이 바로 그 형세에 처할 것이라고 과연 그때 예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궁금하다.

(출처:서프라이즈 고정필진 칼럼 서영석의 노변정담 "노무현 죽이기? 유시민 죽이기!"
원본 글 링크: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nobyun&uid=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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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선대인 “진보진영 유시민에 과민반응”

<중앙>기자 “민주 맏형 맞나, 그리 자신감 없나”

2011-02-15 08:14:19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부소장과 문화평론가 진중권씨가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에 대해 ‘과민 반응’이라며 14일 제동을 걸었다. 민주당의 3무 정책에 대해 비판적 지지 입장을 보여온 선 부소장은 “비판할 내용을 비판했다”고 주장했고 진씨는 “(진보신문이) 유시민을 씹은 방식이 고약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앞서 유 원장은 13일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3무1반(무상급식·무상의료·무상보육·반값 대학등록금) 복지정책에 대해 “선거용 캐치프레이즈로는 의미 있을지 모르지만 정치인이 논의 자체를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며 정면 비판했다.

유 원장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보·보수를 갈라치고, 원조 진보와 짝퉁·명품 진보를 나누는 게 아니다”며 “길게 보고 국민의 신뢰를 다져가면서 국가를 운영할 생각을 해야지, 이명박 대통령 밑에서 못 살겠다며 똑같은 공약으로 오해받을 걸 내놓아서야 되겠나”라고 민주당의 3무 정책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비판이 쏟아졌다. 이춘석 민주당 대변인은 “남이 하면 실현 불가능하고, 자신이 하면 실현 가능한 것인가”라며 “오히려 유 원장의 발언이야말로 재·보궐선거를 겨냥한 선거용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도 “발언이 사실이라면 철회해 주기를 정중히 요청한다”며 “복지를 향한 대동맹에 함께 협력해 줄 것을 거듭 요청한다”고 발언 철회를 요구했다.

인터넷에는 “이재오나 김문수와 다를 바 없는 한나라당 DNA 소유자”라며 비난들이 쏟아졌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는 “민주당 발칵 뒤집은 유시민의 ‘MB식 어법’”란 제목의 기사에서 “민주당의 복지 정책에 대한 국민참여당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의 비판이 파장을 낳고 있다”며 “오는 4.27 재보선 김해을 공천을 둘러싼 마찰과 함께 양당 간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는 양상”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선대인 부소장은 트위터에 오마이뉴스의 해당 기사를 링크한 뒤 “유시민 전 장관의 비판,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시나요?”라며 “그의 정치적 계산이 개입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충분히 비판할 내용을 비판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라고 이견을 제시했다.

선 부소장은 지난달 31일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3무 정책에 대해 “구체성이 많이 떨어진다”며 “슬로건식으로 3가지 무상시리즈를 내놓는 것에 조금 치중하지 않았나”라고 비판한 바 있다.

선 부소장은 “구체적으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또 무상의료 같은 경우는 단순히 재원문제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의료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국내 맥락에서 봤을 때 지금 바람직한 방향인가”라며 “구체적으로 제한된 재원을 가지고 일반 국민들의 의료혜택을 어떻게 최대화 할 것인가에 대해서 충분한 고민이 있었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도 트위터에 오마이뉴스 해당 기사를 링크한 뒤 “‘유시민의 MB식 어법’? 제목 이렇게 뽑는 건 오마이식 어법”이라고 꼬집었다. 진씨는 이어 “재원에 관해 논의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면서도 “다만 유시민이 그런 ‘정책적’ 토의를 하자는 애기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정치적 의도’를 주장했다.

그는 “그의 것 역시 ‘정치적’ 발언”이라면서 “몸값 올리기 위한 몽니의 연출이랄까? 한 마디로, "민주당, 나 무시하면 틀어버릴 수도 있다"는 견제구이다. 거기에 오마이뉴스가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진씨는 유 원장의 정치적 언급에 대한 진보진영의 과도한 반응을 “정치판에 있어도 유시민은 아직 정치인이 아닌가 보죠”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진씨는 “오마이뉴스가 유시민 씹은 방식이 고약하다. (진보진영도) 과민반응이다. 행여 복지를 중심으로 한 야권연대가 타격을 입을까봐”라며 “하지만 유시민이 야권연대에 타격을 줄 정도로 나가지는 않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유 원장을 인터뷰한 중앙선데이의 박신홍 기자는 트위터에 “원래 2면에 크게 잡혔다가 최종판에서 6면으로 빠졌다”며 “역시나 두터운 현실의 벽이 작용한 것이겠죠”라고 뒷얘기를 소개했다.

박 기자는 이어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반응에 대해 “비판 멘트 날리는 사람 중에 인터뷰 원문을 제대로 읽어본 정치인이 있을까”라며 “그저 기자들이 이런 문장 날렸다더라 하니까 반사적으로 치받는 것일뿐 인터뷰를 제대로 읽어봤다면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연대의 희망이 있겠구나 싶지 않을까요”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무기력하게 끌려만 다니는 민주당, 대체 야권 맏형의 모습은 어디로 갔습니까!”라며 “기자들이 싸움 붙여도 ‘그러지 마라, 우린 어차피 같이 갈 동지들이다, 전체적으로 좋은 말 했는데 작은 거 가지고 트집 잡고 얼굴 붉힐 필요 없다’ 이 정도 자신감도 없습니까”라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그러나 중앙선데이는 해당 인터뷰를 <“민주당 무상 시리즈는 ‘747 공약’ 같은 구호일 뿐”>이라며 민주당을 겨냥한 제목으로 내보냈다. 반면 조선일보는 <유시민 "오세훈,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 공짜밥 주는 게 맞다”>란 제목으로 인용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민일성/기자

(원본 기사링크:http://www.radio21.tv/new0904/view.php?id=news&no=13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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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이해찬 “유시민.이정희 과감히 대권도전하라”

“한나라 총선 의석 줄면 박근혜 대세론 위력 못 가져”

2011-01-17 09:29:26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야권 대선주자와 관련해 “지사직을 하지 않는 유시민이나 이정희 등은 과감하게 도전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17일 보도된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왜냐면 우리 사회가 너무 장로정치다. 정치인 평균 나이로 보면 우리가 굉장히 많다. 유럽에서 40대 총리가 나오고 미국도 40대가 대통령을 하지 않나”라며 이같이 ‘젊은 정치’를 강조했다.

이 전 총리는 김두관, 안희정 지사에 대해선 “2년 만에 현직을 그만두고 대선에 도전한다면 국민들이 성급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며 “그분들은 2017년에 대비해 지사로서 역량을 잘 보여주는 게 진보진영의 2017년 집권을 위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박근혜 대세론’ 대해 “2007년 이명박 대세론은 먹혔고, 1997년과 2002년은 대세론이 안 먹히고 막판에 뒤집혔다”며 “대세론대로 되는 게 아니다”고 일축했다. 그는 “내년에 총선이 4월에 있고 불과 여덟달 만에 대선이 있기 때문에 총선에서 다수를 차지하지 못한 쪽은 무너지게 돼 있다”며 “한나라당이 지금 150석을 훨씬 넘는데 그게 120~130석으로 줄면 내분도 생길 것이다”고 총선 결과가 대세론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을 전망했다.

이 전 총리는 “민주개혁진영이 연합해서 총선에서 과반수를 넘기면 박근혜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전체가 어려워질 것”이라며 “곧바로 대통령 선거인데 국민들이 다수파가 아닌 소수파 대통령을 뽑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면 박근혜 대세론도 위력을 못 갖는다”며 “박근혜로 몰고 가는 일종의 여론몰이를 극복하는 전략으로도 총선에서 이겨야 한다”고 총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전 총리는 “그리고 박근혜가 능력이 좋아서 그런 지지율이 나오는 건 아니잖나”라며 “오히려 능력으로만 보면 야당이 경험이 있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 많다”고 박근혜 대세론의 거품을 주장했다.

이 전 총리는 야권 연대와 관련해선 “금년 한해 동안에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여러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해) 단일 후보를 뽑아내는, 미국 민주당의 오픈 프라이머리 같은 틀을 만들어야 한다”며 “각 정당 지도부와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모두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 (많은 지역에서) 전면적으로 되면 좋지만 다 되지 못하더라도 선의의 경쟁을 할 후보자들이 있는 지역에서라도 그게 이뤄지면 된다”고 구상을 밝혔다.

“조중동 안 망해, 종편 주파수 회수 공약 내걸어야”

이 전 총리는 복지 포퓰리즘 공세에 대해 “(소득계층) 상위 20%가 세금을 안 내면서 국가로부터 복지 서비스도 안 받는 게 아니라, 세금을 소득별로 더 낼 사람은 더 내고 복지는 같은 조건으로 받는 게 유럽사회의 기본원리”라며 “자기들은 세금을 (충분히) 안 내면서 복지 서비스를 하위 80%에게만 준다? 그것은 사회를 통합하는 게 아니라 차별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세금을 안 내려는 논리의 변형”이라고 맹비난했다.

이 전 총리는 야당 일부에서의 ‘부유세’ 주장에 대해선 “부유세 개념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는 철학으로 가는 것이라 옳지 않다”며 “조세원리에 따라 사회통합적 차원에서 소득비례별로 세율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부정적 시각을 밝혔다.

이 전 총리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권력 누수가 생길까봐 위악을 떠는 현상마저 나오는 것 같다”며 맹비난했다.

그는 “지난번 국회 날치기 때 김성회 의원은 그냥 미는 정도의 몸싸움이 아니라 조폭들이나 하는 폭력을 행사했다”며 “검사 출신의 민정수석을 감사원장에 앉히려 한 것은 공무원 사회를 범죄집단으로 보는 것이다. 공무원과 국가에 대한 모독”이라고 성토했다.

이 전 총리는 “종합편성채널을 네 개나 내주고, 망하면 서로 M&A(인수합병) 하면 될 것 아니냐는 식으로 하는데 이런 균형없는 사고는 옳지 않다”며 “노태우 정권은 정통성이 없으니까 (권력 행사를) 조심했는데, 지금은 절제도 전혀 하지 않는 위험한 집단이다. 노태우 정권만도 못하다”고 질타를 쏟아냈다.

이 전 총리는 종편 도입 폐해와 관련해 “범야권이 다음 대선 공약으로 종편 주파수 회수”를 내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사람들 생리상 절대 망할 사람들이 아니다. 재벌을 잡든지 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지할 것”이라며 “그러면서 잘못된 여론몰이가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전 총리는 “이건 국민들이 갖고 있는 국가주파수가 사유화된 것으로 아주 잘못된 것이다, 다시 집권해서 바로잡아야 한다”라면서 “계약기간이 끝나면 주파수를 회수하는 방법이 있겠고, 아니면 방송통신위원회를 여론 다양성과 품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시 만드는 방법이 있겠다. 대선 공약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승복/기자

(원본 기사링크:http://www.radio21.tv/new0904/zboard.php?id=news&no=13165&category=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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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유시민 대담

민중의소리 이정무 기자 jmlee@vop.co.kr 입력 2011-01-05 19:56:14 / 수정 2011-01-06 11:12:05

1.이정희와 유시민, 이명박 정부를 말하다

“커피 한 잔 주세요.”
대담 장소인 <민중의소리> 회의실에 들어선 유시민 국민참여정책연구원장의 일성이다. 미리 마련해 놓은 물과 과일음료가 무색하다.

“우리 땐 말이지, 커피도 못 먹게 했어요.” 7~80년대 운동권 내에서 ‘왜색양풍(倭色洋風)’ 배격 차원에서 커피를 금기시했던 습관을 말하는 것이다. “난 어디 가나 기존의 질서에 반기를 들었는데, 당연히 커피도 마셨지요. 하하.” 그 땐 커피를 안 마셨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도 ‘따라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러나 빙그레 웃을 뿐 별 말이 없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정책연구원장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대담 장소 앞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정책연구원장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대담 장소 앞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양지웅 기자

유시민, “정부수립 이후에 이런 역행은 처음”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정책연구원장이 만났다. 한 사람은 정치 신인 타이틀을 벗어던지자마자 진보정당의 대표가 된 차세대의 선두 주자고, 다른 한 사람은 야권 대선 후보들 중에서 1,2위를 다투는 사람이다. 그 동안의 정치와는 ‘뭔가 다른 정치’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그들에게는 있다.

회의나 집회에서 자주 마주치는 두 사람이지만, 사실 긴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거의 없었다. 2010년 아직 날씨가 무더울 때 있었다고 전해지는 한 차례의 ‘데이트’에서 유 원장이 이 대표에게 밥을 산 적은 있다. 이 때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번이 두 번째다.

대담은 시국 현안에서 각자의 정치관으로,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연대’ 문제로 넘어갔다. 사회는 거의 있으나마나였다. 두 사람은 다른 자리에서는 하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어떻게 지내셨어요?

유:저는 대표님에 비하면 따사롭게 살았죠. 대표님이 추운 데 지역 돌아다니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지요. 먼저 말씀해 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지역에 다녀보면 많은 분들이 이제 (이명박 정부에 대한) 판단은 끝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저도 국회에 들어온 지 이제 3년이 되어가는 데, 때로는 희망도 있었지만 이번에 날치기를 겪어보니까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이 정권은 무지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해요. 정권에 대해서 어떤 기대를 접는 수준을 넘어서 (이 정권이) 역사적으로 굉장한 상처를 남길 것 같아요.

유:당혹스럽죠. 정치하는 사람들도 사실 당혹스럽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도, 멀리서 미디어를 통해서 지켜보는 국민들도 당혹스럽다고 느낄 겁니다. 솔직히 다수 여당이 (예산안이나 법안을) 강행처리하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에요. 지난 정부 때에도 자주 있지는 않았지만 어쩌다가는 있었어요.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고.
익숙한 풍경인데 왜 당혹스러울까? 저는 이런 생각을 해요. 해방되고 정부수립 이후에 우리 역사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었어요. 전두환은 박정희처럼 군사독재였지만, 박정희보다 더 무능했어요. 노태우 정부를 거쳐 김영삼 정권 때 3분의 1의 정권교체가 됩니다. 김대중 정권 때는 3분의2, 노무현 정권 때 비로소 완전한 정권교체가 됩니다. 인권도 경제도, 남북관계도 다 한 방향으로 줄곧 왔어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뒤로 돌아갑니다. 정부수립 이후에 처음 있는, 이런 역행은 처음 겪어보는 겁니다. 그래서 당혹스러운 게 아닐까? 화는 나지만 표현할 길이 없고, 표현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혹스러운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굉장히 긴 시간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낸 작은 진전이랄까요? 인권, 민주주의 이런 것들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뒤바뀌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됩니다. 정부의 한 마디로 인해 되살아난 국민을 상대로 한 물리력의 사용, 그것을 다시 합법화하려는 한나라당을 보면서, 다시 이걸 바꾸려면 또 얼마만한 노력이 필요할까? 이런 탄식을 하게 돼요.

유:저는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합니다. (제가) 20대 때 마산수출지역, YH사태, 청계노조 사건들을 보며 이런 노동권이나 사회정의의 문제에서 진전이 없는 것은 정치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없기 때문에, 다른 모든 문제들이 풀려나갈 메커니즘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민주주의가 되면, 다른 ‘깊은 문제’들도 결국 조명을 받아서 이성과 정의에 대한 우리의 직관에 부합하는 쪽으로 풀려나가리라 생각을 했어요. 민주화 이후에 제도와 법률은 바뀌었습니다. 불의가 공개적으로 저질러지거나, 항변할 곳조차 없는 상황에서는 벗어났지요. 지난 정부 때도 여전히 부족한 것도 많고 완결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역행을 하지만, 그래도 제도를 허무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비관적이지는 않은 겁니다. 인권위가 사실상 작동이 중지되었지만, 그래도 인권위가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미네르바’ 를 잡아가지만, 이 ‘미네르바’를 잡을 때 전기통신기본법을 적용하는 건 그것 말고는 적용할 법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거든요. 물론 제도가 있어도 사람이 운용하기 때문에 (나쁜 사람들이 운용하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래도 이것은 마음만 먹으면, 국민들이 변화의 계기만 잡으면, 짧은 시간에 복원이 가능합니다. 제도가 무너지지 않았거든요. 우리 역사에서 처음 나타난 역행이 사람의 역행이기 때문에, 국민이 변화의 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새해라서 그런가요?(웃음) 저는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만들어진 제도를 다시 살릴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제도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분명히 대단한 성과지만 누가 운용하느냐에 따라 약간의 지체는 있습니다. (다시)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그게 자동으로 살아나지는 않을 겁니다. 사회의 영향을 받으니까요. 가령 이런 것들, 피의자의 권리, 피해자의 권리, 사형제 폐지에 대한 공감... 그러나 굉장히 쉽게 반대되는 법이 만들어지고,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가 단 한 달도 안 돼서 통과되는 것을 보면 법이나 제도에 사회의 영향이 얼마나 강한지 느끼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국회에서) 반대 토론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그럴 때 심정은 ‘아 이제 이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구나!’하는 거예요. 역사적 책임감으로 반대 토론을 남기는 건데, 이게 다른 말로 하면 통과시켜 줬다는 것이거든요.

