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 "YS 다혈질, DJ 능숙"…노무현은?

SBS | 권영인 | 입력 2011.05.01 21:24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광주

< 8뉴스 >

< 앵커 >

폭로전문 사이트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켜 온 위키리크스가 미 국무부 외교전문을 또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역대 한국 대통령에 대한 주한 미국 대사관의 평가가 담겨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권영인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국무부 외교 전문입니다.

유엔 사무총장 선출을 앞둔 2006년 7월 주한 미국 대사관의 보고 문서가 담겨 있습니다.

한국-태국-인도-스리랑카가 경합했었는데 한국의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 게 미국에 유리할 것이라는 취지의 전문을 본국에 보냈습니다.

주한 미 대사관은 반기문 당시 장관이 성향이 다른 한국 대통령들을 잘 모셔온 외교관이라면서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를 첨부했습니다.

먼저 김영삼 전 대통령, 성격이 다혈질이고 보수적인 정치 이념을 갖고 있는데, 대다수 정책 현안에 대해서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평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국제무대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로 외교 정책 모든 부문에서 능숙했다고 평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졸 출신의 대통령으로서 국제 무대에서는 신인이지만 주관이 뚜렷하고 신념이 확고하다고 평가했습니다
.
이 외교전문이 작성된 것은 한국의 노무현, 미국의 부시 정부시절로 주한 미국 대사는 버시바우 대사였습니다.

(영상취재 : 신동환, 영상편집 : 이재성)

권영인 k022@sbs.co.kr

(원본 뉴스 링크: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10501212423278&p=sbs)



아무래도 자국민이 아니라 외국인이 바라본 것이라 공정한 것이겠지만, 이 기사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두 분 대통령님의 외교력에 놀란다.
그렇다. 우리는 제작년, 이렇게 실력있고 위대한 두 외교전략가를 잃어 버린 것이다...... 수구언론에 낚여서....
행동하는 양심 김대중 대통령님과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노짱님, 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사무치게 그리워져 옵니다.

추신:그나저나 여담이지만, 역시나 반기문 사무총장은 유태자본의 농간질로 뽑힌 것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는....

참고(수구쥐벼룩 여러분들께 드리는 글.):
이 글을 포함한 모든 이 천민놈 글은 무단복사 및 펌질+조작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만약 제 글이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지 국정원에(안기부 아니었든가?) 전화하세요.
적어도 3천만원은 받으실 겁니다. 뭐 운 좋으시면 이 천민놈 코렁탕 뚝배기(!)도 대접하실 수 있고 1억5천도
받으실 겁니다. 전화번호는 국번없이 111.(참고로 개짭새는 113입니다.)

그리고 제 글에 대한 상담은 요기로 와서 상담하시길. 다만, 정사충,수꼴,뉴또라이는 사절함.

본진:http://mbout-os21cccc.tistory.com
전진기지:http://blog.daum.net/os21cccc
예전기지:http://blog.hani.co.kr/os21cccc(관리 안함)
트위터:http://twitter.com/MBOUTos21cccc
페이스북:http://facebook.com/MBOUTos21cccc

뽀나스로, 필자의 글이 문제가 있으면 알아서 삭제하거나 수정조치 하겠습니다.
(참고로 다시 말하지만 이 글에는 절대로 '저작권'이 없'읍'니다. 이 글은 철저히 copyleft를 지향합니다.)

쥐박이 쉒기는 1%만의 대통령이다.
99%의 국민은 안중에 없고친일매국노 짓에 정신없다.
용산학살을 자행하고도 여론을 조작하고 
국민 복지는 관심 없이 쥐 일족 밥그릇 챙기는 것만 열중이다.
경제 위기 극복 능력 없이 국민 탓만하고 있다.
쥐박이의 무능을 홍보 부족으로 착각하고 방송을 장악하려고 시도하고 
한반도를 대운하로 토막 내려 한다.
서민 복지 예산 대폭 축소하고 콜센터 이미지 마케팅에만 열중한다.
쥐박이 정책의 잘못을 지적하면 무식한 알밥들을 풀어 유신 시절의 반공이데올로기를 부추긴다.
국가 비전의 제시없이 기도만 하면 되는줄 아는 무뇌충 개.독이다.
그런 쥐쉒이를 따르는 쓰레기가 서너명있다

Posted by 명박퇴진안모씨 명박퇴진-안모씨 Trackback 0 : Comment 0

"내 소원은 민주정부 장기집권… 100만 명이면 된다"
(양정철닷컴 / 양정철 / 201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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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근.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개성 강한 연기로 국민들을 울리고 웃긴 배우. 이지적 이미지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이름을 날리다, 어느 날 노무현 선거에 뛰어들어 강렬한 포스를 남긴 한국의 대표적 현실참여 문화예술인. 자신이 밀었던 후보가 대통령이 되자 아무 덕도 안 보고, 뒤도 안 돌아본 채 은둔에 들어간 결벽증 환자 같은 사람. 이 때문에 방송-영화판에서 '신세 망친' 것으로 알려진 비운의 주인공. 노 대통령 서거 후 자폐생활을 이어가다 1주기 행사 때 눈물의 추모연설로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사람. 따라서 영화나 연극만큼이나 극적인 인생을 살아온 사람. 그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배우로서가 아니라 시민혁명을 주창하며. 무대가 아니라 시장골목을 누비며. 거리극의 제목은 ‘100만 민란 프로젝트,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궁금했습니다. 그만큼 '쓴맛'을 봤으면 됐지, 왜 또 사서 고생하는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무모해 보이는 고난의 길로 다시 나섰는지. 14일 안산의 한 시장골목 카페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안산시민들과의 민란행사를 세 시간 앞두고, 그 간의 굴곡 많은 인생과 현재 생각, 앞으로의 삶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2012, 총선서 승리하면 대선도 이긴다"

양정철(이하 양) : 괜찮으세요? 몇 달째 빡빡한 전국순회일정 소화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얼굴이 덜 상했어요.

문성근(이하 문) : 체질인가 봐. 아직 쌩쌩해. (웃음)

양 : 요샌 100만 민란 활동에 거의 올인하고 계시죠. 모르는 분들이 아직 많은 것 같은데 100만 민란 프로젝트가 뭐예요?

문 : 2012년 12월이 대선인데, 4월에 총선이 먼저 있어요. 그래서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이 대선에 이길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아요. 어떻게든 총선을 이겨야 하는데, 지금 야당이 다섯 개, 사회당까지 치면 여섯 개로 분열돼 있는 구조거든요. 이걸 어떻게 극복할 거냐. “지난 6·2선거에서 연대를 했으니까 그 방법으로 가능하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6·2선거 경우엔 후보의 층이 네 개란 말이에요. 기초의원,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광역단체장. 후보는 수천 명. 주고받기가 얼마든지 가능했는데도 불구하고 중앙에서의 연대는 깨졌어요. 각 지역별로 노력한 거였죠.

그런데 2012년 총선은 국회의원 240개 지구당에서 한 자리를 놓고 모든 정당이 경쟁을 하는 구도거든요. 그러니까 벌써부터 조직 만들고 돈 쓰기 시작하고, ‘왜 내가 되고 저 사람은 안 되는가’ 논리 개발하면서 서로 상처를 주기 시작할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 임박해, 어떻게 후보를 조정해 낼 것이냐? 그 방법으로는 승리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거죠.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은평을’이나 경기도지사같이 선거에 임박해서 후보단일화하는 건데, 방법은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겠죠. 그렇게 되면 최선의 후보가 안 뽑힐 가능성이 커요. 바로 은평을 같은 경우죠.

최선의 후보가 뽑혀도, 선거는 연애 같은 거거든요. 후보자와 유권자가 마음을 주고받는 과정이에요. 이미 한번 마음을 줘버린 유권자 입장도 있고 당원들 입장도 있죠. 그러니까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탈락하면, 처음에 지지했던 후보만큼 단일화된 후보를 지지하지 않게 돼요. 그게 경기도지사 선거의 경우죠.

양 : 재미있는 메타포네요.

문 : 물론 ‘불리한 점이 있다’ ‘불리한 점을 가지고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도 남는 문제가 있어요. 민주당의 변화를 추동해볼 기회를 상실한다는 거예요. 민주당은 지금 반민주적 운영구조를 갖고 있고, 방치하면 그 정당구조의 한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전혀 남지 않아요. 총선을 이기려면 한나라당과 1:1로 맞붙는 최강의 후보를 민주진보진영에서 찾아내야 된다, 그 방법은 결국 같은 정당 안에서 상당한 기간을 두고 경선을 통해서 최강의 후보를 뽑아내는 것이다, 이렇게 판단이 되는 겁니다.

그랬을 때 방법은 정당 지도부 간의 통합인데, 이거는 정당 내부 논리가 있고 기득권이 있어서 안 되는 거죠. 연대가 안 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남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 다수가 모여서 국민의 힘으로, 여론의 힘으로, 야 5당을 압박해서, 그들이 국민의 뜻에 복종하게 만들고, 그 안에서 야권 단일정당을 만들어서 후보를 단일화하는 것이다,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게 생각한 거죠.

양 : '취지와 뜻은 좋은데, 현실적으로 그게 되겠느냐?' 하는 걱정이 많은 게 사실 아닌가요?

문 : 처음에 걱정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첫 번째는 유력한 정치인이 없다, 두 번째는 2012년 선거 일정을 국민들이 잘 모르신다, 대선 전에 총선 있다는 점도 모르신다, (다들 대선 후보만 관심을 갖고 있는데, 전 전혀 없거든요.) 세 번째는 촛불이 붙었다든가 선거라든가 하면 모르는데, 평시체제에서 이런 운동을 어떻게 긴박하게 호소할 거냐, 이런 걱정인 거죠. 그것 때문에 모든 분들이 안 될 것이라는 생각 많이 했어요. 그래서 채택한 방법이 삼보일배입니다. 거리로 나가 바닥부터 불씨를 지피고 전국을 돌았어요. 반응이 오고 느낌이 왔어요. 서서히.

한 전환점이, 우금치 대회였던 것 같아요. 시민사회단체 지도급에 있는 분들도 참관을 많이 왔고 정당관계자도 많이 오셨어요. 일반 시민들도 1500명가량 모이면서 아주 열기를 가지고 진행이 됐지요. 그게 한번 넘어가는 단계였고 그때부터는 ‘이건 됐다’라고 자신했어요.

그는 이 대목에서, 전국 각 지역에서 자신이 만났던 많은 참여자들, 여러 자원 봉사자들의 아름다운 희생과 헌신과 고생을 한참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의 반응과 체온으로 느낀 민심을 진지하게 설명했습니다.

양 : 가장 첨예한 이해당사자인 현실정당 쪽 입장을 무시할 순 없을 텐데, 각 정당들 반응도 중요하지 않나요?

문 : 민주당의 경우에는 최고위원 세 분(이인영, 천정배, 박주선 최고위원)이 회원으로 들어왔습니다. 김영춘 최고도 같은 의견이라니까, 최고위원 가운데 반이 함께 하는 거죠. 그리고 정치적 비중이 있는 김근태 유인태 원혜영, 이런 원로들이 뜻을 같이해 주셨구요. 지자체장 중에서 김두관 안희정 이광재 지사도 뜻을 함께해 주셨고. 참여당에서 정찬용 고문, 이백만 최고위원, 창조한국당 김서진 전 대표 등도 함께해 주시기로 한 상태예요.

민노당 진보신당은 고민 중이시지요. 두 당도 현장에 계신 분들은 고민 많이 하고 있고, 당 결정을 기다리는 거죠.

양 : 민노당 진보신당은 고민이 더 클 텐데요. 흡수소멸 되는 거 아니냐는….

문 : 오해가 있습니다. 저희 제안대로 가면 당이 흡수 소멸되는 것 아니냐는 거죠.


"당대당 통합 아닌 연합정당, 제1당 가능하다"

양 : 대부분 그렇게 이해할 텐데요.