이정희, “다수결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유:실제로 국회 안에 계시기 때문에 더 힘들 겁니다. 국회 밖에 있으면 느낌이 달라요. 16대 보궐선거로 국회에 들어가서 17대 까지 (국회의원을) 했는데 그 때 ‘국회의원은 99%의 체력 1%의 지력으로 한다’고 농담도 하곤 했습니다. 더구나 여성이신데, 마음과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들까 생각합니다.

이:국회에서 (날치기가) 되풀이되는 모습을 보면서 ‘민주주의가 뭘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충돌의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다수결의 원칙, 이것이 민주주의라는 겁니다. 다수결은 수의 원칙인데, 그 근간이 뭐냐? 민주주의의 원칙으로서 다수결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하냐? 국민의 의사를 파악하고, 도출해 낼 수 있는 사려 깊은 헌법적 가치가 필요한 것 아니냐? 나는, 우리 당은 그것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이지요.

유:약간의 역지사지는 필요합니다. 지난 정부에서 사학법 개정 때 논란 끝에 누더기처럼 된 사학법을 직권 상정했습니다. 다수 의석을 가지고 딱 한 번 해봤습니다. 국보법도 민주노동당까지 합치면 162석인데 통과를 못했습니다. 힘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호주제 폐지에서도 한나라당이 흔쾌하게 찬성한 것은 아니지요. 사학법이나 국보법 논의할 때 그 당시에 한나라당 의원과 국민들의 생각은 어떨까를 생각해봤습니다. 그런 국민, 그런 정치인이 있는 게 현실이니까요. 저는 정치하는 동안, 그런 심정은 잘 못 헤아렸습니다. 옳은 일을 하더라도 이해해가면서 하는 것과, 그냥 내가 하는 일은 옳다고 선을 그어놓고 하는 것은 다른데, 후자가 컸습니다.
물론 사회에서 국론통일이라는 것은 좋은 게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인데 여야를 막론하고 부족했습니다. 지금 상황이 너무 ‘포악’해서(웃음) 이런 국면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맞는가도 생각되지만, 전반적으로 경쟁상대를 라이벌이 아닌 적으로 보는 문화는 뿌리가 깊습니다.

여기까지는 둘 다 준비된 정답에 가까웠다.


2.‘자유롭고 싶어서 싸우는’ 유시민, ‘싸우지 않음이 고통스러운’ 이정희

“정치란 무엇인가?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어떤 직업을 갖고 있더라도 이런 질문은 한 번 씩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치인처럼 ‘욕’을 많이 먹는 직업은 드물다. 굳이 나눠보자면 이정희 대표는 최소한 같은 편으로부터는 욕을 별반 먹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유시민 원장은 같은 편으로부터 듣는 욕도 상당하다. 물론 강력한 팬 층이 있지만.

유:연예인들에게는 애로사항이 있답니다. 호프집에서 술 먹는데 옆 자리에서 욕하면서 시비를 건다고 합시다. 여기에 맞대응하면 신문에 나거든요.(웃음) 정치에도 있습니다. 사실 (정치가) 돈이 많이 벌리는 직업도 아니고, 국회의원 되면 오라는 데는 많지만 가고 나면 욕도 많이 합니다. 조사해보면 신뢰도의 꼴찌가 검찰, 국회, 대통령이라는데, 이건 길가다 만난 사람보다 더 믿을 수 없다는 것이거든요. (저는) 정치를 하면서 항상 ‘내가 왜 정치를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아직도 결론이 잘 안 나서 이 대표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웃음)

이:2008년 3월2일. 민주노동당 입당원서를 쓰면서 그때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왜 정치를 할까? 글쎄요... 그래도 다행인건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그래도 ‘거짓말은 안 하겠구나’ 그런 믿음이 있으세요.(웃음) 그런 게 귀한 거지요. 흔히 국회의원들 보면서 얄밉다는 생각을 했는데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다르게 보시거든요. 만약 다른 정당이었으면? 나 말고도 할 사람이 많을 텐데... 굳이 나까지? (웃음)
(정치를 하게 된) 더 직접적인 배경은 이명박 정부의 등장이 아닐까요? 10년 동안 노력했던 결과물이 중단됐다는 압박감 같은 게 작동한 것 같아요. 정치를 한다는 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지만, 하면서 점점 느끼는 건 국민들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 거짓말 안하는 사람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열망은 굉장히 커서 언젠가는 크게 폭발할 것이라 믿습니다.

유시민 참여정책 원장
국민참여당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 원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정치가 매력적으로 보일 때

유:저는 정치를 하다말다 했는데, 거슬러 가면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그때는 20대라 매일 심부름만 했습니다. 그 선거 끝나고 구로구청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일었는데, 거길 가서 투표함 붙잡고 울었습니다. 그날 (진 것이) 믿을 수가 없고, 서럽고 해서 밤새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선배들이 자꾸 이 당이 무너지면 도저히 기댈 데가 없어지니깐 다 입당한다고 했습니다. 평민당인데, 이해찬 의원이 당선되서 보좌관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 대표께서 관악을로 가셨는데, 제가 관악을에서 지역신문도 만들고 교육센터 만들고, 사진전 열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91년 지방선거에서 시의원 공천을 받았는데, 당내 문제 때문에 포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공부하러 갔습니다.
2002년에는 민주당 후보 경선 때 노무현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했고, 후보가 확정되고 나서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민주당내에서 후보 흔들기가 시작되어서) 화가 나서 다시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노무현을 너무 무시하는 겁니다. 좋은 분인데, ‘대학 안 나왔다고 그런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정치였는데, 보궐선거 하고 장관되고 그렇게 왔습니다.
지난 정부가 끝날 무렵에 생각해봤습니다. 자연에는 진공이 없다고 하죠? 권력도 진공을 허용 안 합니다. 국가(권력)는 필연적으로 있게 되어 있는데, 누군가는 이걸로 선이나 악을 행할 수 있습니다. 정당한 권력이 없으면 국가가 나쁜 짓을 하게 됩니다.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하거나 결국 국가의 작동방식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 안 되더라고요, 누군가가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에 도달하니까 저 같은 사람이 그냥 책만 쓰거나 강의 다니면서 사는 게 비겁해 보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 한나라당을 막아야 한다, 이렇게 현안문제에서 논리로 힘으로 수로 싸울 때는 못 느꼈습니다. 그 때는 (정치가) 매력적일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국가가 악을 덜 저지르게 할까? 국가를 통해 선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생각이 그런 거였구나’하고 느끼니까 정치가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기자는 이 때 처음으로 끼어들었다. “정권을 잡아야 매력이 더 강해지겠는걸요?” 모두 웃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정희 대표의 말은 좀 무거웠다.

이정희 대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이:저에게 정치란 고통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할까요? 사람들에게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혹은 국가가 그들을 억눌렀을 때, 그들의 표정... 그 얼굴들이 가슴속에 박혀 안 잊혀요. 국가는 그걸 할 수 있는데, 바꿀 수 있는데, 왜 안할까? 내가 하나라도 할 수 있다면 하는 게 맞지 않나? 2008년 쌍용차 파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노사 간의) 대화를 주선하는 역할을 정부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안할까... 유 원장님이 정치를 매력적으로 생각하신다는 말씀이 저는 참 좋은데요... 참 좋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이 (정치를 통해) 바뀌는 것을 보면, 풀어지는 뭐랄까요, 그런 순간, 그런 느낌을 만들고 싶습니다. 정치에서 매력적인 게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저는 고통에 대한 책임감이 더 큰 것 같아요.

유:정치를 시작할 때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억눌리고 빼앗긴 사람들, 자유가 속박당하는 사람들이 억눌림이 벗어났을 때 드는 느낌 같은 것. 군대에서 제대하는 날의 해방감 같은 것을 국민에게 주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를 하면서는 그런 것보다 좀 추상적인 것을 미워했습니다. 지역구도 정치, 이런 게 너무 미웠습니다. 정권교체 이전에 정치 입문한 사람들에게는 정치가 투쟁의 연장에 가까웠습니다. 좀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암튼 그랬습니다.
안 그런 적도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이것저것 했는데, 그 이후 대구에서 선거를 하는데, 갑자기 길을 가던 쌍둥이 엄마가 ‘너무 고맙다’고 손을 잡아요. 출산도우미 보내줬다고 그렇게 고마워하는 겁니다. 그 때까지는 잘 몰랐습니다. 만약 장관할 때 그런 생각을 더 했다면 더 잘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웃음) 저는 이 대표님 같은 느낌으로 정치하는 분은 처음 봐요.

이:진보에 대한 제 생각이 무엇인가와도 연관이 있어요. 저는 현실 문제를 가장 잘 푸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조건을 달지 않는’, ‘(복지를 베풀어) 주셔서 고맙습니다.’가 아니라 ‘내 것을 받았다’는 생각. 우리의 공동체는 그런 것들을 보장하는 데서 발전합니다. 그런 논리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진보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견해를 가지신 분들, 이를테면 한나라당이나 정부에 대해서도 저는 많이 싸우고 싶지 않아요. 설득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일해 왔던 법정이라는 공간에서도 저는 충분히 설득을 통해 성공해왔고요. 87년 헌법에서 가장 잘 되었다는 것이 37조거든요. 국민의 자유와...(웃음)

헌법 37조 ‘복창하기’

갑자기 웃은 이유는 두 사람이 37조를 ‘복창’했기 때문이다. 이정희 대표의 전직이 변호사이니 뭐 그럴 법도 하고, 유시민 원장의 저서 중에는 ‘후불제 민주주의’가 있으니 역시 그럴 만하다. 헌법 37조는 1항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이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이다.

이:이 37조는 우리 헌법을 열린 헌법으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상식과 논리에 기초해 진보를 일궈 나갈 수 있는 이유이거든요. 저는 사실 밉거나 싸우기보다 설득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기본적인 의무, 사회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 평화적으로 살 권리. 이런 건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 없이는 할 수 없는 것들이죠. 이번에 SSM규제법 하면서 민주노동당이 주장한 게 사실 헌법대로 하라는 거잖아요. 진보세력이 현실정치에 참여함으로써 국가권력을 국민의 통제 하에 놓는 선순환의 길이 이미 정립돼 있다고 봅니다.

유:한 토론회에서 진중권 선생이 저보고 ‘이 사람은 좌파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조금 좌파인데요’ 했지요.(웃음) 진보는 나아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디로 갈까를 생각해보면 여기에는 논리 이전에 사람마다 있는 나름의 직관과 감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헌법의 가치 중에 자유가 제일 좋습니다. 부당하게 간섭 받는 게 너무 싫어요.(웃음)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범위에서 내 삶의 권리는 나에게 있다, 국가가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부르주아적 가치에 의한 자유라도 이것 역시 자유거든요.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너무 가난하면 자유가 없습니다. 민주노동당이 물질적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 역시 저는 자유를 향한 노력이라고 보는 겁니다. 진보가 과학 기술에 대해 너그러운 것도 마찬가지지요.
저는 ‘리버럴’입니다. 개인의 자유가 가장 중요해요. 리버럴들은 내가 뭘 위해서 세상에 와 있다고 생각 안 해요. 그냥 세상에 와 있다, 기왕 온 거니까 잘 살아야지, 내 의지대로 사는 게 가장 좋은 것이다, 내가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데 남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싫다, 이런 걸 막는다면 무너뜨리자 이렇게 갑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돌을 던진 게 이런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사람들은 다 나 같지는 않거든요. 비정규직이 그래요, 저는 정규직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지만, 그래도 책 쓰고 강연하고 이럭저럭 살거든요, 그런데 비정규직은 정규직이랑 똑같은 일을 하는 데 같은 대우를 못 받는다는 말입니다. 보고 있으면 너무 불편해요. 리버럴들은 자신의 일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이런 일이 있다 보니 ‘나 혼자 자유롭게 사는 게 맞냐’고 묻게 됩니다. 그래서 연대가 이루어집니다. 규범적으로 ‘연대’, 이런 게 아니라, 자유롭게 삶의 주체로 살아가고자 하는 데, ‘나쁜 사람들이 있고 공동체의 의무도 있지 않느냐’ 이렇게 연대가 발생합니다. 진보가 보편적 자기 규범에서 자기 행동의 원칙을 이끌어 낸다면 리버럴들은 거꾸로 합니다. 내 삶의 원칙에서 시작해서 보편적 규범으로 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왜 (연대를) 하느냐고 물으면 ‘하고 싶어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결국 행동은 같을 수 있는 거지요. 하나의 일을 놓고 동기가 무엇인가는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미안해서 두고 못 보는’ 이런 마음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말 한마디만 거들면 도움이 될 텐데 하는 생각. 이런 마음들이 모여서 여론을 형성한다고 봅니다. 가령,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할 때, 정규직 노동자들이 슬며시 가서 도와주는, 이런 모습을 이번에 현대차 비정규 파업에서 봤어요. 그런 마음들이 정말 고맙고...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어요. 정치는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런 힘은 그럼 어디서 나오나?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온다. 사람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 마음이 진실해야 한다. (이 쯤에서 한참 침묵이 흘렀다) 여기에서 굉장히 보수적인 분들도 한 단계를 뛰어넘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그런 계기들을 정치를 하면서 살려보고 싶습니다.

2시간을 예정하고 시작한 대담은 이쯤에서 벌써 1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기자의 호기심은 두 사람이 어떻게 다를까하는 데 있었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자유는 소중한 것이다. 그 자유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놓고 이 대표와 유 원장 사이에는 분명히 거리가 있었다. 유 원장의 ‘자유’가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라면, 이 대표에게는 자신의 ‘자유’가 반드시 타인을 위해 쓰여 져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 앞섰다. 유 원장이 ‘자유롭고 싶어서 싸우는 사람’이라면 이 대표는 ‘싸우지 않는 것이 고통스러워 싸우는 사람’이라고 할까? 물론 독자들은 다르게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두 사람의 정치에 대한 생각은 두 당의 존재처럼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엇갈렸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국민참여당 유시민 참여정책 원장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국민참여당 유시민 참여정책 원장이 대담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자유롭고 싶어서 싸우는 사람’ ‘싸우지 않는 것이 고통스러워 싸우는 사람’

유:심상정 대표가 어떤 인터뷰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정치로 왔는데 정치가 뭔지 몰랐다. 멘토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멘토가 없었어요. 선배들이 많은 얘기를 해 주었지만 정치 처세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고, 나도 우습게 여겼습니다. 정치의 본질을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정치에 대해 깊이 생각을 못해본 겁니다.
유시민이 안티가 많다고 하는데, 이유가 있겠지요. 요즘 진보신당 분들이 막스 베버 세미나를 한다고 하는데, 저도 정치를 쉬는 동안에 막스 베버를 읽었어요. 거기 보니까 이렇게 나옵디다. 정치인의 자질에 세 가지가 있다는 겁니다. 대의에 헌신하는 열정,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는 균형 감각. 저한테는 책임의식이 가장 부족했어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장 하겠다는 욕심도 없었고, 노무현 대통령만 당선되면 (정치를) 그만하고 (집에) 가야지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책임성 있게 일을 하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근데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냥 한 거지 뭐.(웃음)
옳은 일을 했건 잘못된 일을 했건 사람들이 기대하고 요청하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막스 베버가 봤으면 정치인으로서 심각한 거지요.(웃음)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고 이게 나의 업보구나, 이젠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좀 더 길었다. 일단 이 쯤에서 줄이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기로 했다.


3.전태일과 노무현은 만날 수 있을까

대담의 세 번째 단락으로 넘어가자면 이른바 ‘진보대통합’이라는 의제에 대해 사전 설명이 필요하다. 진보대통합은 간단히 말해 진보진영의 정치 역량을 합치자는 문제제기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의견이 있다.

모든 의견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 말해 △원래 하나의 당이었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합쳐야 한다는 의견, △국민참여당까지 합쳐서 민노-진보-참여당이 뭉쳐서 민주당과 병립해야 한다는 의견, △민주당까지 포함하는 모든 정당이 합치자는 ‘빅텐트’론이 그것이다.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합쳐야 한다는 의견은 최소한 진보진영 안에서는 별달리 거론되고 있지 않다. 2000년 이후로 민주당과 별도로 진보정당이 ‘출현’하고 개혁당과 국민참여당이 ‘발생’한 데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합당해야 한다는 주장도 자연스레 받아들여진다. 원래 하나의 당이었지 않느냐는 것이다.

쟁점은 결국 국민참여당과 진보정당들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다. 대담은 이 부분에서 무척 예민해졌다.

이정희 대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저는 (우리가) 소금이라는 말, 잘 안 써요”

이:진보대통합을 말하기 전에 민주노동당에 국한해서 말씀드리면 우리는 아직 실제로 현실을 바꿔 본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필요한건 알지만, 소금이라는 건 알지만, 잘 안 찍어주시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소금이라는 말 잘 안 써요. 소금은 많이 먹으면 짜잖아요.(웃음) 소금이 아니라 주류, 실제를 차지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데, 그러려면 민주노동당이 하나의 주체로서 판을 흔들 수 있다는 걸 보여드려야 합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조금쯤은 보여드렸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 총선, 또 그 이후에는 더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사실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이미 큰 변화가 있었다고 봅니다. 무상급식이나 SSM규제 같이 민주노동당이 주장했던 정책이 이미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정책 한 두 개만으로 민주노동당으로 표가 오진 않습니다. 그래서 정책을 넘어서서, 현실을 흔들고 싶고, 나라의 기틀을 새로 만들고 싶고... 이걸 통해 희망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2012년에는 보여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유:민주노동당이 10년이 넘어가니까 국민에게 익숙합니다. 우리는 ‘기성’정당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웃음), 여기에 가치평가까지 넣으면 ‘선배’정당이라 부릅니다. 참여당에 비해 활동가도 열 배가 넘고... 우리끼리 회의를 할 때면 항상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을 비교를 해요. 민주당하고 비교하기는 그러니까.(웃음)
그런데 두 당 모두 국민들이 많이 지지해주지는 않거든요. 왜 국민들이 많이 지지해 주지 않을까 늘 생각하는데, 이렇게 물어보면 ‘니들 하는 말이 옳다는 거 아는데...’ 해놓고는 표는 다른 데 찍어준단 말이지요.(웃음) 당신들 얘기가 옳은 것 같은데, 그 옳은 이야기를 실행할 힘이 없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참신하고, 아이디어 좋고, 사람들이 똑바로 살아왔고... 그래도 정치는 나라를 운영하는 건데 좀 부족하다고 보십니다. 민주노동당 보면 의원 5명밖에 없고, 참여당은 의원이 한 명도 없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보는 겁니다. 지방 선거만 해도 의원은 시켜주는 데, 단체장만 해도 잘 안 시켜주시는 겁니다.

이:그건 시간을 두고 싸워야 합니다. 울산에서는 이미 보여드렸다고 생각해요. 이제 4월이면 보궐선거가 있는데, (구청장 후보) 두 사람 모두 당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또 광주, 전남에서는 상당한 변화가 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작은 변화의 흐름들이 큰 의미가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조직적으로, 또 경험적으로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정당에 비해 좀 느리기는 하지만 기초가 튼튼하게 쌓이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것들이 힘을 낼 것이냐? 그 점에서 저는 대단히 긍정적입니다. 민주노동당 앞으로 잘 나갈 거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웃음)

유:제가 조급한지 몰라도 너무 진도가 느린 건 아닌가요? 다른 좋은 당이 있어서 우리가 천천히 크는 동안, 누가 잡아도 나라 운영을 잘해주면 모르겠는데, 한나라당이 잡아서 역사가 50년 만에 뒤로 가는 걸 보면서 사람들이 당혹스러워 하는 판국인데, 민주노동당이 이렇게 (천천히) 커서 언제 해결하나,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빨리 성장해주면 좋을 텐데... 국민참여당도 창당한지 얼마 안 되고 하는데, 당원들은 벌써 다음 총선에서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거든요. 그러면 제가 그럽니다. ‘그거 정치적 사행심이야’ (웃음) ‘민주노동당 봐, 10년 넘게 해도 저 정돈데, 우리가 그러면 안 되지’ (웃음)
제 고민이... 참여당은 참 특이해요. (민주노동당과 달리) 국민참여당은 지역적, 사회적 기반이 없었습니다. 활동가 조직도 없었고, 이런 표현 써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마치 ‘난민단체’처럼 만들어진 당 이예요. ‘망국의 유민들이 의탁할 곳이 없어서 떠돌다가 자치국이라도 만들어보자.’ 이렇게 모인 것 비슷해요.
사실 국민참여당은 2002년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02년 개혁당은) 아직 잘 갖춰지지는 않았지만 최초의 ‘진보 리버럴’의 당이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앞에서 온몸으로 충돌하면서 밀고나간 사람들이라면, 우린 그 정도로 절박하지는 않았던 사람들인데 그 뒤에 ‘노무현’이란 ‘상징’을 만나서 ‘왕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다 무너지고 이제는 받아 주는 데가 없으니까 창당을 한 셈입니다.

이쯤에서 대담 자리는 잠시 시끄러웠다. 당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유 원장이 ‘난민단체’라는 표현을 쓰는 게 좋으냐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난민단체’라는 표현이 유 원장의 입에서 나왔을 때 아무도 어색해 하지는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자신을 ‘난민’이라고 부른 유 원장의 마음을, 최소한 이 자리에서는 모두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기자는 생각한다.

개혁당-국민참여당은 처음 등장한 ‘진보 리버럴’의 당

유시민 참여정책 원장
국민참여당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 원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유:그런데 사람들이 말합니다. ‘너네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데, 여기 당 가보면 누구누구 있고, 저기 당 가보면 또 누구누구 있고, 그런데 왜 그렇게 (흩어져) 있는데? 덩치도 안 되는 것들이 왜 따로 노냐? 너네 뭐할 건데?’ 이렇게 묻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모아야 변화가 일어나는데, 우리 마음부터 모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물론 말을 하다보면 지난 시기의 상처도 있고 서로 간에 충돌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돌멩이밖에 안 던졌는데 너네는 대포를 쏜 것 아니냐’ 이런 말도 듣고요. 우리가 집권 세력이었으니까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어요. 분명히 ‘오발’도 있었고. 그러나 국민 마음을 모으려면 넓은 의미의 진보세력들이 자기들부터 모여야 국민들도 모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우리끼리 아기자기하게 재미있는 정치를 하고 싶은 욕망도 있어요, 하지만 정당을 왜 하는데? 정권을 바꿔야 할 것 아니냐? 겨우 이 진용 가지고 나라를 맡겠다고 할 거냐, 이런 고민이 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다 알고 있는 분들이고, 또 지원 유세도 가고 하면 다 선배거나 동료거나 후배거든요. 언제까지 진보세력이 이렇게 갈라져 있을 거냐, 이렇게 묻게 됩니다. 정치도 규모의 경제가 있는데, 정당과 정치의 평가는 동기의 순수성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책임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런 의미에서 책임 윤리가 부족한 건 아닐까하는 자책감도 있습니다. 1987년에는 다 같이 있었는데, 왜 정당은 같이 못할까? 같이 당을 하면 안 되나? 우리끼리 마음을 못 모으면 누구보고 마음을 모아달라고 할까? 그런 복잡한... 제가 요즘 마음이 복잡해요.

이:저도 생각이 많습니다. (웃음) 다들 생각이 많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누구나 ‘내가 생각하는 길 말고 다른 길은 없나? 내가 편협해 지고 있지는 않을까?’ 돌아봐야 해요. 분명한 건 2012년에 성과를 내야한다는 점이잖아요. 2012년에 정권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명제는 맞습니다. 국민들도 그걸 바랄 것이고요. 만약 이걸 해내지 못하면 저희는 과연 왜 존재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게 될 겁니다. 살아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을 모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들 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큰 틀에서 생각해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다 털고 가셨다’. 이게 제 판단입니다. 지금의 상황이 엄중함을 몸을 던져서 말씀하셨고, 진보의 미래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 하셨지요. 당신이 실제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부족했다고 생각한 부분을 이미 평가하신 바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큰 틀에서 공감한다면, 정책적인 부분에서 의견을 모으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각자가, 저희는 11년, (국민참여당은) 2002년부터 걸어온 길이 있는 것인데, 그 길의 관성이 있지요. 거기에서 갑자기 확 당기면 튕겨나갈 수 있기 때문에(웃음) 어떻게 큰 틀에서 묶어 나갈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무엇보다 민주노동당으로서는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이 진보신당과의 통합이거든요. 이게 최우선이고, 그렇다고 해도 모든 길은 다 열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모든 길에 대해서 다 열려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요, 시작만 잘 열어간다면 빨리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유:우리로서는 조금 민망한 게 남들이 우리에게 노무현 정신만 앞세운다고 욕을 하는 점입니다. 그게 그렇게 이상한가요? 역사는 위인들의 정신을 더 넓게 펼치는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전태일 정신하면 민주노동당의 정신이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참여당은 노무현 정신을 당의 정신으로 합니다. 그렇다고 노무현 대통령을 그냥 추종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실패하고 쓰러진 부분에서 더 앞으로, 더 진보하려는 겁니다. (참여당은) 노무현과 다르게 가야지요. 왜냐하면 진보해야 하니까,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뒤를 따라 가려는 게 아니에요.
진보 통합을 놓고 보면 관성의 법칙이라고 할까, 우리의 의지보다 기존의 관성에 구속당하는 것 같습니다. 진보통합은 전략이나 정치 공학보다는, 함께 같은 공동체에 귀속되어서 그 속에서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지향이 더 근본적이라고 봐요. 쉽게 이야기하면 전태일 정신하고 노무현 정신하고 그렇게 먼가? 그게 그렇게 멀지 않거든요.
이걸 어떻게 잘 하느냐는 다양하게 생각해 볼 부분이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장기적 관점에서 정당 지형의 개편, 정치 문화의 변화, 국가기능의 변경까지 다 하고 싶거든요. 정권교체가 중요하지만, 그것 하나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수는 없잖아요. 근본적인 지향을 추구하면서도 이 시기에 국민들이 요구하는 정권교체라는 목표도 전면적으로 껴안고 해나갈 수 있다는 겁니다. 아군끼리 ‘오인사격’ 안하고, 물론 생각 차이도 여전히 좀 있지만, 그건 조율해 나갈 수 있을 것 같고... 말하기가 좀 어렵다. 그렇지요? (웃음)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유시민 참여정책 원장 대담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국민참여당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 원장이 민중의소리 이정무 편집국장 진행으로 대담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여기서 기자가 두 번째로 끼어들었다. “두 분이 지금 토론하고 계신 문제는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합당 문제가 맞는 거죠?” 다 함께 웃었다. 이 대표가 유 원장에게 물었다. “맞아요?” 유 원장도 물었다. “맞아요?” 다시 모두가 웃는 바람에 누구의 대답도 들리지는 않았다. 한 바탕 웃고 나서 유 원장이 말을 이었다.

유:부인할 필요는 없어요. 연대는 일단 기본적으로 하는 거잖아요. 민주당부터 진보신당까지 모든 진보개혁 야당들이 손을 잡고 의회 권력을 바꾸고 정권을 교체하자는 데는 이견이 없이 다 하자는 것이거든요. 그러나 손만 잡는 것보다는 스크럼을 짜는 게 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각각 손만 느슨하게 잡고 있는 것 같단 말입니다. 이렇게 손만 잡아서 위력이 있겠느냐? 스크럼 짤 수 있는 팀들은 중간 중간에 스크럼을 짜도 좋지 않겠냐 이런 게 통합 논의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연대만 한다, 통합은 아니다’도 아니고, ‘통합이 아니라면 연대가 무슨 의미냐’도 아닌 겁니다. 결국은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함께 귀속되고자 하는 의지’. 이게 두 당의 당원들이나 지지층 내에서 얼마나 강하게 형성되느냐, 또 아직 두 당을 지지하고 있지 않은 국민들이 두 당이 연대하거나 함께 귀속되는 모습을 어떻게 볼까 이런 걸 따져 봐야겠지요.
그런데 지금 분위기는 말 꺼내기가 피차간에 조심스러워요. 자칫하면 공학적인 구상으로 보일 것 같아서요. 그래도 금칙어로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운, 그런 분위기는 있어요.

유:민망한 것이 우리는 ‘너네는 진보 아니다’ 이런 이야기도 듣거든요. (웃음)
이 기사를 민주노동당원만 보는 게 아니라, 국민참여당 당원들도 보실 텐데, 제가 너무 참여당 이야기만 많이 한 것 같은데요. 이 대표께서 민주노동당 이야기도 해 주세요.

전태일 정신과 노무현 정신은 만날 수 있을까?

이:아까 말씀드린 것 같은데...(웃음) 제가 당대표 선거를 하면서 그런 말씀을 드렸어요. ‘민주노동당은 한국정치사에 절대 그냥은 나올 수 없는 당이다, 그리고 결국 한국 정치는 이 방향으로 갈 것이다’라구요. (민주노동당이) 구조가 탄탄하고, 노동자 농민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강점입니다. 이렇게 단단한 지지 세력이 없다면 쉽게 기존의 정치구조에 빨려 들어가거나 흔들리거나 섞일 수 있거든요.
또 민주노동당의 강점은 당원들의 생각, 문화에서 드러나는 데 우선 허풍을 잘 안합니다.(이 대목에서 이 대표는 혼자 웃었다) 그리고 당이 한번 결정을 하면 거의 흔들림 없이 한 번에, 한꺼번에 갑니다. 그만큼 깊은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저희는 진보신당과의 통합을 해야 할 것이고, 통합해도 이 구조는 유지될 것입니다. 같은 당이었기 때문에. 장점을 똑같이 갖고 있는 당이니까요. 조금 더 전진할 경우가 있겠지만(웃음) 그럴 경우에도 이 장점이 유지됐으면 합니다. ‘앞으로의 문제’가,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말씀드리기가 아직은 무거운 주제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열어놓고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분명 진보정당의 힘이 급격하게 달라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요. 정책적인 문제만 놓고 보면 미세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확실히 민주노동당은 조심스러운 당이네요.(웃음) 저희는 민주노동당처럼 규율이 강하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은 막 뛰어가고, 한 사람은 걸어가고 이게 다 용인이 되요. 자유로운 개인들이 수평적으로 모여 서 있는 당입니다. 별도의 지역적 계급적 기반보다는 ‘하고 싶은’ 개인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약간 느슨해 보이지만 대신에 신명이 나서 할 때는 열정적이지요. 진보통합에 접근하는 분위기도 사실은 민주노동당처럼 엄숙 진지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나 막 의견을 이야기하지요. 그래서 참여당은 부담이 덜한 데, 신생당이라 실력이나 역량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말을 잘 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옛날 정치인들이 밀실에서 각서 쓰고 어느 날 갑자기 기자회견 하는 것도 아닌데 논의를 해 보자고요.

이:민주노동당으로서는 진보정당 합당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 온몸의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주노동당을 지지해 오셨던 분들이 분당으로 인해 겪었던 고통을 벗어난다면 그 이후에는 여러 가지 논의들이 더욱 활발해 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유:하여튼 밀린 숙제를 잘 하십시오.(웃음)

진보통합 논의는 여기까지 진행됐다. 두 사람이 모두 ‘미세한 차이’, ‘극복할 수 있는 차이’라고 지칭한 정책적 문제들을 의제에 올리지는 않았다. 그것이 그리 작은 차이였는지, 아니면 지난 10년의 관성처럼 철길의 두 줄기 레일 같은 문제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4."민주당은 은평에서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악수 나누는 유시민 원장과 이정희 대표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민중의소리에서 대담을 마친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 원장과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양지웅 기자

진보통합 논의를 끝으로 길고 긴 대담은 거의 끝났다. 정치인의 체력은 남다른 데가 있다. 옆에서 지켜만 보던 기자도 지칠 정도인데, 한 마디 한 마디를 골라야 하는 두 사람은 지친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이야기할 것이 많은 표정이다. 적당할 때 방 하나 잡아놓고 1박2일로 대담을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였다.

마무리를 부탁했다.

유: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도 한때 국민의 마음이 시킨 일입니다. 물론 그것 역시 국민들이 바꿀 수 있습니다. 조류가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지만 저변에서는 새로운 물 흐름이 형성되고 있어요. 앞으로 한 1년 정도가 2012년에 우리 국민들이 어떤 소망과 요구를 실현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 객관적으로 요구되는 자기의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이게 당분간 지속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규모는 작지만 배포는 큰 진보정당들이 자신들의 꿈과 야심, 사명에 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지난 시간 동안 많은 아픔을 겪었는데, 꿈을 더 크게 가지고, 내 당이 잘되느냐 못되느냐를 넘어서서 우리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마음으로, 마음을 모았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서로 보면 기분이 좋고,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아도 믿을 수 있고, 마음으로는 같이 속해서 일한다는 느낌으로 한다면, 우리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민주노동당 당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는 일 마다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이:유 원장님이 느끼시는 정치의 ‘매력’이 무엇인지도 더 듣고 싶고, 노무현 대통령이 털고 가셨다는 말의 의미도 좀 더 나누고 싶어요. 정당간의 문화차이도 더 알아보고 싶고... 좀 더 말씀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2012년에 우리가 정권을 바꿀 수 있는 힘도 있고, 능력도 있고, 만약 바꾸지 못할 경우에는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는 데는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의 완벽한 동의가 이뤄져 있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에 대해서는 함께 논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으로도 큰 성과구요.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 통합이라는 과제를 먼저 풀어야 합니다. 여기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으면 좋겠고요. 하반기가 되면 조금 더 큰 틀, 열려진 틀에서 얘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노동당원이 민주노동당에 주는 큰 힘 같은, 그런 힘이 참여당에도 있습니다. 저도 국민참여당 당원 여러분께 새해를 맞아 복을 빌겠습니다.

대담을 마친 두 사람은 인근의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도 같이했다. 물론 이 부분은 ‘오프’이지만 공개적 대담과 비교하여 별다른 뉴스거리는 없었다. 다만 대담이 좋았느냐는 질문에 모두 ‘좋았다’고 답했다는 점은 밝힐 수 있다.

또 하나, 두 사람이 모두 오는 4월의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의 ‘약속 이행’을 촉구한 점도 기록해 둔다. 2010년 7.28 재보선 당시,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다음 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이 아닌 야당에 우선적 배려를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 대표는 비록 민주당의 지도부가 바뀌었지만 이 약속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유 원장의 표현을 빌자면 “중인환시(衆人環視)리에 야3당의 대표가 약속한 일”이기도 하다.

이정무 기자 jmlee@vop.co.kr

(원본 기사 링크들....