문 : 아닙니다. 결코 아니에요. 저희 제안을 잘 안 보신 겁니다. 연합정당으로 가자는 거예요. 당론을 강제하지 않는, 합의할 수 있는 만큼만 합의하고 합의 안 되는 거는 정파로서 경쟁하자는 거거든요. 당대당 통합하려는 게 아니에요. 당대당 통합하면 당연히 소멸되죠.

민주당, 민노-진보, 참여당까지 당원 수 차이가 각 당별 거의 10만입니다. 각 당의 대의구조, 논의구조의 한계를 압니다. 그 위험 부담을 안으라는 얘기가 아니고, 국민이 모이겠다, 다수가. 다수가 모여서 우선 10만 이상 되면 동수가 된 거 아니냐, 원컨대 각 야당 다 합친 40만 보다 더 모이겠다, 우리는. 50만 100만이 모여서 여기에 들어와 같이 가자는데 왜 소멸되느냐는 겁니다. 저희 안에 대해 동의하는 시민들은 상대적으로 개혁 진보적인 사람들이 참여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되면 절대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죠.

양 : 그 다음에는요?

문 : 연합정당이 되면 민주적 운영구조로서의 결선투표가 있잖아요? 그러면 결선투표에서 진보적인 분이 통과될 가능성이, 지금 독자존속 할 때보다 훨씬 높아져요. 그러면 당연히 당선 비율도 높아지죠. 이 연합정당 틀로 제1야당이 되자는 겁니다. 그렇게 2012년 4월 총선에서 제1당이 되자, 집권당이 되자, 그래서 진보진영의 복지와 노동을 맡는 정파가 되자, 그러면 지역구도가 완화된다는 얘기고 남북분단이 완화된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그러면 발판이 약화되지 않느냐고 하는 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정치는 진보가 돼 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진보진영이 결국은 집권당의 소수 정파가 아니라 집권당의 다수 정파까지 갈 수 있죠. 그게 방법 아니겠어요?

민노당이 2012년에 집권목표를 2022년으로 다시 옮겼어요. 지금 구조에서 그런 목표가 되냐 이거에요. 일단 연합정당 해서, 제1공약을 표의 등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 개편으로 걸자, 그렇게 해서 만약에 집권하자마자 선거법 개정에 성공하면 분립하자, 아예. 분립 꼭 해야 하면 하는 거고 안 해도 된다면 그냥 있는 건데, 선거제도 개편이 안 되면 길게 보고 진보가 확산 돼 가는 세월을 두고 한나라당이 3당 될 때 분립하자는 거거든요. 그게 맞는 방법 아니겠어요?

노동자와 빈민의 고통이, 진보정당이 없어서 고통스러운 걸까요, 아니면 법을 못 고쳐서 고통스러운 걸까요? 법을 못 고치는 거 아닌가요? 그러면 법 고칠 수 있는 다수당 되자는 거예요. 민노당 진보신당 경우도 당내 여론이 조금씩 확산돼 갈 것으로 봐요.

저는 민노당 진보신당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분들의 20년 노력이 보통 일인가요. 그걸 존중하면서 모두가 이기는 좀 더 나은 방법을 제시 드리는 것이에요.

양 : 민란 취지와 방법론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또 힘든 일을 자청하신 거예요?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프고 걱정이 돼서 묻는 겁니다.

문 : 이 안을 발상한 건 저예요. 처음에 논의한 사람이 이창동, 조기숙, 김창호, 최민희, 김두수 이랬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 안을 대중적으로 알리려면 얼굴이 알려진 제가 하는 수밖에 없었던 거죠. 제 책임감도 있었고. 선거에 출마해본 사람만 아는 아픔일 텐데, 거리에 나갔을 때 시민의 냉대나 무관심이 말이죠. 이게 선거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거리에 나갔을 때 관심 못 끌면 얼마나 마음의 상처고 충격인지 잘 아는데,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민란 발상, 예술적 발상 전환에서 가능"

양 : 발상이 도발적이고 독특한데, 직접 짜 낸 제안이죠?

문 : 안 그래도 누가 물어보던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아, 내가 배우라서 이런 발상을 했구나.’ 싶더라구. 그러니까 배우나 감독은 모든 체제의 무게를 안 느껴요. 뒤집어 보는 거예요. 영화 <웰컴투 동막골> 식의 발상 전환, 영화감독이니까 하는 거지, 그런 상상을 어떻게 해? 체제에 대한 위압을 안 느껴요. 늘 뒤집어 보죠. 심지어 윤리 도덕도 뒤집어보잖아. 영화 <경마장>이나 <너에게 나를 보낸다>도 그랬고. (웃음)

양 : 문화 예술적 상상력에서 나왔단 얘기네요?

문 : 그런 거죠. ‘왜 안 돼? 왜 민주당은 개혁이 안 된다고 생각해. 문제가 뭔데? 25만 당원이 문제야? 그러면 그보다 많은 100만이 모여서 같이 하라고 요구하면 될 거 아니야?’ 그런 발상을 내가 아마 배우라서 그랬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양 : 처음 시작이 힘들었을 텐데요.

문 : 제가 완전히 수공업으로 제안서를 이메일로 뿌렸어요. 제가 거의 컴맹에 가깝기 때문에 이메일 주소를 파일로 받으면 즉시 옮길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걸 모르니까 하나씩 하나씩 입력을 했어요. 돋보기 쓰고 메일 보내는 데만 8시간 걸리고 그랬어요. 눈이 아파가지고. 그러면서 뿌리기 시작해서 한 50명 정도가 공동제안을 했지요. 그러면서 촛불도 집단적으로 만났고. 정치인 팬클럽 쪽 짱들한테도 뿌렸고.

양 : 앞으론 어떻게 해 나갈 생각이세요?

문 : 5만 명 넘어서면서 지금까지 지지한 분들 명단을 공개했어요. 그전에는 시민운동, 시민정치운동이고, 정치인들도 1/n이니까 특별히 우대하는 것도 모양새가 안 좋아 덮어두고 있었는데, 공개를 했어요. 그런데 인터넷으로 가입한 분들이 많아서 아직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1월 말쯤 되면 마이페이지 기능을 둬서, 정치인들께 방 하나씩 드리고, 다른 회원들과 대화도 할 수 있게 해서 확산시켜나가려 합니다.

그다음에, 이 일이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해서 시작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배우 한 사람이 그냥 지른 일’인 듯 생각하는 분들이 계세요. 상당히 정교하게 시작한 것이니만큼 5만 넘어가면서 ‘정책위원회’를 구성했어요. 조기숙 교수가 정책위원장을 맡아서, 정치사 쪽으로 이 운동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등을 놓고 심포지엄도 하고요. 그다음부터 각 정당이 합의할 수 있는 최대 공약을 만들어 간다 할까요? 이미 정당들 정책공약 작업이 있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시민생활 정치영역에서 제안할 수 있는 정책을 강화하는 그런 일을 할 계획이지요.

10만이 넘어가면 조금 더 공격적으로 할까 싶어요. 일단 정당들은 당론을 결정하기 어렵잖아요. 대신 각 당마다 동의하는 분들이 계시니까, 동의하는 분들과 시민사회에서 동의하는 분들, 일반 시민들, 이렇게 해서 원탁회의 같은 것을 제안 드릴까 싶어요.


안양교도소 옥중 부자의 기막힌 짧은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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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 전국을 돌면서 해야 되는 강행군인데 체력은 버틸 만하세요?

문 : 80일 했지요. 어제까지. 처음에는 주 6일을 거리에 나갔어요.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어느 순간 핑계를 노짱(그는 노 대통령을 항상 '노짱'이라 부릅니다.)한테 댄 거죠. '노짱이 주5일제 도입하지 않았냐. 우리도 주5일제로 민란 하자.' 저는 몰랐어요.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한 번은 2시간 인터뷰 두 개를 내리 했어요.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샌드위치 먹으면서 강연장 갔어요. 얘기가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아, 인간의 한계가 있는 거구나.' 느꼈죠.

아주 힘들 때, 마침 아버지(고 문익환 목사님) 묘에 인사드리러 갔었어요. 그때 드는 생각이, '왜 아버지는 우리가 면회 갔을 때마다 그렇게 늘 웃으셨나?'

양 : 문익환 목사님이 그러셨나요?

문 : 응. 아버지 얘기 잠깐 하면, 방북사건 공판장에서 내가 법정소란죄로 열흘을 감방에 들어갔었어요. 아버지 갇혀 있는 안양교도소. 그것도 아버지 옆 수감동에. 수감 돼 있는 분들한테 물어봤지. 문 목사 어디 계시냐고. 저기 계시대요. 3미터 높이 담벼락을 단박에 올라갔어요. 마당에 나와 운동하던 여러 수감자들이 도와줘서 그 사람들 등 타고 무단으로 넘어간 거지.

양 : 전설 같은 비화네요. 옥중야사.(웃음)

문 : 간수들이 잡으러 와서 끌려가기 전까지 아주 잠깐, 아버지 방 창문 쇠창살 사이로 얘기를 나눴는데, 찰라의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아. 아버지는 정말 칼같이 방을 정리해 놓고 계셨어요. 깨끗하게. 군대 신참들이 모포 접어 놓은 듯 방 구석구석을. 그리고 거기에 단정하게 누워 계시더라고. 그런데 방에서 우선 노인 냄새가 확 나는 거라. 돌아가신 듯 조용히 누워계신데. 저러다 진짜 가시면 어쩌나 그 걱정이 들었어요. "아버지!" 불렀더니, 못 알아들으셔서 더 크게 불렀어요. 그랬더니 "어" 하고 일어나서 오시는데 얼굴이 시체 같아. 아무 표정이 없어요. 지금도 안 잊혀져. 그런데도 우리가 면회를 가면 언제나 늘 웃으며 "아! 좋아. 염려 없어. 유쾌한 일 있었어." 맨 날 그러셨거든. 교도소에서 직접 본 모습은 그게 아닌데. 가족이 걱정할까 봐 일부러 그러신 거였지.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하며 그의 눈에 잠시 눈물이 고였다.) 본인이 지쳤다고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갖고 계셨던 거예요. 아버지가 왜 그러셨는지 나도 이 일 하면서 느껴요. 나 지친다고 얘기 못 하는 상황을….

거짓말이었군요. 처음 얘기는. 사람인 이상, 전국을 돌며, 밤마다 홀로 여관방에서 새우잠을 자며, 날마다 열 시간 이상을 떠들어대며, 사람들 만나 연설하고 설득하는 이 일이 체질인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이 무지막지한 일을. 화제를 돌리고 싶었습니다.


"1주기와 6·2선거 도우며 이대로 안 된다 결심"

양 : 좋은 일이긴 한데, 이제 먹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니예요?

문 : 아, 나? 어떻게 먹고 살 거냐? 막걸리를 좋아하니까 대폿집을 만들어볼까 생각도 해봤고. 근데 안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웃음) 생계로 뭔가를 해야 되는데, 일단은 지금은 잊고 가요.

노짱 취임하고 나서 일부러 산에만 다녔어요. 참여정부 5년에 대해서도 일부러 관심 안 갖고, 열린우리당 공중분해부터 막 흘러가는 과정도 솔직히 아무 관심 안 가졌어요. 역사가 이렇게 흘러가나, 참 참담하게 흘러가네, 이렇게만 느꼈지 과정은 전혀 모르고. 그런데 노짱 돌아가신 직후에 다시 공부를 했어요. 어떻게 보면 노짱이 부엉이 바위에 몸을 던짐으로 해서, 포위망이 해체되고 우리 나아갈 길이 뚫린 거잖아요. 어떻게 단결하고 다시 묶어내는가, 늘 그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그래서 서거 직후엔 참여정부 했던 분들 계시니까 그분들께 자꾸 건의만 했지요. "어떻게 뭉칠 거냐?" 건의해도 뭐가 잘 안 받아들여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선수'들이 안 된다고 하시니 안 되나 보다. 잊어먹고 있었지.