1.이정희와 유시민, 이명박 정부를 말하다
http://www.vop.co.kr/A00000351579.html

2.‘자유롭고 싶어서 싸우는’ 유시민, ‘싸우지 않음이 고통스러운’ 이정희
http://www.vop.co.kr/A00000351582.html

3.전태일과 노무현은 만날 수 있을까
http://www.vop.co.kr/A00000351583.html

4."민주당은 은평에서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http://www.vop.co.kr/A000003515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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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北이 한 거다', 정부가 발표하면 모두 믿어야 하나"

"정부여당, 천안함을 국민들 속이고 이용하려 통제하고 있어"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지사 후보가 17일 "천안함이 어뢰로 격침됐다는 것은 억측과 소설"이라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이 연일 공세를 펴고 있는 것과 관련, "'북이 한 거다', 이렇게 정부가 발표하면 모두가 믿어야 하고 따라야 하고 그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면 무슨 좌익 빨갱이고 친북이다, 이런 식의 독재정권 논리, 공포정치 이런 것들을 갖다 쓸려고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격에 나섰다.

유시민 후보는 이날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합조단이 천안함 침몰을 북한 어뢰 공격으로 결론 내린 것과 관련, "유속이 빠르고 잠수부들의 시계가 30cm밖에 안되고 수심이 십여미터밖에 안되고 한미합동훈련이 이뤄지고 있고 미군정찰기가 위에 돌고 있고 인공위성이 감시하는 백령도 일 마일 남단에서 그렇게 소리조차 안 내고 북한이 타격을 하고 갔다...이런 얘기 아니냐"고 반문한 뒤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북의 소행이다 이렇게 주장하려면 국민들이 볼 때 그럴 수 있겠네라는 그런 근거를 단 하나라도 밝히면서 한다면 국민이 믿을 수 거면 나도 믿는다"라며 "그런 거 없이 국제사회에 이걸 들고 나가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외교장관이 잘 알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앞서 자신의 발언 배경과 관련, "나도 지금 정보를 전혀 갖고 있지 않고 미디어를 통해서만 본다. 미디어를 통해서 나오는 정보를 국방부의 말도 들어보고 다 들어보지만...어뢰로 공격당해서 동강난 것 같다고 판단할 수 있는 사실적인 근거를 못 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며 "만약 북한이 개입되어서 배가 두동강이 나서 우리 50여명 가까운 군인들이 죽는 비극이 일어났다면 이것은 군 지휘관과 현 정권이 책임져야될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자신의 '국가관'을 문제삼은 데 대해서도 "나도 군 출신이다. 33개월 육군 병장 만기제대한 사람"이라며 "군은 보고가 생명이다. 배가 침몰하는 사건이 났는데 해군 사령부나 국방부 합참의장 쪽의 지휘라인이 무시되고 청와대로 바로 보고가 가서 무슨 내용을 보고받아서 어떤 조사를 청와대가 지시했는지조차 못 밝히고 있는 그런 것들은 군의 생명인 보고 체계를 무너뜨린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솔직히 집권당의 대표시면 이렇게 군의 기강이 문란해지고 군 정권이라는 대통령의 통수권이 혼돈에 빠져있고 이렇게 정권이 안보에 대해서 무능하고 무기력한 것이 드러난 이 사태에 대해서 부끄러워 해야지"라며 "나 같으면 국민 앞에 낯을 들고 집권당 대표로 나오기가 힘들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선거 시기라고 해서 야당 후보 비방하는 데 이런 것들을 쓰고 하는 것은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또 천안함 조사결과를 선거전인 오는 20일 발표하려는 데 대해서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이 사건을, 진상을 규명하려고 사실에 의거해서 대처하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들을 속이고 협박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이것을 통제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우기가 어렵다"며 강한 의혹을 제기한 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해서 속일 수 있다고 보진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한나라당의 집중포화에 대해서도 "갑자기 한나라당에서 저를 비방하는 논평을 날마다 교대로 여러 사람이 내시는 것을.. 그런 여론조사 기관의 발표보다 더 좁혀져 있거나 혹은 역전되어있거나 그런 것이 아닌가 짐작이 된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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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에 손해볼까봐 천안함에 입을 다물고 있는 제1 야당 민주당은 반성해야한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현정권의 독재에 제동을 걸수 있겠는가


(출처:아고라 자토방 무서운할배님의 글 "유시민, 천안함에 대해서 시원하게 한 말씀 하셨네요!!!!")
Posted by 명박퇴진안모씨 명박퇴진-안모씨 Trackback 0 : Comment 0

지금부터 보시는것들은 전부

 

영화같은 역사적 실화이며 진실입니다.







대한민국은 건국이래 항상 보수라는 가면을 쓴 독재가 지배해 왔었다

그 불편한 진실, 금기를 깨고 도전한 한남자의 이야기다


이야기를 하기전에 재미있는 사실은

이 남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국인 한국보다는

외국에서 자신의 업보를 인정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넬슨만델라와 비슷한 동점에서 본다는것

한국안에서는 이사람을 비교할 인물이 없다는게 외국의 시각이다


이 남자는 인생에서 4번의 죽을고비를 넘긴다

살아있는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불리울 정도다


어느언론에서 했던 설문조사

"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이룩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

모든사람들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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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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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 " 김 대 중 "


이 사람은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다.




 

 

꿈은 만족하지 못하는데서부터 태어난다.  만족한 인간은 꿈을 꾸지 않는다



작은 새는 큰 새의 마음을 이해할수 없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위대한 사람의 뜻 같은건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다.


뜻의 크기는 그 사람의 그릇의 크기다.

꿈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을 비웃거나 깔보지 말아라







공전에 히트를 기록했던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여기에 스쯔끼라는 악질 고등계 형사 가 나오는데요,

 

 

이 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다 고문하고 죽입니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에게 불량선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누명을 씌우기도 합니다.

 

정말 보면서 주먹이 불끈불끈 쥐어질 정도로 증오스러운 놈입니다.

 

주인공인 하림 역시 스즈끼에게 가족들을 잃은

 

희생자 중 한 명이었지요.

 

스즈끼는 하림 역시 엮어 넣으려고 계속 괴롭힙니다.

 

 

 

 

 

그러던 중 2차 세계대전 이 일어나고 하림은 징병에 끌려갔다가

 

탈출해 미군 특수부대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합니다.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해방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하림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하림은 어느 날 경찰서에 들렀다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합니다.

 

경찰서에서 여전히 부하들을 호령하고 있는

 

스즈끼를 발견한 겁니다.

 

 

눈이 돌아간 하림은 뛰어가 스즈끼의 멱살을 잡습니다.

 

믿을 수가 없어서 소리를 지릅니다.  

 

 

 

"스즈끼!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해방이 되었어!

 

 

스즈끼!"

 

 

 

멱살을 잡힌 스즈끼는 부하들을 시켜 하림을 끌어내라고 합니다.

 

하림은 무력하게 경찰들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비명을 지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스즈끼는 침을 뱉듯 말합니다.  

 

 

 

 

 

"저런, 빨갱이 새끼."

 

 

"여명의 눈동자"에서 이 장면은 정말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친일파는 해방이 되어도 처벌받지 않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은 빨갱이로 몰려 두들겨 맞습니다.

 

해방이 되었지만 세상이 바뀌지 않은 겁니다.

 

 

문제는 이게 그냥 드라마의 극적 구성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국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라는 겁니다.

 

 

 

미 군정을 뒤에 업은 이승만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친일파를 모두 흡수 합니다.

 

 

 

 

세상이 뒤집히고 처벌이 될까 두려워 덜덜 떨던 조선총독부의 관료들,

 

경찰들은 살기 위해 이승만에게 가서 붙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일어납니다. 친일파들의 살길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이제 '빨갱이'를 입에 달고 삽니다.

 

 

'빨갱이가 쳐들어온다.', '빨갱이가 우리를 죽이려 한다.',

 

'우리가 빨갱이로부터 너희를 지켜주겠다.'  

 

 

그렇게 친일파는

 

식민지 시대의 권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건국의 공로자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승만 독재 시대에 승승장구하던 그들은 그러나

 

다시 한번 위기를 맞습니다.

 

 

 

1960년 4.19혁명 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들은 두려움에 떱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박정희에 의해 5.16 군사 쿠데타 가 일어납니다.

 

 

친일파들에게 다시 살길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이제 박정희의 공화당(한나라당) 에 투신합니다.

 

 

따지고 보면 박정희 자신이 일제시대 친일파입니다.

 

일본 육사 졸업하며 천황한테 혈서 쓰고

 

자랑스러운 황국신민으로 공인받은 자이니까요.

 

 

 

 

그리고 박정희의 독재가 시작되었습니다.

 

 

박정희는 헌법 개정을 통해 자기가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국회? 그까짓 거 필요 없습니다.

 

해산시켜 버립니다.

 

 

밤마다 비서실장 시켜 여대생들 바꿔가며 밤 문화를 즐기다가 1979년 10월 26일,

 

그날도 여대생 옆에 끼고 술 마시다 총에 맞아 죽습니다








-경상도 부산선거 유세-


" 부산의 파도야 ! 광주의 무등산아 ! 너희에게 넋이 있다면 나 김대중이를 버리지 말아다오 ! "


" 하이고~마 전라도에서 인물이 나온기라 김대중이가 인물이데이~ "

" 하모하모 ! 저양반이 그리 똑똑하다케서 소문듣고 왔는데 진짜 인물이긴인물이데이 ~ "


구식인 박정희를 유일하게 이길수있었던 젊은패기 김대중

부산유세 당시 302,452표 반이상 휙득  박정희와 막상막하...

하지만 경남과 부산은 그를 택했다


부산에서의 연설은 연설이라기보다 거의 한이 담긴 통곡에 가까웠다


그후 실질적인 김대중의 승리인데도 박정희의 투표조작 부정선거로 패배

박정희는 경남의 심장부 부산민심을 확인한뒤 김대중을 두려워하고 견제하게 된다


그뒤 박정희는 언론과 합세해 인간으로서 할수없는 온갖 유언비어를 만들어 조작

김대중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호남차별을 만들고 고립 지역감정을 만들게 된다


소히 먹물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호남에서 계속 나올것을 두려워해

호남의 산업화를 막고 자금이 끊기게 만든것이다


분명 이전까지는 지역감정이란 확실히 존재하지 않았다

호남에서는 그전까지 박정희를 지지했으니 말이다



 

드디어 우리 현대사에서 '지역주의 정신병' 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경상도는 개밥의 도토리가 될 것이다''

                                                           

                                                                         -국회의장 이효상'-


''김대중이가 대통령이 되면 경상도에는 피바람이 불 것이다''

                                                         

                                                                      -중앙정보부의 선동문구-


''김대중이 정권을 잡으면 모조리 모가지가 날아 갈 것이다''


                                                                   -경상도 공무원들에게 공화당의원이-


''경상도 사람치고 박정희 안 찍는 사람은 미친놈''


                                                                 -1971년 4월 18일 조선일보-

 

''우리 신라 경상도가 똘똘뭉쳐 계속우리만의 시대를 이어가자''


                                                                 -1971년 경상도 선전물-



그러한 영남 몰표는 부정선거와 더불어 박정희가 지역감정을 적극적으로 부추긴 결과였다.   1971년 대선에선 특히 국회의장 이효상의 활약이 눈부셨다. 그는 1963년 대선에서도 9월 10일 대구 수성천변에서 열린 공화당 유세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는 지역 분열주의자였다.


"이 고장은 신라 천 년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장이지만 이 긍지를 잇는 이 고장의 임금은 여태껏 한 사람도 없었다. 박정희 후보는 신라임금의 자랑스런 후손이다. 이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이 고장 사람을 천 년만의 임금으로 모시자"


이효상은 1963년 대선에서 재미를 본 수법을 또 써먹은 것이다. 그는 선거 유세때마다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 라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숱한 망언을 양산해냈다. 그 밖에도 공화당 정치인들은 영남 지역 유세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들을 쏟아냈다.


"박대통령은 경상도 대통령 아이가."

"문둥이가 문둥이 안 찍으면 어쩔끼고."

"경상도 사람 쳐놓고 박 후보 안 찍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라."

"1천만 명에 가까운 경상도가 주동이 되고 단결만 하면 선거에 조금도 질 염려가 없다."

"경상도에서는 쌀밥에 뉘 섞이듯 야당표가 섞여 나오면 곤란하니 여당표 일색으로 통일하자."

"우리 지역이 단합하여 몰표를 밀어주지 않으면 저편에서 쏟아져 나올 상대편의 몰표를 당해낼 수 없다."

 

<피의 보복이 있을 것이다>

공화당과 중앙정보부 요원들의 활약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김대중 후보가 정권을 잡으면 경상도 전역에 피의 보복이 있을 거라는 인간의 원초적 공포심을 자극하는 터무니없는 발언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아울러 '우리가 똘똘 뭉쳐 몰아주지 않으면 우리는 망한다. 서울이고 경기도고 전라도고 우리 표를 빼낼 곳이 없다. 우리가 몰표를 던짐으로써 우리의 지도자, 조국 근대화의 기수를 건져내야 한다' 라고 부추겼다. 그리고 경상도 지역의 공무원들에겐 '김대중이가 만약 정권을 잡으면 모조리 모가지가 날아갈 것' 이라고 떠들어댔다. 아울러 공화당원과 경찰, 중앙정보부 요원들은 서울에서 영남 지역으로 내려온 참관인들에게 '이 전라도놈 (김대중 후보를 지칭) 앞잡이들아, 모두 꺼져버려라!' 라고 스피커를 동원해 대대적으로 협박하고는 공명선거 감시단 참관인들을 모조리 쫓아버리곤 했다.

이 때문에 영남지역에는 참관인들이 아예 발을 붙일 수가 없었다. 또한 영남 지역 야당 인사들에게는 '이 선거는 경상도와 전라도 싸움인데 당신은 왜 전라도놈 앞잡이 노릇을 하고 다니느냐? 정 그렇게 하고 싶다면 이 마을에서 없어져라!' 하면서 여럿이 떼로 몰려와 구타 협박하였다. 혹은 술과 밥과 돈으로 매수하여, 투표 당일 야당 참관인으로 참석 못하게끔 했다. 설령 참석한다 해도 그들이 어떠한 선거부정을 저질러도 찍소리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후 세계어느 유례도 볼수없던 정치적 특정지역에 대한 지역차별은

지금까지도 어이없게 대성공을 이루고 김대중을 지지했던

경남부산은 괴소문과 유언비어 세뇌속에 박정희와 한나라당으로 180도 바뀌게된다


독재에 맞선 이젊은 정치인은 총칼든 군사독재와 약자편에 서주지않았던 언론에게

야만적인 빨갱이라는 낙인과 함께 늙은 노정객이된 오늘날의 이순간에도

서양의 인종차별보다 더한 비논리적인 온갖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눈물과 고통으로 살아가게 된다


1997년 김대중은 망령같은 차별앞에 극적으로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독재를 했던사람들에게 일체보복을 하지 않았으며

먼저 다가가 용서와 화해를 하고 손내밀어 평화를 자청했다


 

 

 



박정희 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 촛불1세대 민주당과 김대중총재

그는 언제나 당당했다


" 국민이 내편이기 때문에 나는 결코 두렵지 않다 "

 




-군사독재재판 마녀사냥으로 불리우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김대중-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게 죄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저는 결코 타협할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김대중 납치사건


김대중을 두려워했던 박정희가 김대중을 죽이려했던 음모

이사건으로 김대중대통령은 다리에 평생장애를 갖게됨

그후 유신헌법으로 박정희는 평생 국민선거없이 자신이 대통령할수있는 박정희왕국 건설 ....

그는 정의와 상식이 통하지않는 폭력과 야만따위에 굴복하지 않았다





-부마항쟁-


경남과 부산에서 박정희독재에 항거한 민주화항쟁

박정희와 그의 충복 차지철은 경남과 부산에 학살명령을 내린다

야만적이고도 군사독재정권의 비열함 무식함이 들어나는 가벼운 그들의 말이었다

다행인지 부하 김재규가 그것을 막은격이 되었다


자신이 만든 유신헌법으로 선거가 더이상 필요없음에 

경남부산은 더이상 이용가치가 없다는 판단에 말을 안듣는단 이유로

학살을 자행하려 했다


하지만 예언이라도 된것처럼 실행에 옮기게 되는데

그뒤를 잇는  신군사정권이 쿠데타를 일으켜 경남부산에서 일어나려했던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데 .........





- 신 군사독재정권과 5공화국 공포정치의 상징 전두환의 등장 -


" 군은 절대로 정치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


그들의 말은 당연하다는듯 국민을 깔보면서 비웃듯 거짓말이 되고말았다

박정희가 죽어도 그독재란 이름의 전통은 유지되었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정권,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명박






" 정치적 누명과 보복은 내가 죽어서도 나하나로 끝나야할것입니다 "


전두환 독재군사정권에게 사형선고를 받고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김대중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인간의 마음은 어떠할까



해방 후 지금까지 독재적 군사통치가 판을 칠때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외면했다.

'나는 야당도 아니고, 여당도 아니다. 나는 정치와 관계없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봐왔다.
그러면서 그것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인 양 점잔을 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악을 악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선을 선이라고 격려하지 않겠다는 자들이다.
스스로는 황희 정승의 처세훈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기합리화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얼핏보면 공평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공평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비판을 함으로써 입게 될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다.

이것이 결국 악을 조장하고 지금껏 선을 좌절시켜왔다.


지금까지 군사독재 체제 하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이렇듯 비판을 회피하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좌절감을 느껴왔는지 모른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악한 자들을

가장 크게 도와준 사람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란 말이 바로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독재정권에 사형선고를받고 죽음을 기다리던 김대중의 잠언집中-




 



" 저희는 어디로 가는것입니까 ? "


" 알것없다  우리최강 공수부대는 각하의 명령으로 빨갱이 잡으러 간다 ! 작전명 화려한휴가 다. "


" 그런데 말입니다 서쪽으로 가고있습니다 "




" 이곳은 대한민국 광주 아닙니까 ????? "


" 상부의 명령이다 이놈들은 전부 빨갱이다 때려잡아라 "


" 예 ??? "


" 까라면 까라 새끼들아 "




" 이곳은 다른지역과는 좀다릅니다 저항이 심합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요 ! "


" ......네 알겠습니다 ...."


"사살 명령이 내려졌다 전부 쏴죽여버려 ! "


" .................... "





- 1980년 5월18일 광주 민주화항쟁 -



대한민국을 지키는 공수부대가 대한민국 국민을 자국민을 학살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위사진의 아비잃은 어린소년 눈안에 대한민국 모든 세상의 슬픔이 담겨져 있다


그후 호남에서의 정치투표는 투표라기보단 차라리 피눈물맺힌 한 이담긴 저항 이라고 봐야했다







광주  .... 광주 ..... 서러워 울지마라 광주야 .........


" 전라도 새끼들은 다죽여야된다 빨갱이 새끼들 어디서 전두환각하한테 대느노 ! "


독재정권과 언론에서 빨갱이소굴이라 떠들던 그곳

그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던 역사의 현실과 진실


유일하게 전두환에게 굴복하지않고 저항한 지역의 이름 " 호남 그리고 빛고을 광주 "

독재나치에게 학살당한 유태인들처럼 광주의 호남인들은 꽃잎처럼 그렇게 죽어갔다


김대중은 옥중에서 신문언론을 접하고

신문을 다적실정도로 가슴찢어지는 통한의 오열을 하게된다

힘없던 자신과 지켜주지 못했던 자책감은 평생의 짐이된다


광주민주화운동후 해외유명인사들의 적극적 김대중석방운동으로 궁지에 몰린 전두환은 김대중을 석방

감옥에서 해방되고 난뒤 곧장 광주로 직행 망월동 광주민주화 영령들과의 만남

한서린 서러움의 통곡 지울수없는 상처...


콩을 콩이라하고 팥을 팥이라 하는 그들이 대체 무엇이 죄일까  

호남과 광주 .... 대한민국 평생의 상처와 아픔이자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딱맞는 도시였다

죽어도 죽은게 아닌 그들은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그후 광주만의 전쟁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전쟁이 되어 전두환은 항복한다.


독일의 어느 목사의 글


그들이 유태인을 잡아갈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므로.

그들이 동성애자들을 잡아갈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므로.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잡아갈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땐, 나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광주를 볼모로한 피의 잔치- 



국민없이 본인들끼리 모여 본인들끼리

 

체육관에서 전두환을 100% 대통령으로 선출합니다.

 

 

박정희 때 공화당 인사들은

 

 

 

 


 

이제 전두환의 민정당(한나라당)



구성 합니다.

 

 

 

 

 

 

 

1987년 6월.

 

 

또 위기옵니다.

 

 

 

전 국민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겁니다.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통령을 니들끼리 뽑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직접 뽑겠다고 주장합니다.

 


그뒤 김영삼의 아집으로 민주세력은 분열됩니다

전두환의 후계자 아부지리로 노태우가 35.9%의 득표율로 턱걸이로

대통령에 당선 됩니다.

 

 

 

친일파는 또 살아남았습니다.

 

 

아, 미칠 노릇입니다.

 

 


그리고 죽어도 대통령 한번 해먹겠다고 결심한 김영삼은

 

 

 마침내 노태우에게 항복합니다.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이 3당 합당 을 하여 민자당(한나라당)을 만듭니다.

 

 

 

 

 

  

 

유일한 민주화 세력이 된 김대중은

 

 

고립됩니다.

 

 

 

그리고 그다음 대선에서 민주화 운동의 경력을 팔아넘기고,

 

양심을 팔아넘기며 친일파, 군사독재 세력과 손을 잡은

 

김영삼은 마침내 꿈에 그리던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당 이름은 신한국당(한나라당) 이라고 바꿉니다.

 

 

 

 

 

그리고 나라를 하나하나 말아먹다가 1997년 IMF 사태일으킵니다.

 

 

나라가 부도가 났습니다.

 

 

 

 

 

 

 

수많은 회사들이 망해 넘어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소주병을 들고 한강에 뛰어내리고 목을 맸습니다.

 

 

 

 

  

신한국당은 슬쩍

 

 

 한나라당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고작 당 이름을 살짝 바꾼 것만으로

 

나라를 부도 상태로 몰아넣은 그들은

 

대선에서 약 40%의 득표율을 기록 합니다.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티끌만 한 차이로 마침내 김대중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정권교체

 

이뤄냅니다.

 

 

 

 

 


친일파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사건

 

벌어졌습니다.

 

패닉에 빠진 그들은 그러나 5년만 참자고 다짐합니다.

 

 

5년 동안 열심히 김대중을 빨갱이라고 욕합니다.

 

 

스즈끼가 하림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듯,

 

 

 

  

이들이 살아남는 길은

 

 

 

무조건 상대방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는

 

 

 

겁니.

 

 

 




- 386 신민주화 개혁세력의 등장 -


















































-최재천 변호사-







"93년 이후 무장공비 안내려오니 철책 다 걷어요?? 안전하니 철조망 없앨까요??"







" 한나라당은 국민들과 아고라앞에 무릎꿇어라 "





 


-운동권 대학생 유시민 27세-


판사들에게 외친 그의 한마디

" 전대가리의 개들아 백년만년 잘처먹고 살아라 ! "


이젊은 청년의 눈빛은 군사독재에 대한 원망으로 살기가 가득했다

그의 살기어린 눈빛은 386세대 젊은시절 독재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 해주고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젊은 386세대들의 등장과 밑에 한남자의 등장으로 김대중을 이을 제2의 민주화항쟁은 시작된다






" 이의있습니다 ! 반대토론을 해야합니다 ! "


김영삼이 3당합당 민자당 (김영삼,전두환,노태우,김종필)


독재와 손잡고 대구+경북+경남+충청 지역주의로 민주주의를 배신하려 하자 거세게 항의한다



 



 " 친일군사독재 민자당(한나라당)은 해체되야 한다 ! "


"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민주당 경선에 관심갖지 마십시요 ! "





-1988년 혜성같이 등장한 5공 청문회 정치스타 노무현-


" 와~~~저양반 대단하네 전두환대통령각하 한테 저렇게 해도되나? "


청문회에서 독재자 전두환에게 명패를 던진 젊은 정치인 노무현

당시 김영삼 밑에있었던 노무현은 김영삼의 패거리들이 광주청문회에서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 호남문제라며 김대중의 민주당이 알아서 할것이라며

슬금슬금 눈치보며 피하는것에 분노를 느껴왔다


그후 독재와 3당합당으로 민주주의를 배신한 김영삼을 떠나 민주당으로 입당후

호남비방만 하는 한나라당 후보에 밀려 어처구니 없게도 부산에서 연일 낙선한다


" 광주에서 콩이면 부산에서 콩이고 대전에서도 콩이다 "


경상도에서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오시면 동네이장도 할수없는 말도안되는 현실입니다

우리가 남이가, 이것을 버려야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말씀하셨습니다 머리는 빌릴수있지만 건강은 빌릴수없다고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지식이 없는자가 대통령이 됩니까

진짜 지성이 대통령이 되야합니다 민주당 김대중 총재는 그럴자격 충분히 있습니다


조선건국 이례로 600년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번도 바꿔보지 못했고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음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패가망신했다. 600년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거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짖밟고있어도 보란듯이 결국 고개를 숙이고 외면했어요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생애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가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역시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가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저는 경상도에서 깃발만 꼽으면 당선되는 지역주의자들과 싸울것입니다 사람을 봐주십시요 !

더럽고 아니꼬운 꼴 안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


그래도 그는 그의 정치적고향 부산에 관심을 끊지 않았다

그뒤 지역주의자들과의 전쟁을 다짐한다


그리고 그에게 붙여진 별명         " 바 보 "


정치인이기 전에 투사로써의 이미지는 국민들에게 각인되었다


이사람은 후에 제2의 민주당출신으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에 입성하게 된다



 

 

민주정권인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친일파 명부를 만들고

 

진상을 조사하는 작업이 진행됩니다.


친일파들은 위기감을 느낍니다. 정치적 탄압이라고 마구 훼방을 놓습니다.

 

 

그 과정에서 뉴라이트가 결성됩니다.

 

 

 

 

 

 

 

 

 

그냥 상대방을 빨갱이로 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과거 행적을 감추려 들지 않습니다.

 

아예 맞불을 놓습니다.

 

 

식민지 시대가 좋은 시대였다고 우기기 시작합니다.

 

친일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죠.

 

통계 자료를 가져와 식민지시대가

 

이렇게 경제 발전이 된 시기였다고 주장합니다.

 

근대화 시대였다고 주장합니다.

 

자신들을 친일파라고 부르지 말고 근대화 세력이라고 불러 달랍니다.

 

자신들을 군사독재 세력이라고 부르지 말고

 

근대화 세력이라고 불러 달랍니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친일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됐지!',

 

'독재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됐지! '

 

 

 

 

 

그리고 이명박을

 

 

밀어줍니다.

 

 

 

 

'범죄자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사기꾼이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이게 먹힙니다.

 

 

 

 

마침내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었고,

 

 

뉴라이트는 새로운 정부의 각료로 곳곳에

 

포진되었습니다.

 

 

이들은 지금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 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식민지 시대, 독재 시대를 근대화 시대로 바꾸겠노라고 수정하고 있습니다.

 

 

일제시대 친일파-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

 

으로 이어지는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았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이들이 권력을 놓친 시기는

 

딱 지난 10년 동안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릅니다.

 


 










" 호남이 선택한 영남 대통령 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 "


노무현 대통령 서거후 평생민주화동지였던 팔순이 다된 늙은 노정객의 통곡


"평생 민주화 동지를 잃었고, 민주정권 10년을 같이했던 사람으로서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입니다."


노무현이란 사람은 그에게 사랑하는 자식같은 존재였다

같은 민주당 출신인 그둘의 관계는 핏줄이었다 아니 피보다 진했다 ...


나는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교동에서 독일 〈슈피겔〉 지와 인터뷰를 하다가 비서관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왜 그때 내가 그런 표현을 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온 과거를 돌아볼 때 그렇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노 전 대통령 생전에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에 처해지는 상황을 보고 아무래도 우리 둘이 나서야 할 때가 머지않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나는 상주 측으로부터 영결식 추도사 부탁을 받고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지 못했습니다. 정부 측에서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어이없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정부에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추도사는 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영결식장에서 하지 못한 마음속의 그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로 대신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십시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을 살았던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같이 유쾌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을 나는 아주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우리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조문객이 500만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그것이 한과 한의 결합이라고 봅니다. 노무현의 한과 국민의 한이 결합한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억울한 일을 당해 몸부림치다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나도 억울합니다. 목숨 바쳐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억울하고 분한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입니까. 1980년 광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1987년 6월항쟁을 전후해서 박종철 학생, 이한열 학생을 포함해 민주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그런데 독재정권, 보수정권 50여 년 끝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10년 동안 이제 좀 민주주의를 해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되돌아가고 경제가 양극화로 되돌아가고, 남북관계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꿈같습니다, 정말 꿈같습니다.

이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각성하는 시민이어야 산다.”, “시민이 각성해서 시민이 지도자가 될 정도로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말해온 ‘행동하는 양심’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 각성하는 시민이 됩시다. 그래야 이깁니다. 그래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꼭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바르게 투표하면 됩니다. 인터넷 같은데 글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민주주의 안 하는 정부는 지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일 때, 그것조차 못한다면 좋은 나라와 민주국가 이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은 타고난,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을 가진 우리 헌정사에 보기 드문 지도자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을 사랑했고, 가까이했고, 벗이 되고자 했던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항상 서민 대중의 삶을 걱정하고 그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유일하게 자신의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당한 조사 과정에서 갖은 치욕과 억울함과 거짓과 명예훼손을 당해 결국 국민 앞에 목숨을 던지는 것 외에는 자기의 결백을 밝힐 길이 없다고 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알고 500만이 통곡했습니다.

그분은 보기 드문 쾌남아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가졌던 것을 영원히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라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적으로 사는 세상, 이런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뜻을 계속 이어가서 끝내 성취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했다고 해도 서거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500만이 나와서 조문했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그 한과 억울함을 푸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분의 죽음은 허망한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역사에 영원히 살리도록 노력합시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허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뒷일을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나와 노무현 대통령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평화를 위해 일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후배 여러분들이 이어서 잘해주길 부탁합니다.

나는 이 책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가 그런 후배 여러분의 정진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뷰하고 오연호 대표 기자가 쓴 이 책을 보니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전후에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책으로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공부하십시오.

그래서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를 재발견해 계승하고, 극복할 것이 있다면 그 대안을 만들어내서, 결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길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평소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했던 미국 민주당 빌클린턴 대통령

늙어서도 공부와 독서를 게을리 하지않는 민주주의의 지성 김대중 대통령을

세계지도자들은 존경한다고 말한다

 


1981 Bruno-Kreisky 인권상 / 1983-현재 미국 Robert Kennedy 인권상위원회 고문 / 1983-현재 국제고문희생자 구원위원회 고문 / 1983-현재 미국 Pittsburgh La Roche 대학교 이사 / 1983 미국 에모리대 명예법학박사 / 1987 미국 George Meany 인권상 수상, 북미주 한국인권연합 인권상 수상 / 1992 모스크바대학교 외교대학원 정치학 박사 / 1992 미국 가톨릭대 명예법학박사 / 1993 제3회 애서가 상 (한국 애서가 클럽) 수상 / 1994 미국 New York Union 신학대학교 Union Medal 수령 / 1994 Russia 국제생태학협회 정회원

1995 미국 포트랜드 주립대 명예인문학박사 / 1998. 2 무궁화 대훈장 / 1998. 4 영국 런던대 명예교수 / 1998. 6 미국 조지타운대 명예교수 / 1998 UN 인권협회 인권상 / 1999. 7 Philadelphia 자유메달 / 2000. 11 [라프토] 인권상 수상 / 2000. 12 노벨 평화상 수상 / 2001. 9 세계정치지도자상 수상 / 2002. 1 민주주의 수호자상 수상 / 2003. 5 제8회 늦봄통일상 수상 / 2003. 8 제7회 만해평화상 수상 / 2003. 12 칠레공화국 대십자훈장 수상 / 2003. 12 춘사 나운규 영화예술제 공로상 수상



 

 



온갖 명예로운 상이란 상은 다 탄 김대중,그에게 열등감을 가진 일부 정치 세력들이 온갖 시기 질투를 하며 그를 깍아 내렸지만 국내의 양심세력과 세계의 양심 세력은 그의 업적을 기꺼이 인정 해주고 박수를 쳐주었다. 그 오랜 정치적 역정을 통해 쌓은 업적 으로 받은 상을 돈주고 받았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불쌍하다는 생각만 든다.

외국의 평가는 이렇다.

"김대통령은 나에게 살아가야 할 힘, 살아가야 할 삶의 스승이자 길잡이다"(조스팽 프랑스 총리),

"김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독일이 한국의 금융위기 때 한국을 돕는 동기가 됐다" (라우 독일 대통령)하는 식이었습니다"


[선진국에 갈수록 그는 넬슨 만델라와 동격인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 '20세기의 영웅'이었습니다. 현지 언론들은 그의 방문에 맞춰 DJ 일대기를 특집으로 제작하고 특집면을 만들었습니다.


에이펙이나 아셈처럼 세계 강대국들이 모두 참석하는 국제회의에서도 DJ는 거의 언제나 첫 번째의 발언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지난해 덴마크에서 열린 아셈 때는 주최국인 덴마크의 라스무센 총리가 각국 정상들을 소개하면서 오직 DJ에게만 "excellent leadership, President Kim"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블레어와 시라크, 주롱지와 고이즈미 같은 쟁쟁한 인물들도 아무 수식어 없이 이름만 소개됐는데 말입니다. 그만큼 DJ에 대한 특별대우는 국제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였습니다.

DJ가 참석하는 기자회견이나 투자유치 설명회는 그의 이름만으로도 일단 대성황을 이뤘습니다. 정상들간의 외교적 수사(修辭)는 늘 과장되게 마련이지만 DJ에 대한 것은 수사라 하더라도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한 기자는 이렇게 술회했다.

"대한민국의 CEO인 그가 이런 'DJ 브랜드'를 갖고 있었으니 이것이 한국에 대한 투자유치와 IMF 극복, 그리고 우리나라의 외교적 위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네임밸류에 만족하지 않고 발로 뛰면서 한국 경제와 햇볕정책을 세일즈했습니다. 해외순방 때마다 저는 80에 가까운 DJ가 강행하는 빡빡한 일정에 먼저 넉다운이 될 지경이었습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DJ의 공식일정은 전임 대통령들의 두 배가 넘었습니다.