그러다 1주기 행사 때 스피치를 하라는 거야. 그전에는 정치발언 일절 안 하고 살았거든. 서거 직후에도 언론에 아무 코멘트 안 했고. 거절할 수가 있나. 우리 노짱 제사인데. 원고가 왔는데 도저히 못 읽겠더라고. 내 생각이 아니야. 그래서 '에이 내가 직접 쓰자!' 결심했죠. 그걸 쓰느라고 동영상부터 봤어요. 마지막 날(5월23일), 집 나가시는 동영상부터. 글이 써지나. 술 한 잔 마시고, 혼자 대성통곡하다가. 그러고 어쩌고 하면서, 정말 내 마음속 얘기를 담아 스피치하면서 전국을 돌았죠.

전국을 돌며 그 얘기 하면서 서울 할 때쯤 됐을 때, '6·2 선거에 뭐라도 해야 되겠구나. 2012년에 이기려면 6·2 지방선거를 이겨야 되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6·2 선거에 지원운동을 다니기로 생각을 한 거죠. 그리고 6월2일 밤에, '이제 민란이다!' 이렇게 생각한 거죠.

그의 '생고생'이 안쓰러워 화제를 돌렸는데 다시 민란 얘기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이 일에 얼마나 목숨 걸었는지 확연히 보였습니다.

양 : 다시 민란 얘기네요.

문 : 그러네. (웃음) 처음 얘기할 때, 사람들이 생뚱맞다고 하고, 그다음엔 워낙 거대한 규모의 일이니까 잘 안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제가 "그럼 좋다. 나 혼자 한다. 나 혼자 여의도, 광화문, 민주당사 앞에 천막 치고서라도 한다. 당원 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얘기 할란다." 그렇게 시작을 한 거지요.

처음에는, 무조건 총선에서 이기는 것 중심으로 생각한 거에요. 첫 번째, 지역구도 넘어가야 된다, 부산과 경남에서 다섯 석씩만 먹자, 그러면 천지개벽이다. 두 번째, 20∼30대를 어떻게든 능동하자, 정치에 대단히 관심이 많으면서 정당원이 되지는 않으려고 하는 그들의 이중심리 구조를 어떻게 완화시킬 거냐? 통로를 넓게 해줘야 된다, 그래서 온오프 결합을 생각한 거에요.

여기서 온오프 결합은 세 가지 측면이죠. 하나는 열린우리당의 공중분해가 71년부터 김대중 후보를 돕기 위해서 입당한 분들, 40년 가까이 야당 활동해 온 분들이어서 존중해야 되는 거고, 2000년 이후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시민의 정치참여가 활성화됐는데 이 두 부분을 진성당원제로 무리하게 엮어서 충돌이 생긴 부분이 있다고 봐요. 그거를 어떻게 따로, 그러면서 같이 갈 수 있게 하느냐? 오래된 분들은 오프 정당으로, 새로운 분들은 온 정당으로 따로 또 같이 의사를 합의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면 되거든요. 바꿔 얘기하면 40∼50대 경우는 대세나 정책에 영향받는 사람들이에요.

그다음에 젊은 세대들, 이분들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의 맛을 충분히 본,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세대이기 때문에 소통의 문제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기존야당같이 촌스럽고 폐쇄적인 구조가 아니라 자유롭고 즐거운 구조가 되지 않는 한 안 된다는 거죠. 그런데 온오프로 하면 그들이 원해서 얼굴 가리고 이름 가리고 직업 가리고 닉네임으로 활동하게 하면 20∼30대도 된다, 온오프로 하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의무공천을 하자, 이들의 정책적 요구가 달라졌으니까 그렇게 하면 20∼30대도 되지 않겠나 하는 판단이에요.

그다음으로 진보적 정당과 자유주의정당, 즉 민주당부터 진보신당까지 어떻게 같이 갈 수 있을 것인가, 그걸 연합정당 내 정파로서 경쟁하자, 이런 식으로 하면 다 같이 갈 수 있지 않겠느냐, 이 세 가지가 엮어져야 선거에 승리할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제안서를 꾸리기 시작했어요.

양 : 민란의 출발지점은 노 대통령이시네요.

문 : 노짱이 당일 아침 집을 나가시는 마지막 동영상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봤어요. 그 독한 결심 한 양반이 전경한테 고개 숙여 인사하시고, 마지막 집 나가면서 집 앞에 잡초 뽑고, 참…. 그 풀 뽑는 모습이 나는 기가 막힌 거예요. 그리고 몸을 던지시고 거기에 묻히셨는데 내가 배우를 한다는 게 무슨 지랄이냐, 한마디로 지랄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아버지 얘기에 이어 또 한 번 눈물을 글썽였다.) 그 지랄이 알게 모르게 굉장히 저에게 강박이 돼 있었던 거에요. 노짱 돌아가시기 전까진, (나도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어떻게든 성공적으로 (무대에) 복귀하려고 발버둥을 친 거죠. 예전 같으면 절대로 안 했을 영화들을 막 했어. 하자는 대로 다. 왜? 난 배우여야 하니까. 그런데 그게 나를 엄청나게 발목을 잡아서 꼼짝 못하게 하는 족쇄라는 거를 깨달은 거죠. 그 순간에. 이 양반은 돌아가시고 묻혔다. 여기. 너는 뭔데? 배우가 뭔데? 그 생각이 든 거죠. 서거 직후엔 참여정부 하셨던 분들에게 제안을 드렸는데 그게 무산돼서 그냥 손을 놓았다가 1년 지나서 생각해 보니까 ‘제안할 사람이 마땅히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 정파가 있으니까. 만약 나도 입각을 했었거나 출마를 했었으면, 나도 어떤 정파에 들어가 있거나 또는 내가 정파를 만들었거나, 내 성격상 어떤 정파에 속했겠지요. 그러면 이 제안을 못 했겠죠. 결과적으로 참여정부 5년 동안 산만 다니고 있었던 게 무지하게 고마워진 거에요. (웃음)

양 : 화제를 돌려볼까요? 노 대통령하고 처음 인연은 어떻게 시작이 됐나요?

문 : 5공 청문회 때 '멋있다.'라고 느꼈었죠. 아버지 방북사건 직후에 변호인단이 구성됐는데, 다 평민당 분들이야. 모양새가 너무 안 좋은 거라. 그래서 통일민주당 쪽에서도 누가 있으면 좋겠는데, 노무현 의원이면 해 줄 것 같아. 그래서 갔죠. 그랬더니 굉장히 활달하고 에너지가 보통 넘치는 게 아니더라고. 조용히 말씀드렸어. 이리이리 돼서, 모양새도 안 좋고 그래서, 좀 변호인단을 맡아 주실 수 있을까 싶어서 왔습니다, 했죠. 그랬더니 단번에 "아! 합시다." 그러시네.

두 번째는 92년 대선에 여의도 SBS 지하 커피숍으로 임채정, 이해찬, 노무현 이렇게 세분이 오셨던 것 같아. 나보고 대선 운동 같이하자고. 나는 안 한다고 그랬더니 노무현 의원이 뭐라고 하셨냐면 “나도 청문회 때 인기를 누려봤는데 그거 별거 아닙디다. 그리고 할 때 하는 거 아닙니까?”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굉장히 거칠게, 거친 게 아니라 특유의 팍팍 지르는 말투로.

양 : 노 대통령 선거엔 어떻게 뛰어들게 됐나요?

문 : 노사모는 명계남이 먼저 시작했지. 나, 명계남, 이창동, 정지영 감독 넷 다 일산 살았거든요. 넷이 같은 차 타고 들어오며 얘기 나누는 일이 많았어요. 한 번은 넷이 차에서 얘기 나누다 자연히 "다음 대통령은 누구냐?" 했는데, 넷 다 동시에 "노무현!" 이리됐네. 하여튼 2002년 대선 전 총선에서 386들 격려한다고 처음으로 유세장 갔다가, 생각지도 않게 연단 가서 인사까지 하게 됐어요. 나중에 대선 앞두고 명계남이가 "이제 너도 같이할 때 됐다. 들어와야 된다." 그래요. 그래서 "그러면 시작하자." 된 거죠. 그런데 그때는 제가 연설을 하게 될 거라고 상상도 못 했죠. 근데 부산에 무슨 노 후보 행사에서 명계남이가 사회를 보면서 다짜고짜 그냥 불러올린 거야. 연단에. 깜짝 놀라 뛰어나가면서 생각을 한 거에요. '짧게 무슨 얘기를 하나.' 내가 길게 얘기할 수 없는 거잖아요. 짧게 뭐를 얘기했는데 그게 괜찮더라고. 그다음부터 계속…. (웃음)


"노무현의 눈물은 우연한 상황들의 만남, 그였기에 가능"

양 : 2002년 대선 때 그 유명한 '노무현의 눈물'을 흘리게 한 명연설의 장본인인데, 피를 토하듯 절규했던 당시 심경은 어땠어요?

문 : 근데 나는 그 연설이 그렇게까지 될 줄은 정말 몰랐죠. 선거 때, 나한테 계속 연설을 시켜요. 계속 했지. 한 번은 젊은 참모들이 "386들을 울릴 수 있는 명연설을 준비해 주세요." 그러네. 2주 동안 무지 열심히 원고 썼어요. 그 연설을 여기저기 다니며 오래 했죠. 관심이 된 연설은 우연적 상황이 많아. 심혈을 기울인 기존 연설에 몇 가지를 추가했어요. '농부가 밭을 탓하지 않는다', 유시민 씨가 연세대에 가 강연하면서 썼던 '찢어진 깃발' 이런 표현 넣고. 그러고 그날 행사장 갔는데 행사가 늦어진 거야. 원래 내가 먼저 해야 되는데 노 후보가 와 버렸어. 그리고 후보가 30,40분을 얘기를 해버리신 거예요. 그분 얘기하는 동안에 "에이 이거 하지 말까?" 했는데 참모들이 그냥 가재요. 그래서 "노무현 후보는 담담하다고 말하지만 그 뒤엔 피눈물이 흐르는 걸 왜 모르겠습니까?" 이런 표현 써서 하는데, 내 심경과 느낌에 최선을 다했지만, 사실 그냥 한 거에요. 원래, 전에 하기로 한 거고, 주요 내용은 거의 두 주 동안 계속 했던 내용이기 때문에 실제로 다 외운 거나 마찬가지고. 현장에서 들어갔던 말은 느낌이죠. 심경이었고. 그런데 노 후보는 당신의 정치생애를 주욱 반추하면서 그냥 눈물이 흘렀나 봐요.

눈물 흘리는 장면도 우연히 포착된 거야. 그때 한 친구가 늘 같이 다니며 영상을 찍었는데, 그 카메라도 내가 사줬어요. 캠프에 돈이 없으니 카메라를 안 사줘서 어떡해. 내 돈 거금 750만 원 들여서. 큰돈이지. 걔가 그거를 들고 다니며 찍었는데, 원래 나를 찍고 있다가 노짱 우시는 건 알지도 못했어. 그런데 나를 찍는데 뒤가 땡기더래. 지금 노 후보는 어떤 표정일까 하고 싹 돌려보니까 노짱 얼굴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거야. 그래서 눈물 주르륵 흐르는 게 잡힌 거야. 마침 그때 <오마이뉴스>도 찍었거든. 그 장면을 잡았어요. 걔가 찍은 것과 <오마이뉴스>가 찍은 거를 같이 합하니 전체가 살아있는 거지. <오마이뉴스> 영상 없었으면, 그다음에 한나라당에서 '그 눈물 가짜다' 'CG다' 그랬는데 다행이었죠. 이러는 바람에 그 연설 영상이 당시까지 인터넷 사상 최대 클릭을 기록하게 됐죠.

양 : 노 대통령 당선되시고 나서 아무 덕 본 것도 없이,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친노' 딱지가 붙어서 부담은 커지고 힘든 길을 걷게 됐죠?