유력 언론들이 자신의 국정이념을 제대로 전해주지 않으니 직접 뛰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연설문은 밤을 새워가면서 직접 작성했고 지난해 2월 '악의 축' 발언으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됐을 때는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준비하느라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역대 81번째, 아시아인으로서는 일곱번째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기록된 김 대통령이 노벨상에 처음 후보로 추천된 것은 1987년이었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앞장서 서독 사민당 의원 73명이 추천한 것이 최초였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추천 사유는‘한국 민주화와 인권 신장을 위한 투쟁과 3단계 통일방안을 제창해 남북 평화에 기여한 공로’였다. 이후 인권 향상과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의 공로로 매년 추천되어 올해까지 14회에 걸쳐 후보로 올랐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 동안 몇 차례나 수상 직전까지 갔었다. 대표적인 것은 지난 1992년으로 남아공의 만델라 당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장, 데 클레르크 남아공 대통령 등과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재미있는 것은 1987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리아스 산체스 코스타리카 전 대통령이 올해 김대중 대통령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사람들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은 매년 빠짐없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추천됐다. 1987년의 경우처럼 초기에는 주로 그의 민주화 투쟁에 공감한 외국인들이 추천을 했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맞붙어 패배한 후 수차례에 걸친 죽음의 고비와 감옥 생활 등을 거치면서도 굽히지 않았던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투쟁에 공감한 결과였다. 외국의 정치인들을 비롯해 김대중 대통령과 친분이 각별한 인사나 교수들이 추천에 앞장섰다.

예컨대, 지난 1990년엔 스웨덴 웁살라대 닐 엘반더 교수를 비롯한 스웨덴 프랑스 노르웨이의 학자, 정치인, 문인 등 35명이 김대중 대통령을 추천했고, 스웨덴 사회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추천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로마 바티칸 주교단체, 미국 가톨릭 계열 대학, 엠네스티 등 해외 인권단체 등도 자주 추천한 단체들이다.

노벨 평화상 추천 자격은 노벨위원회 전현직 위원과 노벨연구소 자문위원, 각국의 현직 각료와 의원, 국제사법재판소 및 국제중재재판소 재판관, 정치학·법학· 철학·역사학 전공학자, 역대 노벨 평화상 수상자 등 일정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나 단체만이 가능한데, 김대중 대통령은 이들로부터 여러 해에 걸쳐 복수 추천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 동안 노벨 평화상에 추천된 사유는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에 집중돼 있지만, 해마다 약간씩 추천 사유가 달라졌다.

예컨대, 1999년 추천 사유는 IMF 환란 극복 노력과 금강산 관광 등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한 공로였고, 올해 1월에는 아시아 국가간 관계를 발전시킨 공로로 추천되었다.


조셉 바이든 (부통령)
오바마와 런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된 바이든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그분과 나는 매우 친분이 두텁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한다고 한다.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루빈은 오바마 정권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오바마 경제팀이 거의 다 '루빈 사단'에 속해 있다. '스타군단'으로 알려진 오바마 경제팀의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로런스 서머스 NEC위원장 등이 루빈 인맥이다. 루빈 역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김대중 대통령이다"며 공개적으로 자랑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말이 필요없는 대표적인 친DJ다. 현직시절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반해 김대중만 졸졸 따라다니며 미국의 대북정책을 지휘했다. 스스로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시간을 자랑스러워 한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한국정부가 '국가원수' 대접을 하면 목에 힘이 들어갈만도 한데, 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님께 '안부인사' 드리는걸 잊지 않았다.

티모르의 오르타장관(현 대통령): '김대중은 가장 유명한 독재자에 목숨을 걸고 항거한 사람이었다. 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지도자를 비난하는지 묻고 싶다. 질투 때문인가"

 
라우 독일 대통령: "김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독일이 한국의 금융위기 때 한국을 돕는 동기가 됐다"

미셸 깡드시 前 IMF총재.."한국은 김대중씨를 대통령으로 두고 있다는 자체를 행운(luck)으로 받아들여야 할것입니다. 경제위기를 맞아 몇가지 고비가 있었지만 IMF와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 전반은 김대통령을 믿고 한국을 밀어준 측면이 적지 않은게 사실입니다...", "엄청난 탄압에도 좌절하지 않고 마침내 자신의 뜻을 이뤄낸 김대통령은 만델라의 삶을 연상시킵니다."

조스팽 프랑스 총리.."김대통령은 나에게 살아가야 할 힘, 살아가야 할 도덕적 스승이자 길잡이다"

제임스 울펀슨 세계은행 총재.."민주화뿐 아니라 경제의 재구축에 성공하고 있는 김대통령은 세계를 감동시키는 지도자 입니다..."

세계적 경제전문 통신 블룸버그..."김 대통령은 경제ㆍ정치ㆍ외교 분야에서 이룬 업적으로 반세기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77세의 김대중씨는 한세대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지도자의 업적을 이뤘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 "세계에서 단임 5년에 김대중씨 만큼 변화시킨 대통령은 거의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김대중씨처럼 한국 경제에 공헌한 대통령은 없기 때문에 한국민은 떠나가는 김대중씨를 마음으로 부터 감사해야 한다"




노벨위원회 군나르 베르게 위원장이 반국가적 반이성적 수구보수 패권세력들의 이러한 행태를 두고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한국'이라면서 "나는 한국인에게 노벨상을 주지 말라고 한국인들로 부터 로비 시도를 받았다. 노벨상은 로비가 불가능하고 로비를 하려고 하면 더 엄정하게 심사한다. 한국인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고 말하였다

그는 또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반대하는 편지 수천통이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내가 노벨 위원회에 들어온 이래,처음있는 일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나라에서 반대 편지가 대량 전달된 것이 경상도라는 특정지역에서 날아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그지역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노벨상 중에서도 가장 노벨의 염원을 담고있는 평화상이 로비를 받아낼 수 있는 상이라면 과연 세계 제일의 평화상으로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편지를 보낸 사람들에게 묻고싶다. 노벨상은 로비를 통해 수상할 수 있는 상이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상이 얼마나 가치를 유지할수 있을까. 그러기에 더더욱 그 가치가 찬란히 빛나는 것이다. 왜 다수의 한국인들이 김대중의 위대함과 그의 민주주의를 향한 불굴의 의지에 감명받지 못하는지 그이유가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며 통탄을 금치 못하였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바 있는 현 동티모르의 오르타 대통령도 월간 조선기자가 "김대중이 노벨상을 받으려고 로비를 한게 아니냐"며 집요하게 묻자 "멍청한 소리 하지 말라 김대중은 가장 유명한 독재자에 목숨걸고 항거한 사람이었다.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지도자를 비난하는지 묻고싶다. 질투 때문인가"라고 대답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유럽연합의 맹주격인 독일쪽의 대통령들도 바이든 이상으로 DJ에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퇴임후 훈장도 수여하고 직접 도서관에 방문해 안부도 묻고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미주지역까지 그 위상은 상상 이상입니다.





그리고 또한명


김대중대통령이 대한민국 제2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목하고 추천했으며


함께 서러움과 외로움을 느끼며


아꼇던 한 경상도 사나이


.

.

.

.

 .

 .






















 

 

"김대중대통령 그분은 그 시기에 가장 탁월한 정치인이었습니다.

한 시대의 역사적 가치의 상징이었죠. 민주주의라는 역사적 가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분을 평가할 때 그 점을 우리가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퇴임 5년이 지난 지금 이런저런 평가들이 있지만, 내가 청와대에 들어와서 보니

이 정부의 구석구석에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남아있었습니다.

내가 창조적인 것이라고, 내가 처음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들어가 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있더란 말입니다. 그런 것이 한두 개가 아니고 상당히 많습니다.

정부 혁신 부분에도 그런 것이 있고,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모든것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분 스스로 비전, 전략, 정책에서 역시 탁월한 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강대강 주변의 학자들이 적어준 것이 아니라, 머리를 빌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입니다. 한 수준을 뛰어넘는 거죠. 머리를 빌려서 하는 지도자와는 다릅니다. 말하자면 철학과 가치, 전략, 정책 모두 탁월한 정치인입니다

해외 다니면서, 외교하면서 제가 받은 느낌인데요, 한국이 국제무대의 당당한 일원으로 등장한 때는 국민의 정부부터입니다. 지도자의 정통성이 국가위신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많이 실감하고 다닙니다. 제가 국민의 정부의 정책을 다시 한번 평가해 보면서 과연 지도자의 자리는 머리를 빌려서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 같다, 해박한 지식, 지식과 정보에 대한 탐욕, 깊이 있는 사고력, 잘 정리된 가치와 철학이 꼭 필요한 자리인 것 같다,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김대중 대통령님 그분은 천재시지요 저는 그분을 매우 존경합니다"








바보 노무현이 존경했던 3명의 인










 

 

링컨 , 김구 선생 ..그리고..김대중 대통령





김대중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민주당)

본관 : 경상남도 김해

고향 : 전라남도 신안

학력 : 목포상업고등학교

거주지 : 자유민국 민주동 하늘나라

대한민국 민주주의 초대 대통령

 

노무현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민주당)

본관 : 전라남도 광주

고향 : 경상남도 김해

학력 : 부산상업고등학교

거주지 : 자유민국 민주동 하늘나라

대한민국 민주주의 제2대 대통령

 



울지마라 민주주의야




지지마라 민주주의 여


노무현대통령과 같은 민주당출신인 김대중 대통령은 노대통령서거후

노무현 대통령과 전생에 가족이지 않았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한다



 

 

 

 

뉴스후 부활하는 친일 (1.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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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마라 대한민국아 사랑한다


 출처:아고라 자토방 강남구학생님의 "★당신은 알고있습니까?부산이 김대중을 응원했다는사실을★실화"

왜 당신마저 떠나시는 것입니까........... 아무리 힘드셔도 끝까지 버티셔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다시 부활하는 것을 보시고 가시지.............. 부디 저 세상에서는 먼저 가신 노무현 대통령님과 사람사는 세상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평생 한나라당은 찍지않겠습니다★평생 투표를 꼭 하겠습니다★평생 조중동을 보지않겠습니다★평생 두 분 당신들을 잊지않겠습니다★조중동폐간운동★조중동에 광고하는 기업의 제품은 먹지도 사지도 않겠습니다★한나라당말살운동★친일파 척결운동★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謹弔]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명박퇴진안모씨 명박퇴진-안모씨 Trackback 0 : Comment 0

지금부터 보시는것들은 전부

 

영화같은 역사적 실화이며 진실입니다.

 

 

 

 

 

 

대한민국은 건국이래 항상 보수라는 가면을 쓴 독재가 지배해 왔었다

그 불편한 진실, 금기를 깨고 도전한 한남자의 이야기다

 

이야기를 하기전에 재미있는 사실은

이 남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국인 한국보다는

외국에서 자신의 업보를 인정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넬슨만델라와 비슷한 동점에서 본다는것

한국안에서는 이사람을 비교할 인물이 없다는게 외국의 시각이다

 

이 남자는 인생에서 4번의 죽을고비를 넘긴다

살아있는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불리울 정도다

 

어느언론에서 했던 설문조사

"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이룩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

모든사람들의 답변

.

.

.

 

 

 

 

 

인동초 " 김 대 중 "

 

이 사람은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다.

 

 

 

 

 

꿈은 만족하지 못하는데서부터 태어난다.  만족한 인간은 꿈을 꾸지 않는다

 

 

작은 새는 큰 새의 마음을 이해할수 없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위대한 사람의 뜻 같은건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다.

 

뜻의 크기는 그 사람의 그릇의 크기다.

꿈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을 비웃거나 깔보지 말아라

 

 

 

 

 

 

공전에 히트를 기록했던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여기에 스쯔끼라는 악질 고등계 형사 가 나오는데요,

 

 

이 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다 고문하고 죽입니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에게 불량선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누명을 씌우기도 합니다.

 

정말 보면서 주먹이 불끈불끈 쥐어질 정도로 증오스러운 놈입니다.

 

주인공인 하림 역시 스즈끼에게 가족들을 잃은

 

희생자 중 한 명이었지요.

 

스즈끼는 하림 역시 엮어 넣으려고 계속 괴롭힙니다.

 

 

 

 

 

그러던 중 2차 세계대전 이 일어나고 하림은 징병에 끌려갔다가

 

탈출해 미군 특수부대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합니다.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해방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하림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하림은 어느 날 경찰서에 들렀다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합니다.

 

경찰서에서 여전히 부하들을 호령하고 있는

 

스즈끼를 발견한 겁니다.

 

 

눈이 돌아간 하림은 뛰어가 스즈끼의 멱살을 잡습니다.

 

믿을 수가 없어서 소리를 지릅니다.  

 

 

 

"스즈끼!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해방이 되었어!

 

 

스즈끼!"

 

 

 

멱살을 잡힌 스즈끼는 부하들을 시켜 하림을 끌어내라고 합니다.

 

하림은 무력하게 경찰들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비명을 지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스즈끼는 침을 뱉듯 말합니다.  

 

 

 

 

 

"저런, 빨갱이 새끼."

 

 

"여명의 눈동자"에서 이 장면은 정말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친일파는 해방이 되어도 처벌받지 않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은 빨갱이로 몰려 두들겨 맞습니다.

 

해방이 되었지만 세상이 바뀌지 않은 겁니다.

 

 

문제는 이게 그냥 드라마의 극적 구성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국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라는 겁니다.

 

 

 

미 군정을 뒤에 업은 이승만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친일파를 모두 흡수 합니다.

 

 

 

 

세상이 뒤집히고 처벌이 될까 두려워 덜덜 떨던 조선총독부의 관료들,

 

경찰들은 살기 위해 이승만에게 가서 붙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일어납니다. 친일파들의 살길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이제 '빨갱이'를 입에 달고 삽니다.

 

 

'빨갱이가 쳐들어온다.', '빨갱이가 우리를 죽이려 한다.',

 

'우리가 빨갱이로부터 너희를 지켜주겠다.'  

 

 

그렇게 친일파는

 

식민지 시대의 권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건국의 공로자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승만 독재 시대에 승승장구하던 그들은 그러나

 

다시 한번 위기를 맞습니다.

 

 

 

1960년 4.19혁명 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들은 두려움에 떱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박정희에 의해 5.16 군사 쿠데타 가 일어납니다.

 

 

친일파들에게 다시 살길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이제 박정희의 공화당(한나라당) 에 투신합니다.

 

 

따지고 보면 박정희 자신이 일제시대 친일파입니다.

 

일본 육사 졸업하며 천황한테 혈서 쓰고

 

자랑스러운 황국신민으로 공인받은 자이니까요.

 

 

 

 

그리고 박정희의 독재가 시작되었습니다.

 

 

박정희는 헌법 개정을 통해 자기가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국회? 그까짓 거 필요 없습니다.

 

해산시켜 버립니다.

 

 

밤마다 비서실장 시켜 여대생들 바꿔가며 밤 문화를 즐기다가 1979년 10월 26일,

 

그날도 여대생 옆에 끼고 술 마시다 총에 맞아 죽습니다

 

 

 

 

 

 

 

-경상도 부산선거 유세-

 

" 부산의 파도야 ! 광주의 무등산아 ! 너희에게 넋이 있다면 나 김대중이를 버리지 말아다오 ! "

 

" 하이고~마 전라도에서 인물이 나온기라 김대중이가 인물이데이~ "

" 하모하모 ! 저양반이 그리 똑똑하다케서 소문듣고 왔는데 진짜 인물이긴인물이데이 ~ "

 

구식인 박정희를 유일하게 이길수있었던 젊은패기 김대중 

부산유세 당시 302,452표 반이상 휙득  박정희와 막상막하...

하지만 경남과 부산은 그를 택했다

 

부산에서의 연설은 연설이라기보다 거의 한이 담긴 통곡에 가까웠다

 

그후 실질적인 김대중의 승리인데도 박정희의 투표조작 부정선거로 패배

박정희는 경남의 심장부 부산민심을 확인한뒤 김대중을 두려워하고 견제하게 된다

 

그뒤 박정희는 언론과 합세해 인간으로서 할수없는 온갖 유언비어를 만들어 조작

김대중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호남차별을 만들고 고립 지역감정을 만들게 된다

 

소히 먹물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호남에서 계속 나올것을 두려워해

호남의 산업화를 막고 자금이 끊기게 만든것이다

 

분명 이전까지는 지역감정이란 확실히 존재하지 않았다

호남에서는 그전까지 박정희를 지지했으니 말이다

 

 

 

드디어 우리 현대사에서 '지역주의 정신병' 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경상도는 개밥의 도토리가 될 것이다''

                                                            

                                                                         -국회의장 이효상'-

 

''김대중이가 대통령이 되면 경상도에는 피바람이 불 것이다''

                                                          

                                                                      -중앙정보부의 선동문구-

 

''김대중이 정권을 잡으면 모조리 모가지가 날아 갈 것이다''

 

                                                                   -경상도 공무원들에게 공화당의원이-

 

''경상도 사람치고 박정희 안 찍는 사람은 미친놈''

 

                                                                 -1971년 4월 18일 조선일보-

 

''우리 신라 경상도가 똘똘뭉쳐 계속우리만의 시대를 이어가자''

 

                                                                 -1971년 경상도 선전물-

 

 

그러한 영남 몰표는 부정선거와 더불어 박정희가 지역감정을 적극적으로 부추긴 결과였다.   1971년 대선에선 특히 국회의장 이효상의 활약이 눈부셨다. 그는 1963년 대선에서도 9월 10일 대구 수성천변에서 열린 공화당 유세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는 지역 분열주의자였다.


"이 고장은 신라 천 년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장이지만 이 긍지를 잇는 이 고장의 임금은 여태껏 한 사람도 없었다. 박정희 후보는 신라임금의 자랑스런 후손이다. 이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이 고장 사람을 천 년만의 임금으로 모시자"


이효상은 1963년 대선에서 재미를 본 수법을 또 써먹은 것이다. 그는 선거 유세때마다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 라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숱한 망언을 양산해냈다. 그 밖에도 공화당 정치인들은 영남 지역 유세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들을 쏟아냈다.
 

"박대통령은 경상도 대통령 아이가."

"문둥이가 문둥이 안 찍으면 어쩔끼고."

"경상도 사람 쳐놓고 박 후보 안 찍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라."

"1천만 명에 가까운 경상도가 주동이 되고 단결만 하면 선거에 조금도 질 염려가 없다."

"경상도에서는 쌀밥에 뉘 섞이듯 야당표가 섞여 나오면 곤란하니 여당표 일색으로 통일하자."

"우리 지역이 단합하여 몰표를 밀어주지 않으면 저편에서 쏟아져 나올 상대편의 몰표를 당해낼 수 없다."

 

<피의 보복이 있을 것이다>

공화당과 중앙정보부 요원들의 활약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김대중 후보가 정권을 잡으면 경상도 전역에 피의 보복이 있을 거라는 인간의 원초적 공포심을 자극하는 터무니없는 발언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아울러 '우리가 똘똘 뭉쳐 몰아주지 않으면 우리는 망한다. 서울이고 경기도고 전라도고 우리 표를 빼낼 곳이 없다. 우리가 몰표를 던짐으로써 우리의 지도자, 조국 근대화의 기수를 건져내야 한다' 라고 부추겼다. 그리고 경상도 지역의 공무원들에겐 '김대중이가 만약 정권을 잡으면 모조리 모가지가 날아갈 것' 이라고 떠들어댔다. 아울러 공화당원과 경찰, 중앙정보부 요원들은 서울에서 영남 지역으로 내려온 참관인들에게 '이 전라도놈 (김대중 후보를 지칭) 앞잡이들아, 모두 꺼져버려라!' 라고 스피커를 동원해 대대적으로 협박하고는 공명선거 감시단 참관인들을 모조리 쫓아버리곤 했다.

이 때문에 영남지역에는 참관인들이 아예 발을 붙일 수가 없었다. 또한 영남 지역 야당 인사들에게는 '이 선거는 경상도와 전라도 싸움인데 당신은 왜 전라도놈 앞잡이 노릇을 하고 다니느냐? 정 그렇게 하고 싶다면 이 마을에서 없어져라!' 하면서 여럿이 떼로 몰려와 구타 협박하였다. 혹은 술과 밥과 돈으로 매수하여, 투표 당일 야당 참관인으로 참석 못하게끔 했다. 설령 참석한다 해도 그들이 어떠한 선거부정을 저질러도 찍소리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후 세계어느 유례도 볼수없던 정치적 특정지역에 대한 지역차별은

지금까지도 어이없게 대성공을 이루고 김대중을 지지했던

경남부산은 괴소문과 유언비어 세뇌속에 박정희와 한나라당으로 180도 바뀌게된다

 

독재에 맞선 이젊은 정치인은 총칼든 군사독재와 약자편에 서주지않았던 언론에게 

야만적인 빨갱이라는 낙인과 함께 늙은 노정객이된 오늘날의 이순간에도

서양의 인종차별보다 더한 비논리적인 온갖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눈물과 고통으로 살아가게 된다 

 

1997년 김대중은 망령같은 차별앞에 극적으로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독재를 했던사람들에게 일체보복을 하지 않았으며 

먼저 다가가 용서와 화해를 하고 손내밀어 평화를 자청했다

 

 

 

 

 

 

박정희 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 촛불1세대 민주당과 김대중총재

그는 언제나 당당했다

 

" 국민이 내편이기 때문에 나는 결코 두렵지 않다 "

 

 

 

 

-군사독재재판 마녀사냥으로 불리우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김대중-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게 죄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저는 결코 타협할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김대중 납치사건

 

김대중을 두려워했던 박정희가 김대중을 죽이려했던 음모

이사건으로 김대중대통령은 다리에 평생장애를 갖게됨

그후 유신헌법으로 박정희는 평생 국민선거없이 자신이 대통령할수있는 박정희왕국 건설 ....

그는 정의와 상식이 통하지않는 폭력과 야만따위에 굴복하지 않았다 

 

 

 

 

-부마항쟁-

 

경남과 부산에서 박정희독재에 항거한 민주화항쟁

박정희와 그의 충복 차지철은 경남과 부산에 학살명령을 내린다

야만적이고도 군사독재정권의 비열함 무식함이 들어나는 가벼운 그들의 말이었다

다행인지 부하 김재규가 그것을 막은격이 되었다

 

자신이 만든 유신헌법으로 선거가 더이상 필요없음에 

경남부산은 더이상 이용가치가 없다는 판단에 말을 안듣는단 이유로

학살을 자행하려 했다

 

하지만 예언이라도 된것처럼 실행에 옮기게 되는데

그뒤를 잇는  신군사정권이 쿠데타를 일으켜 경남부산에서 일어나려했던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데 ......... 

 

 

 

 

- 신 군사독재정권과 5공화국 공포정치의 상징 전두환의 등장 -

 

" 군은 절대로 정치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 

 

그들의 말은 당연하다는듯 국민을 깔보면서 비웃듯 거짓말이 되고말았다

박정희가 죽어도 그독재란 이름의 전통은 유지되었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정권,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명박

 

 

 

 

 

" 정치적 누명과 보복은 내가 죽어서도 나하나로 끝나야할것입니다 "

 

전두환 독재군사정권에게 사형선고를 받고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김대중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인간의 마음은 어떠할까

 

 

해방 후 지금까지 독재적 군사통치가 판을 칠때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외면했다.

'나는 야당도 아니고, 여당도 아니다. 나는 정치와 관계없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봐왔다.
그러면서 그것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인 양 점잔을 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악을 악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선을 선이라고 격려하지 않겠다는 자들이다.
스스로는 황희 정승의 처세훈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기합리화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얼핏보면 공평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공평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비판을 함으로써 입게 될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다.

이것이 결국 악을 조장하고 지금껏 선을 좌절시켜왔다.

 

지금까지 군사독재 체제 하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이렇듯 비판을 회피하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좌절감을 느껴왔는지 모른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악한 자들을

가장 크게 도와준 사람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란 말이 바로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독재정권에 사형선고를받고 죽음을 기다리던 김대중의 잠언집中-

 

 

 

 

 

 

" 저희는 어디로 가는것입니까 ? "

 

" 알것없다  우리최강 공수부대는 각하의 명령으로 빨갱이 잡으러 간다 ! 작전명 화려한휴가 다. "

 

" 그런데 말입니다 서쪽으로 가고있습니다 "

 

 

 

" 이곳은 대한민국 광주 아닙니까 ????? "

 

" 상부의 명령이다 이놈들은 전부 빨갱이다 때려잡아라 "

 

" 예 ??? "

 

" 까라면 까라 새끼들아 "

 

 

 

" 이곳은 다른지역과는 좀다릅니다 저항이 심합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요 ! "

 

" ......네 알겠습니다 ...."

 

"사살 명령이 내려졌다 전부 쏴죽여버려 ! "

 

" .................... "

 

 

 

 

- 1980년 5월18일 광주 민주화항쟁 -

 

 

대한민국을 지키는 공수부대가 대한민국 국민을 자국민을 학살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위사진의 아비잃은 어린소년 눈안에 대한민국 모든 세상의 슬픔이 담겨져 있다 

 

그후 호남에서의 정치투표는 투표라기보단 차라리 피눈물맺힌 한 이담긴 저항 이라고 봐야했다

 

 

 

 

 

 

광주  .... 광주 ..... 서러워 울지마라 광주야 .........

 

" 전라도 새끼들은 다죽여야된다 빨갱이 새끼들 어디서 전두환각하한테 대느노 ! "

 

독재정권과 언론에서 빨갱이소굴이라 떠들던 그곳

그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던 역사의 현실과 진실

 

유일하게 전두환에게 굴복하지않고 저항한 지역의 이름 " 호남 그리고 빛고을 광주 " 

독재나치에게 학살당한 유태인들처럼 광주의 호남인들은 꽃잎처럼 그렇게 죽어갔다

 

김대중은 옥중에서 신문언론을 접하고

신문을 다적실정도로 가슴찢어지는 통한의 오열을 하게된다 

힘없던 자신과 지켜주지 못했던 자책감은 평생의 짐이된다

 

광주민주화운동후 해외유명인사들의 적극적 김대중석방운동으로 궁지에 몰린 전두환은 김대중을 석방

감옥에서 해방되고 난뒤 곧장 광주로 직행 망월동 광주민주화 영령들과의 만남

한서린 서러움의 통곡 지울수없는 상처... 

 

콩을 콩이라하고 팥을 팥이라 하는 그들이 대체 무엇이 죄일까  

호남과 광주 .... 대한민국 평생의 상처와 아픔이자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딱맞는 도시였다

죽어도 죽은게 아닌 그들은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그후 광주만의 전쟁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전쟁이 되어 전두환은 항복한다.

 

독일의 어느 목사의 글

 

그들이 유태인을 잡아갈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므로.

그들이 동성애자들을 잡아갈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므로.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잡아갈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땐, 나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광주를 볼모로한 피의 잔치- 

 

 

국민없이 본인들끼리 모여 본인들끼리

 

체육관에서 전두환을 100% 대통령으로 선출합니다.

 

 

박정희 때 공화당 인사들은

 

 

 

 


 

이제 전두환의 민정당(한나라당)

 

 

구성 합니다.

 

 

 

 

 

 

 

1987년 6월.

 

 

또 위기옵니다.

 

 

 

전 국민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겁니다.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통령을 니들끼리 뽑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직접 뽑겠다고 주장합니다.

 

 

그뒤 김영삼의 아집으로 민주세력은 분열됩니다

전두환의 후계자 아부지리로 노태우가 35.9%의 득표율로 턱걸이로

대통령에 당선 됩니다.

 

 

 

친일파는 또 살아남았습니다.

 

 

아, 미칠 노릇입니다.

 

 


그리고 죽어도 대통령 한번 해먹겠다고 결심한 김영삼은

 

 

 마침내 노태우에게 항복합니다.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이 3당 합당 을 하여 민자당(한나라당)을 만듭니다.

 

 

 

 

 

  

 

유일한 민주화 세력이 된 김대중은

 

 

고립됩니다.

 

 

 

그리고 그다음 대선에서 민주화 운동의 경력을 팔아넘기고,

 

양심을 팔아넘기며 친일파, 군사독재 세력과 손을 잡은

 

김영삼은 마침내 꿈에 그리던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당 이름은 신한국당(한나라당) 이라고 바꿉니다.

 

 

 

 

 

그리고 나라를 하나하나 말아먹다가 1997년 IMF 사태일으킵니다.

 

 

나라가 부도가 났습니다.

 

 

 

 

 

 

 

수많은 회사들이 망해 넘어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소주병을 들고 한강에 뛰어내리고 목을 맸습니다.

 

 

 

 

  

신한국당은 슬쩍

 

 

 한나라당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고작 당 이름을 살짝 바꾼 것만으로

 

나라를 부도 상태로 몰아넣은 그들은

 

대선에서 약 40%의 득표율을 기록 합니다.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티끌만 한 차이로 마침내 김대중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정권교체

 

이뤄냅니다.

 

 

 

 

 

 

친일파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사건

 

벌어졌습니다.

 

패닉에 빠진 그들은 그러나 5년만 참자고 다짐합니다.

 

 

5년 동안 열심히 김대중을 빨갱이라고 욕합니다.

 

 

스즈끼가 하림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듯,

 

 

 

  

이들이 살아남는 길은

 

 

 

무조건 상대방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는

 

 

 

겁니.

 

 

 

 

 

 

- 386 신민주화 개혁세력의 등장 -

 

 

 

 

























 

 

 

 

 

 

 

 

 

 

 

 

 

 

 

 

 

 

 

 

 

-최재천 변호사-

 






"93년 이후 무장공비 안내려오니 철책 다 걷어요?? 안전하니 철조망 없앨까요??"






 

" 한나라당은 국민들과 아고라앞에 무릎꿇어라 "

 

 

 

 

 

 

-운동권 대학생 유시민 27세-

 

판사들에게 외친 그의 한마디

" 전대가리의 개들아 백년만년 잘처먹고 살아라 ! "

 

이젊은 청년의 눈빛은 군사독재에 대한 원망으로 살기가 가득했다

그의 살기어린 눈빛은 386세대 젊은시절 독재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 해주고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젊은 386세대들의 등장과 밑에 한남자의 등장으로 김대중을 이을 제2의 민주화항쟁은 시작된다

 

 

 

 

 

" 이의있습니다 ! 반대토론을 해야합니다 ! "

 

김영삼이 3당합당 민자당 (김영삼,전두환,노태우,김종필)

 

독재와 손잡고 대구+경북+경남+충청 지역주의로 민주주의를 배신하려 하자 거세게 항의한다

 

 

 

 

 

 " 친일군사독재 민자당(한나라당)은 해체되야 한다 ! "

 

"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민주당 경선에 관심갖지 마십시요 ! "

 

 

 

 

-1988년 혜성같이 등장한 5공 청문회 정치스타 노무현-

 

" 와~~~저양반 대단하네 전두환대통령각하 한테 저렇게 해도되나? "

 

청문회에서 독재자 전두환에게 명패를 던진 젊은 정치인 노무현

당시 김영삼 밑에있었던 노무현은 김영삼의 패거리들이 광주청문회에서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 호남문제라며 김대중의 민주당이 알아서 할것이라며

슬금슬금 눈치보며 피하는것에 분노를 느껴왔다

 

그후 독재와 3당합당으로 민주주의를 배신한 김영삼을 떠나 민주당으로 입당후

호남비방만 하는 한나라당 후보에 밀려 어처구니 없게도 부산에서 연일 낙선한다

 

" 광주에서 콩이면 부산에서 콩이고 대전에서도 콩이다 "

 

경상도에서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오시면 동네이장도 할수없는 말도안되는 현실입니다

우리가 남이가, 이것을 버려야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말씀하셨습니다 머리는 빌릴수있지만 건강은 빌릴수없다고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지식이 없는자가 대통령이 됩니까

진짜 지성이 대통령이 되야합니다 민주당 김대중 총재는 그럴자격 충분히 있습니다

 

조선건국 이례로 600년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번도 바꿔보지 못했고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음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패가망신했다. 600년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거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짖밟고있어도 보란듯이 결국 고개를 숙이고 외면했어요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생애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가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역시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가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저는 경상도에서 깃발만 꼽으면 당선되는 지역주의자들과 싸울것입니다 사람을 봐주십시요 !

더럽고 아니꼬운 꼴 안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

 

그래도 그는 그의 정치적고향 부산에 관심을 끊지 않았다

그뒤 지역주의자들과의 전쟁을 다짐한다

 

그리고 그에게 붙여진 별명         " 바 보 "

 

정치인이기 전에 투사로써의 이미지는 국민들에게 각인되었다

 

이사람은 후에 제2의 민주당출신으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에 입성하게 된다

 

 

 

 

민주정권인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친일파 명부를 만들고

 

진상을 조사하는 작업이 진행됩니다.

 

친일파들은 위기감을 느낍니다. 정치적 탄압이라고 마구 훼방을 놓습니다.

 

 

그 과정에서 뉴라이트가 결성됩니다.

 

 

 

 

 

 

 

 

 

그냥 상대방을 빨갱이로 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과거 행적을 감추려 들지 않습니다.

 

아예 맞불을 놓습니다.

 

 

식민지 시대가 좋은 시대였다고 우기기 시작합니다.

 

친일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죠.

 

통계 자료를 가져와 식민지시대가

 

이렇게 경제 발전이 된 시기였다고 주장합니다.

 

근대화 시대였다고 주장합니다.

 

자신들을 친일파라고 부르지 말고 근대화 세력이라고 불러 달랍니다.

 

자신들을 군사독재 세력이라고 부르지 말고

 

근대화 세력이라고 불러 달랍니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친일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됐지!',

 

'독재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됐지! '

 

 

 

 

 

그리고 이명박을

 

 

밀어줍니다.

 

 

 

 

'범죄자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사기꾼이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이게 먹힙니다.

 

 

 

 

마침내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었고,

 

 

뉴라이트는 새로운 정부의 각료로 곳곳에

 

포진되었습니다.

 

 

이들은 지금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 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식민지 시대, 독재 시대를 근대화 시대로 바꾸겠노라고 수정하고 있습니다.