문 : 그렇게 됐지만 어쩌겠어요. <인물현대사>라는 프로를 KBS에서 하는데, 그때까지 내가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서는 가장 평가가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프로그램 진행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어요.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내부에 복잡한 문제가 있는지 몰랐어요. 갈등이 있는지도 몰랐고. 그게 말썽이 되는 걸 보면서 '아, 뭘 해도 말썽이구나. 활동을 하면 그거 자체가 조선일보의 씹히는 소재다. 명계남 연극한다고 노짱이 구경 간 것조차 씹고. 뭘 해도 씹히니까 부담이 되겠구나. 내가 언론에 안 비치는 게 낫겠다. 그게 노짱 돕는 거다.' 그래서 그냥 산으로 가버렸어요. 5년 내내 산만 다녔어요. 지금 와서는 '아, 그건 잘못 됐구나'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어찌 됐든 부담이 안 되려고 빠졌던 거죠.


"노짱과는 부엉이 바위 등반이 마지막…. 아, 부엉이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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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5월 23일 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모공연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문성근 ⓒ오마이뉴스

양 : 대통령 마지막으로 뵌 게 밀양이었죠? 돌아가시기 전에. 밀양연극제였나요?

문 : 네. 퇴임 후 봉하에서 밀양으로 밀양연극제 공연 보러 가신다고, 나하고 이창동 같이 올 수 있냐고 해요. 그래서 갔죠. 같이 연극 보고 식사하고, 봉하 사저에 가서 맥주 한잔했어요. 그런데 뭔 놈의 집이, 편하게 둘러앉아 술 한잔할 공간이 없어. 그 양반 서재 겸 손님 맞는 탁자에서 마시는데, 이게 술 맛이 나나. 무슨 회의테이블 앉아서 맥주 마시려니까 되게 어색하데, 그거. 그래서 속으로 '이 **들아, 이걸 아방궁이라고 했냐?' 냅다 욕을 했지요.

그때 내게 정치를 한 번 해보라고 하시대요. 그래서 "저는 못합니다." 얘기를 드렸죠. 그러고 나서 그 주제는 넘어간 거고.

그 다음 날 아침에 산에 같이 올라가자고 하셔서 갔어요. 그리고 부엉이 바위에 같이 올랐어요. 부엉이 바위 올라갔을 때 나는 좀 좋은 등산화를 신었었는데 노짱은 등산화가 아주 부실하더라고. 싼 거. 나는 내 등산화 자랑한다고 바위 끝에 바짝 가서 아래쪽 내려다보니까 노짱이 "그거 불안하게 왜 자꾸 거기까지 갑니까?" 그러세요. 그래서 "아, 제 신발 좋은 거에요. 비싼 등산화라 괜찮아요. 안 미끄러집니다." 했더니 "그래도 그렇지, 사람 불안하게." 이러세요. 그분 돌아가시고 자꾸 그때가 떠올라서…. 무슨 결심을 그리 독하게 하셨는지….

양 : 노 대통령 돌아가시고 상당히 힘들었죠? 고통도 남다르고….

문 : 난 잘 잊어버려요. 배우라서 한번 작품 하고 나면 과거가 잊혀지는 거에요. 사실 23일은 경황 없이 내려갔지요. 봉하 갔더니 노사모 사람들하고 모인 사람들이 많이 격앙돼 있고, 왜곡보도 때문에 상태가 안 좋더라구요. 그래서 "안 된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런 상황 정리하고 말리느라고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갔다가 다음날 내가 SBS <자명고> 녹화가 있어 밤에 출발했어요. 새벽에 도착해서 겨우 한두 시간 자고 아침에 촬영을 갔는데 촬영을 못하겠는 거야. 두 문장이 연결이 안 돼. 도저히….

힘들어했습니다. 다시 화제를 돌렸습니다.

양 : 아버지 고 문익환 목사님, 형님인 연출가 고 문호근 선생, 그리고 문성근. 집안의 세 사람 다 반독재 통일운동, 공연예술, 연극-영화 각 영역에서 일가를 이루신 분들이고, 셋 다 대한민국 진보운동의 상징적인 족적을 남기신 거 같아요. 집안에 어떤 저항적 DNA 같은 게 있다고 보나요?

문 : 아무래도 가정에서의 여러 것들이 영향을 미쳤지 싶어요. 할머니가 아버지 어렸을 때 베개에 직접 태극기를 수를 놓아 그걸 베고 자게 하셨대요. 목사가 되신 것도 독립운동 때문이고. 아버지 어렸을 때 민족운동가 이동희 선생이 오셔서 "독립운동을 하려면 목사가 제일 좋은 직업이다, 기독교라는 데 의탁할 수가 있고, 국민들을 1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얘기하면서 민족의식 고취할 수 있다"고. 그래서 목사를 하게 되셨답니다. 그리고 집안에서 늘 기도하시는 내용이 나라 걱정이었고. 아버지가 윤동주 시인과 함께 광명중학교 다녔는데, 어느 날 선배들이 와서 시국강연 한다고 다 모이라고 해서 갔더니 졸업생들이 와서 출세하려면 일본 군관학교를 가야 된다고 주장했대요. 그때 군관학교 간 선배 동료 후배들이 5·16의 한 축으로 나오는 거에요. 출세하려고 일본 군관학교 간 애들이 5·16 주체세력으로 나왔으니. 그전엔 아버지가 휴전협정 할 때 통역관을 했는데, 그때 남쪽 협상대표로 나간 사람이 한국말을 못 했다는 거라. 장성이 일본말만 했다는 거지. 그런 얘기를 어려서부터 계속들은 거지요. 그런 게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고. 아버지뿐 아니라 박형규 목사님, 김관석 목사님 이런 분들 보면 그 아들들이 다 감방에 갔어요.

나는 무서워서 못 가겠더라구. 인간 같지가 않아요. 아버지 하시는 게. 근데 나중에 안 거지. "윤동주 죽여, 장준하 죽여, 이젠 내가 죽을 차례야, 나도 죽여라" 그러시는데 그게 무슨 협박이 되겠어. 그런 사람한테. 그런 삶을 사셨어요. 나는 그 경지가 도저히 안 되는 경지였고, 못 했던 거고.

내가 왜 노 후보 도운 지 아세요. 그의 인간적인 매력, 그가 단 한 장의 필승카드였다는 것도 있지만 내 가족사도 있어요. 그 존경하는 아버지도 87년 대선에서 양김 분열을 극복 못했잖아요. 나는 그 책임을 느껴요. 물론 당시 민주화 운동 진영 안에서의 절차를 밟았지만, 어찌 됐든 과제를 남긴 거잖아요. 사실은 (아버지 대신) 속죄한다는 마음으로….

양 : 아버지로서의 문익환 목사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문 : '문익꽝'이잖아요, 별명이. 굉장히 원칙주의자였고, 팍팍했고, 굉장히 단호했고, 고집 세고. 그런 분인데, 딱 결정하는 순간부턴 목숨을 던지는 거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도자가 돼 버린 건데. 엄혹한 탄압국면에서 부단히 자기를 열고, 변화시켜 나가는 사람이었고, 굉장히 단호한데, 우리한테는 완벽한 자유를 보장해줬어요. 자식들한테는. 다 마음대로 살도록.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았고, '네가 네 인생 개척하라'고 그냥 맡겨 두셨어요.

양 : 아버지의 삶을 생각해보면, 본인은 지금 어떤 아버지인가요?

문 : 개판이지, 뭐.(웃음) 일종의 자기비판이 될 수 있는데, 가정을 잘 유지해 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엑스와이프나 아이들에게 무지하게 미안해요. 그리고 헤어졌지만 엑스와이프나 아이들한테 아빠로 할 수 있는 거를 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 최선을 다했다 라고는 생각은 하는데, 헤어진, 헤어지게 된 것, 유지 못 한 것, 이것에 대해서 무지무지하게 미안하죠.

양 : 문익환 목사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고 있나요?

문 :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처음부터 자유를 줬고 엄마가 규율을 잡으려고 그랬다 할까? 그런 부분은 좀 있고.

양 : 배우의 길로 접어들게 된 건 어떤 배경인가요? 서강대 졸업하고 취직해서 직장 다니다가 배우의 길엔 늦게 접어들었죠?

문 : 처음에 시작한 건, 형들이 대학교 때 연극을 했기 때문에 '나도 대학가면 그냥 하나보다' 생각 없이 시작했던 거고. 졸업할 때는 연기자로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한 직장생활 5년쯤 지나면서 인생의 끝이 보였어요. '큰 기계의 작은 부품으로 마모돼서 결국 버려질 것이다, 이러지 말고 망하더라도 내가 결정해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다가, 망해도 내가 망하자.' 이런 생각으로 거의 만용에 가까운 결정을 했어요. 배우들 들여다보면, 천부적인 배우가 있고 후천적으로 노력하는 배우가 있고 그래요. 노력하는 배우도 DNA 연기자 감정이 찍혀 있어야 되는 거지. 아예 없으면 안 되는 거고. 나는 DNA가 한 80점쯤 된다고 할까? 아버지가 예술적인 분이고, 삼촌도 그렇고, 집안에 그런 내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아예 타고난 연기자는 아니고 뭐랄까 집안의 배경이랄까.

양 : 그러면 본인의 타고난 일정한 재능 플러스 스스로의 노력?

문 : 나는 한 80점 되는 것에, 부단히 노력해서 좋은 연기자가 되려고 노력해온 사람이고, 그런 게 불행히도 전성기라고 그럴까, (작품을) 무지하게 많이 했던 90년대 중후반 때엔 깨치지 못한 부분이 있었어요. 그 후에 오더라고. 지금은 굉장히 편안하고 연기가 즐겁고 잘 할 수 있고 그렇죠.


"해야 될 일이어서 하지만 연기할 때가 행복"

양 : 지금은 배우의 길을 접은 겁니까? 아니면 한국 정치를 바꾸기 위한 일로 인해 잠시 접어두신 겁니까?

문 : '일단은 잠시 접는다' 하고 접는 거에요. 이를테면 정치참여 이 부분은 바람직한 일이고 실제 현실정치를 해 주는 분들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해요. 사실 정치를 백안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잘못된 거라고 보고,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응원하고 그러죠. 그런데 이런 삶 자체가 행복해 보이진 않아요. 지금 내가 하는 일도 굉장히 고통스러운 과정이고. 연기하는 게 행복하고, 정치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 즐거운 게 아니기 때문에 즐겁게 정치를 할 수가 없는 거지. 대신 2002년에는 그런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직업을 안 바꾼다고 얘기를 했는데, 지금은 직업을 안 바꾸겠다고 미리 약속할 생각이 없는 거에요. 내 자유니까. 그냥 상황을 보자, 상황을 보고 열어두는 건데…. 행복하진 않아요. 행복한 건 여전히 연기죠.

양 : 배우로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작품이나 배역은 어떤 건가요?

문 : <경마장 가는 길>이 제일 기억에 남는데, 그런 류의 영화가 처음이었고. 아쉬운 거는, 지금 하면 기가 막히게 할 텐데 라는 아쉬움? (웃음) 참 재밌는 영화였는데 그때 내가 연기를 충분히 해내지 못한 게 제일 아쉽지요. 그 이후 영화는 지금 해도 비슷하게 할 것 같아요. 그다지 (연기가) 많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데. 특히<오! 수정> 이때부터는 껍질이 많이 벗겨졌기 때문에, 그때 이후 영화는 지금 해도 다 똑같이 할 것 같아.

양 :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나 영화 가운데, 저 역할이나 저 작품은 내가 했으면 참 잘 했을 것 같다는 게 있나요? 혹시 <시크릿가든>의 현빈 역? 크크.

문 : 요새 안 봐서.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고, 전혀 못 보고 있어서 몰라요. 영화도 요새 거의 못 봤어요. <부당거래> 본 이후에 못 봐서. 이제 뭐, 아예 잊고 살지요.

양 : 가려지지 않는 진실논쟁 하나가 있어요. 문성근과 명계남, 누가 더 연기를 잘한다고 봅니까? (웃음) 명계남 선배는 자기가 몇 수 위라고 공공연히 주장하시던데.

문 : 연기는 누가 잘하고 잘못하고 평가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양 : 겸손인가요, 무시인가요?

문 : 74년에 걔를 처음 만났는데, 그때 걔는 연희극회의 기둥 배우였고 나도 서강극회에 기둥 배우였어요. 근데 걔 하는 거 보고 경탄을 했었어요. ‘어떻게 저렇게 힘이 있게 카리스마를 갖고 할 수 있을까’ 거기다가 ‘얼굴이 어떻게 저렇게 늙었을까’ ‘애가 저렇게 험상궂나’ ‘천상 배우구나’ 그런 경탄을 했었죠. 나는 굉장히 순진한 사람이었고. 걔는 뭐 거의 경험 많은 배우들 같은 노숙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웃음)

양 :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출마 권유를 많이 받았고 노 대통령께서도 생전에 출마권유를 하셨는데, 일종의 시민적 영역으로 이 캠페인과 운동을 하고 계시지만 직접 나가서 정치해본다는 생각은 가져보신 적이 없나요?

문 : 그거는, 두고 있는 거에요. 행복하지 않다, 가급적 안 하면 좋은 거고. 이 운동과 야권 단일정당문제 이런 것들이 어떻게 변화될지에 대해서 잘 모르겠기 때문에 그냥 열어두고 있는 거지요.

양 : 지금 몰입해 있는 이 일이 아니면 평소 낙이 뭐에요?

문 : 산 다니고, 촬영하고, 친구들하고 막걸리 마시고 그런 거지요. 책은 그다지 잘 안 읽어요. 종종 읽지만. 왜냐하면 배우는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손해예요. 먼저 생각하게 돼. 느껴야 되는데. 소설집이나 시집을 읽는 건 괜찮은데.

양 : 상상력을 자극하는 콘텐츠 쪽으로 가면 좋다는 거지요?

문 : 그렇게 가야지. 경제학 이런 거 읽는 거 안 좋아요.


:하도 힘들어 살이 안 찌니 원 없이 먹을 수 있어 행복"

양 : 배우가 된 이후 평생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하나요?

문 : 네. 그런데 이거 시작하면서부터 아무거나 먹어도 활동량이 많아서 체중이 늘지 않아요. 요새 삼겹살, 피자, 막 먹습니다.

양 : 먹는 걸로만 따지면 가장 행복한 시기네요.

문 : 가장 행복해. 아무것도 안 가려.

양 : 문익환 목사의 아들 문성근, 노무현의 동지 문성근이 아니었다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문 : 한 가정의 가장으로, 좀 막사는 배우 하고 있겠죠.

양 : 우리가 흔히 보는?

문 : 예.

양 : 다음 목표나 소망이 뭔가요?

문 : 민주정부가 장기집권 하는 거에요. 이 운동이 성공하고 틀거리를 만들어 야권 단일정당을 창출하고, 2012년 선거 후에, 시민정치운동으로 남겠다는 지금 제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서 전국 네트워크를 만들어보는 거에요.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집권의 길을 여는 거라고 생각해요. 장기집권이 되면, 나는 편안하게 연기하면서 노는 게 제일 좋죠.

양 : 먼 훗날, 사람들이 문성근에 대해서 평가할 때 명배우로 남기를 원합니까, 한국정치를 굉장히 의미 있게 바꾼 보람 있는 운동가로 평가받기를 원하십니까?

문 : '열심히 살았던 사람' 정도지. 

양 : 긴 시간 진솔한 말씀 고맙습니다.

인터뷰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안 끝났습니다. 현직 기자 때 포함해서 꽤 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인터뷰 요청은 제가 했는데, 그는 할 말이 남았다며 얘기를 더 하자고 했습니다. 제가 성의없는 인터뷰어였나 싶을 만큼 미안했습니다. 평소 그는 말이 많거나 얘기를 길게 하는 스타일이 결코 아닙니다. 늘 사양하는 스타일입니다. 민란에 대해 못다 한 얘기가 남았던 겁니다. 왜 민란인지를 말하는 그의 모습은 흡사 노무현 대통령 선거유세 때 보여줬던 그 열정 그대로였습니다.

"정치는 연애… 연대해 잘할 수 있다는 진정성부터 보여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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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1월 3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야권단일정당 창출을 위한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문성근 대표, 여균동 공동집행위원장, 최교진 공동집행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2만명 돌파 민란콘서트 <우금치 다시 살아> 기자회견이 열렸다. ⓒ오마이뉴스

문 : 요새 자꾸 '정치는 연애다' 하는 느낌이 들어요. 시민들은 뭔가 정치적인 변화를 요구하시는 거지요. 정치는 연애라는 게, 마음을 서로 주고받아야 돼. 마음이 열려야 서로 소통이 되고 이러는 건데. 스님들 삼천 배 하는 그런 심정으로 하게 돼요. 왜 그런 생각이 드냐면,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이다, 우리 시민은 존중받고 싶다, 위로받아야 된다, 그동안 정치권이 국민을 너무 고문해왔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국민의 심리상태가 뭐냐면요. 배우는 인물을 연기하려면 그 사람 특징 하나를 딱 잡아. 그걸 문고리로 잡고 문을 열고 들어가. 문고리라는 말은 이창동 표현이에요. 많은 국민들이 왜 이명박을 선택했냐? 그러니까 민주정부 10년 동안 평가받을 참 좋은 일들을 많이 했어요. 그러나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만족시키지 못 했어요. 이유야 어찌 됐든 불만족 상태에서 화도 많이 났고, 그래서 홱 돌아앉았지만 이명박 하고 연애하는 건 아니에요. 이명박이 돈을 벌게 해 주겠다, 집값을 올려주겠다고 하니까 그냥 다 찍었어요. 다 놓아버린 거죠. 정의, 도덕, 이런 거 놓아버렸다고.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보니까, 아주 개차반이거든. 완전히. 돈 벌게 해 준다는 것도 아니야. 그랬을 때 국민들 심리상태는 뭐겠어요. 나는 그걸 '욕망을 택했던 것에 민망함, 허망함'이라고 봐요. 그렇다고 민주 정부가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야. 그때는 굉장히 짜증이 났었고 그래서 돌아섰던 것이니까.

그러니까 국민들의 이 상태가 어떤 거냐면, 속이 다 빠져나가고 넋이 다 빠져나간 허망한 상태라는 거죠. 거기다 노 대통령은 바위에서 몸을 던졌단 말이에요. 그러고 나니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경제를 잘했다'가 15에서 60이 됐잖아요. 45%의 국민이 속았다는 걸 안 거야. 그래서 고개를 돌려서 이쪽으로 돌려보는? 한 번씩, 이제 보는 거야. 다시. 미안한 부분도 있어요. 노무현에 대해서. 그렇게 욕했던 게. 그래서 6.2선거에서 그렇게 표현해 준거죠. 근데 아직 옛날처럼 돌아앉진 않았어요. 왜냐하면, 실망했었고 화가 났던 게 다 풀린 게 아니니까. 그런데 내가 조금 미안한 건 있어. 그러나 '너희들 잘못했어. 왜 나를 실망시켰냐' 이거거든요.

지금 민주진영은 뭐를 해야 되겠어요. 국민들이 정치인에게 다가와서 "미안해, 내가 오해 했어" 이렇게 얘기할 리는 없는 거에요. 그러면 이쪽이 다가가서 "죄송합니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잘할게요." 이 얘기를 해야 되거든요. 돌아선 애인, 연인이에요. 그런데 가서 그들에게 지금 뭐 어쩌고저쩌고 정책 얘기하는 건 뭐냐면 "우리가 결혼하면 내가 어떻게 해 줄 게"로 얘기하는 거야. 결혼할 생각이 아직 없는데. 소용없어요. 정책은 말짱 꽝이야. 마음으로 다가가야 돼요. 다가가서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렇게 내가 달라졌습니다. 옛날하고 달라졌습니다." 라는 거를 확인을 시켜 드려야 돼요.

속이 빠져나가고 넋이 다 빠져나간 사람한테 가서 "야, 이런 게 낫지 않냐? 야, 민주정부 10년 동안 소득을 이렇게 높였어. 4.5% 성장했어. 이명박은 3.2%잖아. 우리가 더 잘 했잖아." 아무리 얘기해도 안 들어요. 이걸 채워 드려야 돼. 허망함을. 그러려면 우리가 믿음직한 상대가 되어야 해요. 믿음직한 상대가 된다는 거는, 정책적으로 다시 반성하는 부분도 있지만, 자세가 달라야 돼요. 그 자세의 핵심이 뭐냐. 한나라당을 보자 이거야. 쟤네들은 사찰을 해도 안 깨져요. 집권하니까 4대 권력기관을 휘둘러서 개차반을 만들어요. 조중동, 뉴라이트, 다 뭉쳐서 완벽한 철옹성 동맹구조를 만들고 있어요.

우리 민주정당 10년 돌아보자 이거야. 열린우리당, 참여정부를 지지고 볶았어요. 진보정당은 신자유주의라고 욕했어요. 국민들이 볼 때는 그게 그건데. 시민사회단체는 정치 중립이래. 자기네가 주장하는 정책 들어주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죽어라 해서 60점 정도 하면 신자유주의라고 욕했잖아요. 시민들은 뽑아놓고 손 놓았어요. 갈기갈기 찢겨진 거야. 이렇게 갈라진 상태에서 우리가 국민들에게 "우리, 잘 할게요?" "뭘 어떻게 잘할 건데?" "정책이요." "너희들부터 봐. 이놈들아. 너희들이 하는 얘기를 어떻게 믿으라고. 또 지지고 볶을 거지? 쟤네들 봐. 쟤네들 저렇게 똘똘 뭉쳐 하는데 너희들 어떻게 믿어. 어떻게 믿고 마음을 다시 열란 말이야." 이 상황이에요.

그러니까 지금은 "정말 잘 할게요" 라고 빌어야 돼. 거리에 나가서 빌어야 돼. 빌면서 "우리가 달라질 겁니다." "뭐가 달라질 건데?" "뭉칠게요. 믿음직한 상대가 돼 드릴게요" 그걸 하자 이거야, 지금. 민란을 통해서.


열변이 길어지면서 그는 시간에 쫓겼습니다. 국밥 한 그릇 대충 먹고 행사장으로 내달리는 그를 뒷모습으로 배웅했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리 바쁘게, 살얼음의 거리로 서둘러 내달리게 할까요. 그는 오랜 기간, 매 시대, 모든 무대에 충실했습니다. 자신이 주인공이든, 다른 사람의 조연이든. 그런데 너무 오랜 기간, 시대에 가장 정직했던 명배우를 우리는 너무 혼자 있게 한 것 같습니다. 무대에서도 무대 밖에서도. 지금 모두가 그의 말에 한 번은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할 이유입니다.

양정철



(원본 글 링크: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28695)

지난 수요일 민란 토론회때 수고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비록 아직까지 진보정당들은 회의적인 입장이었지만, 앞으로 또 자주 토론회를 거치고 그러면 그들도 분명 기득권을 버리고 민란에 동참하라 믿습니다.
6만에서 7만으로, 7만을 넘어 10만, 100만으로! 민란군 모두 힘 냅시다!
뽀나스로 오늘의 노래는 저번에 올렸던 민란가인 하나가 되라 입니다.