 

 

일제시대 친일파-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

 

으로 이어지는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았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이들이 권력을 놓친 시기는

 

딱 지난 10년 동안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릅니다.

 

 

 






 

 

 

 

" 호남이 선택한 영남 대통령 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 "

 

노무현 대통령 서거후 평생민주화동지였던 팔순이 다된 늙은 노정객의 통곡

 

"평생 민주화 동지를 잃었고, 민주정권 10년을 같이했던 사람으로서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입니다."

 

노무현이란 사람은 그에게 사랑하는 자식같은 존재였다

같은 민주당 출신인 그둘의 관계는 핏줄이었다 아니 피보다 진했다 ...

 

나는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교동에서 독일 〈슈피겔〉 지와 인터뷰를 하다가 비서관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왜 그때 내가 그런 표현을 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온 과거를 돌아볼 때 그렇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노 전 대통령 생전에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에 처해지는 상황을 보고 아무래도 우리 둘이 나서야 할 때가 머지않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나는 상주 측으로부터 영결식 추도사 부탁을 받고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지 못했습니다. 정부 측에서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어이없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정부에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추도사는 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영결식장에서 하지 못한 마음속의 그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로 대신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십시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을 살았던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같이 유쾌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을 나는 아주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우리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조문객이 500만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그것이 한과 한의 결합이라고 봅니다. 노무현의 한과 국민의 한이 결합한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억울한 일을 당해 몸부림치다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나도 억울합니다. 목숨 바쳐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억울하고 분한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입니까. 1980년 광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1987년 6월항쟁을 전후해서 박종철 학생, 이한열 학생을 포함해 민주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그런데 독재정권, 보수정권 50여 년 끝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10년 동안 이제 좀 민주주의를 해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되돌아가고 경제가 양극화로 되돌아가고, 남북관계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꿈같습니다, 정말 꿈같습니다.

이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각성하는 시민이어야 산다.”, “시민이 각성해서 시민이 지도자가 될 정도로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말해온 ‘행동하는 양심’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 각성하는 시민이 됩시다. 그래야 이깁니다. 그래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꼭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바르게 투표하면 됩니다. 인터넷 같은데 글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민주주의 안 하는 정부는 지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일 때, 그것조차 못한다면 좋은 나라와 민주국가 이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은 타고난,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을 가진 우리 헌정사에 보기 드문 지도자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을 사랑했고, 가까이했고, 벗이 되고자 했던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항상 서민 대중의 삶을 걱정하고 그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유일하게 자신의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당한 조사 과정에서 갖은 치욕과 억울함과 거짓과 명예훼손을 당해 결국 국민 앞에 목숨을 던지는 것 외에는 자기의 결백을 밝힐 길이 없다고 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알고 500만이 통곡했습니다.

그분은 보기 드문 쾌남아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가졌던 것을 영원히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라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적으로 사는 세상, 이런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뜻을 계속 이어가서 끝내 성취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했다고 해도 서거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500만이 나와서 조문했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그 한과 억울함을 푸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분의 죽음은 허망한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역사에 영원히 살리도록 노력합시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허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뒷일을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나와 노무현 대통령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평화를 위해 일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후배 여러분들이 이어서 잘해주길 부탁합니다.

나는 이 책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가 그런 후배 여러분의 정진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뷰하고 오연호 대표 기자가 쓴 이 책을 보니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전후에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책으로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공부하십시오.

그래서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를 재발견해 계승하고, 극복할 것이 있다면 그 대안을 만들어내서, 결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길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평소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했던 미국 민주당 빌클린턴 대통령

늙어서도 공부와 독서를 게을리 하지않는 민주주의의 지성 김대중 대통령을

세계지도자들은 존경한다고 말한다

 

 

1981 Bruno-Kreisky 인권상 / 1983-현재 미국 Robert Kennedy 인권상위원회 고문 / 1983-현재 국제고문희생자 구원위원회 고문 / 1983-현재 미국 Pittsburgh La Roche 대학교 이사 / 1983 미국 에모리대 명예법학박사 / 1987 미국 George Meany 인권상 수상, 북미주 한국인권연합 인권상 수상 / 1992 모스크바대학교 외교대학원 정치학 박사 / 1992 미국 가톨릭대 명예법학박사 / 1993 제3회 애서가 상 (한국 애서가 클럽) 수상 / 1994 미국 New York Union 신학대학교 Union Medal 수령 / 1994 Russia 국제생태학협회 정회원 

1995 미국 포트랜드 주립대 명예인문학박사 / 1998. 2 무궁화 대훈장 / 1998. 4 영국 런던대 명예교수 / 1998. 6 미국 조지타운대 명예교수 / 1998 UN 인권협회 인권상 / 1999. 7 Philadelphia 자유메달 / 2000. 11 [라프토] 인권상 수상 / 2000. 12 노벨 평화상 수상 / 2001. 9 세계정치지도자상 수상 / 2002. 1 민주주의 수호자상 수상 / 2003. 5 제8회 늦봄통일상 수상 / 2003. 8 제7회 만해평화상 수상 / 2003. 12 칠레공화국 대십자훈장 수상 / 2003. 12 춘사 나운규 영화예술제 공로상 수상

 

 

 

 

 

 

온갖 명예로운 상이란 상은 다 탄 김대중,그에게 열등감을 가진 일부 정치 세력들이 온갖 시기 질투를 하며 그를 깍아 내렸지만 국내의 양심세력과 세계의 양심 세력은 그의 업적을 기꺼이 인정 해주고 박수를 쳐주었다. 그 오랜 정치적 역정을 통해 쌓은 업적 으로 받은 상을 돈주고 받았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불쌍하다는 생각만 든다.

외국의 평가는 이렇다.

"김대통령은 나에게 살아가야 할 힘, 살아가야 할 삶의 스승이자 길잡이다"(조스팽 프랑스 총리),

"김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독일이 한국의 금융위기 때 한국을 돕는 동기가 됐다" (라우 독일 대통령)하는 식이었습니다"


[선진국에 갈수록 그는 넬슨 만델라와 동격인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 '20세기의 영웅'이었습니다. 현지 언론들은 그의 방문에 맞춰 DJ 일대기를 특집으로 제작하고 특집면을 만들었습니다.


에이펙이나 아셈처럼 세계 강대국들이 모두 참석하는 국제회의에서도 DJ는 거의 언제나 첫 번째의 발언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지난해 덴마크에서 열린 아셈 때는 주최국인 덴마크의 라스무센 총리가 각국 정상들을 소개하면서 오직 DJ에게만 "excellent leadership, President Kim"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블레어와 시라크, 주롱지와 고이즈미 같은 쟁쟁한 인물들도 아무 수식어 없이 이름만 소개됐는데 말입니다. 그만큼 DJ에 대한 특별대우는 국제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였습니다.

DJ가 참석하는 기자회견이나 투자유치 설명회는 그의 이름만으로도 일단 대성황을 이뤘습니다. 정상들간의 외교적 수사(修辭)는 늘 과장되게 마련이지만 DJ에 대한 것은 수사라 하더라도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한 기자는 이렇게 술회했다.

"대한민국의 CEO인 그가 이런 'DJ 브랜드'를 갖고 있었으니 이것이 한국에 대한 투자유치와 IMF 극복, 그리고 우리나라의 외교적 위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네임밸류에 만족하지 않고 발로 뛰면서 한국 경제와 햇볕정책을 세일즈했습니다. 해외순방 때마다 저는 80에 가까운 DJ가 강행하는 빡빡한 일정에 먼저 넉다운이 될 지경이었습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DJ의 공식일정은 전임 대통령들의 두 배가 넘었습니다.

유력 언론들이 자신의 국정이념을 제대로 전해주지 않으니 직접 뛰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연설문은 밤을 새워가면서 직접 작성했고 지난해 2월 '악의 축' 발언으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됐을 때는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준비하느라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역대 81번째, 아시아인으로서는 일곱번째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기록된 김 대통령이 노벨상에 처음 후보로 추천된 것은 1987년이었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앞장서 서독 사민당 의원 73명이 추천한 것이 최초였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추천 사유는‘한국 민주화와 인권 신장을 위한 투쟁과 3단계 통일방안을 제창해 남북 평화에 기여한 공로’였다. 이후 인권 향상과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의 공로로 매년 추천되어 올해까지 14회에 걸쳐 후보로 올랐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 동안 몇 차례나 수상 직전까지 갔었다. 대표적인 것은 지난 1992년으로 남아공의 만델라 당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장, 데 클레르크 남아공 대통령 등과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재미있는 것은 1987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리아스 산체스 코스타리카 전 대통령이 올해 김대중 대통령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사람들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은 매년 빠짐없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추천됐다. 1987년의 경우처럼 초기에는 주로 그의 민주화 투쟁에 공감한 외국인들이 추천을 했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맞붙어 패배한 후 수차례에 걸친 죽음의 고비와 감옥 생활 등을 거치면서도 굽히지 않았던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투쟁에 공감한 결과였다. 외국의 정치인들을 비롯해 김대중 대통령과 친분이 각별한 인사나 교수들이 추천에 앞장섰다.

예컨대, 지난 1990년엔 스웨덴 웁살라대 닐 엘반더 교수를 비롯한 스웨덴 프랑스 노르웨이의 학자, 정치인, 문인 등 35명이 김대중 대통령을 추천했고, 스웨덴 사회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추천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로마 바티칸 주교단체, 미국 가톨릭 계열 대학, 엠네스티 등 해외 인권단체 등도 자주 추천한 단체들이다.

노벨 평화상 추천 자격은 노벨위원회 전현직 위원과 노벨연구소 자문위원, 각국의 현직 각료와 의원, 국제사법재판소 및 국제중재재판소 재판관, 정치학·법학· 철학·역사학 전공학자, 역대 노벨 평화상 수상자 등 일정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나 단체만이 가능한데, 김대중 대통령은 이들로부터 여러 해에 걸쳐 복수 추천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 동안 노벨 평화상에 추천된 사유는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에 집중돼 있지만, 해마다 약간씩 추천 사유가 달라졌다.

예컨대, 1999년 추천 사유는 IMF 환란 극복 노력과 금강산 관광 등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한 공로였고, 올해 1월에는 아시아 국가간 관계를 발전시킨 공로로 추천되었다. 
 

 

조셉 바이든 (부통령)
오바마와 런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된 바이든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그분과 나는 매우 친분이 두텁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한다고 한다.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루빈은 오바마 정권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오바마 경제팀이 거의 다 '루빈 사단'에 속해 있다. '스타군단'으로 알려진 오바마 경제팀의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로런스 서머스 NEC위원장 등이 루빈 인맥이다. 루빈 역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김대중 대통령이다"며 공개적으로 자랑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말이 필요없는 대표적인 친DJ다. 현직시절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반해 김대중만 졸졸 따라다니며 미국의 대북정책을 지휘했다. 스스로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시간을 자랑스러워 한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한국정부가 '국가원수' 대접을 하면 목에 힘이 들어갈만도 한데, 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님께 '안부인사' 드리는걸 잊지 않았다.

티모르의 오르타장관(현 대통령): '김대중은 가장 유명한 독재자에 목숨을 걸고 항거한 사람이었다. 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지도자를 비난하는지 묻고 싶다. 질투 때문인가"

 
라우 독일 대통령: "김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독일이 한국의 금융위기 때 한국을 돕는 동기가 됐다"

미셸 깡드시 前 IMF총재.."한국은 김대중씨를 대통령으로 두고 있다는 자체를 행운(luck)으로 받아들여야 할것입니다. 경제위기를 맞아 몇가지 고비가 있었지만 IMF와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 전반은 김대통령을 믿고 한국을 밀어준 측면이 적지 않은게 사실입니다...", "엄청난 탄압에도 좌절하지 않고 마침내 자신의 뜻을 이뤄낸 김대통령은 만델라의 삶을 연상시킵니다."

조스팽 프랑스 총리.."김대통령은 나에게 살아가야 할 힘, 살아가야 할 도덕적 스승이자 길잡이다"

제임스 울펀슨 세계은행 총재.."민주화뿐 아니라 경제의 재구축에 성공하고 있는 김대통령은 세계를 감동시키는 지도자 입니다..."

세계적 경제전문 통신 블룸버그..."김 대통령은 경제ㆍ정치ㆍ외교 분야에서 이룬 업적으로 반세기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77세의 김대중씨는 한세대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지도자의 업적을 이뤘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 "세계에서 단임 5년에 김대중씨 만큼 변화시킨 대통령은 거의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김대중씨처럼 한국 경제에 공헌한 대통령은 없기 때문에 한국민은 떠나가는 김대중씨를 마음으로 부터 감사해야 한다"

 



노벨위원회 군나르 베르게 위원장이 반국가적 반이성적 수구보수 패권세력들의 이러한 행태를 두고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한국'이라면서 "나는 한국인에게 노벨상을 주지 말라고 한국인들로 부터 로비 시도를 받았다. 노벨상은 로비가 불가능하고 로비를 하려고 하면 더 엄정하게 심사한다. 한국인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고 말하였다

그는 또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반대하는 편지 수천통이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내가 노벨 위원회에 들어온 이래,처음있는 일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나라에서 반대 편지가 대량 전달된 것이 경상도라는 특정지역에서 날아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그지역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노벨상 중에서도 가장 노벨의 염원을 담고있는 평화상이 로비를 받아낼 수 있는 상이라면 과연 세계 제일의 평화상으로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편지를 보낸 사람들에게 묻고싶다. 노벨상은 로비를 통해 수상할 수 있는 상이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상이 얼마나 가치를 유지할수 있을까. 그러기에 더더욱 그 가치가 찬란히 빛나는 것이다. 왜 다수의 한국인들이 김대중의 위대함과 그의 민주주의를 향한 불굴의 의지에 감명받지 못하는지 그이유가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며 통탄을 금치 못하였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바 있는 현 동티모르의 오르타 대통령도 월간 조선기자가 "김대중이 노벨상을 받으려고 로비를 한게 아니냐"며 집요하게 묻자 "멍청한 소리 하지 말라 김대중은 가장 유명한 독재자에 목숨걸고 항거한 사람이었다.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지도자를 비난하는지 묻고싶다. 질투 때문인가"라고 대답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유럽연합의 맹주격인 독일쪽의 대통령들도 바이든 이상으로 DJ에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퇴임후 훈장도 수여하고 직접 도서관에 방문해 안부도 묻고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미주지역까지 그 위상은 상상 이상입니다.

 

 

 

 

그리고 또한명

 

김대중대통령이 대한민국 제2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목하고 추천했으며

 

함께 서러움과 외로움을 느끼며

 

아꼇던 한 경상도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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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대통령 그분은 그 시기에 가장 탁월한 정치인이었습니다.

한 시대의 역사적 가치의 상징이었죠. 민주주의라는 역사적 가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분을 평가할 때 그 점을 우리가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퇴임 5년이 지난 지금 이런저런 평가들이 있지만, 내가 청와대에 들어와서 보니

이 정부의 구석구석에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남아있었습니다.

내가 창조적인 것이라고, 내가 처음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들어가 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있더란 말입니다. 그런 것이 한두 개가 아니고 상당히 많습니다.

정부 혁신 부분에도 그런 것이 있고,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모든것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분 스스로 비전, 전략, 정책에서 역시 탁월한 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강대강 주변의 학자들이 적어준 것이 아니라, 머리를 빌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입니다. 한 수준을 뛰어넘는 거죠. 머리를 빌려서 하는 지도자와는 다릅니다. 말하자면 철학과 가치, 전략, 정책 모두 탁월한 정치인입니다

해외 다니면서, 외교하면서 제가 받은 느낌인데요, 한국이 국제무대의 당당한 일원으로 등장한 때는 국민의 정부부터입니다. 지도자의 정통성이 국가위신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많이 실감하고 다닙니다. 제가 국민의 정부의 정책을 다시 한번 평가해 보면서 과연 지도자의 자리는 머리를 빌려서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 같다, 해박한 지식, 지식과 정보에 대한 탐욕, 깊이 있는 사고력, 잘 정리된 가치와 철학이 꼭 필요한 자리인 것 같다,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김대중 대통령님 그분은 천재시지요 저는 그분을 매우 존경합니다"

 

 

 





바보 노무현이 존경했던 3명의 인










 

 

링컨 , 김구 선생 ..그리고..김대중 대통령

 




김대중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민주당)

본관 : 경상남도 김해

고향 : 전라남도 신안

학력 : 목포상업고등학교

거주지 :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

대한민국 민주주의 초대 대통령

 

노무현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민주당)

본관 : 전라남도 광주

고향 : 경상남도 김해

학력 : 부산상업고등학교

거주지 : 자유민국 민주동 하늘나라

대한민국 민주주의 제2대 대통령

 

 

 

울지마라 민주주의야

 

 

 

지지마라 민주주의 여


 

노무현대통령과 같은 민주당출신인 김대중 대통령은 노대통령서거후

노무현 대통령과 전생에 가족이지 않았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한다

 

 

 

 

 

 

뉴스후 부활하는 친일 (1.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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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마라 대한민국아 사랑한다

 

 

 

 

 

 

 

 

 출처:아고라 자토방 강남구학생님의 "★당신은 알고있습니까?부산이 김대중을 응원했다는사실을★실화"

Posted by 명박퇴진안모씨 명박퇴진-안모씨 Trackback 0 :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