하나가 되라

작사,작곡 윤민석
노래 문성근과 100만 민란팀

세상이 더럽다고 외면 할텐가
정치가 썩었다고 욕만 할텐가
우리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
이대로 물려줄 순 없지 않은가

힘을 합쳐라 모두 합쳐라
분열하지 말고
힘을 합쳐라 모두 합쳐라
계산하지 말고
모자라면 어때 다르면 또 어때
하나되어 가는 길에
국민의 명령이다 하나가 되라

저마다 잘났다고 삽질 한텐가
국민이 못난거라 변명 할텐가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가 없다
새로운 민주정부 다시 세우자

힘을 합쳐라 모두 합쳐라
분열하지 말고
힘을 합쳐라 모두 합쳐라
계산하지 말고
모자라면 어때 다르면 또 어때
하나되어 가는 길에
국민의 명령이다 하나가 되라

힘을 합쳐라 모두 합쳐라
분열하지 말고
힘을 합쳐라 모두 합쳐라
계산하지 말고
모자라면 어때 다르면 또 어때
하나되어 가는 길에
국민의 명령이다 하나가 되라

국민의 명령이다 하나가 되라!!!

(윤민석씨,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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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수구쥐벼룩 여러분들께 드리는 글.):
이 글을 포함한 모든 이 천민놈 글은 무단복사 및 펌질+조작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만약 제 글이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지 국정원에(안기부 아니었든가?) 전화하세요.
적어도 3천만원은 받으실 겁니다. 뭐 운 좋으시면 이 천민놈 코렁탕 뚝배기(!)도 대접하실 수 있고 1억5천도
받으실 겁니다. 전화번호는 국번없이 111.(참고로 개짭새는 113입니다.)
그리고 제 글에 대한 상담은 천민놈 블로그로 와서 상담하시길.
(1차:blog.hani.co.kr/os21cccc
 2차:blog.daum.net/os21cccc
 3차(본진):mbout-os21cccc.tistory.com
트위터:twitter.com/MBOUTos21cccc
페이스북:facebook.com/MBOUTos21cccc)

뽀나스로, 필자의 글이 문제가 있으면 알아서 삭제하거나 수정조치 하겠습니다.

(참고로 다시 말하지만 이 글에는 절대로 '저작권'이 없'읍'니다. 이 글은 철저히 copyleft를 지향합니다.)


쥐박이 쉒기는 1%만의 대통령이다.
99%의 국민은 안중에 없고친일매국노 짓에 정신없다.
용산학살을 자행하고도 여론을 조작하고 
국민 복지는 관심 없이 쥐 일족 밥그릇 챙기는 것만 열중이다.
경제 위기 극복 능력 없이 국민 탓만하고 있다.
쥐박이의 무능을 홍보 부족으로 착각하고 방송을 장악하려고 시도하고 
한반도를 대운하로 토막 내려 한다.
서민 복지 예산 대폭 축소하고 콜센터 이미지 마케팅에만 열중한다.
쥐박이 정책의 잘못을 지적하면 무식한 알밥들을 풀어 유신 시절의 반공이데올로기를 부추긴다.
국가 비전의 제시없이 기도만 하면 되는줄 아는 무뇌충 개.독이다.
그런 쥐쉒이를 따르는 쓰레기가 서너명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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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싣고 달리는 '노짱 버스 '  

김해 진영역∼봉하마을 직통 노선 지역명물로
노 전 대통령 떠오르는 노래·사진으로 내부 장식

데스크승인 2011.01.13  06:45:04  박석곤 기자 | sgpark@idomin.com

김해 진영역과 노무현 전 대통령 고향 봉하마을을 직통으로 연결하는 '노짱 버스'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이 버스 등장으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옛 향수를 느끼려고 봉하마을을 찾는 전국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추억거리가 되고 있다.

이른바 봉하버스로 통하는 직통 노선인 10번 시내버스는 시가 KTX 개통에 맞춰 지난해 12월 15일부터 봉하마을을 찾는 열차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운행해오고 있다.

이 버스의 백미운전기사로 일하는 권순현·조흥석 씨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대부분 버스 이용객들이 유·무형적으로 노 전 대통령과 연관된 점에 착안해 일반 버스 이미지에서 벗어나 특별한 추억을 선사하고자 버스 차별화에 나섰다.



일명 '노짱버스'가 등장했다. 김해 진영역과 봉하마을을 오가는 이 직통 버스에는 노 전 대통령 사진과 엽서, 그를 떠올리게 하는 노랑색 바람개비 등을 부착해 노 전 대통령의 향수를 느끼게 하고 있다. /사람사는세상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 한 회원의 도움으로 버스 내부에는 노 전 대통령 사진과 엽서, 바람개비 등으로 장식해 노 전 대통령의 추억 더듬기를 시도했다.

또 진영역에서 봉하마을(약 10분 소요)까지 가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고자 노 전 대통령이 즐겨 불렀던 '상록수'와 '작은 연인들' 등 추억이 담긴 음악을 들려주며 변화를 시도했다.

이 버스는 봉하마을에 다녀간 관광객들에 의해 개인블로그나 '사람 사는 세상' 사이트에 '봉하버스'나 '노짱 버스'로 소개되면서 고유 이름으로 정착됐다.

이 사이트를 통해 '노짱 버스'가 알려지면서 버스를 직접 타보려는 관광객들도 줄을 잇고 있다.

덩달아 이들 두 버스 기사들까지 전국적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글을 올린 닉네임 '마터' 누리꾼은 "봉하마을까지 달리는 동안 버스기사분께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억이 깃든 노래를 틀어줘 가슴이 뭉클해졌다"고 했다.

그는 "봉하는 노 전 대통령님을 향한 그리움의 깊이만큼이나 우리 마음에 아주 가깝고 반가운 곳입니다. 일상에 지쳤을 때, 대통령님이 보고 싶을 때, 봉화산의 자연을 만끽하고 싶을 때 앞으로는 '봉하버스' 권순현 씨의 10번 버스에 올라보십시오. 계단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대통령님을, 노무현재단 스티커를 차 뒤에 붙인 뒤부터 운전할 때 법규에 신경쓰이는 자신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10번 버스는 사랑하는 마음을 봉하와 연결하는 끈과 같다"며 '봉하의 발'인 버스기사 권 씨의 활약상에 고마움을 전했다.

두 버스기사도 "봉하마을까지 멀리 찾아주신 것만도 고맙다. 외지 손님을 정성껏 모신다는 심정으로 더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며 "10번 버스 이용 승객 모두 추억거리를 간직하는 관광이 되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KTX 개통에 맞춰 이 봉하마을 전용 노선버스를 신설했다"며 "앞으로 봉하마을 직통에서 진영 신도시까지 노선을 우회해 운행해 달라는 진영읍민들의 요구를 고려해 노선 연장 운행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본 기사링크: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37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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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지난 10년 가장 중요한 인물’ 선정


- <한겨레21> 각계 주요인사 설문조사 1위, ‘남북평화 구축과 진보세력의 밑불’ 평가



사주간지 <한겨레21>이 각계 주요 인사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1세기 첫 10년의 가장 중요한 인물’ 설문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1위로 선정되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중 30표를 얻어 압도적인 표차를 보였습니다.

정된 인물 가운데는 전․현직 대통령과 정치지도자가 많았습니다. 2위는 오사마 빈 라덴(11표), 3위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10표), 그 다음은 스티브 잡스(9표), 김대중 대통령(8표), 줄리언 어산지(8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4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4표), 이명박 대통령(3표), 이건희 삼성 회장(3표) 순입니다.

<한겨레21> 은 노무현 대통령의 1위 선정 결과를 두고 △2002년 ‘이인제 대세론’을 꺾고 경선 끝에 후보단일화를 이뤄 대선에서 승리한 것 △재임 기간 수많은 공과를 남긴 것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소추의 대상이 된 것 △2008년 퇴임해 고향인 봉하마을로 내려가 깨어있는 시민의 한 사람이자 농부의 삶을 살다 서거한 것 등 지난 10년에 노 대통령의 극적인 삶이 집약돼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12월 중국의 반관영 통신인 중국신문사가 ‘2009년, 주목받은 인물 10명’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3위로 꼽으면서 밝힌 이유와도 맥을 같이 합니다. 중국신문사는 “노 대통령은 많은 공헌을 남긴 평민정치가였다”고 평가하면서 “자신이 세운 원칙과 가치관과 위배되는 일이 있으면 결벽증세를 보일 정도였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한겨레21>의 설문에 참여한 주요 인사들은 “이명박 대통령 때문에 그 때(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정부)에 대한 그리움이 절실해졌다”(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 “희망으로 시작한 21세기, 그러나 20세기의 잔재에서 허덕였다”(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고 평가하면서,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쳐 이명박정부에 들어서면서 민주주의와 진보라는 시대적 요구가 독재의 기류에 갇혀 역류하고 퇴행하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0월 <시사저널>이 30여개 분야별 전문가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우리 시대의 영웅’과 <한국대학신문>이 대학생 포털사이트 캠퍼스라이프와 함께 전국 200여개 대학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0 전국 대학생 의식조사’에서도 각각 11.1%, 18.7%로 1위에 선정되었습니다.

(출처: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대문글.
원본 글 링크:http://www.knowhow.or.kr/bongha_inform/view.php?start=0&pri_no=999573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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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는 조상제사때 똥으로 젯밥 짓나" 

이외수 격분 "애국자 행세해, 단세포적인 구토유발자들!"

뷰스앤뉴스 김혜영 기자 2010-11-15 08:32:27 

극우인사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인분을 뿌린 데 대한 각계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가운데, 소설가 이외수씨도 15일 "이 사람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똥으로 젯밥을 짓고 오줌으로 탕국을 끓여 바칠까"라고 질타했다.

이외수씨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노무현 전대통령의 묘소를 찾아가 인분을 뿌린 사람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사람들일수록 국격 자주 들먹거리면서 애국자 행세를 한다"며 "단세포적인 구토유발자들!"라고 역겨움을 토로했다.

노 전 대통령 최측근인 안희정 충남지사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서 일어난 만행을 보며...'라는 글을 통해 "친일의 역사를 숨기려 정적을 빨갱이로 몰아온 역사...독재를 정당화하려 민주화세력을 빨갱이로 몰아부쳐 온 역사..6.25 전쟁이 이 모든 증오를 합법화시키고 정당화시켰다"며 "이념과 사상으로 상대에게 끝없는 증오와 폭력을 선동하는 정치...지역주의 정치와 함께...이제 끝나야 한다"고 분노했다.

(원본 기사 링크: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69144)


오늘 보아하니 결국 그 개쉐놈 영장 신청 되었다는데 그건 당연한 일이고, 깜방 안에서 콩밥 대신 똥물이나 쳐묵여야 한다.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그런 개쉐놈들은 평생 똥 속에서 살다가 뒈지게 만들어야 한다. 인간 쓰레기 같으니라고........

뽀나스로 노무현재단과 국민참여당의 관련 공식 논평.


노무현 대통령 묘역 훼손 사건에 대한 입장

오늘 봉하마을의 노무현 대통령 묘역이 오물로 더럽혀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결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불미스러운 일입니다. 경악을 금치 못하며, 대단히 유감스럽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노무현재단과 봉하재단은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친데 대해 참으로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현재 현장에서 체포된 혐의자를 수사하고 있는 사법 당국은 이번 사건에 조직적인 배후가 있는지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고, 그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노무현재단과 봉하재단은 고인의 묘역을 훼손하는 이같은 인륜을 저버린 범죄가 생기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0. 11. 14

노무현재단 · 봉하재단


패륜 정권 행태가 노무현 대통령님 묘소 훼손 불렀다


노무현 대통령님 묘소를 훼손한 중대한 범죄행위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그분을 생각한다면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그렇다고 한 두 명의 돌출행동이 이번 사태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죄를 지은 자들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저들을 단죄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정권과 검찰은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이명박 대통령은 그것도 모자라 천인공노할 패륜을 저지른 범죄자 조현오를 버젓이 경찰청장에 임명했다. 패륜 정권의 이 같은 행태가 이번 사태를 조장한 것이다.

전직 대통령을 모욕하고, 두 번 세 번 죽이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명박 대통령의 진정한 반성과 조현오 씨 파면이다.

정부는 대통령님 묘역을 범한 자들이 무슨 의도를 갖고, 또 어떤 경위로 범행을 저질렀는지 철저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패륜 범죄가 결코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이런 패륜 범죄가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게 만든 것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경찰청장 자격이 없는 범죄자 조현오를 파면하라.

2010년 11월 14일

국민참여당 대변인 양순필


마지막으로 오늘 같은 날 듣고 싶은 노래+짤림방지....




격문 6

작사,작곡 윤민석
노래 오지총

나라를 팔고 민족을 팔아
한몫 챙기신 부자 아빠들
돈도 대물림 땅도 대물림
권력도 가진 부자 후손들

일본장교가 대통령하고
친일파 후손들이 떵떵거리니
일본놈들이 망언을 하고
이 나라 업신여기며 조롱한다

척결하여라 친일매국노
민족의 자존 지켜 세우자
친일 한 놈이 친미도 한다
척결하여라 수구꼴통들!

일본장교가 대통령하고
친일파 후손들이 떵떵거리니
일본놈들이 망언을 하고
이 나라 업신여기며 조롱한다

척결하여라 친일매국노
민족의 자존 지켜 세우자
친일 한 놈이 친미도 한다
척결하여라 수구꼴통들!

척결하여라 친일매국노
민족의 자존 지켜 세우자
친일 한 놈이 친미도 한다
척결하여라 수구꼴통들!

척결하여라 친일매국노
민족의 자존 지켜 세우자
친일 한 놈이 친미도 한다
척결하여라 수구꼴통들!!!!

참고(수구쥐벼룩 여러분들께 드리는 글.):
이 글을 포함한 모든 이 천민놈 글은 무단복사 및 펌질+조작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만약 제 글이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지 국정원에(안기부 아니었든가?) 전화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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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으실 겁니다. 전화번호는 국번없이 111.(참고로 개짭새는 113입니다.)
그리고 제 글에 대한 상담은 천민놈 블로그로 와서 상담하시길.
(1차:blog.hani.co.kr/os21cccc
 2차:blog.daum.net/os21cccc
 3차(본진):mbout-os21ccc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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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나스로, 필자의 글이 문제가 있으면 알아서 삭제하거나 수정조치 하겠습니다.

(참고로 다시 말하지만 이 글에는 절대로 '저작권'이 없'읍'니다. 이 글은 철저히 copyleft를 지향합니다.)


쥐박이 쉒기는 1%만의 대통령이다.
99%의 국민은 안중에 없고친일매국노 짓에 정신없다.
용산학살을 자행하고도 여론을 조작하고  
국민 복지는 관심 없이 쥐 일족 밥그릇 챙기는 것만 열중이다.
경제 위기 극복 능력 없이 국민 탓만하고 있다.
쥐박이의 무능을 홍보 부족으로 착각하고 방송을 장악하려고 시도하고  
한반도를 대운하로 토막 내려 한다.
서민 복지 예산 대폭 축소하고 콜센터 이미지 마케팅에만 열중한다.
쥐박이 정책의 잘못을 지적하면 무식한 알밥들을 풀어 유신 시절의 반공이데올로기를 부추긴다.
국가 비전의 제시없이 기도만 하면 되는줄 아는 무뇌충 개.독이다.
그런 쥐쉒이를 따르는 쓰레기가 서너명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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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고라에서 여러분들의 자료를 모았습니다. 닉네임을 잘 몰라서 올리지 못한점 사과합니다.-

 

예전에 노무현 공식 홈피에 올라왔던 글입니다.

노무현 그분도 육군병장으로 만기제대 했고,
그의 아들도 육군병장으로 만기제대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군면제 받은 그 어떤
사람하고는 차이가 날수밖에 없습니다.

노무현 각하!

당신은 진정한 대한민국의 국군 통수권자 이십니다.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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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이름 new 자유게시판

글 제목 제가 노무현님을 알게된 사연.....

글쓴이 정병석

글쓴 시각 2002-03-11 13:54:52


안 녕하십니까? 저는 경기도 평택에 살고 있는 32살에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제가 노무현이란 이름을 알게 되면서 그에 팬이 된 계기를 몇글자 적을까 합니다. 처음 이름 석자를 제 머릿속에 기역시킨것은 청문회를 보면서 였고 그 이미지를 확고히 한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92년 말인가 쯤에 강원도 화천에 있는 모부대에 근무를 하던 당시 저는 그때 소대 고참이었죠 먼저 저희 부대는 1년중 6개월이 야외 훈련인 무척이나 힘든부대였죠 그 만큼 서로를 아껴주는 부대였습니다.

늘 그렇듯 군대란곳이 한 무리가 제대하면 한무리가 입대하면서 만들어지는 사회이죠

어느날 한 신참이 자대 배치를 받고 왔습니다. 그 땐 참 얼굴이 ... 생략 표현 안함 이름이 뭐야 물으니까 노건호라고 대답하더라구요 그때 부터 군대에서 질문하는 순서대로 어디학교 다녔어 부터...여러가지 질문을 했죠 그러던중 아버지가 뭐하는 분이냐고 묻자 '노'자 '무'자 '현'자라고 답하더라구요

그래서 혹시 그 노무현이냐구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하데요 처음에 저는 믿지 않았죠 왜냐 그당시에 사회흐름이 돈없고 빽없는 사람이 군대간다고 하는 시절아닙니까? 근데 그의 하나뿐인 아들을 그것도 고생이 불보듯 뻔한 부대에 보냈으니 믿겠습니까? 제가 그랬죠 '야 뻥치지마' 그랬죠 그랬더니 가족사진을 보여주는 거였습니다. '정병장님 맞죠 제 말이. 히히' 그래서 저는 그 후 제대 할때까지 그 건호라는 친구로 부터 노무현이란 분에 대한 새로운 모습들을 보았죠

'군대 뭐하러 왔냐? 아버지가 빽으로 안빼 주대'고 물으니까 웃으며 그러대요
'야 남자는 군대 갔다와야되 그것도 힘든대로 가라고' 제 기억이 맞는 다면 자대 배치 후
첫면회때도 노무현님은 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집 주소가 여의도 길래 제가 또 한질문 했죠 '야 너네 데게 부잔가 보다 아버지 돈 많이 버니?' 그랬더니 묘한 웃음을 살며시 짓더니 '우리요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모아둔 돈으로 살아요' '그럼 아버지는?' '그냥 즐겁게 사신다'고 만 말하대요 돈에는 큰 욕심이 없이 무료 법률상담등등으로 볼때.

또 한가지 참 그 건호라는 친구는 활달하고 게그맨만큼이나 웃겨서 저희 내무반엔 항상 웃음이 돌았죠. 제가 반농담삼아 '네 아버지도 웃기냐?' 했더니 반색하며 '저희 아버지는 저보다 더 해요' 라고 대답하더라구요

제가 93년 7월 1일 제대할 때 까지 '형! 형!' 하며 따르며 제대할땐 자기 가족사진을 주며 뒷면에 주소까 지 빼곡히 써서 줬는 데... 세월에 묻혀서 살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스렇네요 이글을 노건호 친구가 혹시 보면 여기로 메일 보내 주세요, 저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coppae@hanmail.net'

{{ 끝으로 제가 아는 노무현 후보는 시대에 타협하지 않고 내 가족부터 솔선수범을 보여주며 진실로 서민과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것이며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사나이 입니다 패배를 두려워 하지 않고 말입니다. 승리할 때 까지}} 후보님 항상 보이지 않게 지켜보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힘내시고 꼭 소원성취하세요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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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고라 사람사랑님의 글 펌-




















































 

***노무현경제에 대한 외국의 평가***

1.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테크놀로지와 자동차, 제철, 조선기업 등의 본고장”
(미국 TIME지 아시아판: 05-11-14)

2.
 "한국을 배워라-그들은 대국이 될 것이다"
이태리의 유력 일간지 <꼬리에레 델라 세라 (2007년 2월26)>

3.
"한국은 SF가 현실이 돼가는 곳" "미국에서는 수년 뒤에나 소개될만 한
첨단 기술을 한국인들은 이미 실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다"

4.
아시아는 이미 한류에 젖은 지 오래다.
무엇보다도 일본 · 타이완과 태국에서는 청소년들이
한국 대중가요, 한국 연속극, 한국 배우들과 만화에 열광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2005-10-19, 사설)

교육면에서도 한국은 이미 다른 나라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으니, 한국 학생들은 자녀들이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열성적으로
지원하는 부모들 덕분에 피자(PISA)테스트 : OECD 국가 중심 전세계 고교생
학력 테스트에서도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2005-10-19, 사설)

5.
한국은 1인당 GDP가 2030년 독일을 넘어서고, 2035년에는
일본을 넘어서고 2050년에는 미국 다음이 될 것이다-미국의 <골드만 삭스>
(<도깨비뉴스>: 2005년 5월1일)

6.
"한국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하이테크 국가"
"한국만큼 미래 경제를 새로운 정보기술(IT) 산업과 밀접하게 결부시키고 있는 나라는 없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2006. 4.24)

7.
"韓 1인당 소득.. 2050년 美 이어 세계 2위" -미국의 골드만 삭스
(연합뉴스: 2007-03-29)

8.
'한국은 IT 세계챔피언' 세계 언론 앞다퉈 소개
르몽드 특집..."IT 코리아 뒤엔 한국정부 열정있다"
(연합뉴스: 2006-07-09)

9.
“한국, IT · 혁신 · 한류로 일본을 앞지르는 중”
(프랑스의 <르몽드: 2006년 6월 5일>)

10.
“인터넷강국 한국에 로봇시대 온다”(In a Wired South Korea,
Robots Will Feel Right at Home). “2010년 '1가정 1로봇'” (NYTIMES지)

11.
"여기에도 한국, 저기에도 한국, 어딜가나 한국(Coree ici, Coree la, Coree partout)"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인 한국의 스위스 수출은 지난해 20%가
늘어나 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고 말했다.
(스위스의 『르 탕』지: 2006-4-21)

12.
'미국이라는 제국이 몰락하고
한국이 세계 11대 강국이자 아시아 최대의 경제국으로 부상한다'
-미래예측학자이자,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 (YTN: 2007-04-15 )

13. "한국은 시대를 따라가는 나라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는 나라"
"한국은 세계적인 수준의 테크놀로지, 자동차, 제철, 조선기업들의 본고장이다.
한국은 이제 초고속열차와 컴퓨터로 통제되는 김치 냉장고의 나라가 되었다"
미국의 <타임> 아시아판 (05.11.14)

14.
獨 언론, "한국 기업들 질주 무섭다"
"2004년 한국의 531개 상장기업들은 평균 2배의 수익을 올렸다.
이러한 성장 다이나믹은 늙은 유럽으로서는 꿈을 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독일의 (노컷뉴스: 2005-4-9)

15.
"미국인구의 6분의 1에 그치는 인구를 가진 한국에서
배출되는 기술 인력이 미국과 맞먹는 상황"
(뉴스위크는 2006 10대 이슈 특집에서)

16.
˝한국, 구매력 기준 국민소득 10년내 일본 추월˝-영국 바클레이즈증권 발표
(연합뉴스: 2002-07-04)

17.
"한국은 최근 IT분야에서 막강한 신기술을 보유한 하이테크
이미지를 구축해 가고 있다" -킴 루오또넨 주한 핀란드 대사
(머니투데이: 2005-12-07)

18.
‘앞으로의 세계는 IT와 BT가 이끌어갈 텐데
전 세계적으로 이것을 가장 잘 할 민족이 바로 한민족’-엘빈 토플러 (미국의 미래학자)
(데일리서프라이즈: 2005-10-08)

해외 유력 신문인 인터네셔널 헤럴드 트리뷴이
"역사는 2월 퇴임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존경을 안겨줄 것"이라고 논평하였다.

아래는 원문입니다.
http://www.iht.com/articles/2007/12/28/news/letter.php?page=2


<Shuffled off to history, veneration of Ro Moo Hyun will follow>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갈 노무현 대통령에게 존경 따를 것'

By Howard W. French Published: December 28, 2007

In recent years, South Korea, the prosperous, democratic half of a country on-ce known as the Hermit Kingdom, has provided us with as good a reminder of this as anyone. When Roh Moo Hyun was elected president in 2002, few would have predicted that the ballot choices of his country's 35 million registered voters would have played a determining role in international affairs over the next several years. And yet that is exactly what transpired.

Roh is leaving office as a deeply unpopular leader, a man lampooned as ineffectual, undisciplined and, for some, even mischievous. Seen narrowly, such a reputation would suggest the slimmest of legacies.

At least on-e thing that Roh believed in deeply will prove to have mattered greatly and will very likely stand the test of time, however, lending unexpected import!!!!ance to his role and to the role of his country well into the future.

The South Korean leader was strongly attached to the idea of rapprochement with the estranged northern half of his country. In the end, this meant holding his ground under the most trying of circumstances, including a gale of hostile language directed at Stalinist North Korea from Seoul's most important ally, the United States, whose president, George W. Bush, branded it a member of the "axis of evil."

Few Americans outside of the small community of specialists in East Asian affairs have any sense of the role played by Roh. Indeed, exasperated with Roh over other issues, South Koreans appear not to give him much credit, either.

What we do know now, however, is that the Bush administration spent the new few years, following the famous 2002 State of the Union speech in which he first pronounced the words "axis of evil," fighting a war in on-e of the constituent countries, Iraq, and steadily ratcheting up pressure on another, Iran.

For a time, tensions rose strongly with the third country, North Korea, too, especially after its leader, Kim Jong Il, expelled international atomic inspectors and exploded a nuclear device. Pyongyang's nuclear breakout surely helps explain why the United States has not chosen a more confrontational approach, as it did with the other so-called axis members, but on-e could argue that the behavior of the supposedly feckless Roh was equally important.

Under the circumstances, avoiding conflict and enhancing engagement required a huge dose of determination and considerable diplomatic skill. At times, Washington was furious at what it perceived as Seoul's appeasement of the North, so much so that people in both countries worried about irreparable damage to the alliance.

At considerable cost to his popularity back home, Roh, who was elected 11 months after the "axis" speech, bought diplomatic maneuvering space for himself, if not outright credibility in Washington, by becoming an early joiner of the "coalition of the willing" and sending troops to Iraq.

It is, of course, impossible to know what might have happened had South Koreans elected a more hawkish leader, or simply a more compliant on-e. It is not far-fetched to imagine, however, that the Bush administration could have taken a more confrontational approach toward North Korea than the path it ultimately settled upon.

What is certain, however, is that with an elected leader in South Korea insisting that his country would oppose any military solution to the North Korean crisis, Washington had few practical options other than to gradually reconcile itself to diplomacy.

North Korea profited from the interlude of saber-rattling to strengthen its negotiating hand, and in the end it was negotiations that eventually produced a rare diplomatic understanding between Washington and Pyongyang about nuclear proliferation and eventual normalization of relations.

South Korea has just elected a new leader, Lee Myung Bak, and it is far too soon to say what sort of impact he might have on this region's complicated diplomatic geometry.

For his part, Roh will soon shuffle off into history, reviled, belatedly celebrated, or perhaps simply largely ignored. And yet his was the kind of example that we must start being more accustomed to: the leader of a peripheral, medium-sized state having an outsized impact on the shape of our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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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님의 자주국방 업적들....

[ 세계 최고의 장갑을 자랑하는 K-21 전투 장갑차 개발 ]


[ 탱크킬러 아파치도 떨어트리는 세계최강의 XK-2 최신형 전차 개발 ]


[지대공 미사일 '천마' 개발]


[ 서해상의 근거리 접근 항공기에 대한 격추시현 장면 ]

[ 휴대용 대공유도무기 - 신궁 개발 ]


[ 214급 잠수함 개발 ]

[ 세계최강의 펀치력을 자랑하는 우리의 KDX-3 이지스 세종대왕함 개발 ]

우리가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스스로 힘을 함부로 쓰지 않으면 평화를 유지할 수 있고, 아무리 지키고자 해도 스스로 지킬 능력이 없으면 평화를 유지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노대통령님은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열린 해군 이지스 구축함 ‘세종대왕함’ 진수식 축사에서 이같이 밝힌 뒤 “지난날 역사에서 우리가 얻었던 경험대로 이제 우리 스스로 확실히
지킬수 있는 능력을 갖춰 가야 할것"이라고 역설했다.


[ F-22 랩터를 제외하면.. 세계 최강의 전폭기인 F-15K 최신형 전폭기 도입 ]

[ 공중조기 경보 통제기 도입 직접 지시 ]


[ 글로벌 호크 도입 직접 지시 ]


[ 주변국을 우려해 실용위성으로 가장한 아리랑 첩보위성 개발 ]

[ 아리랑 첩보위성으로 촬영한 백두산 천지 ]


[ 세계 최강의 K-9 자주포 개발 ]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져 장렬히 전사한 장병앞에 한민국 국가 원수로써 경건한 마음으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노무현 대통령 "방어 능력 없으면 평화 유지 못한다"


<다들 많이 보셨던... 설명생략 ㅜㅜ>


유럽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은 중동지역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보좌관들에게 우리 자이툰부대가 있는곳을 방문해서 장병들을 위로하고 싶다며... 원래 예정에도 없던 이라크 아르빌에 도착해 자이툰부대 특전사의 노고를 치하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있다..

<누구보다 자주국방에 관해 깊이있는 철학을 가지고 계셨던 분.. 다시한번 눈물을 머금습니다....ㅠㅠ>

출처:http://member.knowhow.or.kr/member_board/view.php?start=20&pri_no=999739777&mode=&total=160920&search_target=&search_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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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이 전시 작전 통제권 환수를 위해 노력할 때 전직 국방장관들과 예비역 군장성들이 불만을 나타내자,

노무현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께서는 오히려 군이 이지경이 되도록 전직 국방장관들과 예비역 군장성들 별들 달고 이제까지 도대체 뭘 했느냐 ? ,자기들의 직무유기 아니냐 ?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라고 일갈 할 때의 그 포스, ,,,,,,,.



니들이 그렇게 좌파,빨갱이라고했던 실질적인 대한민국 제2대 대통령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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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님께서 국민을 대하는 태도.... 

- 대통령 재임시 엄청난 악플에 대하여-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대통령을 욕함으로써 주권자의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면 전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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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맞은 노무현...

"정치하는 사람들이 좀 맞아 줘야, 국민들 화가 좀 풀리지 않겠습니까?"


(출처:아고라 경제토론방 가족맨님의 글 "노무현대통령 아들을 신병으로 받았던 병장의 회고")

Posted by 명박퇴진안모씨 명박퇴진-안모씨 Trackback 0 : Comment 0

" 목 매달아 죽으려던 날 살린, 노무현 대통령 당신이 돌아가시다니…. 난 19년 전 당신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당신이 내게 준 선물을 이제 영정에 바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다. 한경탁(63)씨는 한 손에 비닐봉투를 든 채, 27일 오전 10시 여수분향소를 찾았다. 그가 분향소 앞에서 봉투 속에 들어 있던 노란 보자기를 꺼냈다. 보자기 속에는 허리띠로 꽉 묶은 하얀 천이 나왔다. 한씨가 울며 허리띠를 풀었다. 그 속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과 액자가 들어 있었다. 액자에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약속은 생명이다.""욕심 부리지 마라." 한경탁씨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얽힌 사연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에게 무슨 사연이 숨어 있을까?

"나와의 약속 지킬 수 있느냐? 약속을 꼭 지켜라"


한경탁 씨가 살아생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받았던 액자를 들고 흐느끼고 있다.

ⓒ 임현철


"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 1990년에 받은 선물이다. 그분이 직접 쓴 게 아니지만 내겐 너무도 소중한 것이다." 울던 그가 이야기를 풀어냈다. "19년 전, 진주 길가에서 베이지색 잠바 차림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았다. "어떻게 날 알아보냐"고 물었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문회 스타였으니, 못알아 볼 리 없었다. 그런데도 자기 같은 사람을 기억해줘 고맙다고 했다. 그렇게 그에게 인사하고, 5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나는 죽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래 '사는 게 괴롭다. 죽음을 택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깜짝 놀라며 내게 신신당부했다."굳세게 살아라. 아이들 둘을 지켜야 하지 않느냐. 나와의 약속 지킬 수 있느냐? 약속을 꼭 지켜라. 그 마음으로 살아라."그리고도 마음이 안 놓였는지 내게 액자를 줬다. 이 액자가 그 액자다. "약속은 생명이다. 욕심 부리지 마라"란 글이 써진 액자였다. "약속을 지켜줘 고맙다. 살아줘 고맙다!"




여수분향소를 찾은 한병탁 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받은 선물을 꺼내며 오열하고 있다.

ⓒ 임현철

1년 뒤 1991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시 만났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앞이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선거 유세 중이었다. 처음에는 나를 몰라봤다. "진주에서 죽으려고 했던 사람이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며 반가워했다. 길거리에서 악수와 포옹을 했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 약속을 지켜줘 고맙다. 살아줘 고맙다." 살다가 정말 사는 게 힘들어 또 죽으려고 했다. 허리띠로 목 매달거나 산에서 뛰어내리려고 목포 ○○○로 갔다. 도저히 죽을 수가 없었다. "나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느냐?"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그래서 지금까지 딸과 아들 세 식구가 잘 살고 있다. 벽에 부모님 사진도 걸지 않았는데, 이 액자를 벽에 걸었다. 매일매일 바라보며 살았다.

"군에서 아들도 분향할 것이라 믿는다!"




1991년 연세대 병원 앞에서 다시 만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병탁 씨.(사진은 당시 노무현 국회의원 비서관이 찍어줬다 한다.)

ⓒ 임현철


딸 옥란(36)씨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 아버지가 예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과거에 돌아가시려고 했다는 것은 지금 처음 알았다." 한옥란씨는 분향소를 찾은 이유에 대해 "어제 '분향했냐?'고 묻길래 안 했다고 했더니, '누구 때문에 살았는데 아직 분향을 안 했냐'며 나무랐다"며 "아이들 학교 보내고 아버지와 분향소를 찾았다. 지금 아버지 몸이 많이 아프다"고 말했다.

한경탁씨는 "아들은 군 복무 중이라 함께 오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대신 "군에서 아들도 분향할 것이라 믿는다"라고 했다.

'바보' 노무현에서 '은인' 노무현으로




분향하다 쓰러진 한병탁 씨. 그는 5분여 만에 깨어났다.

ⓒ 임현철


한씨는 서거 소식을 듣고 바로 김해 봉하 마을에 다녀왔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진주를 둘러본 후 다시 고향 여수에 돌아왔다.

그랬던 그가 다시 빈소를 찾은 이유는 "자식들과 함께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며 영정 앞에 액자를 바치려는 것"이었다.

영정 속 노무현은 '살아줘서 고맙다'는 듯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18년이 흐른 이날의 해후는 순탄치 않았다. 생과 사로 갈려 있었다. 그를 두고 그가 먼저 떠난 것이었다.

노무현을 맨 정신으로 볼 수 없었을까? 한씨가 영정 앞에 선물을 놓으며 오열했다. 그가 잠시 혼절했다. 119 도착 후 깨어난 그가 허리띠를 들었다. 손이 부르르 떨렸다.

'바보' 노무현은 '은인' 노무현이었다. 그랬던 그가….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view.html?cateid=1026&newsid=20090527173805784&p=ohmynews

 



 

(출처:사람사는 세상 홈페이지.

원본 링크:http://member.knowhow.or.kr/user_photo/view.php?pri_no=999586626&start=0&total=7523&search_target=&search_word=)

Posted by 명박퇴진안모씨 명박퇴진-안모씨 Trackback 0 : Comment 0